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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나는 기억, 지속되는 대화

exhibition2019.08.02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승강장에 서면 스크린도어 너머로 단정한 흑벽돌 건물이 보인다. 1976년 건설된 이 건물은 7년 뒤인 1983년 7층으로 증축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본관과 별관, 부속건물로 구성된, 이른바 남영동 대공분실(이하 대공분실)이다.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축물은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탄압하는 용도로 오랜 기간 사용됐다. 이후 경찰청 보안분실, 경찰청 인권센터 등으로 변경되었는데,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관리운영하며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6월 10일부터 진행중인 기획전 <잠금해제>는 이곳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의 과거를 기억하며 이 공간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남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잭슨홍, 백승우, 홍진원, 일상의실천, 진달래&박우혁, 언메이크랩, 정이삭, 김영철 등 모두 여덟 팀이 참여해 어두운 과거를 조명한다. 전시 총감독인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이곳이 과거의 흔적으로 남거나 이미 끝난 사건처럼 잊히지 않도록 해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전시를 기획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잭슨홍은 별관 옥상에 옥외 간판 구조물 ‘빈칸’을 설치했다. 길이가 1.5m 남짓한 이 간판에는 “이 건축물에 관한 확인 가능한 정보”들이 적혀 있다. 순서대로 ‘김수근’, ‘철근콘크리트 흑벽돌’, ‘1976’ 등의 단어와 그 사이에 쉼표가 정보의 전부다. 하지만 ‘김수근’과 ‘철근콘크리트 흑벽돌’ 사이의 넓은 빈칸은 적히지 않은, 다시 말해 확인 불가능한 사실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진달래&박우혁의 ‘적색 사각형’은 건물 외부에서 도드라지는 작업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이 작업은 5층 좁은 조사실의 창문에 붉은 판을 삽입한 것인데, 밖에서 볼 때 흑벽돌 건물의 5층을 따라 붉은 패턴이 아름답게 디자인된 듯하다. 그러나 이는 조사실에서 흘러나왔다는 붉은 빛을 재현한 것으로 그때의 시간과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시도다.

언메이크랩은 당시 식당으로 사용됐던 대공분실의 부속시설에 주목했다. 이들은 현재 비어있는 2층을 일상적 소리로 채우고 한 쪽에 ‘평범한 장치’를 설치했다. 기계 장치는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운동을 반복하며 누수되는 파이프 아래에 놓여 똑똑 떨어지는 물을 맞는다. 단순한 움직임과 소리들은 대공분실 본관에서 자행된 야만과 이러한 야만이 일상과 무관치 않음을 상기시킨다.

이외에도 계단과 벽 등 대공분실의 건축적 요소를 재조립한 ‘계단 너머’(정이삭), 빛과 소리로 피해자들의 증언을 전달하는 ‘감각의 증언’(김영철), 국가폭력의 날 선 증언과 생경한 사진을 통해 냉전의 언어를 살피는 ‘빨갱이’(홍진훤×일상의실천) 등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전시는 9월 29일까지. <이성제 기자​>

 

진달래&박우혁​, ‘적색 사각형들’, 창문에 적색판 설치, 130×30cm (각 적색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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