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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다세대주택

피그건축사사무소

정이삭(동양대학교 교수)
사진
노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피그건축사사무소
background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다세대주택 설명서

 

건축가 정기용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주 정교한 자본주의 체제의 공간적인 역사의 기록▼1이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한국 도시 공간의 정의가 아니다. 그의 말은 이 나라의 도시 공간 형성에서 우선시되어온 자본과 같은 요소들에 대한 이해 없이 조성되는 건조환경이 이 땅에 얼마만큼 유효하며 정당한가를 묻는 질문이다.

유토피아▼2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상이며, 현실이 아니다. 유토피아를 말하는 건축,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 희망만 나열하는 건축은 반쪽짜리다.▼3 건축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무엇이든 인간이 만드는 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존재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실체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그 실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은 무엇을 만들 수 있다. 피그건축사사무소(이하 피그건축)가 말하는 형상(figure)▼4을 이 끝없는 순환체계의 전체 단계를 압축하는 단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다세대주택은 이 순환체계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형상이면서, 이 사회의 1~2인 거주자들이 모여 사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이자, 그들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주택 사용설명서라고 생각했다.​ 

 

주차장 출입구와 보행자 동선을 분리하고, 도로변에서 바로 진입하는 주출입구를 계획했다. 스킵플로어 구성으로 인해 도로변에 높고 시원한 진입 공간이 형성됐다.

 

다세대, 다가구는 주택 시장의 마이너리그이다. 공동주거 형식에 사는 한국인의 절반은 아파트에 살고 그 나머지 절반은 다세대, 다가구 형식의 주택에 산다. 하지만 공동주택 시장에서 아파트는 주인공이고, 다세대는 조연이다. 아파트의 거주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다세대의 거주성에 대한 이야기는 화제가 되지 못한다. 아파트는 중산층의 주거 유형이고, 다세대, 다가구는 서민의 주거 유형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부터 한국의 중산층은 생존 이상의 거주성을 고려하기 시작했지만, 서민은 여전히 기초적인 현실 문제만으로도 버겁다. 기존과 차별화되지 않는 아파트는 미분양되지만, 반복 재생산되어도 다세대는 그럭저럭 팔린다. 공동주택의 역사에서 아파트는 재산성과 거주성 측면에서 계속해서 진화했으나, 다세대는 그렇지 못했다.

최근 1인 가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들을 위한 다양한 주거 유형이 만들어졌다. 도시형 생활주택 등과 같은 비교적 그 거주성이 관리되는 형식의 주거 유형도 있지만, 대부분의 1인 가구 수요를 충족하는 것은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기존의 다세대, 다가구, 다중주택 등이 변형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 저급한 1~2인 가구의 거주성을 경험하는 대부분은 이 사회의 젊은 청년 세대다. 피그건축의 소장들은 다세대주택의 경험자다. 건축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거주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러한 주거 유형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주인세대는 계단실에서 전용 마당을 통해 세대로 진입하게 하여 단독주택의 마당과 같이 계획했다. 마당과 면한 중정을 통해 반층 아래 침실의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다.

 

최상층의 주인세대는 스킵플로어 구조와 다락, 높은 층고의 거실 등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성됐다.

 

‘밝은 다세대주택’에서 거주성에 대한 그들의 고민과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곳은 첫째, 입구와 마당이다. 이 건물의 입구는 여타 다세대주택처럼 1층 주차장 필로티 영역 한 중앙에 있지 않다. 한자 ‘문(門)’의 형상처럼 이 집의 문은 문답게 생겼다. 길에 면한 문다운 문을 거쳐 건물로 진입한다. 사람의 입구가 길가에 면해 한쪽에 치우쳐 만들어지다 보니 차와 사람의 입구가 자연스럽게 분리되었다. 그리고 차는 연접 주차를 하지 않아 불편함을 없애면서 차 통행 공간으로 1층 필로티 공간의 개방감을 확보했다. 그렇게 진입한 건물 내 세대 진입부에는 마당이 있다. 모든 세대에 주어진 것은 아니고, 한국인이 기피하는 북향에 면한 유닛과 최상층에 마당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 북향의 유닛에 확보된 마당에는 건물 중앙에 만들어진 중정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1~2인 가구 원룸의 진입부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마당이 있다는 이야기는 왠지 거짓말처럼 느껴지나 이 밝은 다세대주택에서는 현실이다.

거주성을 위한 두 번째 제안은 세대 내의 개방감 확보다. 밝은 다세대주택은 최상층 주인세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형 1~2인 가구의 원룸형 세대로 구성되어 있지만, 약 2/3의 세대가 남향과 전면도로를 향하는 4-베이(bay)의 넓은 정면성을 확보했다. 한국의 아파트는 서구의 아파트와는 다르게 서민이 아닌 중산층을 위한 주거 유형으로 발전해왔으며, 그러한 아파트 변천 과정에서 한국 중산층은 단 한 번도 주거 공간의 개방감을 포기하지 않는다.▼5 그리고 그 개방감의 가장 큰 요소는 세대의 남향 또는 정면에서의 베이 개수를 더욱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세대주택 유형은 이러한 아파트의 변천 과정을 동일하게 밟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유형은 중산층이 아닌 서민의 주택 유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그건축의 밝은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에만 적용되어온 개방감을 위한 넓은 정면성 확보를 다세대주택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주거 유형에 속하는 원룸형 세대에 적용한다.

 

중정을 통해서 채광과 환기뿐 아니라 세대간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계단참에서 단독으로 진입하는 중정세대는 외부공간인 전용 마당을 거쳐서 실내로 들어가게 하여, 단독주택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남향이면서, 11m 도로변에 면한 4-베이 세대는 4개의 창호를 따라 각각 다른 기능의 공간이 배치됐다.

 

피그건축이 1~2인 가구 다세대주택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해한 사회에 대한 설명으로서의 제안은 거주성에 그치지 않는다. 거주성이 그들 작업의 형식을 결정했다면, 맥락적인 요소는 건축의 태도를 결정했다. 해당 건축물이 있는 주변은 경기도 안산시의 전형적인 다세대, 다가구 주택 지역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적벽돌 외장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러한 맥락을 지키고자 하는 건축가들의 의지가, 공사비 절약이라는 건축주의 현실적 요청과 부합하여 적벽돌이 외장재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그들의 선택 중 하나가 바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적다는 점이다. 다만 그들이 집중한 것은 공간 경험의 질이었다. 안산의 다세대주택 시장 환경은 건축가에게 재정적,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들의 선택은 건축의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고 다세대주택이라는 보편적 공간에서의 새로운 공간적 경험이나 자존감과 같은 요소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평당 450만 원 공사비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이 젊은 건축가들은 건축가 자신보다는 거주자의 요청을 보았고, 그 요청의 수준이 조금씩 나아져 더 나은 건축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했을 것이다. 작가가 아닌 건축가가 해야 하는 당연한 선택을 태연하게 한 것이다.

 

밝은 다세대주택은 지역의 경관과 어우러지도록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선택했다.

 

현실 위에 또 다른 현실을 덧대는 것이 건축이라면, 건축가가 자극받고 영감을 얻어야 하는 대상은 건축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건축은 현실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자극과 영감의 대상이 건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건축가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축적 현상들일 것이다. 더 많은 건축이 건축가 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상은 건물의 형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형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비극적 콤플렉스와 수많은 제약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욕망이다. 때로 그 욕망의 줄타기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형상 이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1~2인 가구 다세대주택과 안산의 주택 시장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욕심 없이 설명하고 있는 형상으로서의 건축, 밝은 다세대주택은 조금 더 나은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진행 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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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ung Guyon, A Story of Seoul, Hyunsil Book, 2008.

2. utopia = u (not) + topia (place).

3. Chung Isak, Why there is no tragedy in architecture, Architectural Critics, 2017 Autumn, pp. 225 – 234.

4. fig.architects’ ‘fig.’ is an abbreviation of ‘figure’.

5. Park Inseok, Kang Booseong, and Park Cheolsoo, The Composition for Spaciousness as a Design Principle in Unit Plan of Korean Apartment Housing, Architectural Research, 1999, Vol.15 (Dec.), pp. 71 –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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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주)피그건축사사무소(김대일, 김한중, 이주한)

설계담당

김동현, 유지민

위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용도

다세대주택

대지면적

261.5m2

건축면적

156.11m2

연면적

455.54m2

규모

지상 5층

주차

8대

높이

17.42m

건폐율

59.7%

용적률

174.2%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치장벽돌, 노출콘크리트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석고보드 위 벽지

구조설계

터구조

기계,전기설계

정연엔지니어링

시공

신부건설

설계기간

2016. 4. ~ 11.

시공기간

2016.12. ~ 2017. 12.


김대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와 건축사사무소아뜰리에십칠을 다녔고, 2015년 피그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이주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와 삼성물산을 다녔고, 2015년 피그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대한민국 건축사이며, 가천대학교 겸임교수이다.
김한중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와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를 다녔고, 2015년 피그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현재 생산실험집단 베이스먼트워크샵의 디렉터 및 그라운드 아키텍츠의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