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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온기: 게으른 송골매

빛의건축건축사사무소

정이삭
사진
최진보
자료제공
빛의건축건축사사무소
진행
윤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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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공간)」2023년 2월호 (통권 663호) ​​



이성적 온기

 

경복궁 서측 창성동 정부 시설 담벼락에 면한 땅에 지은 4층 주택이다. 주변 건축물 사이에서 유독 두드러지거나 소위 건축가가 설계한 티가 나는 작업은 아니다. 기단부 노출콘크리트와 상층부 코르크 뿜칠이 단정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전체적 인상은 일반적인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외단열 시스템 건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다소 무표정한 외관과 달리 콘크리트와 목재의 조화롭고 체계적인 공간이 1층부터 4층까지 다양한 공간감으로 연출된다.

 

내부가 외부로, 외부가 내부로

건축가 박진택은 목조주택으로 그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 작업의 클라이언트도 목조주택이라는 키워드로 만난 인연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비평을 통해 그가 목조 작업만 하는 건축가라는 오해를 지웠다. 그가 목조를 자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외부에서 구조가 일관되게 표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재는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재료의 관통이 용이하다. 그 자체가 단열재의 기능을 겸하므로 열교로부터 자유롭다. 일례로 한옥의 서까래는 내부에서 연속되어 바깥까지 하나의 부재로 이루어지며, 하나의 부재가 내부 공간의 천장이면서 외부 처마의 마감이 된다. 박진택이 예로 든 고딕 성당의 뼈대가 내외부에서 함께 감각되는 것과 유사하다. 기능과 설비가 중시되어 두터운 옷을 입어야 하는 현대의 공간일수록 내외부가 물리적인 일체성과 재료의 일관성을 가지기란 어려운 문제다. 중단열을 통해 노출콘크리트로 내외부 마감을 같게 만드는 방식 등이 있겠지만,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고 단열 성능의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에 비해 목구조 노출 마감은 의도 구현과 기능 면에서 당당함과 자연스러움을 가진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목자재가 내외부를 관통하는 풍경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무표정한 외단열 시스템이 내부의 목재를 철저히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처마를 만들 수 없는 빡빡한 대지 여건에, 검증된 외장 목재를 사용할 수 없는 제한된 시공 예산을 감안하면, 유지관리가 어려운 목조 노출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여건 내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료와 구조의 내외 일관성은 콘크리트 기단부에서 부분적으로 구현됐다. 가장 먼저 인지되는 가로변 저층부의 노출콘크리트는 실내에도 연속된다. 진입로에 면해서는 내단열로 마감 후 붙박이 가구를 배치하여 단열재를 가리고, 그 반대편은 외단열로 처리해 내부에 콘크리트 구조를 노출한다. 드러난 구조벽의 대부분이 콘크리트 노출면이 되도록 하여 내외부 전체가 노출콘크리트로 인지된다. 단열이 끊기는 부위에서는 열교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내외 단열을 충분히 겹치도록 했는데, 겹치는 영역에 보일러실을 두었고 그 실이 실내로 돌출된 코너는 주방 팬트리의 일부처럼 처리했다.

 

 

 

단일 공간, 다수 영역

1층에서 4층까지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문이 없다.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4층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내부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 주방, 거실, 침실, 서재 등의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 지니는 공과 사의 영역이 느슨하게 구분되어 존재한다. 같은 층에서는 바닥과 천장의 높낮이와 붙박이 가구가 영역을 구분 짓는다. 층을 오가면서는 아래층의 영역 분리 수단이 위층의 공간감과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건물 전체가 상하로 관계하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다. 2층은 회랑을 중심으로 북측에 화장실과 계단 영역이 있고, 남쪽으로 구조 모듈 하나 크기의 서재, 그리고 천장이 높여진 침실 영역이 있다. 하나의 공간을 구분하고 그 공간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화장실- 회랑-서재는 동일 천장면을 공유하고, 회랑-서재-침실 일부는 서측의 붙박이장을 공유한다. 붙박이장은 건물 전체의 횡력을 지지하는 구조적 역할을 하며 설비 배관 등이 지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침실의 일부이며 모듈 한 칸인 서재의 켜는 우연인지 계획인지 모르나 천장 직부등을 매입하는 탓에 마감 높이가 달라져 다소 미약할 수 있던 존재감을 드러내고 그 영역감을 공고히 한다. 또한 높여진 2층 침실의 천장으로 인해 3층 바닥의 일부가 띄워져 영역화된다. 1~2층의 회랑 공간에서 한 번, 그리고 3층에서 다시 한 번 높은 공간감이 만들어진다. 회랑이 거주자가 세상과 접하는 공동 공간이라면, 3층은 거주 가족만의 공동 공간처럼 느껴진다. 큰 창이 벽난로를 대신해 남향의 온기를 제공하여, 아늑한 실내 숲속 정자에 앉은 느낌이다. 큰 공간에 작은 공간을 삽입해 큰 공간은 공공성을, 작은 공간은 사적인 관계성을 만든다. 루이스 칸이 설계한 피셔 하우스(1967)의 창에 면한 벤치나, 코먼 하우스(1973)의 벽난로 실이 떠오른다. 인터뷰 도중에는 잠시 언급하고 말았지만 박진택은 루이스 칸의 주택을 깊이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층의 띄워진 공간은 루이스 칸의 공간만큼 선명하게 구획되어 있지 않고 다소 흐릿한 형식이다. 그것은 그 공간이 4층에 오르는 통로를 겸하기 때문이며, 루이스 칸의 개념과 동시에 불확정적 활용의 개념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필자에게는 마치 도시와 골목 맨바닥에서 띄워져 불특정한 교류의 장소를 형성하는 평상의 건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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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온기

박진택의 작업은 따뜻한 방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사람과 같다. 몸에 닿는 비바람과 마음을 긁는 상처 없이 안전하게 세상과 교감하고자 하는 건축 같다. 그런 이 집에서 일부 내외의 경계가 기술적으로, 또 감각적으로 허물어진다. 기단부 재료의 내외 관통이나, 창을 통한 주변 도시 및 자연 요소의 선택적 수용으로 외부 같은 내부가 연출됐다. 또한 거주성에 기반한 복합적 기능 문제를 풀이하여 단일 실내 공간에 다양한 공간감을 구축했다. 낭만적인 건축가보다는 기술자나 수학자가 할 법한 문제풀이다. 상향식 보일러와 수직으로 면하는 침실, 구조 횡력의 지지와 서비스 · 수납 공간의 통합, 수직 동선을 고려한 바닥 높낮이와 공간의 영역화 같은 문제들이다. 기술적 문제풀이로 만들어진 공간이 차가운 이성만의 결론처럼 보이지 않는다. 온기의 이유가 재료인지 공간인지 태도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가 설계한 다른 건물과 목구조가 아닌 작업이 궁금하다. (글 정이삭 / 진행 윤예림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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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빛의건축건축사사무소(박진택)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67.08㎡

건축면적

39.68㎡

연면적

117.89㎡

규모

지상 4층

주차

1대

높이

11.25m

건폐율

59.15%

용적률

175.75%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목구조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코르크 뿜칠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라왕합판, 포세린 타일

구조설계

구조인디자인연구소

기계,전기설계

(주)대광엔지니어링

시공

건축주 직영

설계기간

2020. 9. ~ 2021. 5.

시공기간

2021. 11. ~ 2022. 5.


정이삭
정이삭은 2013년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으며, 2017년부터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적 건축 작업과 공공 연구를 하며, 건축 및 현대미술 전시에 기획자나 작가로 참여해왔다. 주요 작업으로는 연평도 도서관, 연남동 적벽돌 집, 노란 평상 등이 있고, 2016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큐레이터 및 작가), 〈캠프 2020〉(총감독)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더 서울,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공저, 2016) 등이 있다.
박진택
박진택은 영국 왕립 건축사이자 대한민국 건축사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런던에서 학업 및 실무수련 과정을 거쳤으며 옥스퍼드브룩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이끌며 자신의 건축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AA 스쿨의 실험적 건축이론과 시공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2016년 한옥의 건축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했고 2017년부터 2년간 홀로 집을 지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설계와 시공이 일체화된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