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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찾아서: 『서울 어바니즘』

자료제공
공간서가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2022년 12월호 (통권 661호) 

 

‘길-필지-블록, 건물, 영역, 슈퍼블록, 조각보, 시설의 배치, 가로경관, 공공공간, 자연’. 지난 11월 출간된 이상헌(건국대학교 교수)의 『서울 어바니즘』은 아홉 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울 도시형태의 특성을 분석한다. 물리적 조건과 도시계획, 행정적, 법적 규제가 중첩되며 만들어진 서울의 도시구조와 생성 원리를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와 인터뷰를 통해 건축학자로서 도시 연구에 천착하게 된 계기와 집필 과정, 이 책이 우리 건축계에 던지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이상헌 건국대학교 교수 × 방유경 기자 

ⓒ최다미

방유경(방):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2013), 『한국 건축의 정체성』(2017)에 이어 우리 도시와 건축을 연구한 세 번째 책이 출간됐다.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상헌(이):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는 한국의 건축 교육과 실무 현장에서 스스로 부조리하다고 느낀 지점을 바탕으로, 우리 건축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려는 시도였다. 서양 이론에 경도되고 건설업에 매몰된 건축계 상황을 직시하며 한국 건축의 발전을 위한 두 가지 과제로 (제도적 개혁과는 별개로) ‘전통의 이론화’와 ‘도시형태에 관한 이론’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 둘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국 건축이 건강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한국 건축을 비판했지만,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이자 건축학자로서 역할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4년 뒤 출간한 『한국 건축의 정체성』이 앞의 과제에 대한 대답이라면, 『서울 어바니즘』은 그다음 과제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스스로에게 던진 숙제를 비로소 끝마친 기분이다.

 

방: 이 책에서 서울을 대상으로 도시형태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도시를 이해하는 다양한 학문적 틀과 비교할 때 이러한 접근은 어떤 차이가 있나? 

이: 서울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특히 서울의 도시형태가 형성되어온 과정에 관심이 많았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도시의 물리적인 환경과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성 원리가 궁금했던 것이다. 서울에 대한 기존 연구가 대부분 역사에 기반한 도시사나 도시계획사 혹은 도시지리학 분야에 속하다 보니 도시 담론 역시 과학적인 계획론이나 추상적인 이론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유럽의 도시형태학이 필지 내 건물과 공지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여 도시형태를 연구하듯, 우리에게도 도시의 형태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양의 도시형태학 개념을 가져와 서울을 해석하는 틀로 활용하게 됐다.  

 

방: 건축사와 건축 이론을 연구한 건축학자가 도시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도시 이론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이 차별성을 가진다고 느꼈다. 도시형태를 분석하는 개념으로 아홉 개 키워드를 제안했는데, 이 주제들은 어떻게 도출된 것인가?

이: 2017년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한 다음부터 꾸준히 준비를 했다. 건축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보니, 도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개인 연구와 함께 학교 수업을 통해 2~3년간 학생들과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집필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수집했다. 서양의 도시 분야, 특히 도시형태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자연스레 직관적으로 서울의 도시형태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를 도출하게 되었다. 책 1부에 등장하는 ‘길-필지- 블록, 건물, 영역’은 서양의 도시 구성단위로, 언어에 비유하면 영어의 알파벳과 같다. 이 기본 요소들이 서울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작동하며 나타난 특징적 현상을 2부에서 ‘슈퍼블록, 조각보, 시설의 배치’로 정리했다. 마지막 3부는 서양 도시형태에 중요한 요소인 외부 공간과 자연의 문제를 ‘가로경관, 공공공간, 자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폈다.

 

​방: 1부에서는 길과 필지가 만들어지는 방식 등을 서양 도시와 비교하며, 서울의 도시구조와 경관이 서양 도시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내력을 역사적으로 밝힌다. 서울만의 차별성을 개념적으로 체계화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서양 도시에는 길과 필지, 필지와 건물의 관계에 대한 오랜 전통이 축적되어 있다. 이들이 모여 블록을 형성하고, 도시블록이 도시 구성단위를 이루는 도시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을 서울에 대입했을 때 굉장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유럽 도시는 길을 따라 배열된 세장형 필지가 모여 블록을 형성하고, 건물은 가로에 면해 지어지며 일정한 도시 풍경을 형성한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도 유지된다. 반면 서울은 예로부터 길과 필지가 불규칙한 구조로 형성됐고, 필지가 모여 블록을 이루지도 않았다. 건물이 가로에 면하는 것보다 필지 안에 자리 잡는 배치(남향)가 중요했기 때문에 도시 풍경 또한 들쑥날쑥했다. 이런 필지조직의 특성은 현대에 이격거리, 사선제한과 같은 건축 규제로 이어져 서울의 도시경관에 영향을 미쳤다. 기본적인 개념의 차이를 정립하고 나니 도시형태의 특성과 차이를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잠실 저층주거지 모습 ⓒ이상헌 

 

방: 이 책은 봉건시대 한성에서 근대기 경성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근대 도시계획이 현대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서울의 도시 근대화는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조선시가지계획령(1934), 경성시가지계획(1936), 토지구획정리사업 등 일제가 도입했던 도시계획은 광복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강남개발도 강북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제의 도시계획이 한성의 도시구조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방사형 가로체계처럼 서울의 도시구조와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도시 근대화 과정은 서울(한성)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도시 질서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방: 서두에서 서울 강남의 청담동 일대를 둘러본 자크 헤르조그가 일관성이 없는 복잡한 풍경에 대해 “서울은 정체성이 없는 도시”라고 평한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슈퍼블록과 조각보에 대한 분석을 읽고 나니, 양극단이 공존하는 혼종성과 다양성이 서울 어바니즘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서양의 슈퍼블록은 여러 도시블록을 합쳐 만들어졌다. 차도로 둘러싸인 거대 블록 안에는 넓은 공지를 가진 고층 건축이나 보행자 중심의 공간이 들어선다. 반면, 강남의 슈퍼블록은 보행 중심의 좁은 길과 필지들이 펼쳐져 있던 유기적인 도시조직을 격자형 간선도로망이 자르고 지나가면서 만들어졌다.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차량이 빠르게 지나가는 넓은 외곽의 도로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내부의 좁은 도로. 양극단의 속도와 풍경이 공존하는 양상은 무질서하게 비칠 수도 있다. 슈퍼블록 내부의 대형 필지들이 조각보처럼 파편화되어 제각각 변화하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복잡성과 자율성이 만나 서울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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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대학에서 20년 넘게 건축사를 가르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이 책의 내용과 메시지가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그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 아쉽게도 이 내용만 묶어 따로 강의하지는 못했다. 다만 학교에서 건축사를 가르치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와 한국 근대건축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서양건축 중심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근대건축사 수업에서도 1900년대에서부터 현대까지 100여 년의 시간 동안 한국 건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강의한다. 수동적으로 이식된 서양 건축의 경향과 이론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하고 대응해왔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한국 건축의 정체성, 지역성과도 결부된다. 수업 후 제출하는 리포트를 보면 학생들 또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근대라는 시간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방: 한편으로 동아시아의 다른 도시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는가? 

이: 명확한 형태적 질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다른 대도시들도 우리와 비슷하다. 렘 콜하스는 이러한 (비서구적) 도시에 ‘제네릭 시티(Generic City)’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본은 도시형태, 특히 필지조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있고, 여기에 관심을 둔 서양 학자와 건축가도 많은 편이다. 이 책에 인용한 배리 셸턴도 그런 사례인데 일본 도시에서 미래 도시계획의 방향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와 비교해 우리는 학문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보인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 건축과 도시에 대해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서양 건축가나 학자들의 눈과 입을 빌려서 그들의 피상적 관찰과 인상 비평을 가지고 우리를 설명하고 이를 역으로 인용하려는 태도다. 책에 쓴 표현을 옮기면 ‘지적 사대주의’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방: 방대한 자료와 세밀한 분석을 보며 학자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총망라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스스로 남아 있던 숙제를 끝냈다고 소회를 밝혔는데, 그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이: 이 책을 내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서 당장은 쉬고 싶다. (웃음) 다음 책을 쓴다면 본연의 연구 분야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현재 대학에서 건축사 교재로 쓰고 있는 책이 전부 서양건축사다. 대학의 건축사 수업 역시 서양건축사, 한국건축사, 근대건축사로 나뉘어 있다. 3분할로 조각난 건축사를 배우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걸 대체할 만한 담론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시각과 관점에서 이해하는 세계 건축사를 써보고 싶다. 서양건축사도 누가 기술하느냐에 따라 무게중심이 다르지 않나. 우리가 주체가 되는 건축사 서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 내지 이미지 ⓒ공간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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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이상헌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건축역사 이론 비평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건, 정림건축, 인우건축 등에서 실무를 했으며 한국과 미국의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1998년부터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근현대 건축 및 도시의 역사와 이론을 공부하며 한국의 현실에 맞는 실천적 건축 및 도시 이론을 모색 중이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2013), 『한국 건축의 정체성』(2017) 등 한국 현대건축과 도시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저술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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