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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프로젝트에 대한 소고

전보림(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대표)
사진
노경
자료제공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교육청 프로젝트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다. 가깝게 지내는 설계사무소 소장이 학교 다목적강당이 여러 개 묶인 설계공모가 나왔다는 정보를 주어서다. 그때만 해도 서울시 교육청의 다목적강당 설계공모전은 매우 낯설었다. 설계비가 7천만 원 남짓인 소규모 설계용역은 그동안 교육청에서 입찰로 처리해 왔기 때문이다. 당시 새로이 교육청 자문 교수가 된 김승회 서울대학교 교수가 교육환경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소규모 건물이라도 공모를 통해 설계자를 선정하자고 제안하여 성사된 일이었다. 예산이 워낙 적으니 공모전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네 개의 다목적강당을 묶어서 한날한시에 심사하는 일정이었고, 우리 사무실은 두 개를 제출해서 모두 당선됐다. 지금은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두 개가 한꺼번에 당선되는 일이 흔치 않겠지만, 우리가 참여했던 공모전 초기에는 제출 작품 수가 많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교육청 프로젝트 처음 해보세요?”였다. 나는 아직도 동시다발적으로 들은 그 말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던 뉘앙스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육청 프로젝트를 처음 한다는 사실이 마치 우리의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듯한, 그리고 우리는 이 세계에서 매우 이질적인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것 같은 말투였다. 여기는 날 때부터 교육청 프로젝트만 한 사람들만 모여 있나 싶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그 질문은 교육청의 폐쇄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임을 파악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교육청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고 했을 때, 예전 직장동료가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교육청은 그 풀(거래 건축사사무소 명단)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들어가면 다른 일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서울의 학교 시설은 신축보다 자잘한 증·개축이 많아서 인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과연 교육청의 설계용역은 그 풀 안에서 이뤄지는 모양이었다. 우리 사무실처럼 교육청 프로젝트를 처음 하는 사무실은 매우 낯설고 드문 존재였다.

 

한 명의 시설주무관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수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척척 알아서 하는 경험 많은 업체들과 일해 와서 그런지, 담당주무관은 업무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일을 진행하면서 설명 한 번 해주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그것도 몰랐냐고 타박을 주기가 일쑤였다. 게다가 일반 학교시설을 관장하는 교육지원청의 일은 소위 건축주가 둘이라는 고달픔이 있다. 뭐 하나 결정하고 넘어갈 때마다 반드시 교육청과 학교, 두 집단의 책임자인 시설과장과 학교장, 양쪽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계약은 교육청하고만 했는데도 그랬다. 돈은 교육지원청에서 집행하지만, 학교건물의 주인은 사용자인 학교장이란 논리였다. 어차피 세금으로 짓는 학교시설의 주인이 어떻게 학교장인가 싶었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처음이라 다소 서툰 부분은 있었겠으나 학교와 교육청 양쪽에 설계내용을 ​열심히 설명하며 일을 진행했다. 

 

언북중학교 다목적강당​ 

 

제일 큰 난관은 재료와 제품의 선정 과정에서 생겼다. 우리가 모든 재료와 제품의 회사와 제품명, 색상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벽돌 색깔이나 화장실 타일을 설계자가 무슨 권한으로 지정하려 하느냐, 그건 건물 주인인 학교장이 미술 선생과 함께 정하는 것이다”라며 저지당했다. 우리로서는 건물 디자인을 완성하는 마감재 사양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설계인가 싶어서 항의했다. 그러나 교육청에서는 ​그동안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진행해왔고, 신기하게도 설계자들조차 그런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학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 또한 제공된 샘플 중에서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학교의 권한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건축주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기는 해도 건축물의 디자인은 건축가의 영역이다. 그것은 내가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상식이다. 그런데 그 상식이 교육청이라는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그동안 진행해 온 일의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고 아무 문제가 없으며 학교건축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삼스레 설계 전문가로서의 디자인 권한을 운운하며 설득하는 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설계자로서 우리의 능력에 신뢰를 보내주었던 두 학교의 학교장을 먼저 설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시어머니가 둘이라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재료 샘플과 함께 시공 후 모습을 예상할 수 있도록 렌더링 된 투시도까지 보여드리고 사인을 받았다. 그런 절차를 통해 재료의 사양은 물론이고 색상도 상세하게 지정해서 최종 납품했다. 저급품으로 대체할 우려가 있어 회사명과 제품명도 함께 명기했다. 건물의 내외부를 보여주는 투시도는 컬러 출력해서 도면에 아예 포함해 제본했다. 벽돌 색상을 비롯한 재료의 색상 하나라도 나중에 임의로 바꾸지 못하도록. 

 

그러나 설계자가 감리를 하지 못하는 시공 현장에서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었다. 감독관인 교육청 주무관과 교육청의 일을 자주 했던 설계사무소의 감리 아래 교육청의 눈치를 보는 시공사가 설계 내용을 그대로 지킬지 우려됐다. 설계를 마무리하고 학교장에게 도면을 갖다 드리면서 혹시 시공 과정에서 설계 내용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연락을 주십사 부탁드리는 것, 그것이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공사가 진척되자 설계 도면이나 재료 지정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시공사 현장 소장들이 우리 사무실에 연락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학교의 시공사 현장 소장 모두 설계 의도를 구현하겠다는 개념이 있는 분들이었다. 열심히 현장 소장들의 설계 문의에 답을 해 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 과정에서 우리가 지정한 제품을 비슷해 보이는 대체품으로 바꾸려는 교육청 쪽의 시도가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설계 의도를 지키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싸움 아닌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다소 놓친 부분은 있을지언정 그럭저럭 기대치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왔다.

 

압구정초등학교 다목적강당​ 

압구정초등학교 다목적강당. 3층 브리지에서 진입할 때 강당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3층과 강당 사이의 내벽에 투명 폴리카보네이트를 계획하였으나 직접 감리를 할 수 없었던 시공 과정에서 불투명으로 시공되었다. 

 

두 개의 교육청 프로젝트, 압구정초등학교와 언북중학교 다목적강당은 2016년 12월 설계 공모에서 당선되어 설계를 시작한 지 거의 1년 10개월 만에야 끝이 났다. 교육청 내부의 사정으로 공사 시작이 늦춰지거나 도중에 중단되어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건물 준공이 다가올 때 즈음 그동안 우리를 신뢰했던 학교장들은 정년퇴직을 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새로운 학교장이 부임했다. 설계 시점과 준공 시점의 학교장이 다른 경우는 시공자에게 매우 골치 아픈 일이라고 한다. 학교장이 건축물의 준공을 인정한다는 서류를 내어 주어야 하는데, 자신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건물에 못마땅해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 준공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압구정초등학교의 경우는 교직원과 학부모가 준공 후 벽 색상을 비롯한 일부 디자인을 고쳐달라고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설계자로서 분노한 적이 있었다.

 

왜 교육청의 시설과 주무관들과 학교장 이하 학교 관계자들 그리고 어떤 학부모들은 건축가도 전문가라는 엄연한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디자인은 안전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니 아무나 해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일 수는 있겠으나 의사, 변호사처럼 건축사도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공부하고 실무경험을 쌓아 시험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그 시험은 거의 9:1이라는 경쟁률(2018년 기준)을 뚫어야 합격할 수 있다. 그렇게 자격증을 따고 경험을 쌓아도 하다 보면 모르는 부분이 나오고, 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설계를 하는 우리는 이렇게 어렵다고 생각하며 노력하는데 남들 눈에는 설계가 참 쉬워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건축가에게는 아무도 전문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교육청 관계자들은 타일 모양이나 벽돌 색상, 벽의 페인트 색상을 마음대로 정하고 바꾸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10년 넘는 실무경험이 있는 나도 벽돌 색상을 정하기 위해 시공된 현장을 몇 군데나 직접 방문하고, 페인트 색상을 고르기 위해 넓은 면적의 색상 벽에 컬러 칩을 대고 직원과 함께 고민해 가며 겨우 골랐다. 전문가가 힘들게 노력해서 결정한 설계를 어쩌면 이렇게 아무나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할까.

 

건축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할 거면 대체 왜 설계를 맡기나 싶은데, 그 지점이 바로 교육청이 원하는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대로 결정하고 설계자는 도장만 찍는 시스템. 교육청에서 발주하는 건축의 시스템이 계속 이대로라면 좋은 디자인의 학교건축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히 시공비가 적어서가 아니다.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전문가인 건축가를 배제하는 폐쇄적인 교육청의 시스템은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프로젝트가 다 끝난 지금, 아마 우리는 교육청의 사무소 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다만 그 명단이 거래 건축사사무소 명단이 아니라 ‘거래금지 건축사사무소 명단’이겠지만. 정말로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로 인해 새로이 생긴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학교건축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토록 명백한 불합리에 반항한 설계사무소가 ​우리 하나 뿐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에.

 


전보림
전보림은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국내 아틀리에 사무실에서 실무를 경험한 뒤 영국으로 이주해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귀국해 이승환과 함께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2017년 매곡도서관으로 신진건축사대상 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울산광역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 2019년 03월 27일
    지긋지긋한 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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