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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된 사건의 서사를 다시 쓰다: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진행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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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전이 개막했다. 88서울올림픽이라는 거대한 국가 이벤트가 촉발한 우리 도시와 건축, 디자인의 변화와 그 유산을 살펴보는 전시다. 프롤로그, 에필로그와 4부로 구성된 전시는 한시적 이벤트로 휘발되었던 사건의 두께를 아카이브를 통해 입체적으로 증폭하고, 그 틈을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해석으로 채우고자 한다. 건축과 디자인계 안팎에 나타났던 발전을 직능의 관점에서 조명한 이번 전시에 대해 기획자인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인터뷰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방유경 기자​​ 

 

 

진달래&박우혁, ‘마스터플랜: 화합과 전진’, 12채널 영상, 사운드, 그래픽, 설치, 가변크기, 2020  

 

 

방유경(방): 이번 전시는 과천관에서 2020년 선보인 마지막 전시다. 지난 10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건축과 디자인을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다뤘는데, ‘왜 지금 올림픽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정다영(정): 여느 공공기관처럼 우리 미술관도 1년 전에 계획을 세우고 전시 계획을 발표한다. 이 전시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올림픽이 남긴 도시 유산을 다시 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다. 물론 그때는 올림픽이 연기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웃음)

 

방: 전시를 보면 올림픽이 메인 테마가 아니고, 변화의 변곡점으로 읽힌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되고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는 시의적 변화가 전시 기획이나 준비 과정에 영향을 미쳤나?

정: 주제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이 전시의 방점은 올림픽이 아닌 일상생활에 있었다. 1980~1990년대 건축과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연대기적으로 구성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국내 자료와 연구가 너무 빈약하고 파편적이었다. 그래서 상징적 사건으로 ‘올림픽’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본 것이다. 특정 시대 상황 속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중의적인 매개체인 셈이다. 팬데믹 상황을 경험하며 사람들이 익숙한 생활환경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한편으로 이런 변화가 오히려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방: 1부가 올림픽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흐름과 올림픽의 직접적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담았다면 2부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디자이너, 조직, 프로덕션 과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시에서 건축과 디자인 두 영역은 어떤 관점으로 엮이고 있나?

정: 일반적인 건축 전시는 주로 ‘재현’의 문제를 다룬다. 건축물의 형태나 공간의 조형성과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각 영역의 직능에 충실했을 때 그 결과가 도면, 그래픽, 모형 등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산업의 생산과 결과라는 측면에 주목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픽부터 도시설계까지 ‘계획’에 공통된 문법이 존재함을 드러내고 싶었다. 공식 마스코트인 호돌이를 그릴 때 눈금 종이 위에 작도하는 것과 도시나 건축을 설계할 때 큰 지도를 깔고 작도하는 논리 구조가 같다는 얘기다. 예술가 그룹이 지닌 창작자로서의 고유한 상(像)이 있다면, 계획하는 디자이너 그룹이 가진 상은 이런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물론 각 영역마다 고유의 몸짓이 있고, 이를 표상하는 매체와 결과물이 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목업하고 다이어그램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은 다 통한다고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1980~1990년대는 이러한 직능을 통해 물질적인 결과물을 가장 풍부하게 생산했던 시기다. 이런 결과물이 가진 규율과 규칙, 논리가 그 자체로 얼마나 뛰어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 

 

 

88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모형, 기흥성 제작, 145×​145×​30cm​, 기흥성뮤지엄 소장, 1980년대​

 

구본창, ‘​긴 오후의 미행, LA 105’(여의도)​,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9.5×29.5cm, 1988

 

 

방: 그렇다면 이 직능을 보여주는 대상, 즉 전시의 대상은 어떻게 한정했나?

정: 88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건축과 디자인 분야가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되도록 추동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중심으로 기획 단계에서 ‘올림픽 가시권’을 설정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에서 크게 바뀐 공간이 중심이다. 동신시가지아파트나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와 같이 당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설계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대중교통과 연계된 인프라스트럭처, 63빌딩이나 한국종합무역센터와 같은 고층 오피스 건축,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신라호텔, 롯데호텔 등의 고급 숙박시설, 서울대공원과 롯데월드 같은 테마파크,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이 주요 대상이었다. 이 작업들을 수행한 건축 및 디자인 조직에 대한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한편, 작가들에게는 이 대상들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커미션 작업을 의뢰했다.

 

방: 참여 작가들을 보면 1980년대 이후 출생하여 올림픽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중심이다. 활동 영역도 상업 디자인, 엔지니어 등 산업과 예술의 경계에 있어 순수예술과는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2부 ‘디자이너, 조직, 프로세스’에서 웹툰 작가인 선우훈이 서울의 도시사를 압축하여 그려낸 ‘모듈러라이즈드’나 건축, 디자인 등 산업 영역에서 큰 변화를 주도했던 인물들의 서사를 웹툰으로 재해석한 ‘캐릭터라이즈드’는 인터뷰 영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와 작업을 독해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 사실 의도적으로 그런 분야의 작가들을 섭외했다. 그간 88서울올림픽은 정치, 경제, 문화 논리에 짖눌려 ‘명과 암’의 이분법적 구도로 해석되고 회자되지 않았나.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30년 정도 지나니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올림픽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적 거리가 생긴 것 같다. 88서울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역사적 틀이나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 올림픽을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작가들도 상업 영역에서 활동하다 보니 작업을 의뢰할 때도 손발이 잘 맞았다.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잘 간파했던 것이다. 마감 일정이나 기본적인 소통의 도구(도면, 서류 등)와 결과물 등도 잘 맞춰주었다. 직능에 탁월했다고 할까.

 

방: 이런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예술가 개인이 아닌 기업의 탄생, 조직이 내적 논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2부의 주제와도 이어진다.

정: 그동안 김중업과 김수근이 타계한 이후 한국 건축에는 4.3그룹만 있다고 생각하고 전시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정림건축이나 원도시건축 등 중대형 회사도 존재하지 않았나. 미국으로 치면 SOM 같은 영역이 한국 건축사에서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최근 아카이브 사이트를 만든 설계회사들도 있는데 이들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수확은 건축 전산화 과정을 연구하면서 정림건축에 근무했던 조찬원(빌딩스마트협회 기술연구소장)을 만난 것이다. 그는 설계에 캐드를 도입했던 과정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와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기술 관련 분야는 공학이라 생각해 거리를 두었었는데 보다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시대 건축을 연구하면서 최근 한국 현대건축가들의 작업 체계를 ‘파일과 폴더’라는 키워드로 분석해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런 작업의 초기 과정이 캐드 수용 과정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학사, ​​디오라마 서울, 3D 프린터 출력 모형, 스틸 케이스, 가변크기​, 2020

선우훈, ​​모듈러라이즈드 1988 부분, 디지털 드로잉, 가변크기​, 2020

 

 

방: 공간적으로 전시의 중심이라고 느낀 영역은 3부 ‘시선과 입면’이었다. 아카이브 자료, 구본창의 사진, 기흥성모형연구소의 모형, 최용준의 사진, 서울과학사의 모형 사이에 30년의 시간차가 있다. 그리드 형태로 배치된 공간 속에 과거와 현재가 다층적으로 오버랩된다.

정: 이는 의도적인 연출이기도 했다. 원래는 시대별로 본다는 의미로 ‘세 가지 시선’이라는 부제를 달았다가 너무 레트로 전시로 읽히는 느낌이라 이름을 바꿨다. 전시 공간에 벽이 별로 없는데 최용준의 사진을 거대한 파사드로 세우고 그 앞에 30~40년의 시차를 둔 모형들을, 벽 뒤에는 작업과 연관된 아카이브를 배치했다. 누군가는 작품들 사이의 시차를 간파하리라 생각했다. 특히 최용준의 사진은 구본창의 ‘긴 오후의 미행’ 연작과 시각적으로 통하며 극명한 시차를 보여준다. 이 흑백 연작은 구본창 작품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 작업이다. 실제로 그는 88서울올림픽 당시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이력이 있는데, 전시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옛 작업이 최근 들어 조금씩 호출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당대를 기록했던 시선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 같다.

 

방: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정: 늘 그렇듯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이다. 주제를 연구하고 기획하고 작품 제작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아카이브 자료를 찾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인 미술 작품들처럼 출처와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전시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향후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이 문을 연다면 박물관 본연의 아카이브, 연구 기능이 확대되어 지금의 상황이 개선되면 좋겠다. 이에 필요한 전문성 있는 학예 인력을 꾸려 조직을 운영해 나가리라 응원하고 기대한다.

 

방: 건축 분야 학예사로 10년째 활동해왔다. 그간 선보인 전시의 스펙트럼 안에서 이번 전시는 어떤 의미가 있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전시나 연구의 방향은?

정: 이번 전시는 나에게 여러 화두를 던져준 전시였다. 서울관에서 기획했던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2017)에서는 종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콘크리트가 주인공이었다고 할까. 자기 보완이 되는, 레퍼런스가 되는 전시여서 좋았다. 요즘은 과천관 리뉴얼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건축 큐레이팅이나 건축 아카이브가 아니라 미술관 자체를 어떻게 큐레이팅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있다. 빅테이터나 드론 촬영, 증강현실(VR)을 전시 결과물 제작이 아닌 전시 큐레이션의 방법론으로 활용하는 것도 모색하고 있다. 인문학자인 신정훈(서울대학교 교수)은 최근 논고에서 “과거에는 도시를 볼 때 발터 벤야민의 시선으로 얘기했다면, 이제는 구글맵과 드론, 3D 스캐너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굉장히 공감한다. 드론이나 3D 스캐너와 같은 디바이스를 담론으로 사용했을 때 공간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가회동 한옥 조사하듯 손으로 실측하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에 가능한 데이터 수집 방식은 무엇인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전시 전경 ⓒBang Yu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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