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부는 건축가 양성이 목적인 교육기관으로, 학생들이 시각적 언어를 자유자재로 그려낼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에 본질이 있다. 건축학부는 세부적으로 건축공학과와 건축학과가 있는데, 사실상 이 두 갈래가 전부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는 5년제 건축학부를 졸업한 뒤 대학원 과정을 통해 세부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틀렛(The Bartlett School of Architecture)의 교육은 조금 독특했다. 바로 신설학과인 건축융합과(Architectural and Interdisciplinary Studies)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학과는 기존 건축학부와는 다르게 건물 디자인 방법을 교육목표로 삼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건축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개념을 짜깁기해 공부할 수 있다.
건축융합과는 바틀렛이라는 커다란 교육기관 아래, 건축공학, 도시계획, 건축법규, 도시이론, 부동산 경제학, 건축경영, 디자인, 건축사 등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바틀렛뿐만 아니라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의 다른 학과 수업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필자는 지난 학기에 사회학과에서 미시경제학을 들었으며 이번 학기에는 철학과에서 칸트와 흄을 주제로 윤리학 강의를 듣는다. 수업의 반을 건축, 반을 수학을 듣고 ‘통계로써 본 건축 현상’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집필한 사례도 있다.
인기 과목 중 하나인 건축적 글쓰기(Architectural Research)는 건축과 저술 활동의 접점에 있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강좌로, 건축융합과의 얼굴마담 강좌라고 할 수 있다. 강의는 총 네 개의 주제, 건축 분석(Analysing Architecture), 건축 비판(Criticising Architecture), 건축 큐레이션(Touring Architecture), 건축 팟캐스트(Talking Architecture)로 구성된다. 주제마다 글을 작성하고 이를 과제로 제출한다. 이 글들은 흔히 말하는 ‘리포트 형식’으로 작성해선 안 된다. 글이 있는 페이지의 구성과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도 중요한 채점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실 건축가가 되지 않더라도 건축계에는 상당히 많은 세부분야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커리어를 펼칠 수 있다. 전통적 직업을 잘 계승하는 것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임무지만 새로운 발견이 필요한 분야에 손을 뻗는 역할을 더는 간과해선 안 된다. 건물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물에 대해 잘 이야기하고 잘 응용하는 것도 중요한 만큼, 앞으로도 건축 교육에서 이처럼 대담한 걸음을 기대하고 싶다. <이지우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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