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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아래 땅과 집: 연안재

이성범건축사사무소

사진
이병근(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이성범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5년 1월호 (통권 686호) 

 

©Lee Jeonghwan 

 

인터뷰 이성범 이성범건축사사무소 대표 × 방유경 기자

 

방유경(방): 연안재는 제주시 해안동 초입에 지어진 단독주택이다. 대지 주변의 상황은 어떠했나?

이성범(이): 해안동은 제주시 중심지와 가깝지만 도심지와는 다른 여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동네다. 대지는 중산간로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경사지로, 멀리 제주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도로와 근접한 땅이지만 도로와 대지 사이에 수령이 오래된 왕벚나무가 있어 소음을 차단하고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방: 주택을 설계하면서 제주의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이: 채광, 환기, 단열, 안락함, 프라이버시 등 집이 지녀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풀어내기에 제주만큼 다양한 도전을 주는 땅도 없을 것이다. 제주에서 건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풍토다. 염해, 바람, 습기, 환기와 같은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땅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연안재에서는 제주 전통 민가의 ‘안거리’와 ‘밖거리’ 개념을 차용하여 기능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자연 채광과 통풍을 최대한 활용하고, 마당을 매개로 각 공간과의 유기적 연결을 시도했다. 특히 2m 정도 차이가 나는 대지의 경사를 그대로 살려 다공성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주요했다. 집 안에 바람길을 만들어 공기가 자연스레 통하면서 기후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대지를 진입부의 주차장과 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공간 두 레벨로 구분하고, 진입 계단에서 마당과 옥상정원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연속된 외부 공간을 통해 환기와 채광을 해결하고자 했다.

 

©Lee Sungbeom 

 

©Lee Sungbeom 

 

방: 대지 전체를 휘감아 도는 건축물의 배치와 지붕이 주는 인상이 강렬한데 어디에서 착안한 형태인가? 다공성의 공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

이: 평소 설계할 때 건물이 하나의 개체와 같은 덩어리로 인식되는 것을 기피하는 편이다. 벽이나 담을 둘러 대지 전체를 활용하는 한편, 지붕을 통해 전체적인 조형의 틀을 잡는다. 지붕은 건물이 바깥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 요소이자, 동시에 내부 공간의 특질을 결정하는 요소다. 주변과의 조화를 표출하면서도 내부와 밀접하게 관계하는 형태다. 설계할 때도 건물의 평면과 단면을 비례에 맞게 동시에 조율하면서, 공간을 분절하여 건물이 마당이나 정원 같은 외부 공간과 다양한 접점을 가질 수 있도록 표면적을 가급적 넓히는 방향으로 구획해나간다. 일종의 마스터플랜과 같은 접근법이다. 단일 매스와 대비되는 이러한 다공성의 공간은 다양한 공간 경험을 유발하며, 동시에 환경과 보다 적극적으로 관계 맺게 한다. 연안재의 넓은 지붕은 전통 민가의 지붕 형태를 응용하여 바람의 흐름에 순응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다. 입면에서 볼 때 지붕이 너무 화려하거나 거슬리지 않고 주변 지형과 어우러지도록 높이를 낮춘 경사지붕으로 처리했다. 특히 지붕의 처마선은 불규칙한 대지의 형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염해에 취약한 금속성 지붕재를 대체하기 위해 현무암의 색감, 텍스처와 흡사한 천연 슬레이트를 사용해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방: 처마나 필로티 공간이 유독 넓은데 특별한 목적이 있는지?

이: 제주 토박이인 건축주는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필요로 했다. 지붕 아래의 깊은 처마로 만들어진 공간은 이런 요구에 부합할 뿐 아니라 마당을 둘러싸며 툇마루와 데크의 활용성을 높인다. 또한 실내로 유입되는 일사량을 조절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건축물 내부의 온도 상승을 막아주는 기능도 한다.

 

©Lee Sungbeom 

 

 

 

방: 도로와 면한 북서측에는 대나무 담장을 세웠다. 대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매서운 북서풍을 막기 위해 방풍림이나 전통 민가의 벽 역할을 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함수율이 낮은 구운 대나무는 내구성과 방부 효과뿐만 아니라 가공이 편리해 유지 보수에 좋은 자연소재다. 구운 대나무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두께와 길이로 유통되는데 단일 부재를 1/3로 재단하여 담에 적용하면 재료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다른 작업에서는 주로 한 겹으로 설치했는데, 이번에는 제주의 강한 바람에 견딜 수 있게 이중으로 쌓아 구조를 보강하면서 맞춤식으로 끼워 넣어 교체가 쉽도록 디테일을 발전시켰다. 특유의 질감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 아니라, 대나무 틈 사이로 공기와 빛이 흐를 수 있어 과하지 않은 적절한 차폐 효과도 볼 수 있다.

 

 

방: 내부 공간은 어떻게 조직했나? 설계의 방향이 ‘밖에서 안으로’ 구체화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 제주 전통 민가의 공간 구조에 건축주의 생활 방식을 적절히 반영하고자 했다. 부모와 아들 세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지만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안채(안거리)는 욕실을 사이에 두고 부부 침실을 분리하되 욕실 유리창을 통해 시선이 연결되도록 했고, 별채(밖거리)에 있는 아들 방은 마당 쪽으로 창을 내고 툇마루를 두어 안채와 관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했다. 내부에서 보면 만곡된 경사지붕의 형상을 따라 2m(좌식 공간인 부부 침실)에서 4m(선큰 거실)까지 층고가 변화하면서 다양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다. 전체 배치와 형태를 상상하며 발전되는 설계 방식이 외부(조형)에서 내부(프로그램)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따르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다. 평·입·단면을 동시에 총체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공간으로 정리된다. 외형과 내부 공간이 유리되지 않는 이유다.

 


 

방: 한국적 설계 이념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국적 조화미를 추구하는 작품에 수여하는 아천건축상을 수상한 프로젝트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벽, 지붕, 기단 등 개별 요소들의 완결성을 높인 마감과 전체적인 조화의 측면에서 진일보한 부분이 감지되기도 했다.

이: 재료나 구법을 적용하는 면에서 경험치가 쌓이면서 보다 유연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 천연 슬레이트 접합, 대나무 접합 디테일과 같은 작은 부분에서 대지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과정까지 크고 작은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 제주에서 스테이, 카페, 주택 등 다양한 대지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유독 이번 작업은 마친 뒤 보람이 있었다. 연안재(連安齋)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이란 의미로 건축주가 붙여준 이름이다.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있는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북쪽으로 멀리 제주 앞바다가 보이고, 대나무 담장 너머로 왕벚나무가 하늘을 가득 채운다. 설계할 때 상상했던 모습이 계절에 따라 하나둘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건축가로서 큰 기쁨이다. 가족이 꿈꿨던 삶 또한 이곳에서 아름답게 무르익기를 바란다.​​

 

©Lee Sungbeom 

 

©Lee Jeonghwan 

월간 「SPACE(공간)」 686호(2025년 01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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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이성범건축사사무소(이성범)

설계담당

김성진

위치

제주도 제주시 해안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645㎡

건축면적

277.85㎡

연면적

235.36㎡

규모

지상 2층

주차

2대

높이

7.1m

건폐율

43.07%

용적률

36.49%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천연 슬레이트, 벽돌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구조설계

드림구조(김민관)

기계,전기설계

지엠이엠씨(강원구)

시공

이아컴퍼니(이기운)

설계기간

2022. 1. ~ 2023. 1.

시공기간

2023. 3. ~ 2024. 5.

건축주

김통일

조경

물소리(김시내), 연일숲(안정희)


이성범
이성범은 대한민국 건축사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공간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이후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이성범건축사사무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공공성을 바탕으로 일상의 가치를 탐구하고, 건축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상 및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최우수상,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연안재로 2024 한국건축가협회 아천건축상을 수상했다. 서울시와 대전시의 공공건축가이자 삼육대학교 겸임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