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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1987년 4월호, 건축가 윤승중의 의미

김현섭 (고려대학교 교수)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2022년 9월호 (통권 658호)​

 

「SPACE」 236호(1987년 4월호) ▶ e-매거진

 

「SPACE(공간)」는 창간 이래 여러 방식으로 한국의 주도적 건축가들을 조명해왔다. 지난 ‘리-비지트 「SPACE」 18’(2022년 6월호)이 살펴본 1967년 4월호의 박길룡 특집이 그렇고, 1980년대까지 김중업과 김수근을 여러 차례 특집으로 다룬 것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1970년대에는 ‘현대건축가상(像)’이라는 꼭지로 김희춘, 이희태, 나상진을, ‘재외 한국건축가’라는 꼭지로 김병현, 양덕규, 강석원 등 여섯 건축가를 차례로 다룬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이 되면 ‘한국의 현대건축가론’이라는 주제를 설정하는데, 1985년 3월 엄덕문을 시작으로 박춘명, 김종성, 김정철·김정식 형제 등 열 명(팀)의 건축가가 시리즈로 논의됐다. 그 가운데 여섯 번째인 윤승중 편(1987년 4월호)은 ‘리-비지트 「SPACE」’의 관점에서 무척 유의미하다고 판단된다. 윤승중(1937~)이야말로 초기 한국 현대건축의 현장을 증언하고 담론을 구축하는 데에 중추적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김수근의 휘하에서 ‘치프’로 일하며 김수근의 ‘형태’에 ‘논리’와 ‘질서’를 부여했던 그는, ‘김수근 팀’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끌어내곤 했다. 그러한 내적 논의는 1966년 11월 「SPACE」 창간과 함께 외적으로 공유되며 한국 건축계에 영향력을 미친다. 윤승중 자신 및 김원과 같은 팀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발언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표출되면서였다. 그가 사회를 본 국립종합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의 전통논쟁 좌담회가 「SPACE」 3호(1967년 1월호)에 출판된 것이 시작이라 하겠다. 그리고 1969년 독립하고 원도시건축(原都市建築)을 설립하면서는 그간 보편성의 견지에서 발전시키던 규범적 건축의 아이디어를 자기(팀)의 작품으로 구현해나간다. 파트너들과의 팀워크가 바탕이었으니, 그만큼 그의 지적 논의는 원도시건축 및 한국 건축계 일반에 점차 내재화돼 갔다고 볼 수 있으리라. 사무소 이름에 천명한 “도시와 건축의 본래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건축을 도시처럼 생각하겠다”는 입장도▼1 그가 한국 건축계에 던진 화두다. 

 

「SPACE」 236호 85쪽. 

 

그렇다고 우리가 현재적 관점에서 평할 수 있는 원로 건축가 윤승중의 의미가 35년 전 「SPACE」의 지면에 그대로 표출된 것은 아니다. 이 지면은 당시 만 50세를 바라보던 이 중견 건축가의 이력을 돌아보는 한편으로, 그로부터의 ‘새로운 시작’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섹션 전체의 무게중심을 이루고 있는 김석철과의 대담,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여진 민현식의 평론 모두에서 그렇다. ‘한국의 현대건축가론’ 시리즈를 개괄컨대, 처음부터 그 구성은 해당 건축가와의 대담을 주축으로 했다. ‘대담’이라는 게 뭐 그리 대수로울까마는, 첫 회의 엄덕문 편에 밝혔듯 건축가의 프로필과 화보 중심이던 이전의 시리즈와 달리(‘현대건축가상’ 및 ‘재외 한국건축가’ 시리즈와 비교하라) 건축가의 ‘내면세계의 관찰’을 주요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건축가 프로필과 대표작이 간략히 소개되고, 건축가의 지근거리 인물이 쓴 글이 뒤따르는 구도다. 후자가 ‘경험담’을 넘어 ‘평론’이 되기 위해서는 ‘비판적 거리’의 확보가 관건인데, 윤승중을 ‘스승’으로 여기는 ‘원도시건축 파트너’ 민현식도 이를 민감하게 의식했던 것 같다. 그 글 ‘삶의 보편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건축가’에서 보편적 규범과 질서체계 등 윤승중 건축의 미덕을 전반적으로 존중하는 가운데서도, 그만의 ‘독특한 시각어휘’가 부재하다거나 엄격한 규범에 대한 집착이 해당 프로젝트의 ‘개념’을 흐리게 한다는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조심스레 엿보였기 때문이다. 윤승중에게 기대되는 ‘새로운 시작’이 언급된 맥락인데, 대담에서도 그런 맥락은 뚜렷했다.​

 


「SPACE」 236호 86~89쪽.

 

‘윤승중과 원도시건축연구소’라는 제목으로 정리된 이 대담을 보자. 근래 출판된 묵직한 윤승중 구술집을 접한 독자에게는 그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새롭지 않을지도 모른다.▼2 하지만 오히려 이 대담은 당시 진행 중이던 그의 이력과 인식을 훨씬 압축적이면서도 생생하게 나타낸다는 점에서 뜻깊다. 게다가 이미 스스로도 연구 대상이 된 김석철(1943~2016)의 입장에서 대화가 주도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늘 그렇듯 이야기는 대체로 시간을 따랐다. 윤승중의 대학시절(1956~1960) 건축 수업기, 1961년부터 여덟 해 반 김수근 밑에서 일했던 경험, 그리고 원도시건축에서의 경력 등의 순이다. 그 줄거리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 중에는, 윤승중이 김수근의 형태를 실현하기 위해 찾았던 논리와 질서, 즉 그가 추구한 ‘건축의 일반해’가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과의 영향 관계 속에서 표현됐다는 사실도 있다. 윤승중은 미스의 레이크쇼어 아파트를 (그리고 시그램 빌딩도) 판스워스 저택의 집적으로 이해하는데, 이를 ‘인간화된 단위 공간’과 ‘무한한 우주 공간’ 사이의 관계로까지 확장해 본다. 이것이 그에게는 건축에 내재한 ‘전체를 지배하는 원리’였다. (여기에는 우주론이나 일본 메타볼리즘에 대한 관심 또한 녹아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는 이런 생각의 출발점을, 대학 2학년 때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지그프리트 기디온의 『공간 시간 건축』을 공부하며 미스를 발제했던 데서 찾는다. 미스의 건축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으나 학창 시절부터 누구보다 진지하게 건축을 학습했던 그였기에, 실무에 나와서도 대내외적 건축 논의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초기 한국 현대건축의 증언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SPACE」 200호 기념호(1984년 2월호)에 출판한 ‘근대건축과 한국의 현대건축’이라는 글이 단적인 예다. 한국이 1950년대 이래 서구 근대건축을 어떻게 수용하고 변용했는지 현장을 겪어온 건축가의 시각에서 육성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상당히 거칠고 몇 겹의 변증이 필요해 보이나 한국 현대건축사 서술의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고 하겠다. 

 


「SPACE」 236호 92~95쪽.

 

다시 대담으로 돌아온다면, 여기서 더욱 도드라진 사안은 김수근과 함께하던 때부터 윤승중의 건축에 ‘당(堂)’과 ‘도시 언어의 건축개입’이라는 개념이 결부됐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개념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이끈 것은 김석철이었다. 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뒤늦게 김수근 팀에 합류한 김석철에게 이 같은 아이디어가 더 확연히 부각됐을 수도 있겠다. 그는 각각의 개념에 부합하는 건축물을 열거하는 가운데 ‘Expo 70 오사카 한국관’을 두 가지가 적절히 나타난 예로 여긴다. 그리고는 ‘당’ 개념의 ‘언어화’에 다소 모호했던 윤승중보다 훨씬 명료하게, “도시적 흐름이 건축으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공간적인 질서체계가 어딘가에 정점을 형성하는데 그것을 하나의 ‘당’이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김석철이 윤승중의 ‘당’에 보인 관심은 한국증권거래소 계획안(1975) 및 국제방송센터 계획안(1985) 등의 원도시건축 사례에서 이 개념을 읽어내는 것으로 나아갔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윤승중의 ‘당’이 「SPACE」 창간호가 조명한 ‘메이저 스페이스(Major Space)’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 자신이 그 유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필자가 ‘리-비지트 「SPACE」 13’(2022년 1월호)에서 상술했듯 미국의 잡지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Progressive Architecture)」에서 가져온 ‘메이저 스페이스’ 아이디어는 한국적 콘텍스트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역시 김수근 팀에서, 결국은 디자인 치프였던 윤승중에게서 ‘당’이라는 이름 아래 탐구됐던 것이다. 윤승중이 그 대담에서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 개념을 설명했던 「꾸밈」(1981년 2월호) 및 「프로 아키텍트(Pro Architect)」(1997년 7월호)에서의 대담을 참조해보자. 그가 집착했던 이 ‘당’이라는 어휘는 ‘주공간’ 즉 ‘메이저 스페이스’를 직접 지시하며, ‘메이저’가 의미하듯 크고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풀이된다. 그 안에서 영역을 구성할 때 질서나 위계가 생기고, “건축 내부로 도시적 스케일의 공공장소를 연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건축 자체가 도시적인 조직을 내포”하게 되며, 그 결과로 “도시가 건축이 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김수근 팀이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로 흡수됐던 시절의 (김수근의 영향이 가장 적었던) 정부종합청사 계획안(1967)과 부산시청사 계획안(1969)에 이 개념이 적극 개진되어 이후의 원도시건축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메이저 스페이스’든 ‘당’이든, 어찌 보면 너무나 보편적인 개념이어서 실제 건축물에 적용됐을 때 그것만의 독특한 건축 어휘로 강렬히 각인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원도시건축이 수행한 프로젝트가 주로 대규모였던 까닭에 ‘당’ 개념을 포함한 많은 논리들이 인간적 감수성에 쉬이 소원해지거나, 장점이었던 팀워크 이면에서 한 건축가의 개성이 제한될 여지도 크다. 원도시건축이 성취한 반듯한 건축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윤승중 스스로 원도시건축만의 정체성과 매너리즘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을 언급한 이유일 텐데, 그는 앞으로 ‘좋은 건축’을 넘어 ‘위대한 건축’도 만들겠다는 포부로 대담을 맺는다.

「SPACE」 236호 96~98, 103쪽.

 

결국 우리는 여기서 건축에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것만으로, 김수근 말을 빌리면 ‘래쇼널’한▼3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김석철이 강조하고 민현식도 언급했던 ‘시각어휘’도 그중 하나일 텐데, ‘형태’보다 ‘논리’를 우선시했던 윤승중에게 이것은 그간 부차적인 사안이었다. 그나마 한일은행 본점(1981)에서 인상적으로 구현됐고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 도서관(1983) 등의 건물에서 변주된 ‘톱날 모양 모티브’가 가장 뚜렷한 시각적 어휘였다고 하겠다. 사실 윤승중이 김수근의 ‘나누기’(형태를 정해두고 내부 공간을 나누어가는 것)에 대응해 제안했던 ‘더하기’(기능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덧붙여가는 것)의 입장은 근대 유럽의 유기적 전통에 비추어 본다면, 새로운 형태 창작의 가능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형태적 가능성을 더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었던 한국적 콘텍스트의 시대적 한계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아쉬움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가 윤승중의 의미는 작지 않다. 그는 김중업과 김수근 같은 걸출했던 선배들이 뿌려놓은 초기 한국 현대건축의 특수해들 사이의 넓은 간극을 일반해적 관점에서 메워나가며 앞으로 후배들이 개척할 건축의 지적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탕에는, 이 글이 처음부터 제시했듯, 그가 초기 한국 현대건축의 담론 구축에 지대하게 공헌한 사실이 깔려 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윤승중 전시회 제목을 일부 빗대자면, 그의 역할은 건물을 그리는 것 이상으로 ‘문장을 그리는’ 데에 혁혁했다고 할까.▼4 이것이 대담을 주축으로 한 이번 「SPACE」 지면의 문장과 행간을 궁리해볼 이유다. (글 김현섭 / 진행 김정은 편집장)

 

다음 호에는 박정현이 「SPACE」 53호(1971년 4월호)에 게재된 특집 ‘전환기건축의 사상’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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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중·변용×이상해, ‘건축가 윤승중·변용 대담’, 「프로 아키텍트(Pro Architect)」 4호 (1997. 7), 24~40쪽.

​목천건축아카이브의 『윤승중 구술집』(마티, 2014) 참조. 사실 훨씬 이전에 출판된 윤승중의 에세이 모음집 『건축되는 도시, 도시 같은 건축』 (간향, 1997)이 그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이미 주고 있는데, 이 「SPACE」 대담을 비롯한 당시까지의 몇몇 대담이 이 책에 포함됐다.

​“자네 아직도 래쇼널(rational)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만.” 1970년대 초반 윤승중에 대한 김수근의 평이다. 『윤승중 구술집』, 534쪽.

​<윤승중: 건축, 문장을 그리다>,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7. 4. 14.~8. 6. 전시회와 같은 제목의 도록이 출판돼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김현섭
김현섭은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박사 및 박사후과정으로 유럽 근대건축을 연구했고, 2008년부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건축 역사가이자 비평가로서 한국 현대건축에 관한 비판적 역사 서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2016), 『건축을 사유하다: 건축이론 입문』(역서, 2017), ‘DDP Controversy and the Dilemma of H-Sang Seung’s ‘Landscript’’(2018), ‘The Hanok Paradox: Modernity and Myth in the Revival of the Traditional Korean House’(2019) 등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을 국내외에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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