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대변하는 집합체적 양식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는 1980년대 건설된 주택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2000년대 초반 빌라 형태의 건물들이 신축됐지만, 골목마다 예전 모습을 간직한 채 토속적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 생긴 이 건축물의 외형적 특징은 반지하층과 층별 독립적 접근 동선으로 요약된다. 당시 건축법에는 전쟁이 발발하면 방공호로 활용되도록 주택마다 지하층 설치 의무 규정이 있었다. 방공호로 이용될 계획이었기에 땅을 깊게 팔 이유도 층고가 높을 필요도 없었다. 층고가 낮은 반지하층이 형성된 배경이다. 이후 인구 증가에 따른 주거 수요와 임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이 맞물리면서, 각 층에 두 세대 이상을 수용하도록 공간이 구획되었다. 층별 독립적 진입은 자연스럽게 중요 요소로 고려되었다.
1980년대 주택의 형식과 새로운 공간 제안
구의 살롱은 1980년대 유행한 한국의 주택 건축 형태에 새로운 리모델링 가능성을 제시한다. 건물은 반지하층, 주변 도로보다 반 층 높은 1층 그리고 2층으로 구성되고, 각 층으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개별 동선이 있다. 총 195m2의 면적에 다섯 세대의 유닛(반지하층 2세대 / 1층 1세대 / 2층 2세대)으로 나뉘어 사용되던 공간에 건축주가 사용하는 업무시설(반지하 / 1층)과 거주시설(2층)이 제안되었다. 업무시설 중 주요 작업 공간은 반지하층에 위치한다. 북측 담장 사잇길로 바로 출입할 수 있으며 내부에서는 슬래브를 잘라낸 틈으로 1층과 연결된다. 반지하층과 1층을 하나의 업무시설로 사용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구조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계획된 부분은 남서 측 도로 레벨에서 반층 높은 1층이다. 이 공간은 지정된 용도 없이 비워진 공간이다.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공간을 구분했을 때 1층은 반지하층과 연계되는 업무시설의 한 부분이지만, 2층에 사는 건축주 가족이 내려와 머무는 공간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살롱’이라 불리는 이 1층은 중간 영역으로서 반지하층과 2층 사이, 업무와 주거 프로그램 사이에서 회의, 미팅, 전시, 휴식 및 여가 등 사용자들의 다양한 행위를 담는 건물 내 커다란 ‘응접실’이 된다.
공간구성을 위한 보존과 철거의 범위
1980년대 소위 ‘집장사’가 지은 건축물에도 당시의 건축 양식과 언어가 담겨 있다. 이 유형의 건축물들은 한 시대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집합체’로서 보편적 가치를 갖는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어떤 가치를 남기고 없애는지는 건축가가 지닌 기준과 판단의 결과이며, 이러한 건축 작업은 단순히 과거 지향적 소비 트렌드인 ‘레트로’와 구분되어야 한다. 구의 살롱은 시대를 대변하는 ‘집합체적 양식’으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건축적 요소의 위계를 나누고 있다. 층별 진입 구조, 외부의 건축적 요소, 벽과 바닥의 축조 방식 및 디테일, 반지하층 화장실, 건물 내 배관 등은 한 시대를 환기시키는 집합체적 양식으로서 보존되었다. 이와 달리, 내부 공간을 구획하던 벽과 일부 슬래브는 현재의 목적과 기능에 부합하도록 철거되었다.
앞서 말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반지하층의 두 세대가 사용하던 화장실은 1970~80년대 상황을 유추하게 하는 가치를 갖는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 도로변 가까이에, 사람이 설 수 없을 정도로 천장고가 낮은 화장실이 등장한다. 이곳 화장실도 이와 유사한 형식을 보이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도적으로 강제된 반지하 유형과 주거 공간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방공호를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에 따라 계획되지 않았던 화장실과 주방 등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런데 주택 정화조는 당시 도로에 묻혀 있던 하수관에 쉽게 인입할 수 있도록 도로 근처에 설치되었고, 이에 따라 반지하층 화장실의 위치와 높이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또한 배관 경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화장실은 정화조와 가까운 곳에 배치돼야 했었다. 이러한 단서들을 종합해보면 반지하층 화장실의 구조가 당시 사회적 상황과 연관되어 이해된다. 다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반지하층과 1층이 단일 프로그램을 수용할 예정이어서 화장실을 1층에 두고 지하 화장실을 철거했다. 화장실 바닥의 흙을 제거한 뒤 1층으로 올라가는 수직 동선을 배치했는데, 화장실 흔적 및 배관 위치 등은 보존했다.
내부의 위상과 그 변화
이 프로젝트는 30년 된 주택에 숨겨져 있던 마감면과 그 변화의 역사를 세밀히 드러낸다. 1층 슬래브와 내부 마감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주택의 공간 확장과 그 방식에 관련된 흥미로운 흔적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1층 동쪽 벽에는 주택이 세워질 당시의 조적 벽체부터 이후 불법으로 내부를 확장했을 때의 마감면 등 재료의 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외부 공간이었을 테라스(기단)를 내부화하면서 대리석 기단 위에 바로 쌓아 올린 조적벽은 대리석, 모르타르, 벽돌의 물성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변 벽체들과 미세하게 다른 질감을 보이는 적벽돌과 그 사이에 층을 형성하고 있는 대리석은 몇 년의 시간 차를 드러내며 축조 순서를 가늠케 했다. 또한 외부로 난 창이 불법 확장으로 내부화되자 이를 막아 벽감으로 활용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이 주택은 일반적이지 않은 구축 방식이나 재료 사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을 유지하여 새로운 사용자가 서로 다른 시간대의 마감과 축조 방식을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1층 동쪽 벽과 접하는 다른 벽에서는 라왕합판으로 된 장식적 몰딩 마감과 벽지의 면이 혼재된 구성이 있었다.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마감만 철거한 뒤 벽돌과 미장 면의 양식을 전시하듯 보존했다. 북쪽에 주방으로 활용되던 공간의 마감 이면에는 당시 주방 레이아웃에 대한 스케치가 분필로 그려져 있었는데, 이 역시 1980년대 평범한 건축가의 고민의 흔적으로 남겨두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옥상의 오래된 물탱크실은 바닥을 절개해 2층 현관에 빛이 드는 복층 공간이 되도록 하고 과거 물탱크와 연결됐던 배관들은 그 당시 건물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일종의 양식으로서 박제하듯 정면에 두었다.
새로운 마감을 건축적 요소로 활용하는 시도는 1층 바닥에서 나타난다. 1970~80년대 공공건물 및 아파트 바닥 면에 사용되던 테라조는 900mm 간격의 황동 줄눈 사이에 시멘트와 돌을 넣고 갈아내는 마감 방식으로, 구의 살롱 프로젝트에서는 테라조를 선과 면의 스케일로 재해석했다. 블랙 콘크리트와 진회색 골재를 채운 150mm의 황동 신주 그리드로 표현되는 1층 바닥 면은 그 그리드의 비례와 골재 단면 크기의 비율을 1970~80년대와 다르게 해 왜곡된 바닥 면적과 그에 따른 공간 인지를 경험하게 한다.
외부의 위상과 그 변화
외부 공간, 건축적 요소의 유형 및 마감은 구의동의 토속적 문맥에 반응하도록 기존 상태로 최대한 보존되었다. 공간구성의 변화에 따라 창호 크기가 조금 달라졌을 뿐, 한국식 베이 윈도우, 30년된 적벽돌, 지붕층을 형성하는 처마 구조와 기와, 1층 계단부 디테일, 저층부 기단의 콘크리트 및 대리석 마감 등은 1980년대를 대변하는 보편적 건축 양식으로서의 가치를 고려해 남겨두었다. 창호를 단열 성능이 강화된 제품으로 교체하고, 건물 벽돌과 색깔이 비슷한 모르타르를 기존 모르타르 마감 위에 덧붙여 볼륨의 단일화를 추구하며, 수명이 다한 계단과 발코니의 난간을 발색된 스테인리스스틸 패널로 감싸 요소화하는 등 새로운 마감에서의 변화를 최소화했다. 구의 살롱이 다수의 유사성과 소수의 대립성의 조화를 통해 1980년대 건물들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갖는 풍경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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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피엠제이(이승택, 임미정)
이승택, 임미정, 김정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
근린생활시설, 주택
121.3m2
65.58m2
195.83m2
지상 2층, 지하 1층
7.8m
54.06%
101.09%
연와조, 철골조
모르타르, 벽돌
벽돌노출, 합판, 석고보드 위 벽지
한길구조
대도 전기기계설비
에스티피엠제이
2018. 12. ~ 2019. 2.
2019. 1.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