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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박싱 - 지속가능한 신도시란 신기루

조항만(서울대학교 교수)
진행
방유경 기자

남양주왕숙2 당선안 ⓒ금성건축 컨소시엄

 


도시는 길고 도시계획은 짧다

드러난 바에 의하면, 도시의 수명은 국가나 체제를 비롯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길다. 로마 제국은 흥망성쇠를 거듭해왔어도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세운 로마는 아직 건재하고, 이조(李朝)의 새 도읍이던 한양도 지금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서 세계가 선호하는 목적지 중 하나이다. 이렇듯 긴 시간을 지속하는 도시에 기대어 인간은 국가와 체제를 만들고, 과학과 기술,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커뮤니티와 개인의 삶을 유지하면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이루어왔다. 도시는 이제 자연과 더불어, 아니 자연보다도 더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전체론적 환경이며, 니체의 말처럼 선도 악도 초월한 개인 선택의 세계이다. 세계적으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히포다무스가 밀레투스 재건에 적용한 격자형 도시계획을 시작으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별모양 이상도시계획 팔마노바(Palmanova), 17세기 명나라의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의 정방형 도시건설 기법, 19세기 중반 조르주 외젠 오스망의 제2제국의 파리개조계획, 그리고 20세기 르 코르뷔지에의빛나는 도시와 ‘브와쟁 계획등 인류문명은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고 또 개조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업생산 지역을 집단화한 안산 신도시(1977), 행정기능 분산을 위한 과천 신도시(1979)를 거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한 대규모 도시정비계획(1980년대 중반)을 통해 도시설계와 도시개발이 본격화되었다. 1989년에는주택 200만호 공급’이라는 목표 아래 5곳에 1기 신도시 개발이 시작된다. 이후 200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 진행형인 2기 신도시를 거쳐 이제 그 계획이 공개되기 시작한 3기 신도시까지 우리는 많은 대규모 공공택지개발, 도시재정비, 그리고 신도시들을 만들어왔다. 이 도시들은 어찌 되었든 지난 40여 년간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의 삶터, 일터, 쉼터, 그리고 놀이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거주할 도시를 한번에 계획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는 최초에 계획된 것과 그 계획 위에서 의도와 다르게 우연히 벌어지는 많은 노력과 개인의 선택이 중첩되어 완성된다. 따라서 그 결과가 드러날 즈음 도시는 보통 초기 계획 및 의도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시를 계획한다고 발표하고, 또 실제 많은 도시를 지금도 계획하고 있다. 여기서는 남양주왕숙2 ‘도시 기본구상 및 입체적 도시공간계획’ 공모 당선팀의 일원으로 3기 신도시 계획에 직접 참여하여 대한민국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소회를 적어본다. 지속 불가능한 신도시 삶의 배경이자 정주환경으로서 도시의 첫 미덕은 지속가능성에 있다. 특정한 목적과 문제 해결을 위해 태어나는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보존처리된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이상지속가능하다는 것은 향후 적절한 비용으로 갱신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요구의 변화를 수용하여, 언제든 개조될 수 있는 융통성과 포용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한 지속성은 긴 시간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도시설계와 계획의 목표도일시적 문제의 단기간 내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좀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이어야 한다. 지속성의 확보 없는 신도시 계획 및 건설은 작은 대한민국이 가진 가장 값진 자원인 국토를 의미 없이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40년 대한민국 도시설계 역사에서 이 중요한 도시의 기본 미덕인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 충분한 논의와 노력이 있었는지 회의적이다. 광역교통의 부족으로 인한 출퇴근 교통지옥, 팔리지 않아 황량한 사업용지들, 활성화되지 않는 썰렁한 상업지역, 자족 기능이 고사된 그저 그런 베드타운 등등 그동안의 신도시들은 온전히 완성도 되기 전부터 이미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으며 인구 절벽을 눈앞에 둔 오늘날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심은 커지고 있다.

 

 

도시를 공동주택 상품으로 채운다는 것

1, 2기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3기 신도시도 단기간 내에 많은 주택의 공급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보통 정치적, 정책적 이유▼1에서 비롯된다. 남양주왕숙2는 녹지, 공원, 도로 등 기반시설용지를 제외한 가용한 도시 부분 용지의 68% 이상이 주택건설용지 혹은 주상복합용지다. 이런 신도시 내 주택용지들은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관성적으로 아파트라 불리는 공동주택으로 채워진다. 또한 공공임대, 공공분양 비율을 높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용지의 많은 부분을 민간분양에 의존하고 있다. 신도시의 많은 문제들이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민간분양이든 공공분양이든 공공임대든 신도시 공동주택용지들은 일단 네모반듯한 것이 선호된다. 부지의 모양이 반듯해야, 인동거리 등 까다로운 법규에도 불구하고 상품성 있는 배치와 충분한 지하 주차대수, 최대 용적률을 달성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지를 매입하려는 사업자(건설사나 시행사)가 정형의 부지를 일반적으로 선호하기 때문에 공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원활한 신도시 사업과 수익성을 위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부지를 반듯한 모양으로 계획하여 시장에 내놓게 된다. 신도시 공동주택용지의 한 필지, 한 블록의 규모는 대체로 최소 500세대 이상이다.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사업을 하게 되면 어린이집, 노인정, 근린공원 등 부대복지시설을 해당 사업자가 자기부담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는 신도시로 인한 재정부담이 적어진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도시 조성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는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이상 500세대 이상의 주택용지 조성을 강하게 요구한다. 공급하려는 주택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500세대 크기의 주택용지는 대략 3~4만㎡ 크기인데 이는 정방형일 때 한 변이 170~200m 정도이며 장방형일 경우 300m가 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중대 규모의 공동주택 블록들은 공공보행통로와 연결녹지로 아무리 묶고 연결하여도 결국 브랜드 아파트의 요새가 된다. 단지 내부는 선택받은 입주민, 그들만의 천국이지만 바깥의 도시로 열리는 것은 꺼린다.

 

 

위태로운 소셜믹스

위와 같은 이유로 신도시들은 예외 없이 정형의 대규모 브랜드를 가진 고층 아파트의 파편화된 블록으로 채워져왔다. 부대복지시설이 잘 갖추어진 규모 있는 아파트단지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불화한다. 브랜드가 주는 자존감과 단지 내 생활이 나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옆에 공공임대주택단지라도 들어올라치면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붙기 일쑤고 집값 하락 걱정은 서로 연결된 보행통로마저 차단하게 만든다. 이처럼 공고해진 영역들은 항상 분쟁과 문제가 발생하는 경계를 형성하는데 차량혼잡 문제, 쓰레기투기 문제, 따돌림, 폭력을 포함한 혐오범죄 등이 이 경계에서 발생한다. 영역과 편가름은 사회화되어 이런 단지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계급갈등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한 동 내의 소셜믹스▼2는커녕 한 단지 내 혹은 신도시 전체에서도 성립하기 어렵다. 하나의 평형으로 단지가 채워지고 임대, 분양, 민간, 공공이 각기 분리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성이 없는 상황은 예외 없이 사람을 소외시킨다.

 

 

고려되지 않은 도시사용자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도시를 완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다채로운 요소인 도시사용자를 별개로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신도시 계획에는 사람이 없다. 인구수만 있다. 3기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공모 당시주택 몇만 호 공급’이라는 요구 조건만 받았을 뿐. 그렇게 대규모로 공급되는 아파트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들은 어디서 유입되는지, 세대 구성(신혼부부, 노인, 청년 등)은 어떠한지, 어느 직업군에 속하는지, 도시사용자에 대한 어떤 정의나 예측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주택에 방은 몇 개를 넣어야 하는지, 교육시설은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복리시설은 어떤 종류가 좋은지, 공원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계획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부유하게 된다. 이처럼 대상이 흐릿할 때는 항상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관성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 결정의 바탕인 우리의 경험 또한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거주는 없고 주거만 남는다. 10년도 더 뒤 미래에 완성될 신도시는 이렇게 계획부터 시대착오적일 가능성을 안고 출발하게 된다. 심하게 말하면 청년 없는 청년주택이 서있고, 아이 없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실수요자는 소유할 수 없는 임대의 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자연과 반듯한 엔지니어링

다시 신도시를 채우고 있는 네모반듯한 대규모 공동주택 블록으로 돌아가 보자. 무엇이 먼저인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이 반듯하고 커다란 주거 블록 사이에는 직선의 도로망이 놓이게 된다. 500세대 이상 주거 블록의 한 변은 170~300m에 이르기 때문에 꽤 긴 직선의 도로가 조성되는데 교통의 원활한 흐름과 평균 주행속도 향상을 목표로 엔지니어링은 신도시 예정지의 아기자기하고 구불구불한 산자락과 논마지기, 하천과 개울을 심하게 자르고 파낸다. 세종시 중심행정타운에서 경험했듯 조성된 이후에는 원지형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언제나 신도시에 환경 훼손의 이슈가 따라붙는 이유다. 남양주왕숙2의 경우 세 개의 물길이 지나고 있다. 재난과 재해에 대비하는 신도시 엔지니어링을 거쳐 하천은 넓고 곧게 펴지고, 제방은 200년 만의 홍수에 대비해 높아졌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접 대지 지반고를 높이기 위한 대규모 성토를 수반하는데 그 흙은 공사비 절감을 위해 예정지 내의 구릉과 야산을 반듯하게 절단하여 마련한다. 네모반듯한 주거 블록 위에 상자 모양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반듯하게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다. 이 직선의 도로망에 차들이 쌩쌩 달리면 소음이 심해질 것이고 도시개발 시행자들은 민원이 걱정된다. 이때 환경영향평가는 도로에서부터 수십 미터의 건축물 이격이나, 커다란 범(berm), 높은 방음벽 등의 손쉬운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데, 도시의 가장 큰 공공공간인 가로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다시 말해 비오톱은 지켜야 하는데 성토를 위해 절토를 해야 하고, 교통은 높은 이동속도를 원하는데 소음은 심해진다. 주거나 교육시설을 소음으로부터 보호하자니 가로가 비인간적으로 넓어지거나 벽으로 둘러싸여 엉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지금의 신도시다. 도시는 전체론적인 세계여야 하는데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가진 계획과 불화하는 엔지니어링은 신도시를 결국 모순과 이율배반의 구도시로 이끌게 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서울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신기술과 함께 접어들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집적이 아닌 분산을 요구하는 포스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시대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며 우리에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지난 40여 년간 해온 우리의 도시계획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자동차를 위한 교통과 도로를 계획하고 있는 사이에 자율주행, 도심용 항공수단, 마이크로 모빌리티 등 새로운 형태의 이동수단은 계속 생겨난다. 또한 대중교통이 덜 발달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코로나19 감염자가 뉴욕보다 훨씬 적다는 통계가 도시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1인 가구가 주류가 되어가는 현재, 예전엔 맞고 지금은 틀린 것, 그것을 찾아내고 바꾸어야 한다. 작은 신도시 남양주왕숙2 공모안 제목은 ‘유유자족(悠悠自足) 도시였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금은 느리고 여유 있는 도시가 되기를 원했다. 5개월 남짓 MA(Master Architect)자문, LH, 여러 평가, 실시설계 엔지니어링사와의 협업을 거쳐 국토교통부 인가절차를 밟고 있는 지금의 남양주왕숙2는 더이상 유유(悠悠)하지 않다. 길은 곧게 펴지고 넓어졌으며, 블록들은 반듯하게 키워졌다. 공급주택 수는 공모보다 15% 이상 증가했고 디자인캠퍼스가 있던 공원은 그냥 유수지이다. 공모당시에는 맞았는데 진행하면 틀리다고 한다. 도시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과 제도는 항상 새로운 것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점이 살아 있는 도시보다는 하자가 없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자족할 수 없는 도시

역사적으로 감염병과 산업혁명은 도시를 여러 차례 크게 바꾸어왔다.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전염병의 시대를 맞은 우리 도시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곧 바뀔 것이다. 3기 신도시 계획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아직도 도시를 시발하는 원인은 매우 일시적이고 사소하며, 도시를 만드는 가장 큰 동인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도시설계 주체의 상상력과 선의보다는 자본주의의 효율과 수익성이라는 점이다. 앙리 르페브르가 수십 년 전 말했듯 이런 과정에서 도시의 본연적인 축제성▼3은 짓눌릴 수밖에 없고 도시나 도시거주자가 스스로 만족하기는 끝내 어려울 것으로 보여 매우 유감이다.

 

 

1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집값 안정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2 소셜믹스는 익명성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아파트는 면적 기반이다. ‘저소득층은 작은 평수의 아파트, 고소득층은 큰 평수의 아파트’로 아예 대놓고 드러내는 격이라 자연스러운 믹스보다는 구별, 구분이 지어지며 이는 차별로 귀결된다. 미국의 경우 한 건물 내의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무작위로 선정하고 다른 가격으로 공급(low-income unit, market-rate unit)하여 소셜믹스를 유도하고 있다.

3 앙리 르페브르가 1974년 저술한 『공간의 생산』에서 언급한 개념이다. 


조항만
조항만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 뉴욕의 그린버그패로우 아키텍처에서 실무를 거친 후, 뉴욕 H 아키텍처의 설립에 참여해 디자인을 총괄했다. 2013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지영과 함께 탈건축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종시 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 정부세종청사 1-1, 2-2, 2012 여수엑스포 국제관, 한국수력원자력 경주 화백 컨벤션센터 등이 있다. 그리고 2010 WAN 올해의 건물상, AIA NY 디자인 어워드(2009, 2010), 김수근 프리뷰상(2016), 대한민국목조건축전 준공 부문 본상(2018)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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