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2월호 (통권 699호)
인터뷰 쇠렌 필만 필만 아키텍츠 대표 × 박지윤 기자
박지윤(박): 토라베이 29는 1967년 공장으로 지어져 최근까지 장애인 지원센터로 사용되던 건물을 복합 커뮤니티 시설로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다. 기존 건물을 분석하는 툴로 3D 측량과 스캔, 과거의 사진, 도면이 사용됐다. 각 자료에서 발견한 기존 건물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쇠렌 필만(필만): 3D 측량, 아카이브 도면과 사진은 원형 복원보다, 건물에 축적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했다. 3D 스캔은 도면에서는 뭉뚱그려지기 쉬운 기하학적 공차, 편차 및 중복된 구조 요소를 드러냈다. 이것은 명확하게 보이는 기능이 아닌,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요소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건물은 더 이상 ‘도면’이 아니라 하나의 생산 시스템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아카이브 자료는 생산 논리와 하중 지지 원리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건물이 적응해왔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하면, 건축은 하나의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 사용, 변형, 유지 관리의 축적 속에서 형성되는 작동 구조임을 알게 된다. 이는 단순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건축이 이미 어떻게 적응하는 법을 학습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공간적 가이드가 됐다.
박: 기존 자재를 95% 재사용했다. 건물의 용도가 변함에 따라 기능과 공간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새 자재가 있었을 텐데, 기존 자재로 충분했나?
필만: 모든 요구를 충족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지점까지 도달했다. 실제로 우리는 일반적인 해결책에 의존하기보다 프로젝트에 특화된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그 방법들은 기본적으로 최첨단 기술을 요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면의 접근 방식은 아마도 가장 혁신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해결 방식을 촉발했다. 예를 들어 슬래브를 재배치하는 과정은 업계 표준 장비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복잡했다. 극도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무거운 슬래브를 미세하게 조정하며 정확한 위치에 놓기 위해 비계와 인양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 특히 까다로웠다.


박: 95%라는 수치는 모든 건축물에서 달성 가능한 것인가, 혹은 이번 프로젝트가 가진 특성에서 기인했나?
필만: 이 수치는 건물 유형, 구조 논리, 노후화 정도, 규제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토라베이 29의 경우, 원래 산업용 구조물이었다는 점과 넉넉한 규모, 재료의 견고성 덕분에 이 정도의 재사용이 가능했다. 다만, 재사용률이 높다고 해서 그 프로젝트가 반드시 더 우수하거나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런 관점은 건축의 질적 가치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박: 자재의 재사용 여부는 어떻게 판단되는가? 이와 연관해 재사용되지 않은 5%의 자재는 무엇이었고, 재활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필만: 명확한 기준은 안전성이다. 일부 기존 재료층(방수층, 마감층 등)은 유해 성분으로 인해 규정에 따른 제거 또는 처리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폴리염화비페닐(PCB) 검사 결과 페인트는 샌드블라스트 처리가 요구됐고, 리놀륨 같은 바닥재도 동일한 이유로 제거됐다. 또한 물리적 실험, 구조분석, 실무적 판단을 종합해 평가했다. 마모됐거나 프로그램과 맞지 않은 요소들 중 일부는 당장 재활용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도 일단 현장에 보관했다. 실험을 하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재사용할 방법을 상당 부분 찾았지만, 몇몇은 단순한 눈속임에 그치는 방식 말고는 쓰기에 부적합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하다고 판단됐다. 이는 주로 석고보드였고, 그 외에도 일부 손상된 전기 부품, 플라스틱이나 유리 요소, 그리고 특정 기술 설비가 있다.
박: 자재의 최대 강도를 보존하는 절단 방식을 고안하는 등 철거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철거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하는 사항은 무엇인가?
필만: 우리에게 철거는 하나의 설계 단계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복층 공간이나 수직 동선처럼 새로운 공간구성이 필요했는데, 기존 건물에서는 상당히 긴 건물 양 끝에 위치한 작고 폐쇄적인 두 개의 계단만이 있었다.여기서 첫 번째 고려 사항은 구조적 거동이었다. 경간 성능, 철근 배근 방향, 사용 가능한 길이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절단했고, 특히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절단에 앞서 프리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드릴 피팅을 사용했고, 이는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슬래브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두 번째는 공정 순서와 물류다. 허용 오차, 목업, 보관, 그리고 ‘절단’에서 ‘재설치’까지 이어지는 명확한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다. 계단 판과 난간을 테스트하고 설치하는 것까지 포함해 더블-T 슬래브 계단과 관련한 작업들은 이러한 정밀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세 번째는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중장비 사용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하게 콘크리트를 새로 타설하지 않는 것은 현장에서의 에너지 사용과 디젤연료 소비를 줄인다. 이는 생애주기 분석에서 프로젝트의 성능 중 하나로 강조된다.


박: 자재들은 그대로 남아 있거나, 재표면화되거나, 파쇄 및 압축되거나, 위치를 옮겨 다시 설치됐다. 이러한 선택은 관습이나 미적 가치 보다는, 각 구성 요소가 지닌 고유한 물리적 속성을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물리적 속성’이란 무엇인지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필만: 압축 강도, 경간 구현 능력, 표면 경도, 무게 또는 녹청(patina)과 같은 측정 가능하고 기능적인 특성을 의미한다. 이런 속성들은 본래의 용도나 상징적인 가치보다 재사용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계단을 예로 들면, 우리의 목적은 가장 아름답거나 상징적인 계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슬래브가 가진 물리적 특성, 즉 긴 경간을 지탱할 수 있는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프리스트레스트 요소의 장력을 유지하는 맞춤형 클램프를 도입해야 했다. 이는 잠재력을 발견하는 동시에, 그 잠재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촉매 장치’가 필요한지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박: 기존과 다른 용도를 갖게 된 자재는 일부 보완해야 했을 텐데, 이러한 보완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한 사항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필만: 내구성, 안전성,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한 만큼만 수정하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었다. 예를 들어 시멘트에 박힌 벽돌은 주로 폐기된다. 우리는 이를 피하고자 벽돌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하면서 외벽과의 관계가 읽히도록, 새로운 지면과 조건에 맞게 절단하고 뒤집어 바닥에 다시 배치했다. 외부의 ‘벽돌 카펫’은 말 그대로 입면에서 지면으로 접혀 내려오듯 이어지며, 과거 출입구가 있었던 자리는 빈자리로 남아 해석의 일부가 된다. 그것은 건물의 과거 구조와 관계를 맺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하나의 패턴을 형성한다.
박: 환기구, 조명, 천장재의 금속까지 블록으로 압축해 가구로 활용했다. 블록이라는 형태, 가구라는 활용 방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됐나?
필만: 파쇄와 압축은 기능적 완결성은 상실했지만 재료적 가치는 남아 있는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기존 형태에서 재료를 추출하고 보다 작은 단위로 분해한 후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도록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목재와 금속 요소 대부분은 이미 쓸모없게 된 상태였으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원래의 용도로 재사용됐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선호하는 ‘실무적 유희’의 한 예라고 생각한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아닐 수 있지만 재료를 최대한 재사용하려면, 그리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려면, 열린 사고를 유지하며 다소 엉뚱해 보이는 방법도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한다. 금속 덕트, 설비, 천장 패널은 압축되는 순간 ‘특정 부품’이 아닌, 다루고 쌓고, 옮길 수 있는, 더 이상 덕트인 척할 필요 없는, 새로운 용도를 부여할 수 있는 밀도 높고 안정적인 재료 덩어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덕트 블록’은 철거와 설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재료를 작은 단위에서 다시 순환 구조로 되돌리는 방식이 된다.


박: 기존의 슬래브를 계단으로 활용했다. 이는 기존 자재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해당 콘크리트 바닥층을 구조적으로 지지하는 스틸이 연한 노란색인 지점이 흥미로웠다. 공간에 대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색이면서도 물성의 차이로 인해 구별은 가능하다. 건축가의 개입을 어떠한 태도로 드러내고자 했나?
필만: 기존 슬래브를 계단으로 재사용한 것은 재료를 표면이 아닌 공간적 잠재력으로 다루려는 접근에서 비롯됐다. 슬래브의 구조적 거동을 이해한 후 우리는 이를 재배치하고 재계산하여 건물 공간 조직에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변형을 지탱하기 위해 새로운 철골구조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피했고, 방화 규정상 도장을 해야 했다. 색상은 독립적인 디자인으로 고려되기보다 건물의 기존 색상 팔레트에서 도출됐다. 연한 노란색은 현장에 이미 존재하던 산화된 금속 요소들, 예를 들어 라디에이터나 램프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사용과 노화, 니코틴 노출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색이다.심각하게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내린 대부분의 결정이 철저한 논의의 결과이 듯, 물론 다양한 색상들이 논의됐다. 우리는 개입을 강조하거나 숨기려 하기보다, 가독성을 부여하려 했다. 새로운 강철은 물리적 속성과 구조적 역할로 구별되지만, 그것이 지닌 색상은 기존 건물과 재료적으로 연속성을 갖게 한다. 이러한 개입은 과시적이지 않으면서 가시적이며, 기존 요소들과 싸우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박: 2025 베니스비엔날레 덴마크관의 전시 〈현장의 짓기〉를 포함해 꾸준히 ‘재료의 재사용’에 대해 말해왔다. 필만 아키텍츠에게 재사용은 윤리적 선택인가, 구조적 필연성인가, 혹은 시간에 대한 건축적 태도인가?
필만: 우리에게 재사용은 시간에 대한 건축적 태도다. 이는 건물이 이미 물질적, 사회적, 제도적 역사 속에 놓여 있으며, 건축이 그 연속성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도 지금과 같은 규모로 자원을 추출하고 폐기하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로서 재사용은 설계를 이상적인 이미지에서 물질적 현실로 되돌리는 것이며, 이미 존재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사용은 책임인 동시에 창의적 수단이다. 나는 재료를 과거로부터 ‘빌려온 것’으로 보며, 우리의 역할은 그것을 미래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초기 단계의 분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자, 건축과 방법론을 분리할 수 없게 된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백지상태에서 건축가의 아이디어만으로 더 흥미로운 건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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