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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현상] 사회학자의 카페 읽기

전상인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3년 5월호(통권 666호​)​


커피, 카페

커피를 사고파는 것이 주업인 카페는 서구에서 발원한 식음 문화 가운데 하나다. 원산지가 아프리카였던 커피는 오랫동안 중동 이슬람 문화권에서만 기호품으로 발전했다. 철저한 금주윤리가 그 배경이었다. 그러다가 17세기경 유럽은 커피를 처음 만났다. 그 이전만 해도 유럽인들에게 술은 기호품이라기보다 거의 식료품 수준이었다. 중세 유럽은 대체로 술에 쩔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금주운동을 동반한 종교개혁 과정에서 ‘정신을 맑게 하는’ 커피의 가치가 재발견되었고, 그 이후 커피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 계몽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근대문명으로 유럽인들을 인도했다. 커피 없는 근대사회, 커피를 뺀 근대 역사는 상상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카페인을 함유한 커피는 자본주의 체제하 부르주아나 사무직 종사자들의 정신노동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육체 노동자들의 노동규율을 강화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자본주의 초기에 있어서 커피는 일종의 사회적 ‘약물’이었던 셈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모닝커피의 각성효과를 알게 모르게 믿는 것은 이런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유럽인들이 커피를 접할 때, 그것은 집 안에서가 아니라 집 밖에서 마시는 ‘공적’ 음료였다. 그리고 그것을 파는 공간이 바로 카페였다. 워낙 커피는 거리나 동네에서 마시는 게 기본이었던 것이다.

1650년 영국의 대학도시 옥스퍼드에서 첫선을 보인 카페는 17세기 후반 이후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전역에 걸쳐 급속히 늘어났다. 도시가 커지고 늘어나면서 카페는 신분이나 계급, 성별이나 종교 등에 구애받지 않은 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이자 놀이터가 됐다. 그 과정에서 카페는 점차 근대학문과 근대과학의 산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의 무대로 성장했다. 커피 한잔 값으로 1~2페니만 지불하면 세상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런던의 카페를 사람들은 ‘페니 대학’이라 불렀다. 과학자, 지식인, 사업가, 금융인 등이 그곳에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함으로써 카페는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곳은 창업 공간 내지 벤처 사업장이었다. 

카페에는 신문과 잡지, 문예물이 즐비했고, 그와 같은 지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대화와 토론을 즐겼다. 카페는 커피를 매개로 하는 말의 성찬장(盛饌場)이 되어갔다. 카페의 실질적 주인공은 커피가 아니라 ‘말’이었다. 특히 이성적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즐겨 찾은 곳이 카페였다. 실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시작도 카페에서였고, 혁명 직후 인민재판 역시 카페 뜰에서 벌어지기가 다반사였다. 말하자면 카페가 사회적 공론장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에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카페에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시작됐다고 말하면서 의회와 정당의 기원 역시 카페에서 찾는다.

 

제3의 장소

이처럼 커피는 단순한 개인의 기호나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사회적 가치와 함의를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그런 가운데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유럽산(産) 카페의 사회적 가치나 용도를 업계(業界)가 자임하고 학계(學界)가 공인하는 보다 결정적인 계기가 생겨났다. 우선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커피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라 정의했다. 이어서 카페를 영리 위주의 유통이 아니라 총체적인 공공문화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벅스 카페를 당시 미국 사회가 결여하고 있던 ‘제3의 장소’라 주장했다.

제3의 장소는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창안한 개념이다. 제1의 장소가 집, 제2의 장소가 직장이나 학교라면 제3의 장소는 ‘비공식적 공공회합 공간’ 혹은 ‘관계없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 내 집처럼 편한 곳(home away from home)’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3의 장소가 미국에서 처음부터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교외화 및 자동차 문명의 확산에 따라 급속하게 사라졌다는 것이 올든버그의 진단이다. 제3의 장소는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시설이면서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적 기능도 수행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정자나 장터, 우물가, 그리고 서구의 문화적 유산인 광장이 제3의 장소로 분류되지 않는 것은 직장과 주거, 즉 직주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본래 용도가 상업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3의 장소는 유형이 매우 다양하여 카페, 찻집, 서점, 미용실, 동네 술집, 단골 가게 등을 포함한다. 그럼에도 제3의 장소 가운데 압권은 아무래도 카페다. 

올든버그에 의하면 제3의 장소는 ‘사회적 믹서(social mixer)’이자 ‘중립 지대(neutral ground)’, ‘상종(相從) 영역(sorting area)’이자 ‘무대 공간(staging area)’이다. 그곳은 ‘동네 마당발(public character)’에 의해 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느슨한 ‘회원 공동체(membership community)’다. 또한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출입이 가능할 뿐 아니라 나름의 암묵적 규칙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화려한 가구나 사치스러운 인테리어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분위기를 압도하지도 않는다. 제3의 장소를 대표하는 카페는 대화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특히 적격이다. 카페는 무엇보다 무언가를 ‘마시는 곳(watering hole)’으로, 함께 마신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이완하고 경계를 해제하는 일종의 윤활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피는 효능에 있어서 알코올과 다르다. 감정적 흥분은 약간 유발하지만 이성적 각성을 완전히 상실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카페 열풍

바로 이러한 카페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온통 뒤덮고 있다. 한국인의 커피 애호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한국인의 최애(最愛) 음료 역시 단연 커피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한국 사람들은 커피를 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마시는 것을 즐기고 있다. 물론 한때 ‘다방’이라는 게 있었지만 다분히 일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커피가 일반 대중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것은 ‘인스턴트’ 형태로서, 가족끼리 집 안에서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가 1999년 스타벅스의 국내 진출 이후 커피는 밖에서 마시는 음료로 급변했고 그 결과가 바로 현재와 같은 커피전문점의 급증이다. 한국인의 커피 소비 관련 및 한국 사회의 카페 증가 관련 통계는 하루하루 달라져 정확한 수치를 일일이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다.

혹자는 이러한 카페의 양적 증가가 제3의 장소라는 카페 본연의 역할과 무관한 한국형 과소비 향락 현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확실히 작금의 우리나라 카페 문화에는 소비주의나 상업주의의 측면이 없지 않다. 대화나 토론을 통한 교양계급의 형성, 사회적 공론의 활성화, 문화자본 및 사회자본의 축적 등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카페는 그것의 발원지인 유럽이나 미국과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카페의 사회적 활용법에 무슨 정답이나 원칙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다시 말해 한국의 카페가 구미 카페의 ‘표준형’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카페 열풍에는 우리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 카페를 선용하면 그뿐이 아닌가.

우리나라 카페는 1인 가구의 급증,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 인구 고령화, 취업난과 실업의 만연, 만성적 주거불안 등과 같은 총체적 사회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 변신·진화 중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오늘의 한국 카페를 만든 것이라 보아야 한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의 카페는 다목적·다기능 융복합 허브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단순히 누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적 장소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오아시스나 도시의 사랑방이라는 보다 공적인 차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카페는 지불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정 시간 동안 특정 공간을 사유화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존재 이유를 강력히 드러낸다. 세대나 성별, 계층, 직업 등에 상관없이 각자가 필요한 대로, 각자가 필요한 만큼 카페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도시를 작동시키고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카페에서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는 ‘라운드테이블’ 형식이야말로 ‘함께 그러나 따로’라고 하는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카공족’들에게 카페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코피스족’이란 카페를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지식노동 종사자를 일컫는다. 회의실을 별도로 설치한 카페도 많고, 카페가 전시장이나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광경도 낯설지 않다. 이어폰을 낀 채 카페에서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어떤 카페는 카메라 촬영이나 노트북 사용 자체를 금지하여 아예 정적(靜寂)을 상품화하고 있기도 하다. 성지순례하듯 유명 카페를 찾아다니며 인스타그램에 인증하는 모습은 디지털·모빌리티 시대의 신종 카페 문화일 것이고, 노숙자로 하여금 카페를 이용할 수 있게 하거나 한여름에 카페를 폭염 쉼터로 개방하는 경우는 카페가 공공복지의 현장이 될 수 있음을 실증한다. 시나브로 카페는 한국 사회에서 제3의 장소를 넘어 도시 인프라로서의 핵심적 지위를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 전상인 / 진행 방유경 기자)

 

월간 「SPACE(공간)」 666호(2023년 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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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전상인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 및 일본 히도츠바시 대학교 방문교수,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와 한국미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술로 『아파트에 미치다: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옥상의 공간사회학』, 『편의점 사회학』, 『공간으로 세상 읽기: 집·터·길의 인문사회학』, 『공간 디자이너 박정희』, 『헝그리사회가 앵그리사회로』, 『도시계획의 사회학』 등이 있으며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 『지배 그리고 저항의 예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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