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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과 현상: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

백진
사진
김용관
진행
김예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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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ngkwan 

 


ⓒKim Yongkwan 

 

 

‘이 형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습관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형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렇듯 의미론에 매여 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건축의 형상에 대해서 언어학과 기호학의 잣대를 환원적으로 들이민 결과이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닌 ‘무엇을 행하는가?’라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의미론의 돌우물에서 벗어나서 실천적 윤리적 영역으로 이동할 때 형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마리오 보타의 남양 성모성지 대성당은 신선하다. 얄팍한 의미론의 지평 위에서 움직이는 형상이 아닌 ‘힘’ ‐ 생생함, 울림, 효력, 매력 그리고 마력 ‐ 을가진 형상을 구축하고 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41m의 거대한 붉은색 쌍둥이 타워! 경내에 진입하는 모든 이의 시각을 붙들어 매는 돛대이자 전체를 관장하는 초점이다. 피곤한 몸이라도 불끈 움직이게 만들 동력의 원천이다. 먹구름으로 가려진 하늘, 야외 제대 앞 널따란 마당으로 드러나는 대지, 캐노피의 수평선, 그리고 봉긋하게 끼어든 숲. 이런 것들이 존재감을 갖고 부유해 올라오는 이유는 바로 이 타워가 들어서면서이다. ‘띄엄띄엄’ 자리 잡은 물리적 거리와 제각기 다른 때에 지어진 시차에도 불구하고, 응축된 ‘현재’의 앙상블을 구현하는 이맛돌이 바로 이 타워이다. 사실 대각선 방향으로 상부가 잘린 원통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는 보타의 건축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매너리즘으로 보이기보다는 여전히 참신하다. 순교의 땅에 들어선, 거석의 스케일을 훨씬 뛰어넘는 직립 형상! 우선 이 쌍둥이 타워는 특정 종교의 것으로 읽히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십자가의 존재감도 일부러 미미하게 처리되어 있다. 원통의 상단부 측면에 소심하게 음각되어 있을 뿐이다. 명증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대신 일부러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연약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굳건히 서 있다. 쌍으로 서면서 더 그러하다. 종교적 정체성은 지우려 하면서도, 존재감 자체는 오히려 또렷하게 표출되고 있다. 두 개의 질이 공존한다. 애매하고 명증하며, 연약하고 강인하다. 정교하게 고안된 순로를 따라 대성당으로 들어서면 그 끝자락 앱스에는 이 두 개의 타워가 재등장한다. 경내의 초점이었던 타워로 시작해서 실내로 빨려 들어오고 나면 다시 그 타워 앞에 서는 시퀀스이다. 이 마지막 대면의 순간은 놀랍다. 형상의 색다른 존재감이 드러난다. 두 타워 사이에 자리한 슬릿 창은 수직으로 곧추선 강렬한 빛을 선사한다. 매끈한 바닥 정중앙을 따라 빛의 선도 그려진다. 수평과 수직의 쌍둥이 현현 또는 발밑과 눈앞에 동시에 나타나는 동일한 빛! 볕 좋은 날에는 남동, 남서 방향으로 기울어진 타워 상부 천창을 통해 빛이 제단부까지 내려온다. 천창의 직사각형 패턴이 원형 타워 안쪽의 곡면과 만나며 경이로운 변태가 일어난다. 딱딱한 직선의 멀리언들이 곡면에 그림자를 드리우니 동그랗게 구부러진 잠자리 날개의 확대된 패턴을 보는 것 같다. 금박의 날갯짓! 보타가 스승으로 삼는 루이스 칸의 입장처럼, 자연광이 끼어들며 건축가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은 생동하는 변주가 탄생하였다. 8월 말 비가 내리는 날 방문했던지라 기껏해야 여우볕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 금박의 날갯짓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안타까웠지만, 타워를 통해 제단부로 전해지는 빛은 포근하고 온화하였다. 빛의 선을 따라 두려움 없이 제단 위로 올라온 방문자를 맞아주는 온화한 분위기의 앱스! 두 타워의 아래쪽 원호를 반쯤 잘라내었기에, 드러난 동그란 내부 곡면은 마치 팔을 벌려 안아주는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10m 정도의 지름을 훌쩍 넘는 부드러운 쌍곡면은 나 혼자만이 아닌 많은 이를 동시에 안아줄 것 같은 아량도 느껴진다. 빛만이 아니다. 이 타워는 바람길 역할도 한다. 상부의 개폐창을 통해 실내의 바람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윈드타워인 셈이다. 포근한 빛과 시원한 바람이 제단을 감싼다. 모두 이 타워 덕분이다.

 

빛의 현상적 ‘나타남’은 교회건축의 지속적인 주제였다. 사실 일상 속에서 빛은 ‘충만함’ 속에 자기를 숨긴다. 공기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나타나지 않는 빛을 나타나게 하는 것은 건축의 중요한 주제였다. 로마네스크 교회의 앱스와 회랑의 두터운 벽을 얇은 기둥, 포인티드 아치, 리브 볼트로 대체하여, 빛이 나타나게 했던 쉬제의 생드니 대성당이 떠오른다. 수도원장 쉬제의 빛에 대한 몽상은 그보다 700여 년 전 비잔틴 제국의 ‐ 하기야 소피아의 빛을 낳은 곳이다  ‐ 신비주의자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빛의 철학은 감동적이다. 시시각각 변하고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현상적 빛(lumen)과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신성한 빛(lux)을 엮어내면서, 전자는 후자의 은유라고 하였다. 매 순간 변하는 현상적 빛을 통해 느껴지는 일시성은 영원의 이미지라는 성 어거스틴의 말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습기 많은 오사카의 대기에 맞서, 암흑, 유리판처럼 표면을 갈아낸 콘크리트, 그리고 남쪽 정면을 찢어 만든 슬릿 창을 통해 빛이 나타나도록 한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는 현대교회사에서 빛을 포착해낸 중요한 사례이다. 보타의 교회는 또 하나의 이정표이다. ‘남쪽의 볕’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남양(南陽)의 빛은 다루기가 어렵다. 확확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중해의 빛과는 다르다. 습기 탓이 크다. 그래도 보타는 이 까다로운 빛을 성공적으로 다루어내 나타나도록 하고 있다. 매력적인 사실이 하나 더 있다. 하단부 원호를 반쯤 잘라낸 타워! 팔을 한껏 벌려 품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만들어내고 있다. 포근한 빛과 자비로운 자세의 결합이다. 

 

보타는 건축이 감동적이기 위해서 팬시한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기디온류의 비평에 의하면 ‐ 현대 비평가들의 편견의 토대이다 ‐ 이런 보타의 입장은 고루하게 들릴 것이다. 예술과 과학의 진보에 발맞추어 건축도 진보해야 한다. 입체주의와 스트로보스코프 등을 이해하고, 발터 그로피우스처럼 독일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건물을 설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언급한 후, 데이터스케이프와 인공지능이 설계하는 건축물 정도를 이야기해 주어야 제대로 된 건축가이다. 그러나 보타는 질문한다. 기술이 송두리째 바뀌었으니 건축도 송두리째 바뀌어야 하는 걸까? 이런 태도는 기술과 건축이 문화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오해하고 기술환원론적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상황’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따라 작동하는 레이어의 적층에 의해서만 탄생한다.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레이어와 쉴 틈 없이 바뀌는 레이어, 그리고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 레이어들—이들의 적층 속에 기술의 현란한 진보도 비로소 ‘변화’ 또는 ‘차이’로 드러나는 것이 가능하다. 남양 성모성당은 형상의 효력(efficacy)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현대문화에서 교회가 ‐ 크게는 건축이 ‐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진술하고 있다. 형상의 원천을 파고들어 진부한 의미론을 넘어서서 실천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원통형 상부는 45도로 깎고, 실내로 드러난 밑동은 원호의 반을 잘라내며 ‘의미’의 형상이 아닌 ‘행동’하는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체성을 지우려는 애매함과 우뚝 선 강인함, 그리고 포근한 빛, 시원한 바람 그리고 자비로운 자세! 형상의 신체성(corporeality)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글 백진 / 진행 김예람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백진
백진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와 도쿄대학교에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며 건축 및 도시이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Nothingness: Tadao Ando’s Christian Sacred Space』(Routledge, 2009), 『Architecture as the Ethics of Climate』(Routledge, 2016), 『풍경류행』(효형출판사, 201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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