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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正方(삼정방)

스튜디오李心田心

권형표(바우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사진
노경
자료제공
스튜디오李心田心
진행
김예람 기자
background

‘특별한 한 가지’의 존재 이유​

 

 

2019년 12월 26일 7:30, 김포공항

오랜만의 제주행이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三正方(삼정방)’의 도면과 사진에서 마땅한 글머리를 찾기 위해 습관처럼 수첩을 펼쳤다. 괜한 낙서를 몇 줄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무실이나 학교에서 항상 주문처럼 중얼거렸던 문장을 떠올렸다. ‘건축은 대지와 프로그램의 재현이다.’ 현대건축은 이 재현 과정에서 반드시 건축가에게 해석을 요구하고, 건축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개념을 쌓아간다. 이렇게 구축된 의미를 복기할 수 있는 순간은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을 거친 물리적 실체(건축물)를 마주하는 상황이 유일하다. 삼정방은 스튜디오李心田心의 첫 번째 구축 작업이었기 때문에 전작이 부재한 상황, 정확히는 오랜 시간 팽팽하게 당겨진 건축가의 사유와 욕망이 처음으로 시위를 떠난 때다. 바로 그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물론 사무실 개소 이전에 건축가가 익힌 제도와 기술 등에 대한 지식이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실제 구축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복기한 ‘경험적 연구(empirical study)’가 부재했다. 그동안 첫 작업이 흥미로웠던 여러 건축가의 선례를 지켜본 이유도 있었지만, 가구와 건축을 함께 작업하는 사무소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9:00, 제주공항

제주공항 2번 게이트에서 건축가 전필준을 만났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 그는 첫 작업이었지만 공사가 2년이나 걸린 탓에 두 번째로 완공되었다는 삼정방에 대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땅은 두 개의 사각형을 겹쳐 놓은 특별한 형상이었고, 땅의 전 소유주도 지금의 건축주처럼 자식과 함께 안채, 바깥채를 지으려 했다. 이 땅은 부모와 자식을 위한 두 채의 집이 지어질 운명이었던 셈이다. 유난히 묘한 형상이었던 땅의 사연에 대해 각자의 짐작을 나누던 중, 전필준은 자연스럽게 세 개의 정사각형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집에 ‘특별한 한 가지’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것이 세 개의 사각형을 조합하는 기하학적인 접근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조합된 정사각형 평면을 9분할하는 과정에서 사각형에 45。로 내접하는 사각형 천창이 계획됐고, 천창의 네 면을 연장하여 외벽의 모서리에 접하는 사각형의 지붕이 만들어졌다. 삼정방을 위한 특별한 한 가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 세 개의 정사각형이 완전한 기하 형태와 질서를 갖추면서 집의 형상을 이루는 점이 흥미로웠고, 8자형 대지의 안쪽으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연스럽게 두 개의 사각형을 놓은 배치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이 남았다. 세 개의 정사각형이 집을 둘러싸는 외피(천창·지붕·외벽)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을 뿐, 9분할 평면이 내부 공간의 관계를 조직하는 논리로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설명처럼 이 특별함이 내부 공간과 큰 관련이 없고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면, 결국 삼정방이라는 집을 두고 우리가 환기할 수 있는 건축가의 특별했던 사유는 외피의 조형성을 위한 기하학적 논리인 것이다. 지붕과 천창에 머물러 있는 두 집의 평면에서 세 정사각형의 균형과 9분할 평면이라는 치밀한 접근과 기하학적 자취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 집의 평면 구성은 기하학보다는 정사각형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기능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기하 형태에 관한 건축가의 논리가 건축주 가족의 요구에 맞춰 구성된 일상 공간을 위요하게 된 상황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의도된 오차인지 상황이 만든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의문이 남았지만 집의 한가운데 위치한 천창에 대한 설렘은 여전했고, 제주의 천변만화하는 날씨가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잠시라도 멈춰주기를 기대했다. 

 

13:00, 삼정방

제주 돌담과 검은색 목재 담장 안으로 두 개의 사각형이 단정하게 서 있었다. 기존에 계획했던 탄화목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검정 오일스테인 목재)을 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빨아들일 정도로 묵직하고 단단한 삼정방은 말레비치의 그림 속 검은 사각형 같았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검은 사각형이 가진 기하학적 완결성과 무척 닮아 있었다. 그리고 검은 사각형 위로는 약간 틀어진 각도로 처마를 매끈하게 내민 바람개비 형상의 금속지붕이 묵직하게 얹혀 있었다. 적당한 수목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제주의 모습이었지만 주변에 놓인 현장 컨테이너들에서 머지않아 풍경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기 때문에, 집의 무관심하고 무표정해 보이는 첫인상을 쉽게 긍정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건축주와 건축가의 안부가 오가는 동안, 현관에 들어선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창을 향했다. 비를 맞고 있는 천창이었다. 햇살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북측 창에서 내려온 일정한 조도의 은은한 빛이 천창 주변에 가득했다. 천창을 기준으로 거실과 부엌, 식당이 남북으로 나뉘었고, 침실이 남은 모서리 두 곳을 차지하는 구조였다. 여러 사선이 바람개비 형상으로 만들어진 지붕 모양을 따라 벽과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삼각형의 매끈한 천장과 천창에서 이어지는 모서리가 간접조명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세 개의 정사각형이 빚어낸 입체적 구축의 결과다.

대화가 끝나갈 즈음, 건축주는 비 오는 날에는 발견할 수 없는, 이 집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사각형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복도 바닥을 비추는 사각형의 빛을 맨발로 밟을 때마다 따뜻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가 저물어가면 그 사각형은 조금씩 얇아지며 벽을 오르다 사라지겠고, 가족들은 이 빛의 궤적을 보며 하루나 계절의 변화를 가늠하지 않을까.

 

23:00, 다시 김포공항

9시를 넘겨 탑승한 비행기의 착륙안내 방송에 창밖을 내다보니 빗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오늘 제주가 화창했고 삼정방의 천창으로 들어오는 쏟아질 듯한 겨울 햇살을 마주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혹은 집주인을 만나지 못했거나 그에게서 숨어 있는 사각형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이 집에 왜 특별한 한 가지가 필요했는지 궁금했다. 건축가에게 그것이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일부’를 말하는 것인지 물었고, 그는 일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 집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드시 필요하다는 ‘한 가지’의 정체와 존재 이유는 여전히 모호했다. 가끔 우리는 영화나 소설의 길고 지루한 전체를 기억하지 못한 채 하나의 문장이나 대사를 기억할 때가 있다. 그 일부가 전체를 함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순간적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작위적 시도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제 스튜디오李心田心은 삼정방에서 세 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축한 건축가의 사유와 물리적 실체를 차분히 복기하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구축하게 될 무수히 많은 ‘하나의 특별한 무엇들’을 위해서라도.

 

 

 

 

 

세 개의 정사각형 평면을 9분할하는 과정에서 사각형에 45º로 내접하는 사각형 천창이 계획됐고, 천창의 네 면을 연장하여 외벽의 모서리에 접하는 사각형의 지붕이 만들어졌다.​

설계

스튜디오李心田心(이윤정, 전필준)

설계담당

전필준, 하지훈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용도

주택

대지면적

987㎡

건축면적

210.1㎡

연면적

196.9㎡

규모

지상 1층

주차

2대

높이

5.8m

건폐율

21.2%

용적률

19.9%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칼라강판, 적삼목 위 도장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강화마루

구조설계

네오구조

기계,전기설계

대도 전기기계설비

시공

나무이야기

설계기간

2017. 11. ~ 2018. 4.

시공기간

2018. 6. ~ 2019. 5.


전필준
전필준은 홍익대학교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을 졸업하고 르웰린 데이비스 양,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 등 런던과 베이징에서 다년간 실무를 맡았다. 귀국 후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다가 2016년 이윤정과 Studio李心田心을 설립했다. 대한민국 건축사이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과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윤정
이윤정은 홍익대학교와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존 퍼셀 퍼체이스 프라이즈, 프린트 벨트 올해의 작가, 2012 한국현대판화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6년 스튜디오李心田心을 공동 설립하고 일상의 사물들을 제작해오고 있다. 2019년부터 나무 소재의 가구 및 소품 브랜드 李心田心Design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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