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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따라 같이, 제각기: 마음의 흐름

사진
김익현
자료제공
아트선재센터
진행
이성제 기자
background

인터뷰 남화연 × 이성제 기자​

 

 

바다의 이미지들과 함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두 인물이 편지를 주고받았고, 내레이션에는 그 편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유화에 그려진 ‘150년 전 한 번 솟아올랐을 파도’에 대해, ‘바다 밑에 침강한 오래된 물’과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흐름에 대해, 그리고 해역을 넘나들며 활동한 일제 식민지기의 무용가 ‘최승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리듬과 주기, 시간대가 다른 운동들이 포개지며 흐르고 관람객들은 무언가에 휘감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5월 2일까지 진행되는 남화연의 개인전 <마음의 흐름>에서다.

아트선재센터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남화연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전개해온 최승희에 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생각의 여정을 바탕”으로 했다. 전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듣기 위해 인터뷰가 이뤄졌으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에 따라 전화로 진행했다. 인터뷰에 앞서 사전 질문지가 전달됐다.

 

이성제(이): 최승희라는 인물에 주목해 여러 해에 걸쳐 작업을 선보여왔다. 어떤 계기로 이 인물을 만나게 되었나?

남화연(남): 그에 관한 작업을 전개하기 전부터 인물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소위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비극적 인생사가 많이 알려져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데, 그보다 실제적인 작업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2012년 페스티벌 봄에 참여했을 때 처음 다루게 됐다. 그때는 퍼포먼스와 아카이브의 관계에 주목했었다. 퍼포먼스 아카이브는 어떠한 방식으로 시도하든지 간에 불완전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전제를 뒤집어 ‘시간 속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또는 ‘시간 속에 펼쳐지는 형태’의 아카이브가 퍼포먼스로 존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당시에는 최승희라는 모순적인 인물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인 노력을 하기도 했는데, 최승희를 마주하는 부담이 있었던 것도 같다.

 

: 당시 선보인 ‘마음의 흐름’(2014)은 공연 사진과 짧은 텍스트만으로 최승희의 무보를 그려본 작업이었다. 부재하는 그리고 평면적인(?) 기록으로 삼차원 퍼포먼스를 재구성하는 시도가 흥미로웠다. 건물 입면 사진과 답사기만으로 건축물을 복원하는 시도가 이와 같을까 싶었다.

: 일본 비평가가 남겨놓은 짧은 글에 “두 사람이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에 맞춰서 춘다.” 그런 내용이 있었다. 원본에 대한 구체적 진실은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하니 기록이 창작의 전제 조건으로 변환되면서 오류나 우회 등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실증적 자료로써의 기록을 바라보는 연구자였더라면 다른 얘기였을 것이다. 작업의 전개 과정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 주최 측의 전시 설명에는 ‘재구성’, ‘해석’과 같은 단어가 나온다. 앞선 질문에 사용한 ‘복원’이 내포하는, 실증적인 작업과 결이 다른데, 작가 자신은 작업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궁금하다.

: 복원은 분명 아니다. 이 인터뷰의 사전 질문에서 “여러 시간대가 엮이면서 최승희에 대한 아카이브도, 작가의 작업(에 대한 아카이브)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펼쳐져 있는 인상을 받았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뒤섞인 것 같은, 그런 상태로 존재하는 게 사실 3층 전시장에서 의도한 점이기도 했다. 3층 전시장에 있는 작업들은 한 작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최승희의 작업 제목을 그대로 붙였다.

 

: 오랜 기간 최승희에 관한 작업을 진행하려면, 기록의 불완전함 이외에 또 다른 동력이 있었을 것 같다. 인물의 매력 혹은 인물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자리했을까?

: 최승희, 최승희의 작업, 최승희에 대한 기록들은 나에게는 어떤 대상이자 동시에 매개가 됐던 것 같다. 시작은 호기심이겠고 동경은 결코 아니다. 한편으로는 대상과 매개 사이를 왕래하면서 결국에는 반사판처럼 작동된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기록의 불완전함 이외에 다른 동력이라면 두 개인, 예술가, 시간 그리고 형식 사이의 충돌일 수 있겠다. 작업 과정, 리서치 과정 동안 많은 질문이 있었다.

 

: 그렇다면 어떤 질문들이 있었나?

: 당장 떠오르는 것으로 친일 행적에 관한 것. 이는 명백한 사실인데, 예술적 욕망과 개인으로서의 갈등 등과 어떻게 타협하면서 살 것인가 또 만들 것인가, 여러 각도로 그런 생각들을 한 것 같다.

 

: 전시를 보고 있으면, 퍼포먼스와 아카이브의 관계에 대해 질문이 생긴다.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단계, 이를 기반으로 재안무된 퍼포먼스, 그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과 스틸 이미지, 퍼포먼스 기록을 정리하는 아카이빙. 다시 말해 준비, 공연, 기록, 정리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퍼포먼스를 보게 된다. 퍼포먼스는 작가에게 어떤 활동인가?

: 나에게 퍼포먼스는 반드시 신체를 경유하는 것이 아니고, 사건이 되는 순간들, 시간의 변곡점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경로들인 듯하다. 이를테면, 나의 개인적 기록들과 작업들이 3층 전시장에 배치됐을 때, 최승희에 대한 기록과 혼재되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배접된 시간과 몸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두 명의 예술 주체와 하나의 제목에서 분열된 두 개의 작업, 또 두 시간이 배접된 상태인데, 이 상태에서 역시 무엇이 아카이브이고 어디까지가 퍼포먼스인가 구분 짓는 것은 어렵다. 관객 또한 이 사이를 어떻게 움직이며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퍼포먼스적인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관람객이 어떤 동선으로 전시장을 경유하며 작업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전시 경험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 맞다.

 

: 2층 전시장에는 ‘마음의 흐름’(2020)과 ‘사물보다 큰’(2019~2020)이 설치됐다. 영상 작업 ‘사물보다 큰’을 감상하다 보면, 설치 작업인 ‘마음의 흐름’의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것에 시선이 향한다.

: 영상을 보는 중에 복도에 설치된 소리가 크게 들리는 순간도 있다. 두 작업이 섞이는 순간을 만드는 것, 그 순간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을 의도했다. ‘마음의 흐름’은 2014년에 처음 만들었고 2020년에는 다른 방식의 설치 작업으로 전개되었는데, 또한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경유해온 시공간이 작업이자 전시이기도 한 것이지만 ‘흐른다’, 즉 정지해 있지 않는다는 운동이 나에게는 퍽 중요하다. 그래서 2층과 3층 전시장의 작업들이 모두 연결돼 있는 크고 작은 액체적 상태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물보다 큰’에서 여러 바다가 등장하는 것과 연결된다고 본다. 실제 바다, 리얼리즘 화가가 그려낸 바다, 최승희가 건넜던 바다, 대상으로서의 바다, 신체로 만나는 경험으로써의 바다, 거대한 우주적 힘이 작용하는 판으로써의 바다 등 모든 것들이 섞인다.

 

: ‘사물보다 큰’의 영문 제목은 ‘Larger than Life’이다.

: 영문 제목을 먼저 지었다. 실제의 크기보다 큰, 라이프 사이즈보다 큰. 실제를 초과하는.

 

: ‘사물보다 큰’에는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 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칠석의 밤: 아카이브’(2020)에는 주기적으로 운행하는 달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 소재들은, 일회적이지만 반복되는 퍼포먼스처럼 제각기 리듬을 지닌다. 그런데 이들은 자연에서 온 것들로, 우리의 일상이 전개되는 도시에서의 리듬과 결이 다르다.

: 자연의 리듬이 작업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게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좀 좋은 것 같다. 뭐랄까, 무심하게 끝없이 운동하고 있는, 시간의 규모 같은 것이 다른 퍼스펙티브를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연의 무심한 반복적인 운동, 그것이 담지한 시간이 위안 같은 것이 될 때가 있다.

 

: ‘습작’(2020)을 보면 두 퍼포머가 교감을 나누며 안무한다. 같이 발을 맞추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퍼포먼스는 마무리되는데, 세상일이 이와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기가 맞아서 함께 운행하다가 각자의 리듬에 따라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되는. 작가는 2012년 최승희를 만나고 2020년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의 느낌이 다를 텐데, 작가에게 최승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 아직은, 완벽하게 정리가 안 된 것 같다. 우연히 만나서, 본의 아니게 오랜 시간을 통과해온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최승희를 안다고 얘기하긴 어렵고, 그 전보다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나에게 어떤 인물이었냐는 이야기를 지금 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인물이다. 아니, 인물이라는 단어 말고 다른 말이 없을까.

 


 


 


 


남화연
남화연은 서울에서 거주하고 활동한다. 최근 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에서의 개인전 <앱도미날 루츠>(2019)를 포함하여 개인전 <임진가와>(시청각, 2017), <시간의 기술>(아르코미술관, 2015)을 진행한 바 있다. 2019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과 함께 참여했다. 그룹전 <역사를 몸으로 쓰다>(국립현대미술관, 2017), <유명한 무명>(국제갤러리, 2016), <모든 세계의 미래>(베니스비엔날레, 2015), <누벨 바그—메모리얼 파크>(팔레 드 도쿄, 2013) 등이 있으며, ‘궤도 연구’(국립현대미술관, 2018) 등의 퍼포먼스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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