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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1월] 성당의 새로운 유형: 르 코르뷔지에의 피르미니 성당으로부터

정진국


성당의 새로운 유형

피르미니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의 유작이며 2006년에 완공됐다. 세기를 넘긴 완공과 함께 다양한 담론들이 있었다. 설계와 시현의 시간적 간격에 따른 재현 방식의 변화, 기술 수준의 차이, ‘피르미니-베르’ 종합계획에 나타난 도시계획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피르미니 성당은 종교 건물인 만큼 성스러움의 표현에 요구되는 조형의 비밀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르미니 성당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피르미니 성당은 건축가에게는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에 이은 성당의 새로운 유형이다. 연구는 바로 ‘성당의 새로운 유형’으로서의 피르미니 성당을 기술하는 데 있다. 가설적 질문이 필수적이다. 피르미니 성당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건물과 구별되는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것은 피르미니 성당에 관한 분석이 아니라 피르미니 성당으로부터의 분석을 요구한다. 현상학에 기초한 인식론적 탐색의 대상인 피르미니 성당은 위베르 다미쉬가 말하는 ‘이론적 대상’이다. 

 

예배당

피르미니 성당의 대부분은 종교건축의 주요 기능인 예배당에 할애됐고, 그 아래에는 사제관(현재는 전시시설)이 들어서 있다. 예배당은 끝이 잘린 원추 모양으로서 계곡의 절벽과 산맥과 연계돼 방위에 따라 달라지는 기울기를 가진다. 예배당의 상부와 하부는 각각 정원형의 평면과 정사각형의 평면을 가지고 있어서 형태적으로 대립한다. 제단의 배경이 되는 동측 벽에 오리온 성좌를 상징하는 개구부가 있으며 크기에 있어서 황색, 적색, 녹색 등의 색채가 있는 세 개 개구부 ‘광대포’와 대립한다. 예배당 전체를 감싸는 띠창 역시 방위에 따라 서로 다른 색채를 동반하는데, 동측의 적색, 서측의 청색, 남측의 녹색, 북측의 황색 등이다. 건축적 다색채는 르 코르뷔지에가 근대건축의 시기부터 제기했던 문제다. 그는 1931년에 네 개 색채를 둘로 구분했는데, 청색과 녹색은 공간을 확장하고 적색과 황색은 공간을 고정한다. 이들 색채는 공간적 의미에 따라 형태와 마찬가지로 대립 쌍을 구성한다. 조형 수단의 긴장 관계가 형태와 색채의 대립 쌍으로써 시각화된다. 

 

황홀경

조형 수단의 긴장 관계에 의해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광경을 생산하는 예배당은 르 코르뷔지에에게는 방문자의 특별한 시각적 경험의 대상이 되는 ‘형언불가의 공간’이다. 형언불가의 공간이란 문자 그대로 언어적 표현이 불가능한 서정성의 차원, 즉 격정과도 같은 정신의 질적 도약을 일으키는 감동에 관련된다.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은 몽타주 이론에서 감동을 자아일탈의 희열, 즉 황홀경과 일치시킨다. 이때 황홀경은 조형 수단의 긴장 관계라는 표현 방식의 체계로써 획득된다. 만일 피르미니 성당에서 형태와 색채의 대립 쌍이 표현됐다면,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가 황홀경의 실현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형언불가의 공간은 종교적 상징 또는 신학적 표상이 아니라 황홀경을 위한 시선의 기하학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리고 피르미니 성당의 건축적 산책로 역시 반대되는 힘들의 공존에서 비롯되는 역설적 상황을 표상하면서 황홀경의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적의 상자

완전한 허공으로 창조된 피르미니 성당은 기본적으로 속이 텅 빈 콘크리트 통이다. 콜린 로우는 도쿄 문화센터의 기적의 상자와 형태적 유사성에 근거해서 라투레트 수도원의 예배당을 기적의 상자로 간주했다. 그런데 이것은 서로 마주 보는 관람석이 증명하듯이 내부와 외부의 공간적 호혜성에 따라 구성된 두 개의 공연장 중의 하나다. 말하자면 속이 텅 빈 콘크리트 통은 실내 공연장인 내부 극장이며, 여기에 야외 공연장인 외부 극장이 수평적으로 결합한 이중극장이 바로 기적의 상자다. 세실리아 오바이른에 의해 예배당과 순례자 공간이 좌우의 수평적 대칭을 이루는 롱샹 성당이 이중 극장으로서 기적의 상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르미니 성당 또한 이중극장으로서 기적의 상자다. 회전 방향이 반대인 두 개의 나선형 수직 동선은 내부와 외부의 공간적 호혜성에 따라 수직 관계를 가지며 대칭적으로 구성됐다. 피르미니 성당은 수직성이 강조된 ‘공중에 떠 있는’ 기적의 상자다.​

 

대지

피르미니 성당이 수직적인 이유는 바로 대지가 수평적이라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피르미니 성당은 대지와의 관계에서 수직과 수평의 직교라는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수직과 수평의 직교는 건물을 ‘대지에 고착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며, 이것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건축가 자신의 작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그런데 수직과 수평의 직교는 높이와 너비와 함께 둘 사이의 거리, 즉 깊이로 정의되는 삼차원 공간, 그것도 그 내부에 존재하는 주체를 정확하게 기술한다. 수직과 수평의 직교를 통해서 건물과 대지 사이에 존재하는 주체에 대한 현상학적 의미가 환기된다. 주체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있어서 항구적 재현의 조건이다. 건축가가 수직과 수평의 직교를 통해서 ‘입체 감각’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피르미니 성당이 롱샹 성당이나 라투레트 수도원의 탄생이 그렇듯이 대지와의 특별한 관계에 따라 탄생한 기적의 상자의 특별한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자발성

종교건축에서 반복되는 기적의 상자는 콤메디아 델라르테처럼 즉석에서 이뤄지는 대중적 연극 형식인 ‘자발연극’을 위해서 개념화됐다. 자발연극의 핵심은 자발성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발성에 대한 연구를 심화했고, 이것은 마침내 기적의 상자에 의해 구체화에 이른다. 자발성을 설명하는 건축적 형태가 바로 기적의 상자다. 따라서 기적의 상자에 기초한 롱샹 성당, 라투레트 수도원, 피르미니 성당 등의 세 가지 종교건축은 자발성의 문제로서 제기하는 건축적 형태로 이해된다. 그는 자발성으로서 주체의 내적 동력으로서의 사유에 근거한 ‘지속적 작업’의 의미를 부각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력은 사유가 성숙돼서 완벽한 수준에 도달하는 결정적 순간에 갑자기 한꺼번에 저절로, 즉 자발적으로 분출되기 때문이다. 예술적 표현은 예술가 자신의 내부로부터 획득되는 것이지 결코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것이 아니다. 사유는 창조의 본질이다.​

 

 

논문 원문은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보실 수 있습니다. 


정진국
한양대학교 공과대학과 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다색채 연구로 예술사 박사를 받았다. 건축도시학제간설계연구소를 기반으로 연구와 설계의 균형을 모색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1996년과 2005년에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곤지암 주택, 토포하우스, 경주 주말주택, 고기동 주택, 소금항아리 등이 있고, 저서로 『르 코르뷔지에가 선택한 최초의 색채들』(2001), 『상자의 재구성』(2009)이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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