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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된 창조자, 무력한 권능: 영화 ‘브루탈리스트’

etc. 이소운 기자 2025.04.21


「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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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즐로 토스, 영화 ‘브루탈리스트’(2025)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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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뷰런 커뮤니티 센터의 시공 현장, 영화 ‘브루탈리스트’(2025) 스틸 컷​ 

 

지난 2월 12일, 20세기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건축가의 30년 연대기를 그린 영화 ‘브루탈리스트’(2025)가 개봉했다. 가상의 인물 라즐로 토스는 2차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헝가리 출신 건축가다. 그는 유럽에서는 이름을 날렸지만 미국에서는 이민자 신분으로 살아간다. 영화는 뒤집어진 자유의 여신상을 비추며, 괴테의 문장을 인용한다.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노예 상태다.” 라즐로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선택을 가장한 굴레를 씌우는 공간이다. 그는 스스로 미국으로 건너왔고, 사업가 해리슨 리 밴 뷰런의 건축 프로젝트를 수락했다. 이후 그는 밴 뷰런의 후원 아래 브루탈리즘 양식의 커뮤니티 센터를 설계하지만, 공사 도중 자금 문제로 중단되는 위기를 맞는다. 

 

영화는 질서를 창조하고 물리적 실체로 구현함으로써, 세계에 존재를 새기려는 건축가의 집요한 열망을 포착한다. 건축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밴 뷰런의 질문에, 그는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육면체를 직접 만들어(construct)보는 것”이라고 답한다. 이는 건축 행위의 내적 동기가 기능성과 실용성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브루탈리즘 건축은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건축을 표방했지만 사실 그 형태 언어 자체는 강렬한 기념비성을 띤다. 라즐로가 설계한 커뮤니티 센터 역시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이런저런 기능을 포함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창문이 없는 외관은 내부 공간에 깊이 드리워진 빛의 아름다움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공사 기간 내내 자신의 설계비를 줄여서라도 건물 높이를 높게 유지하려고 하는데, 사실 천장이 그렇게 높아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는 없으며, 오직 그의 미학적 이상을 실현할 기념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창조의 권능이 실현되는 과정은 언제나 건축가 자신을 더욱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밴 뷰런은 라즐로에게 전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동시에 그를 통제하고 압박했다. 공사비 절감을 위한 타협과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점점 궁지에 몰린다. 기차 사고로 밴 뷰런이 공사를 중단했을 때, 라즐로에게 공사를 강행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영화에서 라즐로는 점점 더 성적으로 무력화된 존재로 묘사되는데, 그는 사창가에서 직접적인 성교를 회피했고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상실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밴 뷰런이 라즐로 위에 올라탄 장면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권력 관계를 노골적으로 시각화한 순간이다. 건축가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존재가 된다. 

 

영화는 밴 뷰런의 실종과 함께 열린 결말을 남기고 에필로그로 이동한다. 결국 라즐로는 센터를 완공하지만, 늙고 병든 채 휠체어에 앉아 있다. 조피아는 축하 연설을 통해 이 건물이 유대인의 삶을 형상화한 상징이라 말하지만, 라즐로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의 목표는 순수한 미학적 이상에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타인의 해석 속에서 의미화됐다. 라즐로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을 강요받았던 삶의 연장선이다. 마지막에 남겨진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였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건물은 여전히 견고하게 서 있지만, 과정에서 그가 감내한 것들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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