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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갈아타는 길을 설계하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

방유경 기자
자료제공
워크룸 프레스
진행
방유경 기자

최근 출간된 전현우의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은 잊혀져가던 철도에 대해 다시 주목하게 만든다. 이 책은 분석철학을 전공한 소위 철도 매니아(덕후)인 저자가 7년간 집필한 결과물이다. 552쪽의 방대한 양에 걸쳐 한국 철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총망라한 일종의 백과전서라 할 수 있다. 저자 전현우를 만나 우리에게 철도는 무엇이었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철도를 둘러싼 쟁점과 의견을 들었다.​

 

 

ⓒJeon Hyeonwoo 

 

 

방유경(방): 한국 철도의 역사와 현황, 비판 그리고 제언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연구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현우(전): 철도에 대한 첫 기억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올라탄 경인선이었다. 부모님과 서울을 다녀갈 때마다 신도림역에서 ‘지옥철’을 탔다. 어린 나이에도 사람이 끔찍하게 많다고 느꼈다. 당시 통계를 찾아보니 열차 한 량에 정원의 세 배가 넘는 500명가량 타던 때였다. 학창시절에는 도보로 통학하느라 잠시 철도와 멀어졌다가, 대학 진학을 계기로 경인선에 복귀했다. 10여 년이 흘렀는데도 철도의 열악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경인선을 두고 ‘가축 수송 열차’라고 표현한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들을 태우고 다녀야 하나?” 하는 질문의 답을 찾다가 철도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책을 쓰게 된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2013년 12월에 일어난 철도노조의 수서고속철도 분할 민영화 반대 파업이다. 당시 국토교통부와 노조는 대립각을 세웠는데 정작 철도재정이 어떤지, 철도가 어떤 성격의 교통수단인지 제대로 된 지표를 가지고 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 철도의 상황을 정밀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과 틀을 세우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방: 책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지표와 개념이 여럿 등장한다. 이 지표들이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 철도는 대중교통체계의 중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뉴스나 기사를 보면 한국의 철도가 선진화되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나라 철도와 정확하게 비교해서 설명하고 싶었다. 이를 정량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 ‘철도개발지수’다. 세계 50개 거대도시의 철도 상황을 착발역 시설 규모, 시계 통과 복선, 이용률, 혼잡도, 병목 구조 등을 정량화해 비교 분석했는데 서울은 22위, 부산은 30위를 차지했다. 점수로 B- 정도 수준이다. 보정할 사항들이 아직 있지만, 이 지표를 통해 철도가 도시환경과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개발지수와 같은 다른 지표들과 연계하여 도시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시작점이 되길 바랐다.

방: 2013년에 집필을 시작했는데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집필 과정에 변화나 변수는 없었나?
전: 자료를 정리하면서 대중교통 이용통계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대중교통에서 멀어지는 이탈률을 산출했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고속철도 이용이 어려울수록 승용차의 이용이 급증했다. 대중교통이 유리한 도심부, 자동차가 유리한 외곽 지역이 공존하는 상황을 ‘이중 교통환경’이라고 정의했다. 쉽게 말해 서울 도시 내에서는 ‘조금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겠지’ 하고 느끼는데, 시계를 벗어나면 ‘힘들게 가야 버스가 있겠구나’, 경기도 경계를 벗어나 충청도나 강원도로 넘어가면 ‘버스는 잘 없으니 택시를 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중교통망이 열악해진다. 그런데 철도를 유지하는 국가 재정은 대부분은 유류세에서 나온다. 철도를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일수록 승용차를 타는 비율이 높고 자연스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 “잘 타지도 않는 철도에 왜 내 세금을 쓰느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3부 7장에서 철도재정 제도를 사회계약 관점에서 서술했다. 

ⓒWorkroom Press​​
세계 50개 거대도시의 철도개발지수를 비교하는 그래프. 전현우 


방: 도시의 밀도와 철도의 밀도는 비례한다.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철도 접근성이 불리한 지역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 앞서 이중 교통환경을 언급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촘촘한 대중교통망에서 벗어나 자가용 사용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에는 다른 속사정이 있다. 최근 20년간 추진된 신도시 개발을 보자. 제대로 된 철도계획이 부재한 신도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원주혁신도시는 운영 중이던 반곡역을 올해 연말 폐역하기로 했고, 세종시는 설계 초기부터 도심 철도를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오송역은 20km 넘게 떨어져있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세종시는 버스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을 70%로 설정했지만 현실은 자가용 없이는 불편한 도시가 되었다. 대중교통을 무시한 채 이뤄져온 서울 바깥, 특히 수도권 바깥의 도시설계는 결국 승용차가 왕인 도시를 양산했다. 앞으로 이 도시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주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방: 철도와 역사가 도시 공간을 이분하고 단절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물리적으로 철도망(선로)과 역사는 다른 성격의 구조물이다. 도시에서 철도와 역사 공간의 조성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전: 철도망은 열차의 원활한 운행이 주목적이고, 역사는 열차 승객들을 외부 교통망으로 접근시켜주는 플랫폼이다. 사람의 통행이 많아지면 지가가 상승하고 자연히 높은 개발 압력에 노출된다. 철도 공간을 사이에 두고 다른 목적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공간을 다루고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다만 철도 본연의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환승과 접근성이 편리한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성남시 분당구의 서현역, 판교역, 이매역을 꼭지점으로 하는 한 변이 1km 남짓 되는 삼각형 구역은 실패한 철도 공간계획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곳은 신분당선, 분당선, 경강선에 앞으로 들어올 GTX를 포함하면 네 개 노선이 지나게 된다. 그런데 이들 노선은 환승이 두 개 노선씩 제각각 이뤄질 뿐 아니라 GTX역사는 판교역과 이매역 중간에 지어질 예정이다. 교통망의 연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시계획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또한 최근 철도가 도시 환경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철도망을 도시 외곽으로 이설하고 도심에 있던 기존 철도역사를 문화 공간, 공원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일들이 제법 있었다. 철도역이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있어야 사람들이 도심으로 모이고 연계된 활동이 일어나는데 논리에 맞지 않는 발상이다.

방: 최근 가장 이슈가 된 경의선 숲길의 사례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공공의 이런 철도부지 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 여기에는 ‘철도 지하화’와 ‘철도부지 공원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경의선 숲길은 원래 용산에서 공덕, 홍대, 수색으로 이어지는 용산선이 있던 부지로, 화물열차가 서울역을 거치지 않고 문산으로 직행할 수 있던 선로였다. 이 구간을 유지했다면 서울 시내 철도망의 핵인 서울역과 용산역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는데, 지하로 다니게 되면서 화물열차는 다니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용산에서 상암까지 대피 선로조차 확보하지 못했고, 어떤 열차든 앞차의 꽁무니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철도 용량이 축소되자 경의중앙선에서는 지연, 연착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북한 교통망과의 연계성이 약화된 것이다. 정부에서 유라시아 철도망 연계의 당위와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도 그 물리적 기반인 서울시내 철도망은 약화시킨 것이다. 철도의 기능과 역할,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Workroom Press​​​ 

책 표지에 사용된 그래프로, 저자가 제안하는 경부선의 가상시각표이다. 전현우​​ 

 

 

방: 책의 제목을 보면 기후변화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기후변화는 대중교통과 어떤 관계가 있나?

전: 책의 마지막 3부 8장에 등장하는 문제가 기후변화다. 2018년 말 원고 집필을 상당 부분 진행한 상태에서 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비롯해 대중교통을 위협하는 수단들이 속속 등장하는 시대에 기후변화는 철도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치트키가 됐다. 인간의 모든 물질적 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이 ‘탄소배출량’으로 귀결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수치로 보면 철도는 승용차 대비 에너지 효율은 10배, 탄소 효율은 5배가량 높다. 2017년 기준으로 인류가 화석연료 연소를 통해 배출한 탄소배출량 가운데 수송의 비중은 25%인데 승용차는 전체 수송에너지 소비량의 75%, 전체 탄소배출량의 73%를 점유한다. 수송에너지 비율에서 2% 미만을 차지하는 철도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양이다. 이제 자동차에서 철도로의 이행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방: 기후변화의 위기 앞에서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철도 중심 도시로의 이행이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와 일반인들은 어떤 실천을 해야 하나? 

전: 도시설계에서는 교통이 야기한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일 것이다. 과거에는 도로를 깔고 넓히면 교통이 원활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과는 반대였다. 도로의 확장은 자동차 통행량 증가를 가져왔다. 이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도로를 억제하여 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소위 ‘도로 다이어트’다. 이전에 시행된 버스중앙차선 도입, 고가도로 철거 등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장기적으로 교외 고속도로 용량의 동결과 도심부 승용차의 극적인 축소가 필요하다. 개인 차원의 변화를 위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각자가 자신의 이동이 배출한 탄소를 계량하는 것이다. 탄소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는 앱(app) 개발도 뒤따라야 한다. 교통에 따른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개인의 의식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전현우
전현우는 서강대학교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자연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워크룸 프레스, 2020)을 출간했고, 몇 권의 과학철학 관련 서적을 번역한 바 있다.그는 지난 십수 년간 철도를 둘러싼 교통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왔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철학과 물리학의 눈으로 교통을 바라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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