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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의 현상학, 계단의 위상학: 건축사사무소 루연

장용순
사진
김용관(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건축사사무소 루연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은행나무출판사 사옥 / Images courtesy of Luyoun Architects 

 

 

벽돌의 귀환

재료의 관점에서 20세기 전반이 유리와 콘크리트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은 그로부터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알바 알토, 루이스 칸, 시구르드 레베렌츠, 김수근 같은 건축가들이 사용한 나무나 벽돌도 유리와 콘크리트에 대한 대안적 재료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 1980년대까지 많이 사용되던 벽돌은 1990년대에 노출콘크리트, 드라이비트, 금속 패널로 대체되었고 벽돌은 유행이 지난 재료처럼 취급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벽돌로 된 건물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벽돌의 귀환’과 함께 황두진, 임도균, 와이즈건축, 에스오에이 등의 건축가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건축가들이 다시 벽돌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설득력을 갖기 때문일까?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건축 경향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약한 건축’의 필요성이다. 구마 겐고는 불투명한 콘크리트와 투명한 유리라는 극단적 성격의 재료의 근대건축을 ‘강한 건축’이라고 비판하면서 물성을 느낄 수 있는 돌이나 나무를 잘게 쪼개고 조합해서 반투명한 표면의 ‘약한 건축’을 제안한다. 둘째, 픽셀화된 건축의 등장이다.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은 주거 유닛이나 건물 모듈을 단위로 설정한 픽셀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해서 정형 또는 비정형의 자유로운 형태를 만드는 건축을 구사한다. 이런 경향은 비정형 건축이 매력적 형태를 만들지만 곡선벽을 시공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정형의 단위 픽셀의 조합을 통해 곡면을 만드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셋째, 표면에 대한 장식적 경향이다. 근대건축에서 죄악시되었던 표면의 장식이 다시 요구되고 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세리그라피 기법, 메탈 펀칭 기법, 장 누벨의 아랍 장식을 응용하는 건물들이 이런 예들이다. 벽돌이 다시 소환되는 현상은 약한 건축의 반투명성, 픽셀에 의한 비정형성, 장식적 표면이라는 세계적인 경향을 모두 만족하면서도, 인간적 감성과 전통 건축의 성격을 동시에 아우르기 때문이다. 임도균의 벽돌 건축에서는 이런 성격들이 모두 나타난다.

 

현상학적 벽돌

임도균은 2008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건축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벽돌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모더니즘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영림빌딩(2004)에서는 독일의 석조 건축을 따르고 있으며, 서야고등학교 특별교실(2007)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필로티와 수평창을 볼 수 있다. 미넴옴므 사옥(2013)에서 벽돌 외피에 대한 실험을 거친 후에 은행나무출판사 사옥(2015)을 완성한다.

한때 벽돌 건물이 많았던 마포구 서교동 일대는 파주출판도시의 단점으로 지적된 접근성과 도시적 활기를 찾아 출판인이 모여들면서, 출판계의 또 다른 중심으로 떠오른 곳이다. 현재 이 지역에 많은 출판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출판사 사옥들을 보면 피렌체의 팔라초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집중력과 보안을 요하는 기획과 편집 업무의 특성상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외관을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답답하거나 딱딱하지 않은 업무 환경을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화 기업으로서 출판사가 지향하는 정체성까지 외관에 반영해야 하는데, 이는 르네상스 가문들이 폐쇄적인 외관과 친근한 내부 공간을 통해 저마다 색채를 드러내던 방식과 유사하다.

임도균이 꾸준히 선보인 출판사 사옥들 역시 이런 배경 속에 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은행나무출판사 사옥에서 그는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에서 보듯이 돌쌓기 방식으로 그러데이션을 만들 듯 띄어쌓기가 증가하면서 위로 갈수록 가볍게 느껴지는 그러데이션 효과를 표현하는 한편, 알베르티의 팔라초 루첼라이에서처럼 외피와 내부를 분리하는 전략을 취한다. 외부의 띄어쌓기 벽돌면이 내부에서는 차양막의 역할을 하며, 입면 중간에 낸 수평창은 서교동 메세나폴리스의 위압적인 외관을 차단하면서 지상층 녹음을 향해 시야를 열어준다. 수평창은 전망을, 띄어쌓기 부분의 창은 통풍을 담당하는데, 

코르뷔지에가 자울 주택에서부터 사용한 전망창과 통풍창의 분리를 계승하고 있다. 특히 이 건물에서는 청고벽돌 하나를 가지고 치장쌓기, 띄어쌓기, 들여쌓기, 매달아쌓기 등 다양한 구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외피와 계단 부분에 사용된 띄어쌓기의 이중벽은 햇빛을 받아서 반투명한 레이어로 작용한다. 이런 효과는 마음산책 사옥(2020)에서도 발견된다. 6층 공간은 띄어쌓기 이중 벽면, 유리 커튼월, 펀칭 메탈 난간, 철제 와이어 커튼, 하늘로 열린 중정의 레이어들이 중첩되면서 현상학적 풍경을 연출한다. 띄어쌓기 이중 벽면은 빛의 느낌이 보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서 미묘하게 달라지고 빛, 소리를 차단하면서도 투과시켜서 햇빛, 그림자, 비, 바람 등 날씨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폐쇄적인 외관 안에 숨겨진 사적인 작은 우주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수도원의 폐허 공간 위에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는 빛을 선물하는 페터 춤토르의 콜룸바 미술관의 띄어쌓기 이중벽을 떠올리게 한다.

 

나선계단, 움직이는 중심성

임도균의 건축에서 또 다른 중요한 어휘는 동선이다. 은행나무출판사 사옥과 마음산책 사옥은 둘 다 외부에서 계단이 아서 나선계단이 건물을 두 번 감싸면서 정면에 대각선 계단이 노출되어 결국 지금의 후면 지그재그 계단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나선계단의 테마는 마음산책 사옥에서 완성된다. 나선계단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지구라트, 바벨탑, 다빈치의 샹보르성 계단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고, 르 코르뷔지에의 무한 증식하는 미술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 미술관, 렘 콜하스의 베를린 네덜란드 대사관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마음산책 사옥처럼 지하(강연홀)에서부터 7층 옥상정원까지 나선계단이 한번에 연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따라가면 띄어쌓기로 마감된 벽돌 외벽의 개구부 사이로 도시의 전망이 보인다. 이 벽을 따라 계속 나선계단을 오르면 미묘하게 교차하는 빛과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이때 벽돌은 ‘책의 문자’처럼 사용되며, ‘책의 내용’이 펼쳐지듯 나선계단의 산책로를 따라서 현상학적 풍경들이 펼쳐진다. 은행나무출판사와 마음산책 사옥의 계단은 산책로인 동시에 도시를 향해 열린 테라스처럼 사용된다. 외관은 무심하지만 위상학적 나선 계단은 건축과 도시를 관계 맺어주고, 벽돌벽은 주변을 차단하는 듯하지만 도시의 풍경을 투과한다. 계단의 하부는 화장실이나 창고로 활용되면서 공간적이면서도 기능적인 측면을 만족시킨다.

임도균의 계단과 입구는 매우 섬세하다. 사회평론 사옥 리모델링(2020)은 1층 계단을 개조해서 입구에서 2층을 올려다볼 수 있고, 2층 계단에서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동양북스 사옥(2019)에서는 계단이 약간씩 물러나며 아래층 계단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서야고등학교 기숙사(2007)는 두 개 층을 뚫어 높은 층고를 확보한 현관을 지나 90도를 꺾으면 빛이 떨어지는 계단을 만나게 되며, 서야고등학교 체육관(2013)의 진입 동선은 들어가서 유턴하듯 180도를 틀어 다시 돌아 들어가야 한다. 이렇듯 공간의 압축, 팽창과 빛을 활용한 매우 섬세한 시퀀스 구성은 그가 근대건축 어휘를 체득했음을 말해준다.

나선은 운동성과 중심성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바깥쪽으로 뻗어 나가지만 다시 중심을 향해서 계속 돌아오는 움직이는 중심성을 말이다. 임도균은 이런 특성을 전체 대지에 대한 황금비의 분할로 설명하기도 한다. 황금비로 분할하면 암모나이트 나선이 얻어지는데 이런 방법은 매스 배치에도 적용되어 있다.

 

면에서 매스로

임도균은 자신의 건물을 매스로 설명한다. 서야고등학교 체육관, 마음산책 사옥, 도서출판 더숲 사옥(2021) 모두 세 개의 덩어리가 대지에 놓인 것으로 설명한다. 그가 자신의 건축을 면의 구성이 아니라 덩어리의 배치로 생각하는 것은 면 분할과 구성을 중요시한 근대건축의 어휘에서 면 분할을 피하고자 하는 현대건축의 어휘로 전환했음을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2010년 전후로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이즈음 그는 벽돌이 면 분할에서 해방되어 덩어리의 느낌을 살리도록 처리한다. 면 분할이 필요한 부분에는 매스를 분할하고 그 사이 틈으로 빛을 유입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삼각형 대지에 지어진 동양북스 사옥에서는 면 분할을 피하면서 매스를 여러 개로 나누는데 이는 김수근의 구미문화예술회관(1989)의 매스 분할을 떠올리게 한다. 분할된 매스 사이로 통과하는 동선은 김수근의 샘터 사옥(1977)과 유사하다.

덩어리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임도균이 선택한 또 다른 대안은 루버다. 사회평론 사옥이나 동양북스 사옥의 입면에 사용된 루버는 면 분할을 피할 수 있는 방식이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나 페터 춤토르처럼 면 분할을 피하면서 물성과 덩어리를 강조하는 건축가들이 루버를 하나의 대안으로 사용하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서야고등학교 체육관을 구성하는 세 개의 매스는 바람개비의 날개처럼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내부의 창문과 천창 역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열려 있다. 이런 배치와 개방은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바람개비와 같이 여러 다른 방향성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이다. 임도균은 이를 몬드리안의 방식이라고 설명하는데, 데 스테일의 언어로 치환하면 ‘동적 평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콜룸바 미술관, 브레겐츠 미술관, 발스 온천의 내부 벽면에서처럼 운동성과 중심성 모두를 추구하는 페터 춤토르와도 공명하며, 나선 동선 역시 이런 동적 평형의 연장선에 있다.임도균의 건물은 도시에 대해서 ‘정중히 사양하듯이’ 무심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위상학적 동선 사이에 섬세한 현상학적 풍경들을 펼쳐놓는다. 그의 건축은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알바 알토의 근대 어휘를 계승하면서도 페터 춤토르, 리비오 바키니, 자크 헤르조그의 현대 스위스 건축과 맞닿아 있고, 동시에 김수근의 어휘를 재하고 있다. 그가 이제부터 풀어놓을 건축적 이야기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작품들은 서문에 불과할 것이다.​ (글 장용순 홍익대학교 교수 / 진행 방유경 기자)

 


마음산책 사옥의 계단실

서야고등학교 체육관 내부 / Images courtesy of Luyoun Architects 


마음산책 사옥 6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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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순
장용순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파리 베르사유 건축대학교를 졸업한 뒤 자크 리포 설계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익히고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사(DPLG) 자격을 취득했다. 파리 8대학 생드니 철학과에서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에서 실무를 했고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현대건축의 철학적 모험』 시리즈 1~4권(2010~2013)이 있다. 작품으로 세운상가 공공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와 KB 청춘마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