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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예견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승호

사진
고인수(별도표기 외)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2년 5월호 (통권 654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

 

'02-04, 더스프링 사옥', 스튜디오 승호 + 백종웅 ⓒLee Seungho
 

 

인터뷰 이승호 스튜디오 승호 대표 × 박지윤 기자 

 

 

독립 다듬기 


박지윤(박): 인터뷰 전에 소장님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건축 노트에 관해 여쭈었는데 챙겨와 주셨네요. 직접 제작한 노트처럼 보여요. 

이승호(이): 학생 때 강의 들은 내용과 읽은 책, 설계 아이디어를 기록한 노트예요. 학기별로 한 권씩이고, 중간에 보면 특강 온 국내외 건축가 사인도 있어요. (웃음) 저렴한 종이를 구매해서 스프링 제본을 했어요. 처음에는 A4 사이즈였는데 나중에는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재단도 하고, 여러 재질의 종이를 함께 제본했고요. 기록하거나 스케치할 때 재질이 다른 종이가 필요할 때가 있더라고요. 처음 건축사무소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봤을 때 이 노트들을 가지고 갔었어요. 저의 학생 시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죠. (웃음) 


박: 건축에 진심이라는 인상은 확실히 새겼을 것 같아요. 「SPACE(공간)」도 중학교 때부터 구독하셨다면서요? 

이: 공부를 잘하셨던 아버지는 학창시절 경쟁률이 가장 높은 전공을 택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아들인 저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를 바랐고요. 제 인생에 가장 감사한 일이죠. 아버지가 보시기에 저를 가만히 두면 그림을 그릴 것 같았나 봐요. 예술가의 길이 배고프고 힘든 걸 아시니 중간 지점이 뭐가 있을지 함께 고민하다 중학교 때부터 「SPACE」 정기구독을 하게 됐어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지방 곳곳의 유적, 고건축도 많이 보러 다녔고요. 그게 축적이 됐어요. 건축과를 들어갔는데 선배들이 “얘는 뭔데 건축가 이름이랑 뭐 물어보면 다 알아?” 그랬어요. (웃음) 군대에 있을 때도 부대장님한테 요청해 잡지를 구독해 봤고요. 그런 「SPACE」와 지금 인터뷰를 한다니 기분이 이상해요. 

 

박: 지금의 인터뷰가 예견된 것처럼 느껴지네요. 독립한 지는 1년 남짓 되셨어요. 

이: 저는 뚜렷한 장기 계획을 세워두고 조금씩 해나가거든요. 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10년 내 독립이 목표였는데 9년 만에 하게 된 거죠. 요즘 독립하는 시점이 빨라졌잖아요. 그렇다고 조급한 건 아니었어요. 이제는 내 작업을 하고 싶다 생각하던 차에 화가인 막내 외삼촌이 작업실 겸 주택을 짓겠다고 해서 때가 왔다고 생각했죠. 

 

박: 직원도 벌써 세 명이나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여섯 건 정도 되잖아요. 설계공모도 없이요. 

이: 독립을 한 이유가 내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인데, 현장부터 시작해 모든 실무를 다 하고 있으니 디자인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무리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호흡을 생각해 직원을 채용했어요. 설계공모는 아직은 온전히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어요. 제 프로젝트 대부분은 지인 소개로 진행됐어요. 영업은 안 하는데 저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해요. (웃음) 요즘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바쁘다고 이야기하는데 지금 시기가 건축 호황기인 것 같기도 해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묶여 있었던 시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고, 타이밍이 잘 맞은 거죠. 


박: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이후로 특히 카페나 펜션 용도의 신축이 늘어난 것 같은 체감이 들어요. 

이: 저도 공공건축보다 더 공적인 카페를 설계하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카페 설계가 정형화되어 있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경제적 논리가 우선으로 작동하는 아파트 설계와 뭐가 다른지 의문이 들었어요. 다른 유형의 카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할 것 같아요. 기존에 없는 것을 만들려면 연구도 하고 내공도 쌓여 저의 생각과 말에 힘이 있을 때 가능하겠죠. 건축주를 차근히 설득해나가야 하니까요. 

 

박: 건축가와 건축주 간의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 않죠? 

이: 독립한 요즘에는 특히, 건축은 서비스업이라 생각해요. 결국 의뢰받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나의 건축관을 뚜렷이 담은 건축을 하고 싶다는 갈망은 있죠. 건축주가 나를 믿고 온전히 맡겨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그렇지만 건축주의 실생활과 실용성에서 멀어질 수 있는 지나친 작가주의적 태도는 지양하려 해요. 저 스스로를 자영업자라고 칭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려고 하죠. 

 

박: 인스타그램으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계신데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의뢰도 받으시나요? 

이: 건축일기처럼 목적 없이 틈틈이 그날그날을 기록했는데, 쌓이다 보니 저의 성장 과정이 보이는 것 같아요. DM으로 의뢰받는 일은 없는데 최근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건축주가 첫 미팅 전 저의 피드를 확인하더라고요. (웃음)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는 거죠.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길게는 2년까지 함께 호흡해야 하는 건축주와 성향이 안 맞으면 힘든데 그럴 확률이 적어진 거죠. 제가 살아가는 방향, 방식, 태도, 취향 같은 부분을 공감해주는 건축주를 만나게 되어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02-04, 더스프링 사옥', 스튜디오 승호 + 백종웅​ ⓒLee Seungho

 

 

언어 쌓기

 

박: ‘02-04, 더스프링 사옥’의 사진을 보고, 행잉 테이블이 어떻게 작동할까 궁금했는데 오늘 여기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네요. 

이: 행잉 테이블을 올리면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고, 내리고 의자를 두면 회의실과 다목적실로 사용할 수 있어요. 

 

박: 인터뷰를 진행하던 와중에 지나가는 지인분과 인사를 나누었잖아요. 길과 연결되어 있고, 어느 정도 오픈된 공간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네요. 

이: 이 건물은 사유물이라 불특정 다수가 사용할 수는 없지만, 지나가면서라도 예상하지 않은 해프닝이 생기기를 바랐어요. 저층부의 가로 공간은 저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02- 02, 파라디소’에도 적용했고요. 건축물이 공공재로 작용해 동네 사람과 잘 반응하기를 원했고, 그 부분에 레이어를 주어 풍부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죠. 학생 때 배우는 퍼블릭, 세미 퍼블릭, 세미 프라이빗, 프라이빗과 같은 개념이라 보시면 돼요. 지금 회의실은 최대한 퍼블릭한 곳에 배치해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한 거죠. 옆 라운지 공간은 조금 더 조용하고 사적인 공간으로 계획한 거고요. 

 

박: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건물에 자주 멈춰 서기도 하고, 이런 공간이 있으면 회의할 맛 나겠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의도는 성공한 셈이네요. (웃음) 오감 건축이라는 용어도 연결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도 수 박물관에 여름날 해가 질 때쯤 갔었어요. 해가 지기 전에는 공간 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굉장히 따뜻하고 생기발랄한 것이 있었는데 점점 어두워지니 그 안에 담긴 것이 나가고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오는 거예요. 머리가 쭈뼛할 정도로요. 이때,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낸 건축을 온몸으로 느낀 거죠. ‘어떻게? 왜 좋은 걸까?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다 오감과 공감각을 생각했어요. 오감 중 두 개만 작동하게 하면 일반적일 수 있는데, 세 개가 작동하면 감동이 생기고 네 개가 작동하면 그 공간에서의 경험이 너무 좋아지는 거죠. 모든 공간에 적용하는 건 적합하지 않겠지만요. 저는 실사용자인 건축주와 대화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하는 편이에요. 공간에 살고, 공간을 쓰면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박: 오감 건축과 함께 고전 건축을 지향한다고 언급하셨더라고요. 

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연구하는 단계라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고전 건축은 영원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파르테논 신전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은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감흥을 주잖아요. 현대건축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고전 건축은 보다 깊은 보편적 감동을 전달하는 것 같아요. 내가 설계한 건축이 영원히 사랑을 받고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흥을 일으키면 좋겠어요. 

 

박: 고전 건축을 실험해본 요소를 더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지금 앉아 있는 회의실 벽은 문과 붙박이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기능을 담은 선을 마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듯한 프레임으로 드러냈어요. 바깥에서 보이는 격자창, 기하학적인 우수통 같은 부분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건축주가 자유롭게 하게 해주어서 제가 추구하는 미학을 조금씩 시도해볼 수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독립하고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걸 시도해본 작품이라 너무 많이 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02-04, 더스프링 사옥', 스튜디오 승호 + 백종웅 ⓒKim Yongkwan

'02-02, 파라디소' ⓒKim Bubin

 


 

현장 응하기 

 

박: 소장님의 피드에는 현장 사진이 유독 많은 것 같아요. 미드데이(「SPACE」 653호 참고) 소장님들도 현장에서 제일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요. 

이: 저 말고도 모든 건축가가 현장에서 다 치열해요. 제가 미디어에 조금 더 드러났을 뿐이죠. 전에 일했던 사무소의 소장님들이 모두 현장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상주 감리를 하지 않아도 현장에 자주 가도록 교육받았고요. 실력이 좋거나 경험이 많으면 설계 단계에서 완벽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설계 단계에서 놓치고 미처 생각 못한 부분을 현장에서 발견하고 수정할 때가 많아서 꼭 확인을 하며 만들어가요. 그래야 직성이 풀리기도 하고, 현장에서 이야기하며 조율하는 부분도 재미있고요. 

 

박: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는 기술이 필요할 것 같아요. 도면과 비교하며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수정 요청을 해야 하니까요. 

이: 지금은 나아진 편이긴 한데, 예전에는 현장과 커뮤니케이션을 원만히 못했어요. 현장 소장님이 망치 들고 쫓아오고, 저는 이거 뜯으라고 소리지르고 부수고 막 싸워서 경찰도 오고요. (웃음)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이거를 왜 마음대로 처리한 건지 이해가 안 가고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저는 밤새워 고민하고, 도면에 하나하나 선을 그린 건데 그 부분들이 구현이 잘 안 되면 자제가 안될 정도로 화가 났어요. 지금은 슬기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어요. 예전에는 “왜 안되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지금은 “아이고 사장님 힘드시죠?” 같은 너스레로 시작하죠. (웃음) 현장에서 실수가 자주 일어나는 부분은 미리 말해놓고요. 그럼 저희 삼청동 현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박: ‘02-06, 스튜디오 디바인’ 현장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막 바닥의 콘크리트가 마른 상황인데, 지금이 몇 퍼센트 정도 완성된 거라고 보면 되나요? 

이: 바닥 방통 작업을 하루만 더 늦게 했어도 답사를 못할 뻔했어요. 지금 상태는 한 50% 정도의 과정에 와 있다고 보시면 돼요. 건축의 기본 기능을 되살리는 공사는 끝났고, 이제는 마감 및 디자인을 좀 더 구체화하면서 조정하고 있어요. 곧 단열 뿜칠 공정이 시작되고요. 

 

박: 리모델링은 변수가 많다고 들었어요. 막상 철거하면 예상과 다른 경우가 많다면서요? 

이: 리모델링은 처음부터 정교하게 모든 걸 설계하기가 어려워요. 구현하고자 하는 디자인이 있었는데 막상 철거해보면 기존 건물 상황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디테일과 치수를 어떻게 바꾸자 하면서 조정을 해야 하죠. 이 기존 벽도 철거 후 확인해 보니 수평이 안 맞아서 세탁기 놓일 폭이 안 나왔어요. 창도 작아져야 해서 이 구간의 배치를 다시 한참 조정했어요.

 

박: 돌아다니다 보니, 콘크리트 벽에 그린 스케치들이 보이더라고요.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설명하고 협의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이: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는 빨리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니까 항상 긴장감을 가지고 있죠. 그런 부분을 재밌어하고 즐기는 편이에요. 순간 판단으로 진행했던 것이 만들어져서, 내 판단이 옳았다는 걸 확인하는 쾌감이 있어요. 

 

박: 이렇게 건축에 애정이 많으신데 10년 후에는 건축가를 부캐릭터로 하고 싶다면서요? 믿기지 않아요. (웃음) 

이: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스타 건축가가 될 생각은 없고, 그냥 이 일을 계속 즐겁게 하고 싶어요. 교수님과 다른 소장님들을 보면 내가 저분들의 나이가 되어도 저만큼의 에너지와 열정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독립하고 딱 10년까지는 설레고 재미있게 건축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고요. 그 후에는 건축에 욕심부리지 않고 좋은 건축주와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만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고 싶어요. 


박: 건축을 부캐릭터로 가진다는 말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만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 거였군요. (웃음) 그렇다면 이해가 가네요. 

이: 지금까지 건축 외의 취미가 LP 듣는 것밖에 없어요. 그때는 건축 말고도 다른 재미있는 게 또 생기지 않을까요? 

 


 

이승호는 2022년 6월호에서 박희도(에이치디피 아키텍츠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이승호
이승호는 스튜디오 승호의 대표다. 1987년생이며 9년간의 실무를 거쳐, 2021년 스튜디오 승호를 개소했다. 관심을 두는 고전 건축에 얽매여 유연하지 못할 때도 있고 여전히 헤매고 있지만, 공감각이 작동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 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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