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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브레이싱 루인스 - 런란탕

원더 아키텍츠

사진
주 위멍
자료제공
원더 아키텍츠
진행
이성제 기자
background

폐허를 대하는 한 가지 방식


인터뷰 주 치펑​(원더 아키텍츠 공동대표) × 이성제 기자 


 

이성제(이): 프로젝트 설명문에서 “2018년 겨울부터, 몇몇 건축가들이 베이징 근교 마을 호우헤이롱먀오에 여러 주택들을 건설했다. 이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라고 했다.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주 치펑(주): 클라이언트는 마을에서 숙박업을 하는 부부였다. 이들은 이 마을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에 수십 채의 중정형 주택 원락(院落)을 갖고 있는데, 모두 비앤비(B&B)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클라이언트는 호우헤이롱먀오 마을 사람들과 협의해 토지를 임대했고, 당국에서도 역내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측면에서 프로젝트들을 지원해주었다. 클라이언트는 그들의 비앤비 상품이 더욱 예술적이고 멋있기를 바랐다. 다섯 명의 건축가를 고용해 원락을 설계하도록 했고, 거기에 나도 포함됐다. 디자인과 관련해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적은 편이었지만, 방의 개수, 건설 비용 등 경제성 측면에서 제약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호우헤이롱먀오 마을이 궁금하다. 15세기에 형성된 수백 곳이 넘는 만리장성 초소 마을 중 하나라고 했다.

주: 마을은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양칭구 산악지대에 위치한다. 2007년을 기준으로 180여 가구가 살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인구가 감소했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기존 낙농업이 쇠퇴한 뒤 현재 주요 산업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이 관칭 저수지 가까이에 있어서 관광업도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만리장성은 이 마을에서 18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만리장성은 단순한 벽이 아니다. 특히 수도 베이징을 둘러싸는 만리장성은 거대한 군사 방어 시스템이다. 주요 도시 성벽의 수십 km 바깥 구역까지 방어선이 구비돼 있는데, 이 방어선은 군사시설, 장병들이 주둔하는 막사 구역, 식량 생산과 가축 사육을 하는 농경 구역 등을 모두 아우른다. 만리장성이 방어 기능을 잃게 된 이후 이곳의 군인들은 농부가 됐을 것이다.

베이징 근교에는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마을들이 있다. 만리장성 주둔 기지사령부에서 해당 마을을 통치하고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이후 여러 마을로 쪼개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일부 마을들은 역사 지역으로 여겨지는데, 호우헤이롱먀오의 경우 역사 유적의 수가 적고 현재 근대화된 마을로 변한 상태다.

 

이: 15세기 이후 마을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주: 마을의 지형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느 베이징 주변의 마을처럼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농촌 건물의 외관을 바꿔놓았다. 몇몇 가구에서는 건물을 새로 세웠고, 젖소목장과 같은 마을 공동 시설로 빈 땅을 채우면서 전통적 모습이 손상됐다. 또한 지난 10년간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전통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농업 생산방식의 변화로 사람과 토지의 관계 역시 멀어졌다.

 

 

 

 

이: 임브레이싱 루인스 - 런란탕(이하 임브레이싱 루인스)은 허물어진 가옥을 남긴 채 주변에 새 시설을 올린 프로젝트다. 마을 사진을 보면, 옛 가옥과 같은 유형의 건물들이 일부 보인다.

주: 예전에는 버려진 이 가옥이 마을에서 보기 흔한 건축물이었지만 현재는 매우 희귀하다. 보통 이런 종류의 주택은 목구조로 지어졌다. 벽에는 진흙 벽돌을, 지붕에는 기와가 사용됐다. 건물은 세 칸으로 나뉘었는데, 중앙에 복도가 놓이고 복도 양쪽에 침실이 배치됐다. 침실에는 ‘캉(炕)’이라 불리는 침대식 구들이 놓여서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있었다. 15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이러한 주택의 건설 방법이 유지됐었다.

임브레이싱 루인스 내의 버려진 가옥은 20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당시 이곳에는 정원이 있었고, 우리가 보존한 건물을 제외하고 동쪽과 서쪽에 방의 흔적이 있었다. 외벽 잔해가 남아있어서, 바깥에는 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 건물을 지으면서 이전 가옥의 기초를 발굴해냈고 그 건물의 서쪽 면 아래에서 매우 두꺼운 석탄 이음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집의 주인은 부유층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부유한 계층의 주택에는 더 두꺼운 목재와 청색 벽돌이 사용됐다. 그러나 이 가옥에서 드러나는 생활양식을 통해 우리는 이 지역에서의 전형적 삶을 읽을 수 있다.

 

이: 임브레이싱 루인스는 이름 그대로 폐허를 품었다. 프로젝트 설명문에서 “건물이 완성된 이후, 여전히 벽돌 벽에 둘러싸인 폐허처럼 보였다. 나는 우리의 목적이 달성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는데, 폐허를 남긴 의도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다.

주: 처음 이 사이트를 마주했을 때, 터의 환경에 매료됐다. 평평한 땅이 아니었고 무너진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기존 생활공간과 폐허의 흔적은 희미하게 보였다. 정원의 나무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장면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중국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다. 도시와 마을의 모습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폐허에 투영된 모습이 익숙하기도 했고 생경하기도 했다.

이 폐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예전 삶에 대한 정보를 간직한 것이기도 했다. 이 같은 곳에서는 과거의 삶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이 장면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이러한 흔적을 새로운 건물에 남겨두고 싶었다. 예전 건물의 잔해가 새 건물과 조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하지만 이 같은 접근법을 일반인들이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주: 처음에 클라이언트는 우리가 왜 폐허를 남기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렌더링 이미지를 보여주자 빠르게 공감했다. 그런데 시공 과정이 어려웠다. 노동자들은 왜 새로운 건물에 평범한 폐허가 남아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설 과정에서 끊임없이 궁금해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설명해야 했다. 건물이 완성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우리의 의도를 이해해줬다. 이 사실에 만족한다. 공간이 말을 걸은 것이다.

 

이: 앞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건물에 중국 북부에서 수천 년 동안 활용됐던 캉을 도입했다.

주: 캉은 벽돌이나 진흙 벽돌로 만들어진, 침대 모양의 시설이다. 캉은 화로에 연결돼 있어서 불을 지펴 데울 수 있다. 그렇게 추운 겨울밤을 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알기로 한국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다고 들었다. 캉은 오늘날의 침실보다 훨씬 컸다. 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수면뿐만 아니라 식사와 여가 활동이 이 위에서 일어났다. 이 특별한 공간 설치물은 침대보다 더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특수한 기후 환경에서 나타난 생활 패턴으로서 캉이 수천 년 동안 존재한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임브레이싱 루인스의 새로운 침실들에 캉과 닮은 시설을 도입했다. 새로운 난방 시스템이 캉의 화로를 대체했지만, 특별한 생활공간으로서 캉은 새로 지은 건물에서 살아남았다.

 

이: 중국은 급격한 도시화와 현대화를 겪고 있다. 캉 또한 크게 변형되거나 사라졌을 것 같다.

주: 캉은 중국 북부의 농업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겨울을 나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었다. 시골이든 도시든, 보통 사람들이든 지배계층이든, 캉은 우리와 늘 함께 있었다. 캉이 많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20세기 초반 더 효율적인 화로가 중국에 소개되면서 대체됐기 때문이다. 캉은 실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했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을 지피고 청소하는 일이 성가신 일이 됐다. 많은 가정에서 캉을 해체하고 서양식 가구를 들여놓았다. 캉은 오늘날 시골에서도 대부분 사라졌다. 난방 기능만 생각하면 캉이 사라지는 게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캉이 수반했던 삶의 방식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맥락 없는 복고풍은 합리적이지 않지만 어떤 장소에서는, 특별한 공간을 살려두는 편이 사람들에게 더 다채로운 생활 방식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서구 근대건축에는 ‘폐허 또는 유적’(ruins)에 대한 담론이 있다. 루이스 칸, 르 코르뷔지에 등 근대건축가들은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언급을 종종 했다. 반면 목구조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건축물이 헐리면 사실상 유적이 남지 않았고, 한국의 경우 이에 대한 담론이 발달하기가 어려웠다. 중국의 상황이 궁금하다. 중국 건축에는 전통적으로 폐허 또는 유적에 대한 개념과 담론이 있는가?

주: 중국의 전통건축 역시 폐허(废墟)에 대한 미학적 고찰이 부족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멋진 건물이 사라지고 난 뒤 대지는 새로운 들판이나 광야가 되어 더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요한 장소에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선호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건물을 지어서 지역의 역사를 대체하기도 한다. 중국의 전통회화에서는 서양과 달리 유적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으며 유적을 미학적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은 유적에 관한 개념이 중국 건축에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건축가들이 종종 문화유적을 직접 마주하곤 한다. 아마도 우리가 빠른 도시화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공간을 재건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은 당대의 건축가들이 직면하는 문제이다. 중국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엄격하게 보호되고 보전되지는 못했다. 건축가들은 문화유적의 운명을 손에 쥐었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진지해야 한다. 한번 문화유적이 파괴되고 나면, 복구하기가 어렵다. 물론, 임브레이싱 루인스의 폐허는 가치 있는 문화유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지역의 기억을 물려주는 매개가 된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건축가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중국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이코모스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현재 중국의 이코모스 또는 건축 유산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어떤 이슈가 화두인가?

주: 우리가 직면한 주요 문제는 건설 과정에서 문화유산을 어떻게 분별해낼 것인가와 연관된다. 어떤 것들이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것들은 덜 중요한 걸까? 보존 카테고리에 포함된 문화유산은 상대적으로 적다. 많은 수는 기록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건축물을 보존 대상으로 보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표준의 마련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문화유산의 가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를 말하자면, 보존기술과 관련이 있다. 문화유산 보존, 건축 디자인, 시공은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이다. 많은 건축가가 보존에 대한 기초 지식은 갖고 있으나, 대부분 보존 방법과 기술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노동자들이 정확한 방법을 따르도록 지시할 수가 없다. 중국의 건축업계에는 ‘수선성 파괴’(修缮性破坏)라는 단어가 있다. 보존기술의 부족으로 문화유산이 파괴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문화유산 보존 전문가와 협동하길 바라며, 건축가 스스로 일반적인 보존 기술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유산의 보호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건축가 집단은 문화유산 보존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중요한 세력이지만, 보존 과정은 전문적이어야 하고 기술적 지침에 따라야 한다.

 


 


 


 


 


 


 

 


주 치펑
주 치펑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축가로 1984년에 태어났다. 중국 톈진 대학교에서 건축석사 학위를 받았고, 2008년 중국 이코모스에 최연소로 회원 가입했다. 2016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공업정보화부의 산업 유산 보전과 관련한 전문가 그룹에 들어갔으며, 2017년 왕 충, 왕 시디와 함께 원더 아키텍츠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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