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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 이지영

사진
고인수(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건축사사무소 도리건축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2022년 9월호 (통권 658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이지영 건축사사무소 도리건축 대표 × 박지윤 기자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박지윤(박): 광화문의 오양수산빌딩에 사무소가 입주해 있네요. 꽤 연식이 있어 보이는 건물이에요. 

이지영(이): 제대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건축가 송민구의 1962년 작품이라 알고 있어요. 

 

박: 어떻게 이 건물에 들어오게 되셨나요? 

이: 사실 위아래 층에 설계사무소가 많아요. 바로 위층에는 착착건축사무소가 있고, 그 옆에는 상하건축사사무소, 터미널7 아키텍츠가 있어요. 바로 아래층에는 한은지 건축사사무소가 있고요. 근래에는 최근 개소한 도요건축사사무소도 들어왔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정말 많네요. 대부분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선배들이에요. 사무소를 구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선배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기웃거리다 오양수산빌딩까지 오게 됐어요. 위치에 비해 가격이 나쁘지 않았고, 마침 이 공간이 비어 있어 합류하게 됐죠. 

 

박: 학교 설계실에 있는 느낌이겠어요. 

이: 처음에는 농담으로 A4 용지 다 쓰면 빌리러 가면 되겠다고 말하곤 했어요. 실제로 이사 왔을 초반에는 열선 커터기 같이 우리 사무소에 없는 장비를 선배들 사무소에서 빌려 썼어요. 지금은 저도 구매했고요. 실무적인 부분이 해결이 안 날 때도 여러 가지 물어보러 갔었는데, 매번 저만 여쭈는 것 같아서 자중하려고 노력해요. (웃음) 요즘은 처음보다 교류가 많지는 않은데요. 우리가 있는 5층에 남자 화장실이 있고 6층에 여자 화장실이 있어서, 오며 가며 인사하는 정도예요. 그래도 저는 사무실에 혼자 있다 보니, 오르락내리락하며 인사할 사람이 있어 좋죠. 

 

박: 지금은 혼자 일하시지만, 예전에는 소장님 한 분이 더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이: 김도희 소장님께서 일 년가량 함께해주셨어요. 숨비건축사사무소(이하 숨비)에 다닐 때 인연을 맺게 되었고, 처음에는 팀장님으로 모셔왔는데요. 일을 잘하시기도 했고, 오히려 제가 배우는 점이 더 많아서 소장님으로 직함을 바꾸었어요. 제가 소장으로서 부족한 면이 많았는데, 제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해주신 감사한 분이세요. 이후로는 임신으로 인해 그만두셨어요. 김도희 소장님이 우리 사무소의 소장으로 일했다는 것을 어디에서든 공표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거든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낼 수도 없고. 홈페이지에 기재만 해두었는데 이런 자리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어 기뻐요. 지금은 본인의 사무소를 여셨어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박: 숨비의 김수영 소장님도 한예종에서 수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때 알게 되신 건가요? 

이: 김수영 소장님과는 건축사사무소 엠에이알유를 다닐 때 알게 됐어요. 그때 저는 신입이었고 김수영 소장님은 실장님이었거든요. 그때 처음 뵀었죠. 그 후에는 제가 영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건축사 시험을 치려고 학원만 등록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김수영 소장님의 강연을 보러 갔어요. 말도 안 하고 짠, 하고 인사드릴 겸 갔는데 소장님이 영주실내수영장 공모전에 어제 딱, 당선됐다고 하시는 거예요. 덕분에 1년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한국에서의 실무를 다시 복기했죠. 이후 건축사사무소 도리건축을 개소했고요. 처음에는 숨비에서 책상 하나 빌려 시작했었어요. 

 

박: 이전 사무소에서 책상 하나를 빌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되었네요. 

이: 제가 아에아건축사사무소 소장님들에게 다음 인터뷰이로 지목된 것도 비슷한 기분을 들게 했어요. 소장님들이 일면식도 없는 나를 어떻게 알고 계실까 했는데 남해 화전도서관 공모전 때 작품을 보고 기억해둔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토닥토닥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때 제가 2등을 했거든요. 나 혼자 헛발질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정말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를 일 같아요.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지 

 

박: 이후로도 꾸준히 설계공모에 도전하고 계시잖아요. 

이: 몇 주 전에 제가 참여한 공모전 개수를 세본 적이 있어요. 지금까지 열 네 번을 했더라고요. 근데 다 떨어졌어요. 일곱 번 쭉 떨어지고, 여덟 번째 처음으로 5등이 됐어요.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아무 응답을 받지 못하다가 심사평으로라도 누군가가 말해주는 걸 들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죠. ‘정진하세요’ 같은 응원의 메시지도 있었거든요. 저는 이런 작은 것들에서 힘을 얻고는 해요.

 

박: 심사자도 이 사실을 알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공공 프로젝트와 개인 프로젝트를 다룰 때는 마음가짐의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이: 공공건물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돼요. 보다 많은 사람이 좋은 공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헌을 한다는 보람도 있고요. 몇 년 전, 영주에 공공건축물을 보러 답사를 간 적이 있어요. 영주는 공공건축가 제도가 잘 작동하는 지역 중 하나고, 당시에도 이미 좋은 공공건축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주가 굉장히 큰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정말 작은 도시인 거예요. 건축가들이 모여 건물을 둘러보고 있으니, 동네 청소년들이 “누구세요? 이거 사진 왜 찍어요?” 하며 말을 걸더라고요. 대도시의 아이들은 보통 모르는 사람에게 살갑게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그때 ‘이런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생각이 ‘이런 공공건축물이 있는 도시에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저는 좋은 건축물, 좋은 공간을 너무나 당연하게 보고 경험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만들어낼 세상이 궁금해요. 그건 정말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일 거예요. 저는 건축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박: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니, 참여하고 계신 꿈담프로젝트(이하 꿈담)에 관해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주관한 학교 공간 디자인 혁신 사업이죠. 초등학교 1, 2학년이 대상이더라고요. 초등학생 전체가 아닌,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목표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학교에 오는 1학년 학생들이 학교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박: 학생들의 요구 사항도 직접 들으셨다고요? 

이: 서울흥인초등학교 꿈을 담은 교실(2019)을 담당했어요. 아이들에게서 미끄럼틀, 동물방, 침대, 비밀장소, 터널, 푹신푹신 같은 이야기가 나왔어요. 아이들은 숨어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원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지는 못했어요. 대신 복도에 움푹 파인 공간을 만들었는데요. 계획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그곳에 모인다며 다른 곳에 더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들어 뿌듯했어요. 일정이 맞지 않아 실제로 더 작업하지는 못했지만요. 

 

박: 학교를 사용하는 어른들의 요구 사항도 있었나요? 

이: 어른들을 위한 요구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요청은 있었어요. 처음에는 복도를 흰색 벽으로 계획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너무 심심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도면에 석고보드 위 백색 페인트 도장밖에 그려본 적이 없던 사람이라 당황스러웠고, 솔직히 하기 싫었어요. (웃음) 울며 겨자 먹기로 고민하다 칠교를 떠올렸어요. 두 마리의 동물을 칠교 형태로 디자인했죠. MDF 한 장으로요. 쓰레기도 나오지 않고, 돈도 많이 안 들어서, 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완성을 하고 보니,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는 놀이를 유도하는 장치가 적합할 수 있겠다고 수긍했고요. 깨달음을 주었죠. 

 

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다른 프로젝트들의 평면에서도 앞서 말씀하신 움푹 파인 공간을 발견했어요. 

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저는 일자로 쭉 떨어지는 깔끔한 평면이 아니라 올통볼통한 평면이 좋아요. 서원 청소년 문화의 집 공모전 참가작(2021)에서도 보면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한번 모이거든요. 또 다르게 쓰일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공간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보고 접하면서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박: 유독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 참여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이: 꿈담의 영향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시설,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사실 꿈담은 이미 있는 건물의 내부를 고치는 일이라 한계가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꿈담 때 시작한 아이디어나 고민을 가지고서 새로운 공간을 제안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돌아보니, 꿈담을 시작한 이후로 했던 공모전들은 유치원, 어린이도서관, 청소년 문화의 집 등 대부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더라고요. 언젠가 한 번은 꼭 실제로 구현해보고 싶어요. 꿈담 이후 교육부 주관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그린스마트스쿨이에요. 노후한 학교시설을 개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사업인데요. 꿈담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학교를 제안해볼 좋은 기회라 생각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사실 한번 프로젝트 공모에 참가했는데 떨어졌답니다. 제가 생각해도 조금 부족한 제안이었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준비해 다시 도전해보려고요.

 

서울흥인초등학교 꿈을 담은 교실 전경​ ©Kim Dohee

 

연천군 국공립어린이집 공모전 참가작(2017)
 

새로운 망원경으로 봤으면 

 

박: 한예종 겸임교수로 계시잖아요. 소장님이 담당하는 설계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작업이 주로 이루어지나요? 

이: 올해부터는 설계 스튜디오를 하지는 않는데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설계 스튜디오를 진행했어요. 처음에 설계 스튜디오를 맡게 되었을 때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은 지점이 있었어요. 이 시대에 적합한 프로그램의 성격을 재정의하고, 그에 따른 프로젝트 제안을 하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면, 서울 사대문 안의 주택, 서울 강남 안의 학교, 서울 용산 안의 정원과 같은 것이었어요. 첫해에는 서울 사대문 안을 대지로, 청년임대주택을 프로그램으로 주었죠. 

 

박: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스튜디오마다 학생들의 결이 비슷하거나 혹은 결과물의 결이 비슷해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소장님의 스튜디오는 어땠나요? 

이: 학생들에게 참고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기는 하지만, 결국 개인의 프로젝트는 각자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니 각자의 성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학생들의 결과물에 딱히 저희 스튜디오만의 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크리틱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럴 일이 아닌데 저 자신이 크리틱을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박: 어떤 지점을 짚어야만 하는, 때때로는 지적도 필요한 크리틱의 특성 때문일까요? 

이: 맞아요. 누가 어떤 작업물을 가지고 와도 그 안에서 좋은 걸 보고 끌고 가고 싶어요. 제가 어떤 방향을 주입하는 성격은 못되거든요. 크리틱을 할 때, 아닌 것 같으면 아니라고 말도 해야 하는데,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저의 성향과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박: 지금은 크리틱의 고통에서 벗어나셨다니 다행이에요. (웃음) 

이: 지금은 건축 법규 수업을 맡고 있어요. 그 강의 계획서에 제가 이어령 선생님의 명문을 적어 놨어요. “이 세상은 자연계, 기호계, 법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네. 이 세 가지는 전혀 다른 세계야. (…) 철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아까 말한 자연계, 법계, 기호계처럼 범주를 구분해서 사고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건축설계도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용했죠. 

 

박: 법규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유혹하셨군요. 

이: 맞아요. 허블 망원경이랑 제임스 웹 망원경을 비교하면서도 유혹했어요. 2021년 12월 24일에 수명을 다한 허블 망원경을 대체할 제임스 웹 망원경을 발사했거든요. 과학 기술이 발전했으니 두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에 엄청난 차이가 생긴 거예요. 보이지 않던 행성까지 관측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를 예시로 들어 하나의 프로젝트를 디자인 함에 있어 그 뒤에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수천, 수만 개가 있고, 그걸 알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요. (웃음) 

 

박: 무언가를 확신하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이지영은 2022년 10월호에서 나종원(오브,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이지영
이지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김종규의 건축사사무소 엠에이알유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후,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학사과정과 AA 스쿨 디플로마 과정을 마치고 코트럴앤버뮤렌 건축사무소와 김수영의 숨비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후 건축사사무소 도리건축을 개소했다. 꿈담프로젝트로 사무실을 꾸려나가면서, 하고 싶은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꾸준히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다. 아마도 건축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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