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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5월] 한옥 패러독스: 한옥의 부흥에 나타난 현대성과 신화

김현섭, 이용희


2000년대 들어서며 시작된 한옥의 부흥은 한국 현대건축계에서 무척 도드라진 현상이다. 특히 서울시가 북촌 지역의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2002년부터 재정 지원을 시작한 것은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북촌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한옥이 다양한 용도로 리노베이션됐으며, 현대적 설비와 디자인을 갖춘 신축 한옥도 다수 생겨났다. 이처럼 전통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조건에 맞게 일신된 한옥을 우리는 보통 ‘신한옥’ 혹은 ‘현대한옥’이라 부른다. ‘현대한옥’은 근래 민간의 차원과 국가적 차원 모두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붐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한옥의 부흥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연구는 최근의 한옥 부흥을 두 가지 상반된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한옥의 부흥이 전통건축의 현대화를 촉진하며 앞으로 한옥이 진화해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긍정적인 관점이다. 일부 건축가들이 설계한 한옥의 경우 디자인이 무척 진보적이어서 과연 한옥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관점에서 보면 한옥에 대한 개별 건축가들의 다양한 실험은 건축의 현대성을 발현하는 장이기도 하다. 한옥의 부흥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은 집단적 현상으로서의 한옥 붐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돌릴 수 없는 이상적 과거를 동경하는 것을 하나의 신화로 가정한다. 특히 이러한 신화가 민족주의/ 국가주의 및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결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판적 고찰을 요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옥 부흥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역설적인데, 이는 ‘한옥 패러독스’라 불릴 만하다. 이 연구는 한옥 부흥에 내재한 현대성과 신화의 역설적 공존에 대해 고찰하고, 그 패러독스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옥의 진화와 현대성 

근래의 한옥 부흥이 한옥의 진화 방향을 타진하며 현대성을 발현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한옥의 근대화/현대화가 계속해서 시도됐기 때문인데, 1930~1950년대 서울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 특히 그렇다. ‘도시형 한옥’은 도심의 좁은 필지에 맞춰 ㄷ자형이나 ㅁ자형과 같은 평면을 취했고, 마당은 협소해졌으며, 공간의 구성과 구조·설비의 디테일에도 변화를 보였다. 이 유형의 한옥은 전통 한옥이 특정 시기에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옥 부흥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2000년대 한옥의 부흥과 함께 주목받게 된 ‘현대한옥’은 앞선 ‘도시형 한옥’ 못지않은 진보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현대의 실용적 필요에 더해 개별 건축주의 미학적 요구에도 부합하기 위해 전통적 관례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례로 서승모의 아틀리에 R(2004), 최욱의 학고재(2007), 황두진의 목경헌(2015), 도미이 마사노리의 남산동한옥(2014)을 들어보자. 아틀리에 R은 기존의 도시형 한옥을 건축가 사무소로 리노베이션한 것으로 한옥의 실내외 바닥 높이를 동일하게 한 것이 특징이며, 학고재는 기존 한옥을 갤러리 용도로 재탄생시키며 천창 등을 통해 현대적 기능을 적극 수용한 예다. 한편 목경헌은 지하가 딸린 2층의 신축 한옥으로서 한옥의 수직적 확장을 위한 황두진의 실험이 잘 구현된 결과물이며, 마찬가지로 신축 한옥인 남산동한옥은 대들보를 없애며 한옥의 전통적 구조를 과감히 깼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실험성을 내포했다. 본고는 이 같은 건축가들의 대담한 실험이, 기존 한옥의 리노베이션에서든 신축에서든, 한옥의 미래를 타진할 수 있는 현대성을 배태하고 있다고 본다. 현대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현대성을 “실험과 내적 탐문에 기반한 계속적 재평가와 혁신”에서 찾은 앤서니 비들러(2008)의 입장을 전유해 따르고자 한다. 더불어 비들러(1992)가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거해 암시한 바, 건축이란 백지상태가 아니라 기존의 맥락에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이라는 인식에도 주목한다. 왜냐하면 한국적 상황에서 전통한옥에 대한 재평가와 혁신은 필수적인데, 과거의 완전한 부정이나 그대로의 복원은 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옥은 진화할 수 있으며, 그때 현대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설령 ‘현대한옥’이 ‘전통적 형태의 감상적 복기’로 인해 포스트모던한 측면 또한 내비친다 하더라도 말이다. 

 

한옥 붐의 신화적 측면 

하지만 개별적 한옥 프로젝트의 차원을 넘어 한옥 붐이라는 집단적 현상을 조망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일종의 신화를 감지하게 된다. 그 신화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발견되는 ‘도무스의 신화’에 다름 아니다. ‘도무스의 신화’는 하이데거의 장소론에 대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비판(‘Domus and the megalopolis’, 1987)을 이어 받아 닐 리치가 발전시킨 개념으로(‘The dark side of the domus’, 1998), 결국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으로 연계된다. 즉 특정한 땅이나 고향, 또는 민족/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아우슈비츠가 극단적으로 보여주듯, 그곳에 속하지 않는 타자에 대한 ‘배타성의 논리’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무스의 신화’가 의심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의 관계성에 있다. 현재의 후기자본주의 시장체제는 상업적 이익을 위해 ‘잃어버린 도무스에 대한 향수’를 조장하고 ‘전통을 발명’하며, 이로써 상품화된 신화는 다시 자본주의의 욕망을 돋우는 상황을 반복한다. 케네스 프램튼이 주창한 ‘비판적 지역주의’(1983)의 장소성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전제했지만, 프레드릭 제임슨(1994)에 따르면 사실 거기에서 강조된 ‘차이’야말로 다국적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으로 소비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듯 ‘도무스의 신화’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더욱 심화되는데, 자본주의 및 민족주의/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독립적이기보다 긴밀히 접속하며 서로를 보완한다. 한옥 붐의 이면에도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널리 자리하고 있다. 2002년 서울시를 필두로 각지의 지방정부가 한옥 및 한옥마을을 보존하고 보급하기 위해 재정 지원을 시행하는 점, 2011년 ‘한옥 문화 진흥의 싱크탱크’로 국가한옥센터가 설립된 점, 2014년 제정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그간의 한옥 정책을 체계적으로 통합한 점 등은 국가적 차원에서 한옥을 보존하고 전통문화의 진흥을 꾀하는 까닭에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개입해 ‘배타성의 논리’를 작동시킨다고 하겠다. 예컨대 위 법률로 ‘한옥건축양식’을 규정해(제2조) 이 ‘양식’의 보급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강력히 촉구하는 점(제31조)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같은 정책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한옥산업 및 관광산업 활성화(제24조)를 통한 경제적 이익의 증대이니, 여기에서 국가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연스레 교차한다. 특히 한옥은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한 한류산업과도 연계되며 크게 각광받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세계시장에서 경제적 이익도 가져올 수 있다면 한옥의 붐을 어찌 환영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현실을 은폐하는 이미지에 대한 집착과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화에 있다. 롤랑 바르트(1972)가 지적하듯,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화는 현재의 지배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결론: 한옥 패러독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요컨대 근래의 한옥 부흥에서 우리는 현대성의 발현과 신화적 이데올로기의 힘을 동시에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한옥 패러독스는 중요한 시사점을 여럿 제시하는데, 비판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에서 이를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한옥의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한옥 붐의 신화적 측면인 민족주의/국가주의 및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경계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이미지로서의 한옥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이미지로서의 한옥이란 전통의 구축논리보다 형태 만들기에 집착한 한옥과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고급 상품으로 소비되는 ‘기호-가치’(Baudrillard, 1998)로서의 한옥을 말한다. 셋째, 현대의 건축 작업은 공간, 구조, 재료, 생산 시스템과 같은 현대적 조건을 바탕으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한옥이나 ‘한옥건축양식’이 특정 조건과 목적의 건축물에 국한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한옥이 아무리 우수하다 할지라도 현재의 위치는 현대건축의 폭넓은 스펙트럼 가운데 일부의 특정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넷째, 한옥의 신축은 별개의 문제이나 기존 한옥의 보존/보전은 적극 장려돼야 하는데, 한옥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실험할 좋은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그 실험은 온건하든 급진적이든 미래를 향한 한옥의 진화를 돕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의 현대건축에서도 한옥 패러독스와 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이들의 비교 연구가 진행된다면 이 주제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논문 원문은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보실 수 있습니다.

 


김현섭, 이용희
김현섭은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박사 및 박사후과정으로 유럽 근대건축을 연구했고, 2008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건축 역사가이자 비평가로서 한국 현대건축에 관한 비판적 역사 서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최근 『건축수업: 건축물로 읽는 서양 근대건축사』(공저, 2016), 「DDP Controversy and the Dilemma of H-Sang Seung’s “Landscript”」(2018), 「르 코르뷔지에와 한국의 현대건축」(2018) 등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을 국내외에 출판했다. [교신저자: archistory@korea.ac.kr]

이용희는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했다. 현대한옥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으며, 김현섭 교수의 지도 아래 「최욱의 한옥 리노베이션에 나타난 전통과 현대 사이의 연속성 논의」(2014), 「현대한옥의 유형 분류」(2016) 등의 논문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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