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오늘의 건축을 기록하는 자세: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들’

자료제공
목천건축재단
진행
방유경 기자

©Jeong Jae-Eun + Mokchon Foundation 

 

​「SPACE(공간)」 2022년 5월호 (통권 654호)  

 

2010년 설립된 목천문화재단은 원로 건축가들의 자료를 아카이브하고 구술집을 펴내는 ‘한국현대건축의 기록’ 프로젝트를 10여 년 넘게 지속해왔다. 2019년, 재단은 그 관심을 확대하여 『의심이 힘이다』 출간을 시작으로 현재 활동 중인 건축가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동시대 건축의 현장’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리고 올해 3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결과물이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영화감독 정재은과 협업한 11편의 영상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들’이다. 동시대 (여성)건축가들이 일하는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고민을 담은 영상에는 감독의 시각과 함께 이들을 아카이브로써 주목하는 재단의 의지가 읽힌다. 꾸준하게 한국 근현대 건축사의 빈틈을 채워가고 있는 이들의 활동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인터뷰 김미현 목천문화재단 이사장, 김태형 목천문화재단 연구원 × 방유경 기자 

 

방유경: 목천문화재단(이하 목천재단)은 ‘목천건축아카이브’라는 이름 아래 한국 근현대 건축(가)에 대한 아카이브 사업을 지속해왔다.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와 관점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김미현: 목천재단이 출범하고 1년 후, 전봉희(서울대학교 교수)가 진행했던  『일제시기 건축도면 해제』(2008~2014) 작업 상황을 살피면서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를 학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체화했고, 운영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아카이브 사업을 시작했다. 『김정식 구술집』(2013)을 시작으로 『유걸 구술집』(2020)까지 9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아카이브의 핵심 영역은 활용이라 생각한다. 원재료들을 잘 모으면, 이를 가공하고 정리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주제로 각색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건축을 문화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유경: ‘동시대 건축의 현장’ 시리즈는 기존 구술채록 사업과 달리 현재 활동하는 건축가에 주목한다. 첫 결과물로 최문규(연세대학교 교수)와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대담집 『의심이 힘이다』를 책으로 펴냈다. 관심 대상을 ‘동시대 건축가’로 확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미현: 구술채록으로 건축가의 기록을 남기는 세대는 1930~1940년대생까지라고 생각한다. 운영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시리즈를 마감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 다음 세대에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구술채록을 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사업의 한 트랙이라면 현재 활동하는 건축가를 비평가나 이론가와 짝을 지어 이슈가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구상하게 됐다. 그것이 ‘동시대 건축의 현장’ 시리즈의 출발이었다. 김태형: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원로 건축가 구술채록은 아카이브의 원론적 속성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한 건축가의 공식적 활동이 끝난 이후에 그 기록물들을 모아 정리·보존하는 것이 아카이브 본연의 역할이라면, ‘동시대 건축의 현장’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기록(레코딩)하는 도구라고 봐주시면 되겠다.

 

방유경: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들’은 책이 아닌 영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다. 기획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정재은 감독과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 

김미현: 책을 사람들이 잘 안 읽더라. (웃음)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 매체를 확장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목천건축아카이브 10주년이 되는 2021년을 기념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들의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해보자고 운영위원회와 의견을 모았다. 정재은 감독과는 영상 제작의 자문을 얻기 위해 만났다가, 그가 관심 주제를 먼저 제안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 전체를 의뢰하게 됐다. 그는 여성 건축가를 대상으로 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여성이라는 말이 자칫 페미니즘의 의미로 읽힐까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 아카이브 사업에서도 그래왔듯, 연구자들이 관심 있는 건축가를 주목한 것과 같은 프로세스라고 생각하니 대상에 대해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김태형: 정재은은 건축가의 다양한 역할에 관심을 보였다. 사무소 내 생활, 현장과의 소통, 문제 해결 방식 등, 저마다의 목소리로 살아가는 방법들이 영상에 담길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덕분에 건축가의 활동을 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고, 그들과의 교류 지점을 확인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방유경: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의 면면을 보면 활동 영역과 작업 방식, 사무소의 운영 방식 등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참여자 목록은 어떻게 정했나? 

김태형: 대상을 선정하고 목록을 만들 때 건축가들의 성향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그들 고유의 특징이 잘 드러나길 바랐다. 기획 초반 정재은과 열 팀의 건축 작업과 기사, 강연, 책 등을 살피면서 공공건축, 주거, 오피스, 전시, 동네 건축, 아카이브, 도시 리서치 등의 주제어를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촬영 때 건축가들에게 무엇을 주문하면 좋을지 스토리보드를 그려나갔다. 김미현: ‘디렉터스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지만, 재단과 정재은이 함께 목록을 만든 다음 운영위원회와 공유하며 의견을 들었다. 이번 영상에 소개된 열 팀과 결이 다른 분은 지순 선생이다. 당초 이 프로젝트 대상자가 아니었는데, 지난해 9월 지순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정재은이 그를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사람이 되면서 추모의 의미를 담아 함께 묶게 됐다.

 


©Jeong Jae-Eun + Mokchon Foundation

 

방유경: 공사 현장을 컨트롤 하는 모습, 직원들과 토론하는 모습, 설계자 간의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 등 건축가의 다양한 면모가 영상에 담겼다. 현실감 있는 촬영을 위해 어떤 프로세스를 밟았나? 

김태형: 촬영 시작 전, 건축가들과 개별 미팅을 가졌다. ‘다큐멘터리 3일’ 형식으로 찍되, 촬영하는 3일 동안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길 요청했다. 사무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정재은과 나는 뒤에 숨어 있는 상태에서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틀 반은 사무소와 현장의 모습을 담으려 했고, 남은 반나절은 그 기간 동안 나눈 대화와 장면들을 바탕으로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방유경: 아카이브 측면에서 동시대 건축가들의 작업에서 발견한 특징이 있다면?

김태형: 과거에는 건축가들이 오로지 건축만을 대상으로 고민하고 표현하고 읽어내려 했던 것 같다. 그때보다 확장된 사회, 다양한 인식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건축가들의 관심과 관점, 표현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건축가 고유의 성향이 건축의 역할, 설계 프로세스에도 강하게 투영되는 것 같았다. 전시와 연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다시 건축 작업에 적용하는 맥락(강예린, 이치훈), 디지털로 설계하고 제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협업을 통해 다품종의 자재를 생산하는 사례(이태경), 직원들에게 프로젝트를 한 개씩 맡기고 소장과 일대일로 협의하며 풀어나가는 방식(정현아) 등이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이민아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설계의 재미를 느낀다고 했는데, 공평도시유적전시관, 한양도성 현장유적박물관을 설계할 때는 책에 너무 빠져서 일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고 한다. (웃음) 김정임의 경우, 읽었던 책들의 문구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김미현: 책, 영화, 전시 등 건축가의 상상력 뒤에는 영감을 준 다양한 원천들이 있다. 이런 레퍼런스들을 함께 이해하고 아카이브를 해야 보다 입체적으로 동시대와 건축 작업을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가능하다면 한 건물에 대한 기록을 무색무취의 자료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와 아키비스트가 같이 만드는 아카이브 소고 형태로 작업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방유경: 영상에 등장하는 오늘의 건축가들에게서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큰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졌다. 

김태형: 정현아 소장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주로 강남권 블록에 건물을 설계했는데, 훗날 은퇴하고 나서 이 건물들이 그때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돌아보고 싶다고 하더라. 건물 하나가 돋보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축이 블록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살아남고 역할을 이어나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 프리츠커상 선정의 방향성이 바뀌는 것을 보더라도 건축가와 건축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방유경: 시대의 변화 속에서 아카이브의 방향성을 꾸준히 탐색하는 목천재단의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앞으로 작업에 대한 방향키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미현: 10년 후, 이번 영상에 등장한 이들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본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지, 사회성이나 공공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웃음) 그동안 아카이브에 매달려왔는데, 이제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어디가 비어 있는지 보이는 상황까지 온 것 같다. 근현대의 건축기록물은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정말 찾을 수 없는 자료들이 많다. 당장은 2000년대 이전 자료를 많이 모으는 일에 집중하는 한편, 종적·횡적으로 얽혀 있는 자료들의 출처나 접근 경로를 파악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동시대 건축의 현장’은 우리 일을 알리는 목적도 있지만, 건축가들의 작업과 활동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여력이 닿는 데까지 투 트랙으로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아카이브를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활용하게 하고 싶다. 

김태형: 한국은 1965년에 대한건축사협회를 설립하며 건축 전문 인력의 배출 구조를 갖추게 된다. 해방과 전후 복구기, 그리고 경제개발계획 기간의 한국 건축가들의 활동은 정부의 정책 발의와 얽혀 있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건축과 건축가의 역할을 기록하는 것이 현재 큰 관심사다. 그 사례로 산업화나 사회적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1960~1970년대 건축과 도시계획, 1980년대 위성도시의 출현과 정부조직 재편, 이에 따른 재개발과 신도시 계획에서 나타나는 맥락을 연구하고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김미현
김미현은 2006년부터 목천문화재단에서 근무했고, 2011년부터 목천건축아카이브 운영에 참여했다. 현재 사무국장을 거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태형
김태형은 2012년부터 목천문화재단에서 한국의 근현대 건축기록물을 수집, 연구해오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