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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인터뷰 - 윤승현

16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최은화 기자

16기 SPACE 학생기자단이 ‘다시 보는 「SPACE」’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콘텐츠는 월간 「SPACE(공간)」에 게재된 프로젝트, 이슈, 인물 등을 되짚어보는 인터뷰 시리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1. 서재원, 이의행(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오렌지주스맛 단단집

2. 이진오, 박인영(건축사사무소 SAAI): 어쩌다가 건축으로 만난 인연들

3.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건축의 일부와 일생

4. 이용주(이용주건축스튜디오): 건축으로 교감하기

5.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 벌거벗은 진솔함 

6. 정수진(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삶과 정서적 공간으로서의 집

7. 윤승현(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비움, 채움, 이음 

8. 임진영(오픈하우스서울): 문화행동이 문화가 되기까지    

 

 

 


월간「SPACE(공간)」 2019년 10월 623호 56~57쪽​ 

 

 

비움, 채움, 이음 

인터뷰 윤승현(건축사사무소인터커드) × 유아림, 도현우, 장은영(16기 SPACE 학생기자단)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설계공모에 제출한 계획안의 제목 ‘EN-CITY, ENGRAVING the PARK’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는 비움이 중요하게 작동해요. 서울과 같은 고밀도의 도심 환경에서 볼륨을 비워내는 과감한 선택을 어떻게 하게 됐나요?

윤승현: 이 프로젝트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설계지침서에서 땅 위와 땅 아래의 관계를 규명하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이 말이 가장 중요하게 읽혔어요. 우리가 해석한 건 여러 가지인데, 첫 번째는 땅 속의 박물관과 땅 위의 공원이 따로 놀지 말라는 얘기로 이해했어요. 두 번째는 은유적으로 수 천명의 죽음의 흔적이 땅에 스며 기억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고요. 땅 위와 땅 아래를 이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음각이라고 생각했어요. 박물관에 두 개의 큰 보이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진입 환경을 만드는 광장으로 쓰고(진입광장), 하나는 상징의 완성체로서 정점에 뒀어요(하늘광장). 

 

16기 SPACE 학생기자단: 두 개의 보이드를 연결하고 주변을 구성하는 공간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요.

윤승현: 가장 먼저, 종점과 시점에 두 개의 큰 보이드를 뚫었고, 그 다음으로 둘을 잇는 경로의 건축을 만들었어요. 하나 덧붙여진 것은 역사적 상처와 흔적들을 기억하고 치유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공간이에요(콘솔레이션 홀). 하늘광장이 가로, 세로 33m에 높이 18m의 어마어마하게 큰 빈 공간인데 하늘을 뺀 다섯 면이 다 똑같은 벽돌벽이에요. 하늘 광장에서는 하늘과, 하늘과 대비되는 내가 주인공이지 벽돌이 주인공이 아닌데, 자꾸 건축가가 기교를 잘 부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죠. 그럴 때마다 ‘우리 참기로 했잖아’하고 끊임없이 얘기했어요. 지금으로서는 잘 한 것 같아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하늘광장의 출입구가 있는 유리 벽면에 기둥이 없는 것도 더욱 묵직하고 힘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윤승현: 맞아요. 번잡한 도심에서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환경이 종교적인 공간의 성격과 맞닿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종교적 공간인 콘솔레이션 홀에서 나와 나지막한 영역을 통과하면 어마어마한 공간에 하늘이 보이며 나를 되돌아보게 되죠. 초기 설계안에서는 하늘광장으로 나왔을 때 시선의 끝에 제대를 두려고 했어요. 설계공모 당시 리서치를 하며 유대교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인 통곡의 벽에 사람들이 쪽지를 하나씩 꽂는 행위를 흥미롭게 봤어요. 본인의 기원의 흔적을 남기는 거잖아요. 하늘광장에서 생긴 상념들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하늘광장과 병렬하는 콘솔레이션 홀을 ‘죽음의 공간’이라고 비유했듯이 이곳은 어둠 속에서 작은 틈으로 내려오는 빛이 신성한 분위기가 커요. 이 빛에 담은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윤승현: 사람이 죽고 나서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죽은 이후의 것들이 영롱하게 빛나 현재에 경종하기도 하고요. 한국에 천주교인이 500만명이 있다고 하는데, 과거의 아픔을 딛고, 번영하고, 성장했으니 그 아픔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게 바로 죽음의 공간 속 아스라한 빛 한줄기이에요. 

 

월간「SPACE(공간)」 2019년 10월 623호 58~59쪽​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앞서 두 개의 보이드를 이어주는 경로의 건축을 언급했는데, 그 경로 속에서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퀀스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윤승현: 오늘날 전시장은 모든 것에 대한 존중, 자의적 해석, 다양성 등의 이유로 경로를 강요하지 않아요. 원하는 방식대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는 거죠. 반면 우리는 굉장히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박물관을 구성했어요. 이곳의 정체성은 죽음과 관계가 된 것이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간적으로 실체화해줘야 됐어요. 갑자기 죽음의 공간이 등장한다면 공감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곳에 다다르기까지의 경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설계공모 때 사용한 용어가 ‘pilgrimage(순례길)’인데, 박물관 안에서의 경로를 순례의 여정이라고 봤어요. 마지막에 죽음의 공간인 콘솔레이션 홀로 들어가는 경로도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누 밑을 넘어가는 것처럼 했어요. 2m의 낮은 개구부를 넘어가려면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고, 그 안에서 고개를 들면 암흑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돼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성지’, ‘순례길’과 같은 종교적 성격이 강한 개념들을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공건축으로 중화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요?

윤승현: 기본적으로 종교공간은 공공공간이지, 사교공간은 아니거든요. 신념과 종교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해요. 유럽에서 성당은 모두의 공공공간이지, 종교인들만의 전유 공간이 아니죠. 사회를 결속하는 굉장히 중요한 근간 중의 하나가 종교라고 생각해요.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종교성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부지는 1970년대에 근린공원으로 바뀌었는데, 1980년대 말에 지하주차장이 만들어지고 중구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활용됐어요. 공원이지만 환영 받지 못했고, 그래서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들이 춥지 않을 때는 이 공원으로 올라왔죠. 여러가지 측면에서 갈등이 지속되는 땅이었어요. 박물관 완공 이후에도 날씨가 좋으면 여전히 벤치에 노숙자분들이 와서 잠을 자요. 여기에 지금 관장으로 계신 원종현 신부님이 포용적인 메시지를 덧대 주셨어요. ‘Homeless Jesus’라고 종교인들이 특별하게 보시는 조각인데, 이 조각을 공원 벤치에 두자고 제안했어요. 예수도 본인 집이 없었던 사람이니, 노숙자와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설계와 공사 과정에서 공원에 종교적인 색깔이 지워진 것이 아쉬웠는데, 저도 종교성이 위의 공원에서도 발휘될 수 있게 하는, 메시지가 좋은 작품이라 좋다고 했어요. 이 조각이 공원에 놓이며 종교성을 발휘해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 중 일부는 공공의 땅에, 공공의 예산을 들여서 성지화 작업을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윤승현: 없지 않아 있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사업은 공공이 함께 노력해서 만든 공공공간이라는 것이고, 거기에 하필이면 천주교의 성지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설계 작업을 고민하면서 이 장소에 함유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그 중에서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죠. 이 때 공공을 기반해서 이야기 거리들이 담겨야 하지, 종교적인 아이템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돼요 천주교의 색깔, 정신, 역사적 흔적 등을 어떻게 매몰시키지 않고 이 땅 안에 녹일지 신중하게 고민이 필요해요. 공공과 천주교가 박물관을 구상했던 사전준비기간 동안 천주교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놨다면, 우리는 설계하고 공사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공공공간에 담아야 되는지, 어떻게 사회에 함께할 수 있는 지를 구체화했어요. 여러 논쟁들이 슬기롭게 극복된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공공건축물은 언제나 형평성, 공정성에 매몰되어 어느 지역이나 똑같은 시설을 강요해요. 강원도에 있는 문화센터나, 서울에 있는 문화센터나 비슷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죠. 오히려 공공공간일수록 지역과 장소에 기반해 장소가 갖고 있는 특성, 힘, 가능성들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이야기한 것처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고유한 종교적 분위기로부터 경건함과 위로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공공공간이 되는 듯 해요.

윤승현: 지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종교 행위는 만한 정하상 경당이라는 한 장소에서만 일어나요. 약 100여 석이 있는 이 곳에서는 미사가 진행되는데 찬송가 소리, 파이프 오르간 소리,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냄새 등 마냥 가볍고 경쾌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가 생겨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요. 이런 현상들이 대단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 공간은 모두 공공공간이에요. 현재 박물관의 관장님은 신부님이고, 천주교의 본산인 서울대교부가 위탁운영 형식으로 운영 중이에요. 하지만 문화공간, 예술공간, 역사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요. 여기서 재즈 페스티벌도 했고,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의 공연도 있었고, 전시도 다섯 번째 바뀌었어요. 거꾸로 불교에서 한 번도 불화전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여기서 불화전을 하겠다고 신부님이 기획하기도 했어요. 이런 사례들을 보면 경직된 공공이 운영하는 것보다 건강한 종교집단이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아주 유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월간「SPACE(공간)」 2019년 10월 623호 60~61쪽​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역사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 위에 지어졌으나 실제로 방문해 보면 경의선과 염천교로 단절되어 있어 접근이 어렵고 바로 옆으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등의 지리적 제약이 있어요. 물리적 접근성이 제한됨에 따라 예상되는 이용의 어려움들이 있지는 않았나요?

윤승현: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물론 고립된 장소인 만큼 부정적 요인과 물리적 제약이 훨씬 많았어요. 다만, 물리적 단절이 바깥과 소통하지 않도록 단절시키는 것도 있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보호하는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성격과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흩어지지 않는, 고유성이 있는 땅일 수도 있겠다, 도시의 번잡한 곳에 굉장히 고요한 환경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작동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과 같은 공공건축물을 설계할 뿐만 아니라 학회지에 글을 기고하고 영주시 공공건축가로 역임하는 등 등 공공건축 전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대도시와 농촌도시 모두에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한국의 공공건축에 대한 소장님의 시각을 공유해줄 수 있나요?

윤승현: 영주시 공공건축가를 맡았던 게 큰 계기가 되었어요. 서울 사람이어서 스쳐 지나가는 태도로만 지방을 보다가 지방도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됐죠. 공공건축에 대한 절실함은 지방에서 훨씬 크다는 것을 영주시의 영주조제보건소를 예시로 들어서 종종 얘기하곤 해요. 서울 강남구에서는 돈만 더 지불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편리한 의료기관들을 쉽게 갈 수 있어요. 그런데 농촌마을은 불가능하죠. 농촌마을의 어르신들이 보건소에 와서 단순히 치료만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사회의 정당한 객체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주조제보건소를 설계할 때 테마를 ‘부잣집 만들어주기’로 잡았고, 어르신들이 TV 드라마에 나올 법한 윤택한 공간을 느끼도록 했어요. 마을의 공유자산으로서 주민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몸과 마음의 아픈 곳을 모두 치유할 수 있고 아늑하게 쉴 수 있는 보건소로 만들고자 했죠. 지역 사람들에게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라고 얘기하는데, 이 자부심이 역사와 자연환경, 고향에 대한 노스텔지어만 가지고 얘기되어서는 안 돼요. 과거의 유산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자원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원도심을 죽이지 않으려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활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며 삶의 질을 다루는 부분이 불가피하게 등한시됐어요. 이제는 양으로 승부하는 시기를 건너뛰어서 질을 담보하는 시기로 넘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민간에서 좋은 카페, 식당, 문화공간이 생기더라도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해요. 누구에게나 공평한 문화복지와 도시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공공공간일수밖에 없어요. 이건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에나 공통적인 아젠다가 됐어요.

 

16기 SPACE 학생기자단: 마지막으로 공공 프로젝트에 임할 때 놓치면 안 되는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 여쭤보고 싶어요.

윤승현: 첫째는 잘 짓는 것. 건축가는 궁극적으로 집을 잘 짓는 사람이에요. 자신만의 건축적 가치와 지향점만을 고집하며 하나의 조각을 만드는 게 아니라. 둘째는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누구에게 특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존중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도록 노력이 필요해요. ​ 

 

월간「SPACE(공간)」 1977년 7월 121호 93쪽​ 

 

 


▲ SPACE, 스페이스, 공간


윤승현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2004년 (주)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를 개소한 이래 15년여 동안 건축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새건축사협의회, 공공건축가 등의 활동을 통해 건축계에 건강한 풍토 조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촌 홍현, 구름정원협동조합주택, 영주 조제보건진료소, 도화동 복합청사 등의 대표작을 통해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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