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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세미나 '공공성'

한광야, 전성은, 김종대
자료제공
한광야, 전성은, 김종대
진행
오주연 기자

한국건축가협회는 2019년부터 2020년에 걸쳐 매월 한 차례씩 ‘건축과 도시의 경계, 협업의 모색’을 주제로 건축과 도시 분야의 전문가가 도시재생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그간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 골목길 등의 공간에 대해 물리적인 구조는 물론 그 안의 삶에 주목하며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논의했다. 이번 시즌의 마지막 세미나의 주제는 ‘공공성’으로 세 명의 도시∙건축분야 전문가가 각각 공공성을 정의하고, 이를 추구하는 건축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도시와 마을, 대립하는 공공성

글_한광야(동국대학교 교수)

 

공간은 어떻게 도시와 마을이 되는가? 일상의 무대로서 도시와 마을은 어떻게 더 좋아지는가? 그리고 일상의 시민과 주민은 어떻게 공동체의 주인이 되는가?

이 세가지 질문은 도시와 마을에서 공공성(civic value)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방향성을 던져준다. 공공성이란 도시와 마을에서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며 생활하는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이다. 이 가치는 구성원의 물리적 환경으로 구현되어 개인의 삶의 만족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집단적 경험으로 공유되어 공동체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을 때 돋보인다.

 

도시와 마을, 전통 vs. 현대

도시와 마을은 전통 vs. 현대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전통적인 도시와 마을은 거주와 생산활동이 공존했던 공동체이다. 마을은 주택이고 공장이며, 하천은 생산수단이자 이동체계이며, 광장은 홍보와 판매를 위한 공동의 시장이었다. 개인의 목표가 모두의 그것과 일치되었던 농경 마을과 상업생산 도시가 그 예이다. 한편 현대 도시와 마을은 거주로부터 생산 및 사무 활동이 분리된 더 큰 공동체이다. 교육과 지식 생산의 학교, 만남과 소비 활동의 상점과 쇼핑센터,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교통거점이 그 중심과 경계를 구성해왔다. 구성원의 배경과 동기가 다양한 현대 공동체는 공통의 목표를 갖기 어렵다. 이에 협의와 중재를 유도하는 소통과 조율의 행위가 현대 공동체의 특성을 결정한다.

 

한국 도시와 마을의 변화 과정과 그 특성

한국의 도시와 마을이 갖고 있는 특수성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전과 후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지우고 싶은 기억과 함께 해체된 물리적인 흔적과 제거된 자료 때문이다. 오래된 도시와 마을, 그리고 현대의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는 변화 과정을 배경으로 한국 도시와 마을의 공공성과 공공영역에 관한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의 도시와 마을은 첫째, 지역 행정거점인 읍성(675-1890)과 일상생활의 거점이었던 우물터, 향교, 오일장터, 나루터, 비보숲이 형성한 원도심, 둘째, 일본지배기의 격자형 블록 체계(1890-1945) 위에 조성된 철도와 중앙역, 중앙시장, 은행, 병원, 학교 등의 구도심 및 공장과 창고, 셋째, 철도와 고속도로를 따라 강변에 형성된 산업단지와 주거지(1946-1994)와 버스터미널, 도서관, 대학촌의 신도심, 넷째, 도농 통합과 함께 원∙구도심에서 이전해온 철도역과 공공기능을 중심으로 개발된 아파트단지(1995-현재)의 또 다른 신도심으로 확장해왔다. 이러한 도시의 형성과 성장과정은 ‘도시성장=원도심+구도심+신도심’의 등식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오래된 원∙구도심은 쇠퇴하며 비워지는데, 외곽의 신도심은 지속적으로 개발되는 소모적인 성장이다. 또한 오늘의 중심이 내일의 경계가, 오늘의 경계가 내일의 새로운 중심으로 반복해서 변화해왔다.

 

또한 한국 도시의 성장은 도시권 교통체계의 건설로 시작되었고, 그 교통거점은 도시와 마을의 중심부를 지속적으로 변화시켰다. 교통거점이 갖고 있는 유동인구 흡입력은 상설 시장, 쇼핑센터, 백화점으로 채워진 독립된 거대 상권을 완성하며 주민과 상인 간의 불필요한 충돌을 유발시켜 왔다. 이러한 도시 확장은 도시개발을 결정하는 정부의 공공정책 사업으로 추진된 결과이다. 다수의 사업은 도시의 기능적 프로그램(관공서, 학교, 병원, 방송국 등)의 이전과 신축의 개발사업이었고, 그 뒤를 이어 민간의 대규모 주거지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유목민적 도시개발의 중장기 결과는 공공정책의 결정권자가 행정 임기 내에 책임질 수 없는 큰 도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원도심 vs. 구도심, 원∙구도심 vs. 신도심이 서로 의도치 않게 대립하며, 주민 vs. 시민, 골목상권vs. 쇼핑센터의 소모적인 대립과 충돌 구도가 만들어져 왔다. 원∙구도심을 가로지르는 2~3시간의 긴 통근 동선들이 도시권 내에 서로 분절된 거점 덩어리로 자리잡았다. 특히 원∙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이전된 시장, 학교, 종교시설, 음식점 등은 그 물리적인 장소와 공간에 배어 있던 주민의 오래된 과거와 기억을 지웠고, 도시와 마을은 옛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었다.

 

한국 도시와 마을에서 그 중심부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두 도로의 교차로 한쪽에 파리바게트와 그 대각선에 김밥천국을 두고, 맞은편에 편의점, 그리고 한 블록 옆에는 롯데리아를 두면 놀랍게도 도시와 마을의 중심부가 완성된다. 전국의 도시에서 확인되는 검증된 비법이다. 일상에서 먹고 사는 이 장소들이 중심부를 구성하는 것이 문제일 수 없다. 안타까운 현실은 이들 만이 우리 도시와 마을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마을주민의 활동 거점 / 자료제공_한광야

 

서울의 도시마을(서초구 서래마을, 용산구 용산2가동, 종로구 혜화동-명륜동)의 공간구조와 그 주민의 마을공간 인지지도는 세가지의 흥미로운 특성을 보여준다. 먼저 마을의 중심과 경계가 종교와 학교로부터 중심 상업도로와 지하철역으로 이전해 있다. 또한 마을 공간은 물리적인 환경과 건물 및 장소의 모습과 형태로 이해되지 않고, 일상생활의 기능적인 프로그램(상점, 빵집, 카페, 음식점 등)으로 인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상의 구심점인 쇼핑과 소매 활동, 만남과 사교 활동, 마을의 상징적 중심부가 주민의 연령, 문화, 성별 등의 조건과 배경에 따라 상이하게 분포한다. 이러한 마을내 활동 거점의 다분화는 대중교통(지하철, 버스)의 도시통근권과 마을버스 및 보행 중심의 마을생활권의 두 생활 영역이 중첩되어 작동하며 가속화되고 있다.

 

공공성의 조율

공동체의 공공성은 그 구성원의 도시 정책과 마을의 가치에 따라 변화하며, 때로 도시의 공공성과 마을의 공공성은 상호 대립하고 충돌한다. 도시와 마을을 구성하고 주도하는 주체의 믿음과 생활방식은 서로 다른 공공성을 만들어 내고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정책에 따라 도시의 구조와 마을의 중심부가 변화하고, 이 과정에서 마을의 기능과 정체성이 변화해온 우리 도시의 성장과정에서 확인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공공성을 추구하는 도시와 마을은 어떻게 함께 관계할 것인가?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과 주민은 어떻게 함께 생활할 수 있을까? 과연 도시와 마을의 소통과 교류 활동이 대립하는 공공성을 조율할 수 있을까?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대립은 상당부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의심과 오해에서 시작되며 종종 감정적 충돌로 굳어져 왔다. 마을과 도시의 공공영역은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오해와 초기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다.

최근 서울의 도시재생지,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밀집된 저층주거지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 변화는 공공의 주도가 아닌 민간이 마을에 공공성을 가진 공공의 영역을 조성하려는 작은 시도들, 빨간 벽돌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리모델링으로부터 추진되고 있다. 

용산2가동에서는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아담한 미술 전시관(갤러리 더월, 2020)을 개관하여 마을주민으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다.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 숲길 안쪽 블록에는 다세대주택을 민간이 임대하여 리모델링한 후 공방, 카페, 상점 등으로 구성된 공유 오피스(기록상점, 2019)를 구축하여 마을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편 은평구 구산동에는 구청이 보건소 옆의 10개의 필지를 매입하고 이중 3동의 다세대주택들을 마을협동조합과 함께 마을도서관(구산동 도서관, 2016)으로 리모델링한 공민협력 사례가 있다. 이제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공공성을 찾으면서 도시의 공공성을 또한 채우기 시작하여 그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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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공공공간

글_전성은(전아키텍츠 대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생각 있는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도시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 중 매우 중요한 것이 공공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성, 공공영역이라 하면 국가나 공공단체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사회기반시설, 공공건축물에 국한해서 존재하는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도시의 질과 모습은 국가 주도의 공공영역보다 사적 활동과 사유재산이 움직이는 곳에서의 결과가 더 영향력이 크다. 

공공영역을 정부나 제도에만 의존할 경우 행정 중심의 경직성을 지니며, 사람들은 관리의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요구만 하거나 누군가 대신하여 계속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제도권을 넘어서 사유 영역에서 공공성을 끌어내는 것이 범용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각종 관련법과 지구단위계획 등으로 개인의 건축행위를 통제하고 있으며, 심의제도와 허가제도 등을 통해 강제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도시에서 실시간으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 각종 활동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개인의 사유 영역에서 공공성을 이야기하면 손해나 침해로 보는 경향이 있어 단순히 공공을 위해 내놓으라 하는 것은 무리다. 공공성을 위한 사유의 의식을 바꾸기 위한 작업은 좀 더 전략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사유의 의식, 사유의 공간을 공공성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으로, 자유주의 경제 방법론에서 선택설계자가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도시계획가, 건축가가 선택설계자가 되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공영역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에도 공공성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건축적 방법론, ‘아키텍처럴 넛지(Architectural Nudge)’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키텍처럴 넛지 1. 소유 개념으로 바라본 공공성

공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공동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가장 흔하게 보는 공공의 영역인 도로는 국가의 소유이고, 지자체의 소유이고, 시민의 소유이기도 하다. 공공건축물을 설계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땅은 서울시, 건물은 구청 소유인 경우도 흔히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보이지 않은 작은 소유를 여러 곳에서 함께 누린다는 점이다.

공공을 공유의 개념으로 보면 좀 더 쌍방간의 합의와 존중이 바탕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도시에서 공공의 측면을 고려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고자 할 때 공개 공지를 할애해야 하는 법규가 있다. 하지만 누가 선뜻 내놓겠는가? 아무리 다수에게 좋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희생이 따른다면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또한 물리적인 인센티브 전에 의식의 인센티브가 우선되어야 한다. 사유 공간의 일부를 가치 있게 공공 영역화하고, 그런 사적 공공공간이 많아지면 결국 한 개인이 향유할 수 있는 공공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 현대사회의 공공은 이렇게 소유 개념을 가진 공유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아키텍처럴 넛지 2. 사회적 역할론으로서의 건축

개발 논리와 성장주도 하에 새로 지어졌던 많은 건물들은 사회적 역할의 부재로 도시의 모습뿐 아니라 질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형 공동주택 아파트는 장소의 특징이 무시된 건조함, 다양한 개인의 생활을 수용하지 못하는 획일성을 보여왔으며 소통 단절의 주범으로 지적되었다. 폐쇄적 단지로 인한 도시 소통과의 단절, 편의성만 강조된 구조로 인한 세대 간의 소통의 단절은 도시가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공동성과 대치된다. 이 문제의 근간은 공동 주거의 사회적 역할론의 부재, 곧 ‘공공성의 부재’에 있다.

대지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잠재성이 달라진다. 내부에서만 보는 기능적, 경제적 접근으로는 단순한 경계성, 폐쇄성을 만들어 내고, 도시에서 보여질 수 있는 숨어있는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 이 가능성을 캐내는 것이 도시를 보는 건축가의 역할이며, 장소의 결정성을 찾아냄으로써 좀 더 의미 있는 확장된 도시로의 연결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덕강일10단지 조감도 / 자료제공_전성은

 

아키텍처럴 넛지 3. 느슨한 경계

개인과 공공영역 사이에 우리는 흔히 담을 친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영역에 대한 소유의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인간은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하며 공동체에 소속됨으로써 안정감을 가진다. 도시의 삶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에는 이러한 물리적 경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경계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풀면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고, 공공이 개입하지 않은 듯 컨트롤이 가능할까? 그 해답 중 하나는 느슨한 경계를 만드는 일이다.

서울시 고덕강일지구 10단지 현상설계 당선안은 흔히 단지라 말하는 공동주택 블록 안으로 도시의 경계가 스며들게 하기 위해 경계부에 전략적으로 저층형의 주동을 배치하였다. 주동의 날개형 구성으로 작은 위요된 공간이 발생하게 하였고, 도시와 블록 사이의 경계를 담이 아닌 공공공간으로 대치하였다. 이 공간은 주동의 작은 마당이면서 동시에 도시로 열린 새로운 생활 가로가 된다. 또한 이 공간은 필로티로 연결되어 블록 내로 도시민의 흐름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직교로 만나는 연결형, 복합형 주동 시스템에 의해 구성된 입체적 중앙광장은 주변 단지와의 연결공간이면서 주민들의 다양한 선택적 자유에 대응하는 공간으로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만드는 장소이다. 즉 도시로 열려있지만 전략적으로 구성된 건축물이 담을 대신한 방법이자, 사유지에 공공공간을 자연스럽게 개입시킨 방법이다.

 

 

고덕강일10단지 투시도 / 자료제공_전성은 

 

아키텍처럴 넛지 4. 일상에 스미는 외부공간

건물에 붙어서 만들어지는 외부 공간 - 테라스, 발코니, 베란다, 필로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폐쇄형 발코니는 주택의 전용면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법규로 인해 외부공간을 만날 확률은 더 낮아졌다. 혹여 이 규정이 오용될까 사무용 건물에는 법적으로 아예 발코니를 두지 못하게 하거나, 필로티는 막아서 쓸 수 있다는 가정이 너무나 확고해 아예 심의 때 캔틸레버 공간을 가진 건축물을 임의로 잘라내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규정과 습관들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입체적 외부공간을 거세해 버렸다.

돌출된 발코니는 분명 개인의 영역이지만 일상에서 외기를 접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고, 다른 층의 발코니에 나온 사람과 시각적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열린 공동체를 위한 건축적 장치이다. 폐쇄형 발코니는 사람들과 소통 가능 영역을 사라지게 했을 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의 입체적 가능성을 감소시켰다. 테라스와 필로티 하부는 개인 영역이 도시와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외부공간이다. 이곳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휴먼스케일에서 보는 건축물의 미감이 달라지며 길의 풍경도 달라진다. 우리는 도시의 외부공간을 창출하는 이 건축장치들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아키텍처럴 넛지 5. 개인의 삶에 열린 공동의 장소

도시에 산다는 것은 개인에서부터 가족, 회사, 학교, 그리고 단지 및 도시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도시 밖에서부터 집에 이르는 길에 여러 가지 일상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하며 이를 수직, 수평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다층적 공공공간이 있을 때 도시의 삶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공동주택 단지들은 법의 규제만 고려하여 평형별 실내 유닛과 외부공간을 이분법적 수직으로 쌓은 삭막한 공간을 생산해왔다. 사실상 도시가 다양한 삶의 패턴에 부합하지 못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다양한 삶에 반응하는 길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을 유도하고, 그 일상의 패턴이 축적되면 풍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동체의 장소로 구현된다.

기존의 공동주택은 집에 가는 방법이 하나의 코어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고덕강일지구 10단지 현상설계 당선안은 다른 해법으로 변화를 제안하였다. 어느 코어에서도 자신의 집에 가기 쉬운 방법을 담아줄 주동 구성이다. 주민의 특성에 따라 선택적 자유가 보장되고 이 선택적 자유는 곧 구성원의 특성이 반영된 생활패턴을 형성한다. 구성원의 삶의 패턴으로부터 나오는 저마다의 길이 가능하다. 학교 가는 길, 출퇴근하는 길, 시장 가는 길 등, 비슷한 일상의 마주침은 스치는 인연을 넘어 그들만의 공동체의 기본이 된다. 주민을 연결하고 주민의 다양한 삶에 반응하는 길을 제공하는 네트워크 플랫폼으로서의 공공공간이다.

 

 

자료제공_전성은

 

아키텍처럴 넛지 6. 불확정적 다가치의 공간

도시는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장소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불확정적 공간의 여지를 지녀야 지속가능한 건축이 될 수 있다. 주민의 수요에 반응하고 개인이 주체가 되어 그 성격이 규정되는 곳, 사람들의 다양성에 반응할 수 있는 다가치의 공유공간, 즉 해석할 수 있는 건축, 사용자들의 다의적 공유소(共有所)가 필요하다. 공유소는 특정 시설을 가질 수도 있고, 비어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길의 흐름 속에 멈춰지는 마당일 수도 있다. 사용자의 해석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특별한 장소이다.

 

아키텍처럴 넛지 7. 스마트 반응체로서의 건축

스마트하다는 것은 다양한 변화에 반응이 빠름을 의미한다. 다양성에 대응하는 것은 공유공간과 공유시스템의 구성이다. 주민의 필요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은 스마트 라이프를 경험하게 한다. 주민의 수요에 의해 생성되고, 주민이 주체가 되어 거버넌스로 진화하며,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공간이 생성과 소멸하고, 그중에서 다시 재창조된 공간들은 지속가능한 공간이 된다. 이렇게 변화하는 가능성의 공간들은 살아있는 도시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는 플랫폼의 구축에서부터 참여형 커뮤니티의 구성, 운영까지 단계별 구축 지원이 사실상 필요하다. 정부나 지방단체 등의 지원은 사업 시행 초기에 운영 재원을 확보하고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스마트 인프라 구축의 지원과 수익형 부대시설의 확대는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이고 안정된 커뮤니티를 실현 가능하게 한다. 지역과 협업하는 리빙 랩, 메이커 스페이스의 활성화 등 주민참여 플랫폼 도입은 주민에 의한 거버넌스로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민참여형 거버넌스 구축이 완성되면 협동조합 설립을 돕고, 그간 모은 자료들의 분석을 통해 주민의 수요에 반응하는 자생적 서비스, 지속가능한 공공공간이 앞으로의 도시에 필요하다.

 

아키텍처럴 넛지 8. 반복적 일상 속의 친밀한 공간

상업시설이 들어와 골목을 예쁘게 만들면 골목에 생기가 돌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나 모든 골목에 상업시설을 넣을 수도 없으며, 상업시설에 의존한 도시재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정작 원주민의 정주성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우리는 주택이 사무실이 되고, 학교가 되는 등 건축물 용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건축물은 여러 활동이 가능하게 복합화되고 그러면서도 다양함을 받아주기 위해 단순화될 것이다. 그리고 일상과 좀 더 가깝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성은 이제보다 더 작은 단위의 시간, 공간에서 나타날 것이다. 어떠한 장소가 여러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어 그것의 반복과 패턴이 생기면 사람들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그곳을 즐기는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런 공동체가 발생하는 곳에는 선한 공공성이 따라온다. 주민들이 애착을 갖는 장소가 많은 곳은 활력이 있고 오랜 시간 지속되면 그곳에는 친밀한 정주가 자리 잡는다. 친밀한 정주가 있는 도시는 좋은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건축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반복적 일상 속에 사랑받는 장소가 생길만한 공간과 장을 만드는 것이다.

 

자료제공_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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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과정으로의 공공성

글_김종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사회적 과정이란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소수 엘리트의 독단적인 판단과 결정이 아닌 다수 집단의 협력과 소통으로 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정부의 자금이 투입되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사회적 과정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유는 공공의 선을 위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의사결정 협의체(거버넌스)를 구성하고 함께 도시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의 표출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민주적인 협의를 거치면서 주민들은 결과에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과정으로의 공공성은 일반 시민들을 단순한 문화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인정하는 문화 민주주의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시민들이 마을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주체로 나서서 이루어낸 긍정적인 결과를 몇 가지 소개한다.

 

(좌) 전봇대와 담장 사이의 화단이 골목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우) 버린 변기가 예술품이 되었다. ⓒ김종대

 

광주 외곽에 있는 시화 마을의 입구는 술집들이 다수 포함된 상가가 있는 곳으로 밤이 되면 술에 취한 사람들이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와 몰래 소변을 보기도 하고 먹은 것을 토해내는 볼썽사나운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주민들은 경고문을 붙이기도 하고 구청에 민원을 넣어 보기도 했지만, 말썽부리는 취객들을 쫓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민들이 모여 대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취객들이 소변을 보는 장소를 원천적으로 없애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민들이 모여 살펴보니 담과 전신주 사이의 작은 공간들이 문제임을 확인하고, 이런 공간들을 찾아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기 시작했다.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자 취객들의 말썽이 골목에서 사라졌다. 주민들은 이 신기한 결과에 신이나 화단 가꾸기에 더 많은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다. 화단 뒤로 쪼개진 타일을 사용해 벽화를 만들기도 하고 수리하고 버려야 할 양변기를 화분처럼 사용하는 예술적인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좌) 어두웠던 둑길을 지키고 있는 김광석 (우) 밝아진 길 덕분에 대구의 대표 명소가 되었다. ⓒ김종대

 

지금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유명해진 대구 방천시장의 둑길, 그 시작은 2009년 문화부에서 지원하는 시장 활성화 사업이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방천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들이 진행되었지만 한번 발길이 끊긴 노쇠한 시장을 찾아오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방천시장 옆으로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된 둑길은 낮에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고 후미진 골목이어서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에 상인들과 주민들은 이 둑길을 바꿀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생들과 지역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더욱 강력한 소재와 이야기가 필요했고 주민들은 시장 근처 동네에서 가수 김광석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김광석은 방천시장 인근에서 5살까지 살았던 것이 전부였지만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방천시장 둑길이 가수 김광석을 기념하는 벽화와 조형물로 채워지기 시작하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다.

 

(좌) 상인이 직접 그린 비행기를 디자인으로 삼았다. (우) 시장 인근에 상인 박물관이 조성되었다. ⓒ김종대

 

수원에 있는 못골시장에 가면 비행기가 그려져 있는 떡 가게 간판을 볼 수 있다. 이 간판은 떡집 사장님의 어릴 때 꿈인 비행사를 형상화한 것으로,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 이루지 못한 꿈을 간판의 소재로 만든 것이다. 비행기 간판이 떡집에 걸리자 많은 손님들이 그 배경을 궁금해했고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꿈 이야기도 함께 공유하는 떡 구매와는 상관없는 상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신뢰가 쌓여가는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도 나타났다. 이 가게뿐만 아니라 못골시장의 87개 점포의 간판은 사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상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시장에 설치된 방송용 스피커를 이용하는 시장 방송국으로, 상인들이 단원인 상인 합창단으로 확대되었다. 못골상인들의 이야기가 TV에 소개되면서 홍보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못골시장은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요인들을 발굴하여 홍보의 수단으로 삼는 내발적 문화 전략을 시행한 첫 번째 전통시장이 되었고 이 사례는 다른 시장의 홍보전략의 기준이 되었다.

 

(좌) 복도에 설치된 손 세정 전용 공간 (우) 학생들의 요구는 디자이너의 생각보다 높다. ⓒ김종대

 

오래된 학교 건물의 화장실은 놀라울 만큼 시대적 기준에 뒤처져 있다. 환기가 잘되지 않아 냄새가 심각한 경우 외에도, 복도에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일자식 구조는 학생들의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울시는 교육청과 함께 학생들의 초∙중∙고등학교 화장실을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업의 특징은 화장실 사용자인 학생을 포함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화장실 조성에 학생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운영하다 보면 재미있는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휴지를 어디에 둘 것인가’이다. 학생들은 휴지를 용변 처리에만 쓰는 것은 아니었다. 휴지에 물을 적셔 화장실 천장에 붙이는 장난으로 낭비가 심각해 심지어는 화장지를 교무실에 비치하고 필요할 때마다 주는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논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대변기 칸막이 안에 휴지를 걸 수 있는 장치는 설치하되 학생들 스스로 관리가 잘 될 때까지 칸막이 밖의 공용 휴지를 이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었다. 

 

(좌) 주민들이 추억과 새로운 수요가 공존하는 마을 공동체 활동공간 (우) 보존 부분과 신축 부분의 조화 ⓒ김종대

 

부천 소사의 마을( )공간은 기존에 있던 60년대의 전형적인 벽돌 건물을 활용해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이 건물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주민들과 함께 모색하고 방향을 잡는 일이었다. 이 공간 안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확인하고 그 목적에 맞게 건물의 남겨야 할 부분과 새로운 기능을 수용하기 위해 고쳐야 할 부분을 정했다. 설계에 착수함과 동시에 운영계획 수립과 운영자 교육도 했다. 공사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주민들과 함께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 준공에 이르렀는데 건축가는 전 과정에 개입하여 총괄 계획자의 역할을 했다.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치와 옛 건물과 관련된 추억은 새롭게 태어날 조형의 기초가 되었다. 기존 건물의 외부 형태를 남겨두면서 단열성능을 확보하고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규모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새로 조성된 건물의 붉은 줄무늬로 된 파사드는 기존 벽체를 보존한 결과이며 높은 목구조의 지붕은 큰 규모의 실내공간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사회적 과정으로의 공공성을 위한 건축가의 역할

공공건축물, 공공공간의 경우 집단의 협력과 소통을 통해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때 건축가는 총괄적인 계획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총괄 계획자로서의 건축가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사업과 관련된 집단의 견해와 희망이 결과물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대상지에 나가기 전에 사업지와 관련된 주민들과 만나야 하며, 멋진 건축물을 구상하기 전에 주민들이 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하여야 한다. 가장 좋은 건축물은 사용자들이 만족하는 건축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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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토론

 

정승이(유하우스 대표): 주민들과 같이 만들어 가는 것에 건축가들의 착각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실제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땅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한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이야기를 할 때 더 빨리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쁜 나무를 같이 심자고 하는 것보다는 “가장 좋은 나무를 심어라”, 대문을 만들더라도 “다른 집보다 더 예쁜 걸 만들어라” 이렇게 말한다.

 

한광야: 도시재생사업에서 골목을 개선한다 했을 때, ‘왜 우리 집 앞은 안 해주냐’ 주민 각자가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게 의미가 있다. 현장에서 회의를 통해 이기적인 요청이나 부탁이 주민들 사이에서 정리되는 과정을 종종 경험했다. 주민들의 회의 과정은 지혜롭다. 이런 과정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김선아(SAK건축사사무소 대표): ‘​마을과 도시의 공공성이 충돌할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 추가 설명 부탁한다. 

 

한광야: 마을의 중심 도로를 외부 시민이 교통정체 구간을 피하기 위해 지역권에서 우회도로로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지역권 시민의 통근 차량은 마을 내 중심부 교차로에서 교통사고를 증가시키고 마을주민의 보행환경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는 서울 내 상당히 존재한다. 이 경우 마을 주민에게는 불편함을 넘어 보행 안전과 생존에 관한 권리가 도시를 구성하는 마을의 기능과 충돌한다. 즉 마을이 주장하는 공공성과 도시가 기대하는 공공성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김선아: 그 충돌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한광야: 풀기 어려운 문제이나,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신도시나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될 때 종종 발생하는 문제이다. 마을 입장에서는 혐오시설이지만 도시 전체의 필수 시설 역시 공공성이 충돌하는 경우이다. 이는 곧 부분과 그 전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상생할 것인가의 이슈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마을(부분)과 도시(전체)의 대표자가 상호 주장을 확인하고 협상과 타협하고, 또 지혜로운 누군가가 중재를 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 방법은 행정 소송을 통한 해결일 것이다.

마을에서는 어떻게 당면한 문제에 대처할 것인지, 마을이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변화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경우, 주민 대표나 대표성을 갖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이 조직이 타협과 협상하는 프로세스의 주체가 될 것이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주민들 간의 의견이 도중에 나누어 질 수 있고, 행정 주체에 대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김선아: 종로 3가 도시재생지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에서는 차 없는 거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주민들은 반대한다. 이 지역은 제조업들이 밀집해서 있는 곳으로 도매, 소매, 유통이 공존한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차가 다녀야 한다. 주민들은 자신의 생업을 지켜야 하는 반면, 서울시와 종로구는 차 없는 거리가 되면 서울시민 모두가 그곳의 문화유산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더 큰 가치를 생각한다. 10년 전 같으면 서울시의 가치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 사는 사람이 행복해야 그 마을에 오는 서울시민이 행복하다. 마을이 원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님비(NIMBY) 현상과 같이 지역의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공공성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공공성이 충돌할 때의 해결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김성아(성균관대학교 교수): 스마트 반응체라는 개념적인 요소를 물리적으로 혹은 기능적으로 표현한 형식이 궁금하다.

 

전성은: 고덕강일지구 10블록은 서울주택공사(SH)에서 현상설계를 했지만 시행사가 주인이 되면서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다.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공유도시 - 공유역 - 공유소’라는 새로운 개념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공간으로 분리를 한 것이다. 공유역에 해당하는 것은 체육시설, 어린이시설, 노인시설, 도서관이 있는데 10단지에서는 주민만 쓰는 것이 아니라 개방하게끔 되어있다. 위치를 어디에 할지, 예를 들어 어린이집과 연계성을 다 보고 담이 안 생기면서도 내가 사는 곳이 아름답고 좋게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공유소는 주민들의 선호에 따라 다용도로 쓰일 것이다.  우리가 보는 건물형식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들이 있다. 오픈 공간이 있고 반오픈의 공간들도 있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사용한다. 모두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으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었다. 

 


자료제공_전성은​ 

 

김선아: 고덕강일 10단지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단지 안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들이 공공성과 무슨 관련이 있나? 정면부에서 외부인들도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럼 안쪽에 있는 공간들에 외부인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지, 또한 거주자들이 그걸 허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전성은: 다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다 트여 있어 심리적인 부분을 고민했다. 사람은 위협에 대해 항상 방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위요된 공간이 좋아 보여도 삼면이 다 막혀 있으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전면이 다 뚫려있어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지만 사람들은 어느 영역 이상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는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적용되었고,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김윤수(바운더리스 건축사사무소 대표): 다양한 공유 공간의 디자인을 넘어서 실제 운영까지 왔을 때 시행사의 역할과 태도가 궁금하다. 사용자 참여와 협동조합을 통해 사용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운영에 있어서 상가 및 기타 시설을 분양할 것이냐, 분양하면서 임대를 할 것이냐 또한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운영이 붙으면서 문제점이 많아진다. 고덕강일지구 10블록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전성은: 현상설계를 통해서 당선되었는데, 설계지침에 운영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초반에는 시행사 쪽에서 같이 운영을 하고, 3년, 6년 후 두 차례에 걸쳐 개인으로 이관된다. 정착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돈도 벌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동안 설계를 하면서 안 해보던 고민을 했는데, 시행사도 문제지만 기존의 법 자체가 새로운 공동주택 시스템을 만들기에 부적합한 부분이 있다. 초기에 정해지는 공동주택 세대 수는 정량적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단지 개념의 공동주택은 도시의 주거 수요에 의한 것이라 정해진 세대 수는 사실상 증감 조정이 어렵다. 세대 수는 정해져 있고, 환경 개선을 위해 오픈 공간을 넣으려면 요구되는 건페율과 용적률 안에서 해결이 어려워, 결국 기존과 같은 형식으로 돌아가는 결과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의 아파트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공동주택을 정착시키려면 기존 법규에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지정우(이유에스플러스건축 공동대표): 사용자 참여 설계를 하고 있어서 김종대 발제자의 이야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비전문가인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다 보면 결국 뭘 넣을지 뺄지 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기능만 충족이 된다고 해서 공간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공간을 실제로 디자인해야 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많은 경우 논의의 과정들이 여기는 무슨 실, 무슨 기능 이렇게 마무리되곤 한다. 기능은 미흡하더라도 잘 디자인되어 있는 구간을 건축가가 만들어 두면 사람들은 또 다른 감흥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갈등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김종대: 디자이너와 의견을 모으는 사람이 분리될 필요가 있다. ‘문화매개자’는 사실 디자이너가 아니다. 필요한 것을 모아서 보내주고 디자이너가 조금 더 독립적으로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서 할 수 있도록 프로모션을 해줄 필요가 있다. 작년에 전국에 있는 유휴공간 22개를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연구를 했는데 PM이나 PA가 있어서 성공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건축가가, 디자이너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자라나는 건축가들이 업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영종(알이도시건축 소장): 강북구 수유동에서 골목길 도시재생을 진행했다. 경사지 골목길 약 50m, 단독주택 13세대 정도가 공유하는 골목길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도시재생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주민들의 의견을 받았는데 만나기도 어려웠지만, 거의 두 달 동안 이야기를 했다. 담장을 허물겠다는 사람, 유지하겠다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면서 설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용역비가 4,000만 원이 안 되는데 무한한 공사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보람을 느끼긴 했지만 돈이 안 되고 힘이 빠졌다. 이런 상황은 개선 방법이 없을까?

 

김종대: 그런 점 때문에 세미나를 계속하고 있다. 도시재생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봤을 때는 사실 새로운 건축가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보니 당혹스러운 것이다.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학교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건축가는 늘 하던 것만 하고 있다. 설계비는 공사비 대비해서 나오다 보니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오로지 디자이너를 양성했다면, 이런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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