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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공동체적 가치를 제안하는 주택

박창현(에이라운드건축 대표)
사진
김주영
자료제공
에이라운드건축
진행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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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택정책

한국의 경제발전은 새마을운동을 기점으로 미국의 경제발전 방식을 모델 삼아 시작됐다. 미국은 저금리 모기지론을 통해 1가구당 1주택을 구매하도록 유도해 주택을 담보로 이자를 평생 갚아나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주택을 얻음과 동시에 대출이자를 내기 위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미국 경제가 작동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일본이 이러한 주택 경제 방식을 들여온 이후 1960년대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도입됐다. 미국의 경제발전 방식을 모델로 시작된 한국의 주택정책이 국가 경제성장을 위해 존재하게 되면서, ‘어떤 주택을 공급할 것인가’, ‘어떤 주택에서 국민들이 생활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게 되었고, 결국 주택은 한국에서 경제(재화)의 수단으로 인식되어왔다.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변화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주택의 종류는 58%가 아파트, 38%가 다가구, 다세대 주택 그리고 나머지가 단독주택 및 기타로 이루어져 있다. 1960년대 이후 도심 인구 집중화가 시작되었고 서울은 폭발적 인구 증가에 따른 주거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강남 개발과 위성도시를 통해 양적 팽창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친다. 아파트는 역사나 기억을 담고 있던 도심지를 밀어내고 경제적 이익에 맞춰 개발되어왔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단독주택 필지에서는 주택 부족으로 여러 가구를 수용하기 위해 주차장이나 옥탑, 창고가 불법 임대를 위한 용도로 변화되어왔다. 이러한 불법 주택이 양산되자 정부는 뒤늦게 이를 해소하기 위해 1990년 ‘다가구주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입법화하기에 이른다. 이후 단독주택 필지에서는 용적률을 최대한 끌어올린 다가구, 다세대 주택 건설이 본격화되었고 지금은 주택을 대지에서 최대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에 와있다. 

 

1996년 이스탄불 선언

유엔 해비타트Ⅱ의 의제였던 이스탄불 선언은 주거권의 기본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적정한 주거를 보장하고, 보다 안전하고 건전하며 평등하고 살기 좋아야 하며,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인 인간 거주지역의 실현을 보증하는 전 세계의 목표를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주택은 거주자의 삶의 질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스탄불 선언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공급자의 이윤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즉 거주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주택을 지어야 한다. 주택을 더 이상 독점 자산이 아닌 사회 자본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함 시점이다.

 

주거의 변화와 문제점

과거 삶의 형식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지역이나 동네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골목이나 좁은 길에 의해 집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개인 영역인 집과 공용 영역인 길의 관계가 비교적 개방되어 있어 사람들끼리도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거 형식이 아파트로 변하면서 삶의 형식도 바뀌게 되었다. 예전에는 마당이 주택과 길을 연결해주고 있었다면, 지금은 현관문에 의해 경계 지어지고, 복도나 계단은 법적으로 최소 면적과 폭으로 설정되어, 이동 기능만 충족시킨다. 또한 아파트 단지는 개발∙관리 단위로 계획되면서 담을 통해 주변과 격리된다. 이러한 공간적 격리는 사회적 격리로 이어진다. 전세 기간에 맞춰 옆집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으로 이웃으로 관계 맺기 어렵다 보니, 이제는 소통하는 방법, 함께 산다는 개념조차 잊은 듯하다. 

 

 

 

 


심리적 경계

우리는 공동주택에서의 집합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야 하고, 집합체의 성격에 대해 새로운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옆집, 앞집과의 작은 소통을 통해 사회적 거리감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잃어버렸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특히 건축가들은 단위 주택이 모여 이루는 집합체의 형태, 그리고 인간이 이루는 공동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그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중 첫 번째는 심리적 경계(proxemics)에 대한 것이다. 사회학자인 에드워드 홀에 따르면 상대방과의 관계와 거리에 따라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0.5m, 1.2m, 3.6m, 7.5m 거리에 따라 ‘밀접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인 거리’로 나뉜다고 한다. 개개의 영역이 분절된 동시에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분절과 연결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관계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관계의 양과 질을 잘 유지, 증진하려면 상호 간에 서로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상황에 맞는 적당한 거리를 적용함과 동시에 건축에서의 물리적 장치로 옆집과의 관계를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동주택 안에서 각 세대가 자신만의 내외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그 너머 접점의 공용 공간인 복도에서의 수평적, 수직적 연결을 위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거리가 가깝다고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일정한 거리에 의해, 느슨한 기능에 의해 관계가 변화되기 시작한다. 

 

기능의 가능성 실험

두 번째는 느슨하고 함께하는 기능을 제안하는 것이다. 공동주택의 경우 건물의 형태와 공간만 설계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위한 물리적 장치를 계획한다는 접근을 하려 한다. 개인 집에서 필요한 것 중 일부를 공동 영역으로 빼내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인 가구는 필연적으로 외로움이라는 단점이 따라오는데, 소규모 공동주택인 경우 그들을 위한 느슨한 프로그램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면 이를 통해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한다. 유일주택이나 써드플레이스 홍은 1과 2는 이러한 생각으로 접근한 예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으로 행동 유도성(affordance)에 대한 관심이다. 공용 공간에서 정확하게 기능이 주어지지 않은 어떤 재료나 형태가 상황에 따라 기능을 얻게 되는 가능성을 예측해보는 것이다. 사용자가 그 사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단지 오브제로 그곳에 남겨질 것이다. 그에 대한 실험을 하는 중이다.

 

주어진 환경과 미래

지금 우리는 큰 변화에 직면해있다. 사상 유례없는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19에 의해 우리 사회는 격리되고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변화의 시점과 폭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재택근무는 이제 생활이 되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혼자 사는 1인가구는 그 속에서 더욱 소외되고 고립된 생활이 되어 이것은 다시 사회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혼자 살 수 있는가? 가족과도 격리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쉽지 않지만 적어도 집의 쓰임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주거 방식과 어떤 주택을 공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가의 책임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 방식을 제안하는 일은 건축가의 책임이다. 

 

 

 

 

 

 


박창현
박창현은 경기대건축전문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와 박사를 수료하였으며 현재 (주)에이라운드건축의 대표이다. ’SKMS 연구소’로 제32회 건축가협회상, ’조은사랑채’로 서울시 건축상, ’제주무진도원’으로 김수근 프리뷰상을 수상하였다. 작년 완공된 ’제주서호동주택’으로 ICONIC AWARD(독일)를 수상하였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경기대, 홍익대, 고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한국, 일본, 포르투갈 건축가 60여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건축계의 지도를 독자적으로 그려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주택에서의 사회적 관점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형성에서 건축가의 역할과 물리적 제안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 및 건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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