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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꾸준하게, 로망으로 걸어가는: 길종상가

사진
길종상가(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길종상가
진행
박세미 기자
background

길종상가가 이제 낙원상가나 세운상가만큼이나 익숙한 이름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길종상가가 실은 박길종이라는 개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길종상가에서 생산된 집기부터 가구, 공간들의 방대한 목록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2010년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상가를 운영해왔다. 지난 11년을 기념하는 두 권의 연계 출판물 『길종상가 2021』과 『사포도』의 출간을 앞둔 그를 길종상가의 관리사무소에서 만났다.



인터뷰 박길종 길종상가 대표 × 박세미 기자 사진 길종상가(별도표기 외)



박세미: 2010년 12월 24일 길종상가라는 이름을 짓고, 햇수로 올해 12년을 맞았다. 간단한 소회를 부탁드린다.

박길종: 길종상가라는 이름을 지을 때만 해도 장난처럼 시작했다. 하다 보니 지금까지 꾸준하게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건 전적으로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10년 정도 작업을 하고 보니, 앞으로 언제까지 찾아와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박세미: 이 업계에서는 1세대로 통한다. 어떤 매체에서는 엑스스몰 메이커의 첫 주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호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길종: 아마 이전에도 소규모로 집기나 가구 제작 활동을 하는 사람 혹은 팀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목공소와 디자인스튜디오가 결합된 곳들이 동네에 있지 않았나. 다만 길종상가는 우연히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박세미: 길종상가가 눈에 띈 계기는 시장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이나 기업들의 주문 제작 수요가 근 10년 사이에 확연히 늘어났다. 길종상가의 작업이나 클라이언트의 범주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궁금하다.

박길종: 원래 미술을 전공했는데, 목공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1년 정도 하면서, 디자인과 기술이 접목됐던 것이 길종상가의 특이점이었던 것 같다. 초창기 작업들 역시 미술이나 디자인 프로젝트와 연결된 부분이 많았다. 때마침 2010년대 초부터 SNS가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지금의 인스타그램 역할을 페이스북이 하고 있었는데, 페이스북에서 호응이 꽤 있었고, 개인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보통은 미술, 디자인 등의 문화예술 계통의 분들이었다. 지금은 가구나 인테리어, 집을 꾸미는 것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유행이랄 것도 없었다. 당시 길종상가의 고객들은 지금 표현으로 하자면 힙스터들이었고, 많은 역할을 해주셨다. (웃음) 그렇다 보니 일을 시작한 지 2~3년 동안 정말 많은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박세미: 길종상가 초반에는 ‘초록색 친구들 분갈이’, ‘창고 大방출’, ‘할로윈 코스츔/댄스파티’ 등 다양한 행사 프로그램들을 주최하기도 했다. 또한 인력사무소나 직업학교, 걷다 사진관 등 상가의 주요 활동들이 최근 들어서는 가공소로 집중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박길종: 초반에는 인력사무소나 상가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했다. 디제이 파티를 기획하거나 토크쇼도 진행하고, 백 벌이 넘는 빈티지 의류를 완판시키기도 했다. 디자이너, 사진가, 뮤지션들을 다 불러 공연도 하고 심지어 편집숍도 운영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겁도 없이 시작했는지…. (웃음) 일련의 활동들을 돌이켜보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또한 길종상가에 대한 인식을 저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좋은 것 같다. 그때 겁 없이 재밌게 했던 일들이 지금은 여러 방면에서 전문가들이 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섣불리 하지 않으려 한다. (웃음) 현재는 주로 디자인, 제작, 설치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 집기나 가구 제작뿐 아니라 에르메스 윈도 디스플레이 같은 브랜드 홍보를 위한 디스플레이 작업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공간 디자인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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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이태원에서 계속 작업을 하다가 2016년 을지로로 기반을 옮겼다. 둘 다 특성이 강한 동네다. 재료 수급이나 제작과 관련해 길종상가의 작업 성과도 동네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박길종: 이태원은 길종상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거주하던 곳이기 때문에 기능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에서 작업했다. 큰 방에서 작업을 하다가 거실까지 나오게 되고 부엌 찬장에 재료를 쌓아가며 몇 년을 작업하다 집 옆 창고를 얻어 집과 작업실을 분리하게 됐다. 그런데 일주일에 몇 번씩 을지로를 오가다 보니 한번 일을 보고 오면 2~3시간은 금방 지나가더라. 아무래도 을지로가 재료 수급도 용이하고, 거래처들도 많다 보니 이 근처로 작업실을 옮기게 됐다. 마침 2년간 비어 있던 공간이 있어 들어온 곳이 지금의 작업실이다. 입구에 있던 자전거를 타고 근처 거래처에 가 주문하고 오기도 하고, 금속 제작 업체의 경우 수시로 들러 긴밀하게 소통한다. 전화가 와 “실장님 와서 좀 봐주세요” 하면, 가서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이렇게 고쳐주세요” 하고, 오는 길에 볼트나 부족한 공구를 사가지고 오는 식이다. 일종의 시스템이 생긴 거다. (웃음)

  

박세미: 아마 디자인부터 거의 모든 걸 직접 만드는 길종상가의 특성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박길종: 그렇다. 제작과 설치까지 직접 하다 보니,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업체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작업하게 된다. 을지로에서는 방산시장이나 동대문도 가까이 있어 다양한 재료들을 그때그때 사와 조합하기도 좋다.​ 

 

박세미: 한 클라이언트를 위한 하나의 제품을 만든다는 것, 등가적인 작업 태도는 길종상가의 오랜 고집이기도 하다.

박길종: 물론 간혹 지인들에게는 똑같거나 약간 변형한 제품을 팔게 될 때도 있다. (웃음) 하지만 웬만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그 클라이언트를 위한 디자인이니까. 최근에도 다른 공간에 해준 디자인을 똑같이 해달라는 의뢰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는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한다. 유행하는 특정 가구를 만들거나 모든 집에 있는 아이템을 만들고 싶지 않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의 디자인으로 100명의 기준을 맞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량생산으로 모두를 맞춘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박세미: 홈페이지에 있는 상가조감도를 보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낙원상가, 63빌딩, 한국은행 건물그림에 길종상가의 간판이 달려 있다. 직접 그린 100장에 이르는 상가 명함에도 온갖 건물이 다 길종상가다. 달리 말해, 길종상가는 실제 건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인터뷰하고 있는 길종상가 작업실도 주소는 있지만 ‘방문하시면 안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웃음)

박길종: 조감도의 경우 원대한 포부는 있으나 돈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거다. (웃음) 다들 건물주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나. 1층에는 내가 좋아하는 상점과 카페, 갤러리가 있고, 2층은 임대를 주고, 꼭대기에는 내가 사는 로망. 크고 작은 발이 달렸거나 떠다니거나, 콘센트가 있거나, 의자 위에 있거나 계단 밑에 있거나 하는 등 상가에 대한 로망을 떠올리면서 재밌게 그리다 보니 100장이 넘었다.

  

박세미: 3월에 길종상가의 지난 11년을 기념하는 두 권의 연계 출판물 『길종상가 2021』과 『사포도』가 나온다. 길종상가 홈페이지를 보면 결과물뿐 아니라 작업 과정들도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박길종: 2011년에 1주년 기념 책자인 『길종상가 2011』(미디어버스, 2012)을 만들고 나서, 매해 한 권씩 내는 게 원래 목표였다. (웃음) 그런데 만들다 보니 책이라는 것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은 손길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흐지부지 시간이 지나 2021년이 된 거다. 홈페이지에는 꾸준히 정리해왔다. 내가 만들고 설치한 것들을 사진 찍고 고르고, 보정해서 올린다.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웃음) 그러면서 그 기록들이 꽤 쌓여 이번에는 꼭 책으로 묶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기보다는 평소 친분이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신동혁과 기획자 이미지에게 맡겼다. 『길종상가 2021』은 길종상가의 가공소 작업들이 뒤섞인 그림책이고, 『사포도』는 일곱 명의 다양한 필자들이 쓴 길종상가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다. 길종상가 안팎으로 다양한 시선들이 담겨 나 또한 기대하고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박길종
박길종은 2010년부터 길종상가, 박길종, 박가공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길종상가는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인력, 그 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절한 금액을 받아 지속적으로 운영해나가는 곳이다. bellroad.1px.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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