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새로 개발된 단독주택단지 내의 경사진 대지다. 북쪽으로는 한 줄의 주택 너머로 낮은 언덕의 숲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신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비교적 조용한 도시 속 마을이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해왔던 건축주 가족은 실내의 공용 가족 공간에서 외부를 차분히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최근 지어지는 대부분의 신도시 단독주택들은 프라이버시 보호, 범죄에 대한 경각심 증가, 주차장 출입구의 커다란 존재감으로 인해 무심하고 방어적인 모습을 띠게 됐다. 이러한 일반적인 해법에서 벗어나 거주자와 도시 맥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건축적 해답을 찾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요 과제였다.
말하는 벽
벽이 말을 한다면, 그 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폐쇄적인 존재만은 아닐 수 있다. 현대의 밀집된 도시 주택에서 ‘벽’과 ‘담’은 중요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택들이 철옹성과 같은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공용 공간과 개인 공간을 나누는 벽에 대한 일차원적 고찰에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과거 마을과 골목의 열림과 자생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눈을 갖기보다는, 방어적 주거 기능이 강조되는 현대 도시의 주거 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벽’이라는 개념에 잠재된 성격을 다층적으로 실현해보고자 했다.
구체적 설계의 시작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거주자의 단순한 바람에서 출발했으나, 벽들에 다양한 성격을 부여하면서 벽과 사용자, 벽과 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공간을 만들었다. 벽돌과 금속 등 서로 다른 물성의 벽이 마주 보며 대비를 이루도록 해 그사이 공간에 고유의 현상들을 부여했고, 이들의 다양한 앞뒤 순서와 변주들로 작지만 다채로운 공간을 가지게 했다.
창, 빛과 시선
대부분 시간을 거실에서 보내는 생활 패턴을 고려해 지하층에 거실과 주방, 그리고 정원이 서로 개방된 넓은 가족 공용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지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중정과 남측의 선큰 뒷마당, 북측 계단실의 라이트웰(lightwell)은 채광, 조망, 환기를 고려해 복합적으로 계획됐다.
지하의 현관에 들어서면 작은 중정을 바로 마주하게 된다. 중정에 닿은 시선에 거실과 주방, 뒷마당까지 지하의 모든 공간이 켜켜이 담긴다. 거주자는 실내에 입장하자마자 여러 겹의 실내외 공간을 조우함으로써 점진적인 경험의 변화를 체험한다. 거실과 마주하는 뒷마당의 금속 대형 화분은 의자의 기능과 결합돼 실내와 실외의 휴식 행위를 연결한다. 뒷마당 너머로 보이는 벽돌 벽과 금속 화분 사이로 형성된 다층적 객체와 공간들은, 거실에 머무는 시선을 차분하게 확장한다.
각 공간에는 외부를 조망하는 행동이 강조됐다. 지하 주방에서는 뒷마당을, 1층 화장실 세면대에서는 거울 대신 창을 통해 남측 도시를 바라보게 한다. 계단에는 수직 빛 통로를 계획했다. 계단의 빛 통로는 중정과 더불어 지하 거실에 빛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각 계단참마다 서로 다른 산의 풍경을 관망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3층으로 올라오면 다락의 서재를 지나, 작은 테라스에서 수직 이동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도시의 조망에는 하부의 내향적 공간들과 대비된 극적인 개방감을 연출하고자 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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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진(부산대학교)
나희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단독주택
234m²
44.18m²
199.28m²
지상 2층, 지하 1층
2대
10.34m
18%
36%
철근콘크리트조, 경량목구조
콘크리트벽돌, 스테인리스 강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원목마루
통통구조
다온엔지니어링
건축주 직영, 자인건축
2021. 10. ~ 2022. 4.
2022. 4. ~ 2023. 5.
6억 5천만 원
이기라, 백혜영
백혜영
고기리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