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Essay] 건축의 건축 : 민워크샵의 작업 방식

민우식(민워크샵 대표)
자료제공
민워크샵
background

실무 건축가

건축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혹자는 관념적인 이상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실제로 완성되는 과정과 결과에 집중하기도 한다. 건축가로 독립하기 전 나는 미술 대학에서 개념적인 작업과 비평을 배웠고, 졸업 후 국내의 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아이디어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장점은 판단이 빠르고 한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직관과 보편적 해결 방법 사이의 균형감각을 찾기로 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에만 집중하면 틀에 박힌 결과물만 양산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고, 너무 개념만을 쫓다보면 계획과 결과물이 다른 건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퍼 아키텍츠들의 지어지지 않은 훌륭한 계획안에 우리는 탄복하고 감탄한다. 그러나 실제 완공작이 있는 건축가의 계획안과, ‘계획안만 작업하는 건축가’의 계획안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리라. 루이스 설리번은 자신이 설계한 쉴러 극장(Schiller Theater Building)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랄 일이 아니다. 내가 오래 산다면 결국 내 건물이 모두 없어지는 광경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종국에 남는 것은 개념뿐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설리번이 전자의 경우이기 때문이리라. 건축가의 글은 건축 개요나 간단한 에피소드 정도가 적당하고, 스케치나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공사용 도면이 좋으며, 강연보다는 전시나 오픈 하우스가 더 반갑다. 민워크샵은 도면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현장에서 조율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디테일

요즘에는 마감의 수준이나 기술적 성취도가 일정 수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건축물을 답사하는 사람들도이에 대해 많이 언급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건축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수공예적 디테일’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건축계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으로 ‘잘 만들어진 것’, ‘세련되고 멋진 것’을 많이 경험하며 자랐고, 건축가인 아버지 덕분에 좋은 디테일도 많이 접했다. 그래서 이런 최근의 경향이 어리둥절하면서 반갑기도 하지만, 유행이 뒤처지는 것을 못 견디는 현상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디테일은 단순히 재료와 재료, 덩어리들끼리 만나는 부분의 해결이나 마감을 처리하는 방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의 과시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다. 디테일을 구사할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선, 면, 덩어리, 재료 등의 건축 요소들을 돋보이게 하거나, 덤덤하게 표현하는 등 각각의 상황에 맞는 디테일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작은 스케일에서 큰 스케일로 발전하는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다. 오목한 집(「SPACE(공간)」571호 참조)에서 1층 칸막이 벽에 어쩔 수 없이 요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요철이 있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분절된 덩어리로 나누는 것이 전체 공간의 틀을 해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벽을 끊고 유리를 끼워 넣었다. 일부러 다른 재료를 사용하기 위한 디테일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벽을 끊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디테일이었으며, 유리와 벽체가 만나는 방법은 오히려 큰 고민이 아니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둥근 지붕 집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여야 하는 세탁실의 문과 철골 구조가 삽입되었음을 암시하는 주방의 등박스다. 두라스택 사옥에서는 벽돌과 지붕 슬래브가 만나는 지점에 25mm 틈을 주었다. 이것은 벽돌로 이루어진 매스가 콘크리트 지붕을 받치는 것 같지만, 사실 내부 콘크리트 내력벽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트릭으로서의 디테일이다. 카페 톤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은 육중한 외부 기둥과 지붕의 역보가 만나는 방식이다. 지붕 슬래브, 큰 기둥, 역보가 각각 형태를 드러내며, 조립되어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철근의 접합 방식을 변경했다. 감탄사가 나오는 숙련된 솜씨와 비용이 많이 들어간 화려한 상세보다는 구석구석 소홀히 하지 않고, 건축의 맥락에 상응하는 디테일이 더 중요하다.

 

Durastack Headquarters

 

빛(자연광과 인공조명)

어느 건축가가 빛을 다루는 것을 소홀히 하겠냐마는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동시에 잘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빛을 공간에 유입시킬 때, 그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기묘한 모서리 집(2012)에서는 외벽을 뚫어 만드는 일반적 형태의 창문이 아닌, 나누어진 건물의 매스 틈으로 자연광을 들이는 수법을 사용했고, 오목한 집에서는 이중 벽체를 설치하여 벽에 뚫린 개구부와 그 위의 천창 사이에서 빛을 산란시켜 내부로 들어오게 했다. 사람들은 2층 커브벽의 개구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인공조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빛의 질감과 방향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아! 저게 자연광이구나’ 하고 인지하게 된다. 창문의 형태나 크기도 중요하지만 공간 안에서의 위치가 더 중요하다. 둥근 지붕 집에서는 1층의 바닥 위 45cm까지 내려오는 낮은 창과 길이 24m의 폭이 얇은 천창을 계획하여 공간이 미묘하게 끊기거나, 확장되는 경험을 연출했다. 빛을 다룰 때는 낮과 밤이 동일한 위계를 갖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천장 조명을 설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겼다. 서양 주택에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주방과 화장실 외에는 천장에 직부등이 없어 공간이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하지만 고착된 생활 습관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한국 주택에서 이를 실현하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나의 경우, 간접등, 직부등, 광천장, 라인조명 등 몇 가지 다른 방식의 인공조명들의 회로를 분리하여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정교하고 세련된 건축적 기술이다. 인공조명도 광원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는 간접 방식을 사용하고, 색과 밝기를 조절하여, 자연광과 대비를 주는 것이 좋다. 카페 톤의 경우, 낮에 1층은 처마로 인해 어두운 편이고, 2층은 사방의 통유리 덕에 항상 밝다. 밤에 1층은 직부등으로 인해 굉장히 환하고, 2층은 간접등만으로 어둡고 은은하다. 빛을 사용해 건축물의 낮과 잠을 역전하는 행위는 언제나 즐겁다.

 

 

Cafe TONN

형태를 만드는 방법 

형태는 색과 함께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사물을 인지하도록 한다. 형태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며,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건축의 근본 요소다. 하지만 형태에 대한 집착이 덜 숙성된 건축가의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주관적 시선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나뉘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형태를 다루는 데 소극적이게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조형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에 집중해오고 있다. 작업 초기에는 조각을 하듯이 덩어리를 뒤틀기도 하고 잘라내거나 덧붙이는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바닥, 벽, 기둥, 지붕과 같은 기본적 건축 요소들의 스케일, 비례와 이것들을 조합하는 구축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과장되고 화려한 형태와 변별성을 갖게 된다. 지어지지 않은 대전 프로젝트에서는 기둥 스케일을 다르게 하고, 그것이 수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트릭을 사용했다. 상부층의 필요 이상으로 육중한 기둥들이 하부의 얇고 기울어진, 사실은 적절한 크기를 가진 몇 개의 기둥들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다이내믹함과 긴장감이 드러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미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그의 많은 작업에서 구조의 순수성을 조작하는 수법을 즐겨 사용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아직 원초적인 요소와 구성 방법을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의 가능성이 많다. 두라스택 사옥은 육중한 덩어리들이 얇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각각의 큰 덩어리는 속이 비어 있으며,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방’ 이다. 카페 톤은 위에서 언급했던 건축적 기만의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 오목한 지붕의 형태에 관심을 갖지만, 자세히 보면 네 개의 거대한 외부 기둥들이 중요한 디자인 요소임을 인지하게 된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네 개의 큰 기둥은 지붕만을 받치는 ‘과도한 구조’이며 2층의 바닥 슬래브는 기둥 모서리와 닿을듯 말듯 하여 기둥과 구조적인 연관성이 없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이 과도한 기둥들조차 지붕을 받치는 ‘주 구조’는 아니며 실제의 하중은 금속으로 만든 52개의 창문 프레임이 대부분을 소화한다. 또한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무거운 콘크리트 지붕이니 철 기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하중은 그 절반 정도의 개수로 처리 가능하다. 몇 개의 복선이 진정한 구축 방식을 감추고 있으며, 과장되게 크거나, 축소된 건축 요소들의 구성은 묘한 긴장감을 내포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Vault House

 

어떤 이는 건축은 땅에 닻을 내리는 작업이라고 하고, 혹자는 아이디어와 몸이 지각하는 현상의 경계선이라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누군가는 건축은 자본과 프로그램의 파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서핑이라고 한다. 이렇듯 한 분야를 정의하려는 여러 시도는 사조가 빨리 바뀌고 경향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강박일 수도 있겠다. 나는 건축가들이 오히려 오랜 예전으로 돌아가 건축 그 자체를 더 탐구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의 건축’ 이라는 말은 가끔 모임에서 만나는 동료 건축가 팀의 슬로건이고, 그들이 쓰는 뉘앙스는 조금 다른 것으로 기억하나, 이 프레이즈는 묘하게 내 마음을 당긴다. 물론 건축은 땅과의 관계, 주변 상황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고, 건물로서의 기능을 충족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생활 방식도 제안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우선순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건축을 둘러싼 수많은 제반 조건과 관계없이 재료, 형태, 구조, 빛 등의 건축을 지탱하는 기본 요소들만으로도 건축의 존재 가치는 빛날 수 있다.  나는 건물이 하나의 쓰임새 좋은 가구처럼 만들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환경에 놓여도 어울리는 의자가 있고, 특정한 장소에서 더 빛을 발하는 탁자가 있듯이 잘 만든 제품으로서의 건축을 하려고 노력하는 건축가도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민워크샵은 작업의 용도와 스케일 변화를 겪으며, 보다 원시적인 분위기의 건축을 구현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칸막이로 나뉘어지지 않은, 단순 명료하면서 열린 공간. 쉽고 직관적 형태와 단일한 재료의 사용. 구조와 공간의 얼개를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하는 건축적 기만. 쓰이는 용도와 무관하게 건축 본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이러한 건축적 시도가 더 오랫동안 기억되고 경험할 수 있는 건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우식
민우식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2011년 서촌에 민워크샵이라는 건축공방을 설립했다. 대량생산과 첨단기술이 넘나드는 시대에 작은 건축에 집중하며 수공예정신을 잃지 않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오목한 집, 볼트 하우스, 두라스택 사옥, 카페 톤 등이 있다.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들을 현실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