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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나머지론

정이삭
사진
노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세미 기자
background

균형과 이형 

 

대개 나의 작업은 주변적이거나 무성적인 나머지 영역에서 정규분포 밖에 위치하는 비주류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것 같다. 나는 중심 바깥에 있는 평범한 서사들도 충분히 기념되고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태도를 압축해서 ‘나머지론(Rest-ism)’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말 그대로 주변적이고 방치된 찌꺼기 같은 것이고, 변해도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란 저울의 균형을 찾기 위해 필요한 부족한 것과 남은 것을 뜻하는 균형을 위한 나머지의 의미이기도 하고, 기형과 편차, 그리고 이상과 이례를 뜻하는 나머지의 의미이기도 하다. 침묵하고 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이 사회의 고정관념과 단순 추종자들도 또 하나의 나머지로 볼 수 있다.

 

©a.co.lab architects

 

연평도 도서관(2014 ~ 2015)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연평부대 장병과 섬 주민을 위한 도서관을 만드는 작업. 군 장병들과 함께 도서관을 구상하고 일부 공정을 함께 시공. 

 

금호동 어린이 미술관(2015)

국내 최초 어린이 전용 미술관인 헬로우뮤지움의 금호동 이전 작업. 금호동 지역 어린이들이 가진 미술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계획.

 

한양도성 회현 자락 연구(2016)

한양도성 회현 자락의 현장유적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기본 구상 연구 용역. 한양도성을 폐허인 상태로 보호각 처리하고, 조선신궁과 1970년대 분수대 터 등을 모두 병치하여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리.

 

 

마장동 주민센터(2015)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의 첫해 작업. 내부 리모델링에 한정된 사업이었지만, 노인이 많은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외부 경사로를 완만하게 조정하는 것을 우선으로 진행.

 

학교 화장실 개선사업(2015 ~ 2020)

학생 수 감소로 화장실 대소변기 숫자가 줄어들어 생기는 잉여의 공간에 그간 결핍되었던 기능을 학생들 스스로 찾아가는 교육으로서의 공간 개선 작업(난향초등학교, 성산중학교, 영도초등학교, 북악중학교, 여의도여자고등학교, 지향초등학교 등).

 

 

시흥 LDK랩(2018)

시흥시는 주민 평균 연령이 37.9세로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젊은 도시. 하지만 시흥의 20~30대 약 40%가 10년 후 이주 의향이 있다고 응답. 시흥 LDK 랩은 청년들이 겪고 있는 지역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책을 마련해나가는 실험의 공간. 교회로 사용되었던 철골 샌드위치패널 구조의 가설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작업(공동설계: HAPSA, 홍진표 / 의자 디자인: 심승연).

 

동두천 햇살 큰방(2015 ~ 2016)

일반 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고, 동두천은 경기도 내에서도 기초수급자가 가장 많은 곳. 장애인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복지관에서 보내기에 열악한 개인 주거환경을 대신하는 복지관의 공간 개선을 주거 복지 측면에서 접근. 추후 중층 확장성을 고려하여 계획.​​ 

 

 

목동 골목 끝 책방(2018 ~ 2019)

서울 목동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 공중화장실을 리모델링하여 주민들의 사랑방을 조성하는 작업. 서울디자인재단 컨설턴트로 자문을 진행하였으나, 책정된 예산이 시공비만으로도 부족하여 재단에서 매칭해준 청년 디자이너를 지도하여 설계 및 감리를 진행.

 

파주 씨타델 카&페(2019 ~ 2020)

개와 고양이로 대변되는 나머지를 위한 성채. 영원의 무게감을 가진 공간에서 초개와 같은 삶을 원하는 아노말리형 건축주를 도와 그가 평생을 추구해온 나머지의 형상을 찾아가는 작업.

 

©Hyeonsoo Jang​

계단 너머(2019)

남영동 대공분실이 완전히 시민화되는 것을 기념하는 첫 번째 개방 전시에 작가로 참여. 그곳에서 발견한 건축장치(원형계단, 차음벽)와 일상성의 흔적(식당, 폴리카보네이트)을 재구성하여 장소의 기억을 환기하면서도 그 너머의 논의를 희망하는 구조물 제작. 

 

윤중중학교 선생님의 집들(2019)

5인조합 대항형 책상배치의 시대적 적합성을 의심하며 선생님들의 책상을 하나의 집처럼 배치하고, 숨은 천장 공간을 발견하여 외부 공간처럼 느껴지는 조명을 계획한 교무실 리모델링 작업. 학생과의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교무실이라는 도시, 그리고 선생님의 집들.

 

적층의 나무(2018)

수원시립미술관의 〈구조의 건축〉전에 참여작가 및 공간 디자이너로 작업. 돌로 만들어진 수원화성의 공간 조직과 건축 구법을 돌과 전혀 다른 물성을 가진 나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재현 및 재구축하는 실험. 

 

 

 

뒷문의 도시


나머지의 도시는 혁신적인 기술 없이 다분히 반복적이다. 그것은 건축가 없는 건축이 대부분이고 전체보다는 부분적인 것에 집착한다. 하지만 나머지의 도시는 주장하지 않고 답하듯 그 행위가 반복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다. 절실함에서 나오는 자유롭고 솔직한 나머지의 형상은 향수가 아닌 기억의 전통이라는 논리의 창작물이기도 하다. 그 기억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나머지를 나머지로 유지시키며 동시대성을 더하는 개입의 방식이 나머지 도시에 대한 내 건축의 태도이다. 그러한 도시 건축적 개입은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혁신이 아닌 미시적이고 구상적인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난 건물의 정면보다 그 뒤편의 나머지를 관찰한다. 건물의 뒤편이나 껍질 속에는 멋진 파사드를 위해 침묵하는 거칠고 절실하며 솔직한 기술이 있다. 중심은 도시의 대표적 특징을 드러내지만, 그 중심들의 사이 영역이나 배후지의 수많은 이야기 없이 그 특질은 완성되지 못한다. 도시의 배후지에는 전체의 중심성을 형성하는 수많은 부분으로서의 숨은 동력이 존재한다.

 

 

파사드 안의 파사드(2016 ~ 2017)

영동초등학교의 외벽 균열을 보수하고 그때그때 증설한 수많은 배관 배선을 정리하여 새로운 입면을 만든 작업. 새로운 입면이 기존의 것들을 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여 이 다음의 새로운 입면도 가능하도록 계획. 새로운 입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입면이 계속해서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 

 

노란 평상(2016)

다 같이 합의한 적 없음에도 한반도 전역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만드는 노란 비닐 장판의 평상을 고치는 작업. 필요에 의해 불완전하게 만들어지는, 사유와 공유의 경계에 놓인 사물에 공공 건축이나 미술이 개입하는 실험. 

 

낮은 계단(2017)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과 테라스를 연결하며, 다리가 불편한 거주자가 편히 사용할 수 있는 낮은 높이의 연결 계단과 경사로를 만드는 작업.

 

 

청파동 아흔살 집(2017 ~ 2019)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에서 벗어나 구라파로의 진입)론을 반영한 일식과 양식이 혼재된, 그리고 이후 90년 동안 한국 풍토에 순응한 일식 가옥을 최소한의 동시대성만 부여하여 리모델링한 작업.

 

양지리 예술가 레지던시(2013 ~ 2014)

1973년 조성된 남한의 대북 선전마을 철원군 양지리의 한 민북가옥을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리모델링 하는 작업. 민북가옥의 원형은 동시대적으로 복원하고, 증축하여 사용하던 영역은 적극적으로 리모델링하여 작업 및 전시 공간으로 조성.

 

프로젝트 서울 어패럴(2017)

동대문의 배후지 창신동의 산업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제안하는 작업. 젊은 디자이너와 객공이라 불리는 프리랜서 노무자가 함께 일하는 단위 공장 계획(공동 기획: 김승민 / 참여 작가: 한구영, 정희영, 이지은, 조서연, 루크 스티븐슨, 마리 메조뇌브, 백종관). 

 

©a.co.lab architects​​

 

미루나무들(2018)

한강철교 주변 한강변으로 연속되는 미루나무가 끊어진 구간에, 뽑힌 미루나무 자리로부터 동심원을 만들어 그것들이 중첩된 형상으로 기능의 가능성만 있는 사물을 만드는 작업. 사라진 것은 기념하고, 아무 곳도 아닌 곳이 계속해서 그렇게 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계획. 

 

 

  

꽃과 나머지

 

사람들은 꽃만 기억하지만 꽃의 대부분은 줄기와 이파리, 그리고 뿌리로 이루어졌음을 생각하면 나머지란 사실 대다수이면서 총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역사로 규정한 또는 동시대에 중요하다고 믿는 대표 건축들에 이 땅의 지역성이 충분히 녹아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그 대표 건축들이 우리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 역사도 기념도 되지 못한 이 나머지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희미한 한반도 지역 건축의 잃어버린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연남동 적벽돌 집 + 용적률 게임(2015 ~ 2016)

연남동에 있는 적벽돌 마감의 다세대주택의 불법 증축 면적을 합법화하고 증축하는 작업. 건축가를 대신한 지역 건설업자의 시대적 역할과 그들이 만든 집단적 가로 풍경을 존중하는 태도의 리모델링 개입.  

 

 

포스트 아파트(2018 ~ 2019)

과거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기형적 부조리의 일상을 과장하여 우리의 주거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게 만드는 다원공연예술.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도시공간과 같은 곳에서 공연자와 방문자 모두가 함께 아파트 이후의 새로운 장소성을 상상하는 공간 계획. 

 

성산동 반지하 다중주택(2018 ~ 2020)

반지하, 다중주택, 용적률이라는 세 가지 지역 건축업자 시장의 언어를 개념화하여 계획한 사회주택. 20대 거주형 셰어하우스 사회주택 개념에 가장 근접한 다중주택이라는 법적 용도를 선택하여 주차대수를 줄이고, 그 남는 자리에 홍대 상권의 반지하 효과(두 개 층에서 1층 임대료 확보)가 가능하도록 지하층과 1층의 실내 면적을 늘리는 계획. 1층 같은 지하층으로 인해서 체감 용적률 상승.​​


정이삭
정이삭은 2013년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으며, 2017년부터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적 건축 작업과 공공 연구를 하며, 건축 및 현대미술 전시에 기획자나 작가로 참여해왔다. 주요 작업으로는 연평도 도서관, 연남동 적벽돌 집, 노란 평상 등이 있고, 제15회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큐레이터 및 작가), 캠프 2020(총감독)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더 서울,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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