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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에 따라 패를 바꾸는: 아워레이보

자료제공
아워레이보(별도표기 외)
진행
한가람 기자


 

「SPACE(공간)」 2022년 5월호 (통권 654호) 

 

아워레이보는 지난 10년간 전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미술계에서 업역을 확장하고 있다.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의 첫 번째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 하이브 인사이트 내 오브제, 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아워세트: 아워레이보×권오상> 등, 그동안 아워레이보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공간 디자이너, 작가, 기획자와 같은 여러 정체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전시에 참여해왔다. 전시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워레이보. 이를 이끌어가는 이정형 디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 이정형 아워레이보 디렉터 × 한가람 기자    

 

한가람(한): 아워레이보가 설립된 후로 10년이 흘렀다. 간단한 소개와 소회를 부탁드린다.

이정형(이): 정확하게 아워레이보라는 이름은 2015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전엔 ‘레이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사람들이 ‘레이보’를 ‘네이버’로 엇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여러 멤버가 모이면서 ‘아워’를 붙였다. 그동안 아워레이보는 미술계에서 나름대로 안정된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우리의 시스템은 아워레이보를 유지할 수 있는 수익형 산업과, 현대미술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예술 영역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율한 결과다. 지금은 이 두 영역이 자연스레 혼재되어 결과물로 나오고 있으나, 한때는 두 영역을 동시에 끌고 가는 것이 어려운 적도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역할로 궂은일까지 모두 소화하며 같이 성장해준 팀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한: 삼선동 주민 셋으로 시작해, 현재 10여명의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들었다. 아워레이보가 결성된 스토리, 그리고 운영 시스템과 역할 분담이 처음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해 달라.

: 처음엔 삼선동에서 작업실을 같이 쓰던 사람들이 급할 때 서로 도와주며 일을 했었다. 그렇게 연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하나의 그룹이 되었다. 이 단계가 아워레이보의 첫 시즌이다. 시즌2는 5년 정도가 흘러 친구와 선후배들이 모인 집단일 때고, 현재 그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이 모여 시즌3을 보내는 중이다. 아워레이보는 순수미술 전공자, 디자인 전공자, 이론 전공자 등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기획운영팀, 디자인팀, 프로덕션팀, 현장팀과 같이 네 분야로 나뉘어 있지만, 팀 간의 경계는 유연하다. 현재보다 소수였을 때도 한 사람이 두세 가지 포지션을 맡았었는데, 지금도 한 사람이 특정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본인의 역할을 찾아가는 중이다.

 

한: 우선 아워레이보의 주된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전시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50개가 넘는 프로젝트 중 가장 인상 깊은 작업은 무엇인가?

: 아무래도 아워레이보에 현대미술과 관련한 사람이 여럿 있다 보니, 이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현대미술 전시 또는 현대미술의 어법을 사용하려는 전시 디자인을 많이 한다. 전시 공간은 미술관, 갤러리가 되기도 하고 공장, 백화점이 되기도 했다. 작년부터 올 초까지 진행한 리움미술관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아워레이보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전시다. 이 전시는 미술관이 1년 7개월 정도 휴관하다 재개관하고 기획전을 선보인 지는 4년여가 된 시점이라 대중의 관심이 높았다. 더불어 국내외 51명 작가의 130여 점 작품을 소개해야 했는데, 이미 그 수 자체로도 부담이 컸다. 여러 작가의 요청 사항을 반영하며 전체의 공간 콘셉트를 드러내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학예팀과 정구호 디렉터와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큐브를 이용해 고대 도시를 설계하듯이 디자인했고, 관람객이 구획된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길 원했다.

 

한: 최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권오상 작가와 함께 전시 <아워세트: 아워레이보×권오상>을 열었다.

: <아워세트: 아워레이보×권오상>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2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가 동등하게 협업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담겨 있다. 아워레이보는 공간 연출을 맡았고, 화이트 큐브에서 보여주는 방식과 구별되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각각의 아홉 개 섹션은 권오상의 작업들을 연대기 순이 아닌 조각적 특징으로 분류하고, 순서대로 ‘세트1’, ‘세트2’ 등으로 이름 붙였다. 우리는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각 세트마다 서로 다른 장치를 활용해 촬영 세트장 같은 장면을 완성했다. 그중 세트1은 슈퍼카 엔초 페라리와 부가티 베이론을 본뜬 작품 ‘더 스컬프처 3, 4’(2005~2015)를 모터쇼 쇼케이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세트5에선 권오상의 ‘또 다른 즐거운 곳으로 여행’(2020)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백화점 쇼윈도에 설치됐던 작업으로 정면성과 평면성을 가진다. 이러한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작품을 스튜디오 배경지 위에 놓은 듯이 연출했다. 나아가,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줄 조명을 제작하기도 했다. 조명은 록 페스티벌과 우주 콘셉트의 작품에 맞추어 디자인해, 천체망원경이나 달 착륙선 등을 연상케 한다. 세트8은 미니카 99대를 전시하는데 자동차 회사의 출고 타워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선형 타워 구조를 만들고 ‘스몰 스컬프처’(2017~2021)를 주차한 것처럼 진열했다. 이 세트 역시 조명에 신경을 썼다. 벽면에 붙어 있는 수직 조명은 자동차 공장에서 도장 면을 검사할 때 쓰는 조명이다. 이 조명에서는 그림자가 지지 않아 관람객이 섬세하게 작품 디테일을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아워세트: 아워레이보×권오상〉 전시 전경​ 

 

한: 반면, 상업 공간에서도 공간 디자인을 해왔다. 이 작업은 일반 전시 디자인과 어떤 차이가 있나? 

: 상업 공간에서 이뤄지는 전시는 작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주체 이미지도 고려해야 한다. 전시 형태를 가진 팝업스토어 <더치 퍼레이드>는 OMA가 설계한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이 처음으로 오픈할 때 참여한 프로젝트다. 이곳이 전시장에 맞춰 설계한 게 아니다 보니, 오히려 백화점 팝업 공간이 가진 특징을 최대한 장점으로 살리려 했다. 엘지 디스플레이가 피치스 도원에서 연 <올레드 아트 웨이브: 우리의 모든 물결>은 브랜드와 브랜드, 브랜드와 작가 간 협업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러한 행사에서는 전시 디자인이 수행하는 역할이 유독 크다. 전시 디자인이 전시 성격, 전반적 분위기, 이미지 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공간이 아닌 오브제를 다룰 때도 있다. 하이브 인사이트, 소전서림 등에서 선보인 작업을 보면, 스타일이 확고하다기보단 형태와 재료 등이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 우리는 특정하게 고수하는 제작 방식이나 형식이 없다. 팀원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제작 방식에 호기심이 있고, 프로젝트 성격이 다양해지면서 이에 맞는 적합한 재료나 제작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요즘에는 예산이 넉넉한 프로젝트들이 늘어서 다양한 재료나 기술을 써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또 디자인팀과 프로덕션팀이 함께 있다 보니 발전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인팀이 제작 난이도가 높은 안을 내면, 프로덕션팀에서는 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설계, 재료 등을 디자인팀과 함께 공유한다. 이렇게 둘 사이의 핑퐁이 엉뚱하면서도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한: 올해 초,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아워레이보의 첫 기획전시 <오브젝트 유니버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기획자로서의 아워레이보는 어떠한가?

: 사실 지금까지 아워레이보는 기획을 한다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여러 전시의 주체들과 일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기획이라는 크레딧을 가지는 것에 부담이 있었다. 그리고 아워레이보가 공간 디자인, 제작, 설치로 잘 알려져 있고, 기획 분야에서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요즘에야 적극적으로 콘텐츠 디자인을 하면서 “아워레이보는 기획을 합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콘텐츠 기획’을 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우리는 기획을 할 때 전시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려 한다. 아무래도 전시 디자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기획안을 만들 때부터 공간이나 콘텐츠 성격으로 전시의 이미지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한: 사무실 아래층에는 다목적 공간, 디스이즈낫어처치(TINC)가 있다.

: 삼선동에 있던 30년 된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이곳을 매입해 사무실과 복합문화공간으로 쓰고 있다. TINC는 예배당이었던 3층을 아워레이보가 리모델링하긴 했지만, 아워레이보 구성원 두 명과 다른 한 명이 운영하는 사실상 별도의 사업장이다. TINC는 전시나 공연, 촬영 공간으로 주로 사용된다. 5월 1일까지 전시 <템포러리 랜딩>이 열리는데, 세 명의 작가가 조각과 평면의 성격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들을 전시한다.

 


〈올레드 아트 웨이브: 우리의 모든 물결〉 전시 전경 / Image courtesy of LG Display 

 


〈더치 퍼레이드〉 전시 전경 

 


〈오브젝트 유니버스〉 전시 전경 

 

한: 아워레이보가 활동해온 기간 동안 공간 디자인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 일을 하던 초반에는 “벽을 어디에 어떤 사이즈로 만들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만큼 요구는 단순했고, 공간 구획이나 작품을 놓는 좌대 등을 설정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후 몇 년은 공간 디자인이 전시 성격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재료나 제작 방식 등이 다양하게 고려됐다. 지금은 훨씬 더 복합적인 프로세스로 진행된다. 전시 목적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현대미술 전시부터, 전시 형태를 가진 팝업스토어, 이외에도 캠페인, 기념관, 퍼포먼스 등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시 취지가 다양해졌다는 건, 클라이언트마다 요구하는 사항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했고, 현재 우리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워레이보가 디자인, 작가 섭외 혹은 작가로 참여, 콘텐츠 생산과 같은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이러한 흐름에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한: 마지막으로 아워레이보의 미래를 물으며 인터뷰를 마치려 한다.

: 앞으로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차례차례 공개될 예정이라 신난다. (웃음)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보여줄 만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지금처럼 다양한 어법을 통해 새로운 해결 방안과 접근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운영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잘 구분하고 현명하게 선택하는 팀이 되고 싶다. 당장은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자각하지 못하지만, 향후에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가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 

 


하이브 인사이트 내 ‘사운드 펄스’, ‘사운드 웨이브’ 설치 전경 / Image courtesy of HYBE INSIGHT 


▲ SPACE, 스페이스, 공간


이정형
이정형은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와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년간 설치미술 작가로의 활동과 전시를 만드는 일을 병행하면서 전시의 환경과 조건을 이용한 작업을 했다. 현재 현대미술 전시와 파생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으며 아워레이보의 디렉터, 삼선동에 위치한 다목적 공간 디스이즈낫어처치(TINC)의 운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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