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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가상을 행하는: 오연주, 정해욱

사진
고인수(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미드데이
진행
박지윤 기자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패치트 시티' ⓒ정해욱

 

 

인터뷰 오연주, 정해욱 미드데이 공동대표 × 박지윤 기자

 

 

진짜가 아닌 진짜

 

박지윤(박): 두 분 모두 한국에서 공업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독일에서 건축 석사 과정을 밟으셨어요. 전공을 건축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오연주(오): 모든 제품은 결국 공간에 놓이게 되잖아요. 제품만 디자인하면 공간이 제품과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그런 게 싫었어요. 그래서 공간도 같이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어요. 일을 하다 보니 그 회사에서 건물을 짓기 시작하더라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건축을 배우지 않았는데 건물을 지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건축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정해욱(정): 보통 디자인 교육은 공업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으로 분리되는데 저희가 나온 학교에서는 학부를 합쳐놓았어요. 자기가 듣고 싶은 수업은 웬만하면 다 들을 수 있었죠. 매체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라는 걸 배웠어요. 예를 들어 주제가 책의 형태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판단되면 편집 디자인 수업을 들을 수 있었죠. 그런 태도를 배우다 보니, 그러면 건물을 디자인하는 건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론적으로 건물 이면에 있던 건축은 아주 다른 세계이기는 했지만, 저희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게 익숙했던 것 같아요. 

 

박: 독일에서 공부하며 가상과 건축을 연결 짓는 담론을 소개하는 그룹 AAPK를 만드셨어요. AAPK라는 그룹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 독일의 슈테델슐레 건축 과정에는 실험적인 작업이 많았어요. 새로운 기술과 건축이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고민하는 곳이죠. 기술 측면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많이 사용했고요. ‘가상-건축’이라는 용어가 본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이미지나 디지털 중심의 담론을 경험한 후에 저희가 자의적으로 가상과 건축이라는 단어를 붙인 거죠. 학교 프로그램의 첫 학기인 파운데이션 과정에서 테크놀로지와 건축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배워요. 방대한 자료를 매주 여러 개씩 읽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한글로 소개된 이론은 하나도 없는 거죠. 이론이 너무 흥미로우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토론하고 번역하면서 시작된 게 AAPK였고요. 그때 번역된 글들이 AAPK의 이름으로 낸 책 『가상-건축』에 들어가 있어요. 가상과 건축을 연결 짓는 지점을 사람들이 강력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메타버스와 같은 개념이 대중화되기 전이었어요. 건축에서 VR은 지어질 공간을 미리 보여주는 도구로만 여겨지는 상황이었죠.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터지고 더 주목받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유학을 나가 보면 한국과 다르게 대부분의 나라는 젊은 건축가가 건물을 지을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들 이상한 짓을 해요. (웃음) 학교에서 실험적인 작업을 하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오면 다들 그걸 이어나갈 명분을 못 찾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건축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근데 저희는 그런 것도 건축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바람 같은 게 있어요. 어차피 가상이니까 진짜가 아니어도 진짜고, 실체가 없어도 실재할 수 있는 거죠. 

 

박: 코로나19로 인한 득과 실이 있네요. 『가상-건축』은 사실 전시 도록 용도로 만들어진 책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전시를 하지 못했잖아요. 전시할 예정이었던 작품들이 궁금해요. 정해욱 소장님의 작품인 ‘패치트 시티(Patched City)’는 렘 콜하스의 글 ‘정크스페이스’로부터 시작했다면서요? 

: 글에서 렘 콜하스는 현대 도시 건축에 대해 사망 선고를 내리고, 도시의 모든 공간은 잔해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규정하는대요. 그런 렘 콜하스의 시니컬한 태도가 좀 짜증나더라고요. (웃음) 저는 이 개념을 건설적으로 다루어보고 싶었어요. 도시의 못생긴 부분을 재편집, 재구성 해서 형태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었죠. 결과물은 일종의 디지털 랜드스케이프였는데, 거기서 제가 모델링한 건 사실상 거의 없어요. 3D 스캔이나 구글맵 스크린 샷에서 이미지를 가져오고, 그것을 변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들이 작품의 주인공이죠. 

 

 

'세츄레이티드 스페이스' 설치 전경 ⓒ오연주

 

 

박: 오연주 소장님의 작품인 ‘세츄레이티드 스페이스(Saturated Space)’는 VR의 내부성(interitority)에 주목해서 나온 결과라고 했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요. 

: VR은 사람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선사해요.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온전한 내부성을 경험할 수 있죠. 작품은 내부성이라는 특성을 가진 VR 안에서 사람이 무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시작되었고, 처음 떠오른 게 깎아나가기였어요. 내부에 놓인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깎아나가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거죠. 그 툴을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어요. 

 

박: 게임을 하면 사람이 걷는 대로 공간이 확장되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개념인가요? 

: 비슷해요. 그런데 저의 작품은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깎이는 게 아니라, 깎는 도구를 손에 들고 팔을 뻗어야 해요.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팔을 뻗을 수 있는 만큼만 깎을 수 있죠. 깎을 수 있는 모양은 건축가들의 건축 드로잉에서 가져온 것이고요. 

: 이 작품을 진행하면서 내부성이 저희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어요. 최근 둘이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그 내부성이 도대체 뭘까에 관해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웃음) 결론은 내부성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형식(form)과 경험이라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형식이라는 건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다 떼어 놓고서도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퀄리티를 말하는 거고, 경험이란 사람의 몸, 인지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 특질이죠. 

: 제 작품에는 두 가지가 공존해요. 건축 드로잉의 형태적 특질을 차용하면서 내부성의 독자적인 형식을 탐구했고, 실제로 사람이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팔을 뻗을 수 있는 만큼만 깎는 행위를 통해 경험을 실험했죠. 

 

 

데이터를 쌓다

 

박: 현재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죠? 리서치 프로젝트인 ‘어퍼하우스 업(Upperhouse Up)’과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 이그지스팅 지오메트리스(Existing Geometries)인데요. 하나는 데이터를, 하나는 건물을 다루는 작업으로 결이 달라요. 

: 스튜디오가 어쨌거나 계속 이어져나가야 하는데, 계속 건물 설계만 고수하는 건 차별성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것과 조합하는 방식으로 스튜디오를 끌고 가고 싶었고,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힘들 때가 많아요. 데이터 속에 있다가 현장 가서 뭔가를 짚어주는 걸 동시에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둘을 같이 가지고 갔을 때 서로가 주는 시너지가 있을 거라고 봐요. 실제 건물을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 데이터나 가상의 개념을 다루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장기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가져가고 싶어요. 

 

박: 앞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던 황동욱 소장님(「SPACE(공간)」 625호 참고)도 건축, 기술, 예술을 두루 포괄하는 작업을 해서, 자신을 명확하게 소개하는 일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소장님들은 어떠세요? 

: 저희는 황동욱 소장님에 비해 이제 막 시작한 팀이니까 뭐라 정의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 사실 작업도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주변에서도 “그래서 요즘 너희 뭐하는데?”라고 물어보면 명확하게 대답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어퍼하우스 업’도 그랬어요. 시작할 당시에는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박: 비교적 설명하기 쉬운 프로젝트부터 여쭤 볼게요. (웃음) 이그지스팅 지오메트리스는 일반적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가요? 

: 네, 맞아요. 3층의 단독주택을 오피스 건물로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클라이언트가 명확히 있고, 실측부터 진행했죠. 기존 건물에 잠재한 기하학적인 비례를 끄집어내는 데 집중했어요. 

 

박: ‘어퍼하우스 업’은 오연주 소장님이 참여했던 공동주택 프로젝트 어퍼하우스를 데이터화하는 작업이라 들었어요. 

: 건물을 짓는 일을 바로 하는 것보다 지어진 건물을 독해하고 그것의 데이터를 모으는 일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논리를 세우고, 다시 그 데이터를 가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이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저희가 참여한 프로젝트 중 방대한 큰 건물이 어퍼하우스여서 그것을 대상으로 했죠. 프로젝트의 과정은 총 3단계로 나뉘어요. 1단계는 개념을 리서치하는 거예요. 작업물이 가지고 있는 건축적 언어나 방법론을 체계적인 말로 정리하는 거였죠. 2단계는 체계적인 아카이빙 전략을 도출해 그에 따라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이에요. 3단계는 ISBN이 찍힌 책으로 내는 것이고요. 지금은 2단계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공간을 스케일에 따라 구분하여 주방이나 화장실 같은 작은 영역에서부터 세대, 건물 단위로 이어지는 순서로 대상을 분석하고 있고요. 또 모든 스케일에서 에스테틱을 따로 떼어내 리서치 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 한 9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어퍼하우스 업'

'어퍼하우스 업' 인테리어 요소 콜라주 이미지

 


에스테틱의 잣대로 바라보다

 

박: 65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에 비해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네요? (웃음) 인테리어 요소를 콜라주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이건 에스테틱에 해당하는 부분인가요? 

: 맞아요. 콜라주는 프로젝트가 가진 에스테틱 요소만 따로 떼어 보여주는 이미지예요. 벽, 바닥, 천장의 오브제를 모아서 콜라주한 거죠. 하나의 이미지는 힘이 없지만 수백 개의 이미지가 모이면 각 공간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으니까요. 

: 전체적으로 디자이너를 위한 자료집을 만들자는 게 목표였어요. 도면도 사실 디자이너를 위한 매체가 아니라 시공자나 건축주를 설득하기 위한 도구잖아요. 도면의 형식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보의 조합과 같은 것은 저희가 나름의 기준을 세워 다시 재구성했죠. 그 와중에 에스테틱은 별개의 항목으로 구분했어요. 설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건물의 아름다움을 기능에서 찾거나 대지에서 찾거나 어디엔가 기대서 찾으려고 해요. 그러고 본인은 아름다움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하죠. 저희는 사실 아름다움을 고려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것이 선택 가능해진 이 시대에 아름다움 또한 별개로 선택해 구성할 수 있는 무언가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죠. 

 

박: 에스테틱이라는 게 주관적일 수 있는데 두 분이 주목하시는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 어퍼하우스는 이미 지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에 마감에 주목했어요. 

: 인테리어가 두드러지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는 아카이빙이다 보니, 결론적으로는 톤 앤 매너가 중심이 되었어요. 

 

박: 콜라주는 기존에 있던 작업을 재구성한 이미지잖아요. 누구의 작품인지 애매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저희가 디자인한 건 아니지만 저희의 결과물이라 생각해요. ‘패치트 시티’도 제가 모델링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저의 작품인 것처럼요. (웃음) 

 

박: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두 분이 꼭 한 명처럼 느껴져요. 새벽 두 시까지 내부성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고 하신 부분에서는 조금 놀랐어요. (웃음) 두 분의 관심사도 항상 비슷한가요? 

: 저희는 형태와 같은 미적인 요소들, 그러니까 에스테틱에 관심이 많아요. 

: 사실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매일 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저희의 생각이 구분이 잘 안 돼요. (웃음) 요즘 제가 유난히 관심을 두고 있는 건 패션이에요. 그중에서도 비례나 비율, 컬러 배치를 눈여겨보죠. 

 

박: 건물뿐 아니라 대부분의 것을 에스테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 저희가 정기용의 건축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사회적인 맥락의 건축으로는 관심이 덜해요. 그보다는 형태, 비율에 더 관심이 있어요. 밀리터리 프라모델도 좋아하는데요. 사회적인 맥락과 기능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밀리터리 프라모델이 만족시키는 미적인 재미가 있어요. 디지털에서는 이러한 사물이 가진 윤리적인 문제가 덜 하잖아요. 무언가를 암시하는 기능을 가진 물건에서 미적인 효과가 분리되어 나오는 거죠. 그래서 점점 에스테틱의 관점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시각적인 특징에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그 특징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 그래서 저희는 언제나 물리적인 것을 잘 다루는 분과 협업하는 구조가 될 것 같아요. 

 

 

 


오연주, 정해욱은 2022년 5월호에서 이승호(스튜디오 승호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오연주, 정해욱
오연주, 정해욱은 미드데이의 공동대표다. 미드데이는 건축이 갖는 미적 가능성 탐구에 관심이 있으며, 관심사의 영역과 결과물의 형식에 경계를 두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 둘은 서울대학교에서 공업디자인을, 독일 슈테델슐레에서 건축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가상-건축』(2020)의 대표 편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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