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10월호 (통권 707호)
1977년 프랑스 디종에서 출발한 콩소르시움 미술관(이하 콩소르시움)은 2027년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2011년 반 시게루와 장 드 가스틴의 개조·증축을 거쳐 문을 연 현재 건물은 재정비를 앞두고 있다. 50주년 무렵 공사가 예상되자, 콩소르시움은 디종에서 회고전으로 기념하는 대신 그동안 관계 맺어온 작가와 전 세계의 갤러리 및 기관들과 협업해 지난 역사를 새로운 장소와 형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Up Against the Walls!〉가 8월 26일부터 서울의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진행 중이다. 1983년부터 20회 이상 콩소르시움의 전시에 참여한 존 암리더부터 2026년 새롭게 인연을 맺은 앙헬라 페라리까지, 서로 다른 시기에 콩소르시움과 함께해온 9인의 작가가 참여해 3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긴 벽을 따라 수평으로 펼쳐진 이사벨라 두크로트의 작품 ©Joel Moritz
콩소르시움 공동 디렉터인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는 벽으로 구획된 층고가 5m가 넘는 화이트큐브의 공간적 특징을 살려 벽과 직접 관계하는 작업을 다룰 것을 제안했다. 이는 전시 공간의 조건을 꾸준히 실험해온 콩소르시움의 관심과도 맞아떨어진다. 이에 작가들에게도 공간에 맞춘 신작과 재제작을 요청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마주하는 양 옆의 벽에는 서로 다른 물성을 지닌 재료로 작업한 다른 세대의 작가 작품이 마주 보고 있다. 이번 전시의 최고령 작가 이사벨라 두크로트는 가볍고 유연한 종이와 직물을 이용한 콜라주 작업을 수평적으로 펼쳐 보인다면, 최연소 작가인 앙헬라 페라리는 대형 삼면화 작업을 벽 높이에 맞춰 제작해 수직적으로 배치했다. 높이 5m, 길이 약 20m의 동일한 크기인 벽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치된 두 작가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공간 전체를 둘러보게 한다.
상자형 전시실 내부에서는 우고 론디노네의 ‘thanx 4 nothing’(2013)이 설치됐다. 우고 론디노네의 오랜 파트너였던 시인 존 조르노가 등장해 그가 일흔 번째 생일에 쓴 사랑과 상실, 친구와 적, 죽음과 영적인 경험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모두에게 감사를 건네는 시를 낭송하는 다채널 비디오 작업이다. 우고 론디노네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한 인물을 반복해 보여주며 작품의 크기와 배치를 통해 관람객이 그 분위기 안에 들어가도록 만드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검은 턱시도를 입은 조르노와 흰 턱시도를 입은 조르노의 영상을 서로 마주 보는 두 벽에 투사해 관람객이 그 사이에 서서 몸을 돌려 두 조르노를 번갈아 바라보게 하며 양 벽을 작품의 구조로 끌어들였다.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Kim Hyoeun
그동안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상자형 전시실 사이의 좁은 통로에도 M/M(파리)의 포스터 작업이 설치됐다. 총 42장의 포스터들은 서로의 일부를 가리며 겹쳐져 한 점 앞에 멈춰 서기보다 복도를 걸으며 연속되는 이미지를 보게 한다. 동선으로만 쓰였던 복도가 이곳에서는 작품을 보는 장소가 된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 작품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품이 놓인 공간이다. 높은 벽을 올려다보고, 긴 벽 사이를 걷고, 마주 보는 두 화면 사이에 서는 동안 평소에는 작품 뒤에 가려졌던 전시장의 구조가 드러나며, 전시 공간 자체로 시선을 확장시킨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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