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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 분야에서의 디지털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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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_시스템 랩
진행
이성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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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비대면’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재택근무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활성화되고, 수업·공연·전시·의료 등 일상적 활동에 ‘원격’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건축 분야에서도 이 같은 전환의 움직임은 있어왔다. 서울시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공건축물 설계공모를 ‘디지털 공모’로 시행했다. 일부 건설사와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시공 품질과 생산성의 향상을 목적으로 시공 현장을 원격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손 도면’과 실물 모형에서 컴퓨터 지원 설계(CAD)와 3D 프린팅 등으로 설계 과정이 디지털화하고, 결과물을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도 증강현실?가상현실 등 디지털 세계에서 속속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건축가들이 설계에 매진하는 공간은 여전히 사무실 모니터 앞이다. 한 장소에 모여 다같이 일하는 관행은 견고해서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원격 업무를 적극 시행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과 달리 더시스템랩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해왔다. 사무실 내의 지정 좌석을 없애는가 하면, 화상회의와 원격 근무를 실시하고, 이러한 시도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여러 유인책을 도입했다. 4월 14일 더시스템랩 성수 사무실에서 김찬중을 인터뷰해 이에 관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았다.​

 

 

인터뷰 김찬중(더시스템랩 대표) × 이성제 기자 

 

이성제(이): 코로나19 발생 후, 더시스템랩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찬중(김): 실무를 하면서 매일 같은 자리에서, 정해진 사람들과 만나며 일하는 방식에  회의가 있었다. 고정된 업무 환경에서 건축설계와 같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계기가 된 건, 분당에서 성수로 사무실을 부분적으로 옮기면서였고, 당시에 조직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래서 좌석을 지정하지 않은 채 원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핫데스킹(hot desking)’ 업무 방식을 도입하게 됐다.

 

이: 핫데스킹은 주로 IT 기업에서 시행된다.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나?

김: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유사 직종인 그래픽, 프로덕트 디자인 분야에서도 선례가 없었다. 이 직종들은 고성능 컴퓨터 기기를 사용하는데, 작업 파일의 무게가 상당해서 사용 중인 워크스테이션에 자리가 고정되곤 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바퀴 달린 책상을 고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워크스테이션급의 랩탑을 전 직원에게 지급하게 됐다. 사무실 인테리어 비용만큼 예산이 나갔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위계’를 없애야겠다는 결심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업무 행태를 관찰해보면, 팀장이 “야 했어?” 하면 직원이 “네, 이거 어쩌고~”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나. (웃음) 가까이에 자리하면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건축설계는 숙련도가 요구돼서 위계를 아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자리에 따른 위계는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더시스템랩에는 핫데스킹 ‘로직’이 있는데, 같은 자리에 연속 2주 못 앉고, 다른 사람이 자리를 맡아주지 못한다.

 

이: 그런데 옆자리 사람이 계속 바뀌면 어떤 장점이 발생하나?

김: 우리는 두 명으로 시작했던 회사다. 현재 직원 수가 51명에 이른다. 규모가 커지더라도 아틀리에로서의 속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공유하고 싶어서 핀업을 자주 했는데, 인원이 많아지다 보니 옛날처럼 효과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핫데스킹으로 다른 팀 사람과 같이 앉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옆에 팀장급이 앉으면, 궁금한 것들을 바로 물어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직급과 팀에 상관없이 옮겨 다니며, 팀장들도, 임원들도 정해진 자리가 없다. 이게 원활히 진행되려면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금요일 오후 5시 반부터 다 같이 맥주를 마시는 ‘해피 아워’라던가, 서먹한 이들이 같이 밥 먹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럭’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도입된 이유다.

 

이: 어떻게 보면 핫데스킹의 핵심은 기술이나 하드웨어가 아닌 네트워킹에 있는 것 같다.

김: 그렇다. 종종 어려운 문제들은 대화에서 실마리를 얻어 쉽게 풀리곤 한다. 이른바 집단지성이랄까? “내가 소장이니까 이렇게 해”라고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조율해나가는 거다. 그리고 핫데스킹을 하게 되면서 ‘네가 가장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해라’라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됐다. 분당이든 성수든, 혹은 오전에 비어 있어서 입주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 건물) 11층 레스토랑 공간이든. 사무실 이외의 일할 수 있는 공간인 ‘액세스 포인트(AP)’를 만드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이: 자료 공유, 회의, 연락 등 업무를 진행하려면 클라우드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

김: 우리는 구글을 사용하는데, 시중에 나온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든지 상관없을 정도로 기술적 기반은 마련된 상태다. 다만, 당장 고개를 돌려서 “이리 와봐” 하면 되니까 다들 사용을 안 할 뿐이다. 더시스템랩의 업무 환경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지켜야 할 룰이 두 개 있다. 먼저, 오전에 오늘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올려야 한다. 업무 방향이 잘못 설정됐다고 판단되면 “너 이거 오늘 안 해도 돼”라고 팀장이 알려준다. 둘째로, 매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팀별로 반드시, 다들 회사에 출근했어도 화상 미팅을 한다. 캐주얼한 아침 인사 겸이다.

 

이: 한 팀에 몇 명 정도 있나?

김: 7명 정도? 더시스템랩에선 ‘팀’을 ‘랩’이라고 부르는데, 분당에 두 개의 랩이, 성수에는 랩 제로부터 파이브까지 있고, 감리와 경영을 맡는 랩이 따로 있다. 각각의 랩이 아침에 한 번, 그리고 오후 6시쯤 또 한 번. 앞서 말했듯이 캐주얼한 인사인데, 출퇴근 시간을 회사에서 정해준다는 의미다. 두 번의 회의 사이에는 인텐시브하게 일하고 그 외의 시간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조직 운영 체크포인트가 있다.

 

이: 업무 성과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김: 본인이 작업한 걸 매일 구글 플러스에 업로드해야 한다. 그게 히스토리로 남는다. 본인이 지금 어떤 작업을 하는지 올리면 그 아래에 댓글이 달린다. 좀 전에 집단지성이라고 말했는데, 누군가가 포스팅하면 메일로 알람이 온다. 매일 수십 통의 메일이 온다. 본인이 관심 있는 작업이라면, 같은 랩의 작업이 아니더라도 가서 볼 수 있다. 포스팅에 코멘트를 달아줘도 된다. 바로 윗 사수나 랩 구성원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직원에게 열린 시스템이다. 어젠다가 복잡한 경우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댓글을 많이 다는 사람이 있고 적게 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평가와 관련이 있다.

 

이: 랩별 운영 방식은 이해된다. 그렇다면 임원들은 이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김: 랩별 포스팅을 다 본다. 다른 소장들도, 이사님들도 보고 코멘트를 단다. 예를 들어서 “이건 잘 이해되지 않으니 PDF 자료를 넘겨달라”는 식으로, (포스팅을 보여주면서) 아이패드 ‘굿노트’ 어플로 불러와서 마킹하고 그 밑에 포스팅 하는 거다. “수정을 해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제작자가 본인에게 온 의견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해도 나중에 확인할 수 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공유하자는 거다. 사실 매일, 적어도 50개 정도 포스팅 되니까 봐야 할 게 정말 많다. 다 소화하면 새벽 2~3시가 될 때도 있다.

 

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때 주저하는 이유가 “이게 정말 잘 작동할까?”, “성과가 나올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김: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직원들에게도 이야기하는 게 “이거 될까?”라고 고민이 되면 그냥 하라고 한다. 할까말까까지 갔는데 안 하면 분명 후회할 거고, 그리고 잘 안 되더라도 그것을 통해 배울 거니까. 그래서 고민이 되면 하라고 한다. 고성능 랩탑을 구매할 때에도.

 

이: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다.

김: “일단 하자, 그리고 3개월간 모니터링을 해보자. 손실은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디지털 전환)의 비결은 기술과 하드웨어가 아니라 끊임없는 잔소리와 습관화에 있다. 파일 이름을 다는 방식부터 다 코드화되어 있다. 이 방식을 정착시키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 이게 빠른 건지 느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중요한 건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구글 캘린더도 그냥 달력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많은 기능이 숨겨져 있다. 화상 전화도 가능하고, 캘린더 내에서 바로 파일을 열어 볼 수 있다. 인쇄물을 준비하거나 USB에 파일을 옮겨 담는 과정이 없다. 여기에 익숙해지기까지도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구글 플러스 포스팅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처음엔 텍스트만 올렸다. 그런데 내가 “디자이너라면 이미지를 올려라”라고 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글을 써라, 뭐가 안 풀리면 안 풀린다”고, “실장님 안은 별로인 것 같아요” 같은 것도 괜찮다고 했다.

 

이: 어떤 면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의사소통을 익히는 과정처럼 보인다.

김: 말 배우는 거랑 비슷하다. 문제는 문법과 규칙을 배우는 데 있다. 퍼포먼스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커뮤니케이션에서 실수할 때가 있다. 그래도 “이거 틀렸으니까 고치세요”라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 다시 말해, 디지털 전환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약속, 그리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라는 점이다.

 

이: 더시스템랩에 입사하면 이 말을 배우는 것부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김: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에 훨씬 더 밝다. 오히려 내가 힘들지, 그들은 자연스럽다. 이러한 상황에 있다가 코로나가 터진 거다. 원래 올 하반기부터는 선택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예정이었다. 중요한 건 ‘정신’을 공유하는 것이지 ‘몸’이 같은 공간에 있을 필요가 꼭 있을까? 여기서 더 나아가니 ‘설계사무소(장소)가 과연 꼭 필요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더라.

 

이: 그래도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대면 업무가 더 효율적일 때도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설계공모 마감을 앞둔 시점에 다 같이 모여서 밤새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 않나.

김: 그런 게 효율적일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도 마감을 하나 했는데, 사무실에 한 명도 출근을 안 했다. 그런데 잘 제출했다. 나도 집에 있었다. (4월 14일 기준) 더시스템랩은 재택근무 5주차인데, 스케줄 공백 없이 잘 가고 있다. 자료 전송이 안 돼서 PT를 망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우린 모형도 손으로 안 만들고 3D프린터를 쓴다. 직원들이 재택근무라고 해서 조금 또는 대충 일하는 건 아니다. 전체 스케줄에서 본인의 임무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신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쭉 잘해 오다가 어느 날은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큰 맥락에서 이 정도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 이를 옆에 끼고 보고 있으면, 견디기가 힘들다.

 

이: 원격 업무는 이전부터 도입된 개념이다. IBM, 야후,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에서 실행하다가 201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에서 대면 소통에서 발생하는 창의성을 높게 평가하면서부터였다.

김: 구글은, 구글만의 생태계에 맞추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조직마다 생태계가 다르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맞게,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에 맞게 사무 공간이 조직돼야 한다. 예전에는 다 똑같은 오피스 공간이었는데, 요즘은 또 다들 구글 스타일이다 (웃음). 츠타야의 사례도 이와 유사하다. 물론, 그런 사례(모델)들이 있으니까 우리도 우리만의 모델을 생각해보자고 할 수 있겠지만,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본질이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이: 그런 면에서 더시스템랩의 운영 방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된다.

김: 코로나20이 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마스크 20박스를 사는 게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어떤 패러다임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도시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것 같다. 개체가 밀도 높게 모여 있으면 아프고 병이 창궐한다. 물리적 거리는 두되 심리적 거리는 멀지 않게끔 하는 어떤 방법을 고안해야 하고, 개체와 전체가 싱크를 맞춰서 같이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공동의 가치를 쫓는 커뮤니티로 접근하고 있다. 업무의 대가와 관련해서도, 급여가 아닌 무언가 더 매력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크레딧 쉐어링 시스템도 만들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무작정 도입하기보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리스크를 감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다.


김찬중
김찬중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하버드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한울건축, 챈 크리거 사무실과 우규승 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현재 더_시스템 랩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자 경희대학교 건축대학원 초빙교수다. 2006년 제1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고 베이징 비엔날레에서는 아시아의 주목받는 건축가 6인에 선정되었다. 대표작으로 강남 커머셜 빌딩, 연희동 갤러리, 래미안 갤러리, 한강 보행자 터널 프로젝트, 쌍용 파인트리, SK 행복나눔재단 사옥, 하나은행 플레이스 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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