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2월호 (통권 685호)
대안은 없는가?▼1: ‘미로 연계 포럼: 매너리스트, 분열증, 참조’
왼쪽부터 서재원, 김광수, 김효영 ©Park Jiyoun
지난 10월 현대 한국 건축의 담론 발굴과 기록을 목표로 삼은 잡지 「미로」가 ‘인용과 참조’라는 주제로 창간된 가운데 책의 필자로 참여한 김광수(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효영(김효영건축사사무소 대표)이 패널로, 최원준(숭실대학교 교수)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한 연계 포럼이 11월 12일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열렸다. 먼저 최원준은 “감각과 추상에 집중해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이 있다면, 과거를 구체적으로 참조하고 인용해 소통하고자 하는 건축”이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두 흐름이 배타적이지만은 않고 한 건축 안에서도 두 속성이 조합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번 포럼에 참여한 건축가들의 작업은 후자의 건축에 가까울 것이라며 세 건축가로 포럼이 꾸려진 이유를 설명했다. 포럼은 건축가들의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꾸려졌는데 포럼의 내용으로만 한정해 각 건축가의 작업을 살펴본다면, 김광수는 사회인이 처한 곤경을 해석해 작업에 모사하거나 해학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서재원은 현시대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연관한 건축적 현실을 끌어안거나 풍자하는 작업을 행하며, 김효영은 감정, 서사 등을 일으키는 방식의 참조와 여건을 인정하는 인용의 태도를 의식하며 작업하는데 때때로 이러한 인용과 참조를 유희하는 방식을 택한다. 각자가 해석하는 현실과 맥락은 다를지라도, 참조와 인용을 현실을 끌어안는 방법론으로 사용한다는 점과 형태에서 파편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작업은 연결된다. 첫 발표를 맡은 김광수는 건축가로서 포착한 시대의 곤경을 자본주의 리얼리즘, 레트로 마니아, 포에버리즘이라는 용어를 경유해 풀이하며 이를 일련의 건축, 그리고 자신의 작업과 연관해 설명했다. 1960년대 여의도가 토목공사를 중심으로 거대한 개발이 이뤄지던 때 건축은 유토피아적인 미래상을 공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한국은 물론 전 세계는 미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앞으로 나아갈 근거나 동력을 찾기보다는 회귀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이는 『레트로 마니아』(2014)의 주요 논지이기도 한데 그는 더 나아가 지금은 과거를 현재에서 계속 반복 변형시키며 현재에 영원히 머물도록 한다며, 『포에버리즘』(2024)의 언어를 빌려 근래의 곤경을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건축 또한 과거, 기억을 물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 왔으며, 자기 참조 속에서 동어반복을 하는 경향 또한 발견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구체, 구상을 추상으로 전환한 작업이 주를 이뤘던 모더니즘 시기가 있었다면, 현재는 디지털 추상공간(지리정보체계, CAD 등)의 추상적 작업체계기반 속에서 추상을 구체로 만드는 데 매진하는 건축의 갈래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형태가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질료성, 물성에 천착하게 만드는데, 그는 거의 모든 영역이 상품 공간화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구체가 정녕 구체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김광수가 언급한 마크 피셔 또한 자본주의에 의해 상상력을 제약당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는 유령론(hantologie)▼2을 말한 바 있다. 김광수는 이 같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진단을 작업과 연관시키는 경향을 띠는데, 합천 영상테마파크(2014)는 레트로 감성을 의식한 상태로 근대건축물을 모방해 경쾌하게 풀어낸 작업이며, ‘달로문학관은 달로문학관입니다’(2009)는 항공사진으로 보았을 때 달로문학관을 문자 그대로 형상화한 전시작으로 동어반복의 현상을 지적한다. 이어서 서재원은 극단의 자본주의로 인해 개인이 이중 구속에 봉착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정신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건축적으로 전유하는 방법론으로는 풍자, 분열증적 사고, 미분의 상태를 꼽았다. 풍자는 자본주의를 체념, 단념 그리고 단순한 수용이 아닌 끌어안는 방식이며, 분열증적 사고와 미분의 상태는 “과거의 모든 일을 적분(integrate)하여 짊어지고 100억 원을 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파라노이아형(편집증형)”▼3과 대조된다. 일례로 청운동 작은집(2024)에서 그는 전면에 사람이 들 수 없는 크기와 무게의 혹두기를 붙였으며, 1층 내부를 다양한 재료로 파편화하고, 시공상에서 발생한 오류를 적극적으로 수용 및 변주했다. 이는 그의 작업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태도로, 한국 건축의 클리셰이자 값싼 재료인 혹두기를 전면에 드러내고 설치 비용을 높이면서 ‘다시 보게’ 만들고, 완벽하게 컨트롤하기보다는 무언가와 연결 접속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엎질러진 혹은 어설픈 토털리티’의 방식이며, 시공비에 비해 과도한 완결성을 요구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국 건축의 여건 내 건축가의 역할을 따져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효영은 참조와 인용을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짚으며, 자신의 건축 방식을 소개했다. 독립 후 첫 작업이었던 울산 바닷가 벽집(2015)은 최대한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해 달라는 건축주의 요청이 있었으며, 후두암 수술을 한 건축주와 당시 아버지의 별세를 겪은 자신의 경험이 중첩돼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를 떠오르게 했다. 김효영은 이 과정 이후, 감정이입을 통해 건축의 서사와 성격을 쌓아가는 참조가 자신의 방법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법론으로는 ‘따옴표’를 인용하는 것인데, 여기서 따옴표는 건축주, 자본 등 다양한 주변부의 요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그의 작업 속에서는 기와지붕, 야구공 등으로 드러난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비평가 현명석은 김광수가 글 속에서 자신을 ‘매너리스트’라 명명한 것과 연관해 매너리즘은 그 영역 내 전통 문법의 이해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도의 엘리트 언어인데, 대중들과의 소통이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했다. 김광수는 대중들이 매너리즘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무지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대한 호오는 판단 가능하며, 당대 미켈란젤로의 작업 또한 맥락 파악이 어려운 대중들이라도 인정했을 것이라 대답했다. 연결되는 질문으로 전재우(하이퍼스팬드럴 대표)는 세 건축가의 글에서 해학, 풍자, 유희라는 언어가 언급된 것과 연관하여 유머는 상대방의 반응이 있어야 완성되는 것으로, 세 사람의 작업은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신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에 서재원은 자신의 작업은 면밀히 말해 대중성을 요소로 한 건축이지, 대중을 위한 건축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이 말은 풍자의 방법론에 한정된 발언으로 읽히는데 서재원이 그간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카와이(귀여움)’ 개념, 건축주의 요구를 끌어안으면서 건축가가 만족할 수 있는 단계의 건축을 중요시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11월 19일에는 김사라(다이아거날 써츠 대표), 이치훈(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파트너), 전재우, 건축 칼럼니스트 배윤경이 참여한 2차 연계 포럼이 열렸으며, 「미로」는 연 3회 발행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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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2006)의 부제
2 마크 피셔는 유령론을 “도달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향수”로 묘사하곤 했는데, 김광수는 이 개념을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가는 건축 경향이라는 논의 속에서 “추상과 구체에서 비껴가는 경험들”로 풀이했다.
3 서재원, ‘정신분열증과 초-참조적 건축’, 「미로」 1(2024. 10.),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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