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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억을 소리로 담다: <블루 아워: 염천교 수제화거리 사운드스케이프전>

자료제공
이화연 객원기자
진행
오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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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이미지_염천교 수제화거리 ⓒ문화디자인랩​

 

 

지난 1월 성수동 중림창고에서 진행된 <블루 아워: 염천교 수제화거리의 사운드스케이프전>(이하 <블루 아워>)은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사라지게 될 공간의 소리를 기록하고 작품으로 전시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되기 시작해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를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2021년 3월 토지소유자 코레일과 사업자 한화컨소시엄의 사전협상을 마무리하고 개발계획안을 확정했다. 서울로 7017과 염천교 수제화거리 사이 유휴 철도 부지에 2026년까지 40층 높이에 달하는 주거 복합단지가 조성된다. 노후되고 발길이 뜸해진 도시 속 공간 곳곳이 삭제되면 그 공백에 우리는 무엇을 채우게 될까? 전시를 기획한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나일민, 이민, 이혜경 교수와 이야기 나누었다.  

 


인터뷰 나일민 국민대학교 교수 x 이민 국민대학교 교수 x​ 이혜경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x 이화연 SPACE 객원기자

 

 

이화연(이): <블루 아워> 전시 주제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 부탁드려요.

이민(민): 전시는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일상과 문화를 발굴하고 공유하도록 기획한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문화디자인랩의 지역 프로젝트 중 하나에요. 개발이 이뤄지는 변화 양상들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죠. 그런데 그 변화가 장소성이 축적되기보다는 상업성이란 한 가지 기준에 의해 비슷한 콘텐츠로 재정비된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염천교 수제화거리 또한 오랜 역사와 문화가 삭제될 우려가 있는 공간이에요. 개발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그 소식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잘 없어요. 전시에 참여한 대학원생들도 이 주변을 자주 오가면서도 염천교 수제화거리의 존재를 몰랐던 친구들이 많았어요. 이러한 특성에 착안해서 ‘블루 아워’라는 주제를 정하게 됐어요. 프랑스어 ‘l`heure bleue(블루 아워)’는 일출 직전 혹은 일몰 직후에 빛이 흐릿하게 남은 박명의 상태를 뜻하는데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이죠. 미래가 불분명한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은유한 거예요. 

 

이: 전시는 어떤 작업들로 이뤄져 있나요?

민: 전시는 크게 네 영역으로 이뤄져요.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바라본 네 가지 관점이라고 볼 수 있죠. 첫 번째 ‘소리산책자’ 섹션은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산책하며 채집한 소리와 자료를 토대로 한 작업들로 구성됐어요. 특히 산책이란 개념을 사용하면서 발터 벤야민이 파리의 아케이드를 바라보는 태도에 주목했어요. 우리가 보통 어떤 장소로 출발할 땐 목적이 명확하잖아요. 목적이 달성되면 그 목적지를 떠나죠. 하지만 산책자는 그런 양상들을 응시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에요. 그런 태도로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응시하고, 연구원들의 작품 주제에 따라 일련의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것을 소리란 감각을 통해 수행한 것이 소리산책자예요. 두 번째는 ‘창작자’인데요. 염천교에서 채집한 소리들을 토대로 그림이나 제품 혹은 스토리를 새롭게 창작한 작업들이 이에 속해요. 주로 염천교를 둘러싸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련된 소리에 집중한 것이 특징이에요. 세 번째는 ‘수집가’는 소리산책자와 창작자의 작업 과정 자체를 수집하기도 하고, 염천교 수제화거리에 관련된 역사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리라는 관점으로 수집한 아카이빙 작업이에요. 마지막 ‘소리보존가’는 기록지를 통해 진행된 워크숍 프로그램 작업인데요. 전시장에 존재하는 염천교 수제화거리의 소리 요소들을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그 이미지를 실리콘 도장으로 만들었어요. 관람객들은 전시를 다 본 후에 어떤 소리로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기억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아요. 사실 이것이 사운드스케이프의 핵심 질문이기도 해요. 도시를 어떤 소리들로 어떻게 조직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죠. 서랍 안에 있는 도장들 중에서 원하는 것들을 골라 기록지에 찍으며 질문에 답을 하게 돼요. 이로써 관객들은 스스로 염천교 수제화거리란 장소성을 만들어내는 소리풍경을 상상하게 되죠.​ 

 

 

전시장 전경 ⓒ문화디자인랩​

전시 트레일러, 심서영 ⓒ문화디자인랩​

 

 

이: 소리를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사용했네요.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개념이 생소한데요.

나일민(나): 사운드스케이프는 말 그대로 소리풍경 혹은 소리경관을 뜻해요. 소리가 공간에 조직되어 환경을 형성하게 되는 현상이죠. 시각 중심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나서 청각을 통해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롭게 개선해 나가도록 장치나 법규를 만들기도 해요. 음악이나 예술 작품으로도 활용되죠.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으로 활용했어요. 어떤 활동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부산된 소리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장소성과 문화의 현장성을 포착하는 데에는 이런 직관적인 매체가 적합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이: 소멸 위기에 놓인 장소들이 많이 존재해요. 특별히 염천교 수제화거리에 주목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혜경(경): 지역 고유의 생활을 문화유산으로서 발굴하기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축제를 기획하는 활동을 하던 중에 염천교 수제화거리를 만나게 됐어요. 보통 이런 사업에서는 주거 공동체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곳은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라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특히 도시에서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제조업이라는 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였죠. 그리고 서울의 역사를 관통하는 오랜 역사성에도 주목했어요. 일제강점기에 서울역 인근 화물창고에서 흘러나온 가죽을 구두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곳이거든요. 100여 년이란 오랜 세월이 깃든 곳이죠.

 

이: 염천교 수제화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경: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꾸준히 구두를 취급해오고 있어요. 물론 등산화나 댄스화처럼 다른 성격의 신발들로 그 범위가 확장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구두, 가죽 소재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특징이 있어요. 그리고 신발의 밑창부터 손수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장인들도 중요한 가치이죠. 그래서 질병 등으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신발을 신을 수 없는 오랜 단골손님들이 맞춤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와요.  

 

 

소리산책자, 'Daybreak: 아침을 깨우는 소리', 라지인, 단채널 비디오, 종이에 인쇄 ⓒ문화디자인랩

소리산책자, '틈(Aperture)', 허보경, 부스, 연구 도서, 소리채집일지와 메모, 콘 스피커와 아두이노 모듈 ⓒ허보경​​

 

 

이: 2015년부터 염천교 수제화거리에 사무실을 직접 마련하시고 <블루 아워> 전시 이전에도 여러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셨어요. 도시재생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민: 재생 이전에 어떤 자생력을 가졌는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재생이 성립되니까요. 도시재생이라는 미명 하에 때로는 폭력적으로, 획일화된 방법으로 잠재력을 얼버무린 경우가 있었죠. 어떻게 대치동과 봉천동을 바라보는 방식이 같을 수가 있겠어요. 여러 가지로 섬세하게 단어와 과정을 나누고 분석해 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문화디자인이 지역에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경: 염천교 수제화거리 도시재생 사업 초반에는 건물을 새로 지어주거나 간판을 달아주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점점 방향성이 수정됐죠. 이분들이 사람의 발을 낮은 시선에서 다루기 때문에 소위 ‘족쟁이’라고 불리면서 멸시당했던 인식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 장인이라고 명칭부터 바꾸기 시작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수제화 시장 자체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개발이 기정사실화 되었지만요.

 

 

창작자, 'ASMR 디스크: 염천교 수제화장인의 소리 기록', 이화연, 황새연, ASMR CD패키지, 영상 및 사운드 아트, 캔버스 틀에 오브제 행잉 ⓒ문화디자인랩​ 

소리보존가, '소리원(園)', 김진희,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 ⓒ문화디자인랩​

 

 

이: 전시를 주관한 문화디자인랩은 어떤 곳인가요?

민: 지역 콘텐츠를 만들며 문화를 다루는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는 사운드스케이프를 활용했지만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지속할 숙제를 안고 있죠.

경: 일상에서 염천교의 장인들을 대면한다면 그들의 삶을 관심 있게 볼 생각을 하기 쉽지 않죠. 하지만 이 전시를 통해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돼요. 그저 소멸할 도시재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이들의 삶을 대면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떤 곳에 가서도 생명력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생길 거라고 기대합니다. 삶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확장시켜서 유기적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문화디자인랩이 지향하고 배양하고자 하는 핵심 능력이에요. 

 

이: 전시 주제에 도시공간과 문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도시공간과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시나요?

민: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들이 넘치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부수고 새롭게 짓는 것은 늘 지속되어 왔어요. 다만 사람들이 잠시 유행처럼 왔다가 휘발되는 것에 그치지 않길 바라요. 가로수길처럼 자생하며 활성화된 공간이 대형 브랜드에 자리를 뺏기는 것을 보면 참 아쉬워요. 그 안에서 교류하며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들은 그래도 살아남거나 씨앗이 돼서 다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결국 이런 것들을 이혜경 교수님께서 염천교 수제화거리에서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과거에는 건축, 디자인, 재생을 형태의 영역에서 주로 다루었다면 이제는 그 안에 자생력을 만들어내는 문화까지 섬세하게 담을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와 여건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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