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끼어들기
귀향하여 노부모님 옆에 집을 짓기로 한 건축주와 대지를 둘러보며 염두에 둔 것은 ‘과정으로서의 건축’이었다. 대지는 60년대 지어진 본채-행랑채-창고의 닫힌 채 구성 중, 이미 낡고 부서져가는 행랑채 자리였다. 모든 부지는 노부모님의 손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빽빽히 채워져있고, 그 틈에 도시 생활이 익숙한 새로운 가족이 끼어드는 일이기에, 배치에 있어 모든 선택은 사려 깊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흙이 있으면 꽃을 심으려 하고, 어머니는 콩을 심으려 한다”는 건축주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소통과 열림을 강요하기보다, 각자가 점유하는 영역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두 세대의 공존을 목표했다.

농가의 방식
계획의 단초는 ‘농가의 방식대로’였다. 농촌의 건축은 완성된 형태이기보다, 최소의 땅에 집을 얹고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점유하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풍경 속에 덧대어진 요소들에서 힌트를 얻어, 이를 단순한 덩어리로 정리한 소박하고 단단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 환경과 활동에 대응하는 요소로 읽어낸 콘크리트기단과 벽돌 벽, 금속 지붕을 뭉개지 않고 분리하여 적층했는데, 다만 내외부 공간의 성격과 환경 조건에 따라 간격을 달리하며 서로 어긋나게 배치했다. 외부 요소인 뒤편 2m 높이 콘크리트 옹벽은 집의 기단으로 이어져 하나의 요소로 읽히도록 했다.


초기 계획은 순환하는 'ㅁ'자 구성이었으나, 공사 예산의 문제로 북측의 방 하나가 사라지며 'ㄱ'자 평면으로 바뀌었다. 비워진 자리는 보다 사적인 뒷마당이 되었는데, 건축주는 독립적으로 점유할 수 있게 된 이 외부공간을 오히려 반겼다. 우리에게도 이 설계변경은 원래의 개념을 훼손했다기보다, 농가에서 관찰했던 가변성과 미완결성을 설계 과정에서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ㄱ'자로 변화한 평면 위에는 초기 계획의 'ㅁ'자 지붕을 남쪽으로 치우쳐 깊은 처마가 생기도록 했다.

공존을 위한 거리
건물은 기존 행랑채의 남동향 배치에서 벗어나, 남향과 전면 도로축을 기준으로 돌려 배치했다. 이는 두 세대 사이 적정한 거리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집을 앉히며 나뉜 외부 공간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내부 공간의 질서로 이어졌다. 외부인이 드나드는 남서측에는 낮은 단차 위에 정원을 조성하고 거실과 작은 방이 배치됐다. 이곳은 노부모님 댁과 공유하는 앞마당을 향해 열린 공적 공간이며, 사적 공간인 안방은 가장 안쪽으로 숨기고 감나무를 향한 작은 창을 두었다. 거실과 안방의 거리는 은퇴 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부부에게도 각자의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함이었다. 두 공간 사이에는 사용 빈도가 적은 작은 방을 두고 들창을 통해 거실로 열리게 하였다.


거리를 두고 배치한 방들은 외부 환경의 교차 속에 하나의 집으로 엮이게 하고자 했다. 박공 지붕과 평행하게 뻗은 복도의 양 끝에는 다이닝의 큰 창과 안방의 작은 창이 놓인다. 두 창은 서로 다른 풍경을 집 깊숙이 끌어들인다. 같은 방식으로 현관과 서재를 하나의 축에 두고 유리 시스템 도어를 통해 두 개 마당에서의 시선을 연속시켰다.

사용 승인 전부터 집에는 이미 다음 변화가 예고되어 있었다. 태양광이 올라가고, 도시 가스가 들어오고, 부족한 창고가 다시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완공은 이 집의 최종 상태라기보다 첫 번째 상태에 가깝다. 농가에서 관찰했던 것처럼, 이 집 역시 삶의 필요에 따라 주변을 점유하고 요소를 증식시키며 천천히 자라날 것이다.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왼쪽) 설계 전 배치도, (오른쪽) 설계 후 배치도

다이어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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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익히 (김태환, 박민정)
경기도 이천시 율면 고당리
단독주택
516㎡
9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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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1층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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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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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합판, 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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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6. ~ 202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