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공간의 현재와 미래

이현진
사진
이현진
진행
이성제 기자
background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을 겪으면서 6년 후 또 다른 불청객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일찍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찾아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우리 사회는 큰 혼란을 겪었지만 이를 경험하면서 의료시설 개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과거 캐나다에서는 사스 환자의 약 75%가 병원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에서는 메르스 사태로 비말 감염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그 결과 환자 감염이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병실, 중환자실, 응급실에 대한 의료법 시설 관련 규정이 구체적으로 개선됐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는 지역 집단감염을 발생시키며 의료시설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밀집하는 시설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물론 지난 감염병의 교훈 덕분에 나름 방역체계를 갖춰가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조금씩 안정되는 추세지만, 언제 어디서 집단감염이 다시 불거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낯선 음압격리병실에 누워있는 확진 환자와 일선 의료진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의료공간에 요구되는 디자인

의료공간은 병에 걸린 아픈 환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그런데 이 중에는 가벼운 감기환자부터 장기이식 대기자, 항암치료가 필요한 중환자까지, 환자별로 중증도가 다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완쾌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래의 병과 상관없는 감염, 의료 사고 등으로 뜻하지 않게 사망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시설에는 건축가 개인의 경험에 의한 디자인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디자인 요소가 적용돼야 한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센터 포 헬스 디자인(The Center for Health Design)’에서는 ‘증거기반 설계 인증 및 자격(Evidence-Based Design Accreditation and Certification)’으로 건축가, 의료시설 관리자, 기술자, 연구자들이 증거기반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고 검증하는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메디컬 플래너’라는 의료 건축 전문가가 등장했으며 의료진과의 협업 체계가 더욱 긴밀해져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의료공간이 설계되고 있다.

일반인이 좋은 일로 의료시설을 찾는 일은 드물지만, 병원은 의료진과 직원들에게는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쁜 하루가 시작되는 ‘일상의 공간’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병원은 ‘사회의 축소물’이기도 하다. 의료공간을 설계할 때 건축가는 의료시설에 있는 환자와 의료진을 포함해 많은 이용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동시에 향후 질병의 변화뿐만 아니라 첨단 의료장비와 의료기술의 변화를 공간에 담아내야 한다.​ 

 

집단감염에 취약한 한국 의료시설

병동은 종합병원의 전체 면적에서 약 40%를 차지하는 중요 공간이지만, 환자 개인은 채 두 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 아니 거주한다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는 영국이나 호주의 의료시설 기준 면적의 반도 안 된다. 그런데 병원 감염은 면적의 문제만은 아니다. 메르스의 확산 원인 중에는 의료진의 초기대응 실패, 다인실 병동 문화, 동행 문병 등에 따른 2차 감염 등이 지적됐다. 당시 한국은 음압격리병실의 부재, 개인 간병 문화, 대형 병원 응급실 선호에 따른 오랜 체류 시간 등 의료체계가 취약한 상황이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신축된 의료시설에서는 음압격리병실이 확충됐고, 6인실, 심지어 10인실까지 있었던 다인병실은 4인실로 줄어들었다. 병상 간 간격도 비말 전파 거리를 고려해 1.5m를 확보하게 했다. 하지만 기존 의료시설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6인실의 병상 간 간격을 맞추기 위해 2개의 병상을 빼낼 경우, 추가 병실을 확보하기 위해 증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8년 12월 병상 간격 배치 유예기간이 끝나갈 즈음, 지방 재활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법적 요구 사항을 맞추기 위해 병상을 병실 내 통로 영역에 배치해야 했고 그 결과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손씻기 시설 바로 옆에 병상을 배치해 환자가 오염에 취약해지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코로나19는 감염병에 취약한 집단시설인 정신병동과 노인요양시설에서 많이 발생됐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닫힌 실내 공간에 머무르게 되어 감염 위험이 높았다. 밀폐된 장소에서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평균 30~40% 정도가 감염된다고 한다. 정신병동에서의 입원 기간은, 정신질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 병동과 달리 긴 편이다. 치매환자가 252일로 가장 길고, 조현병, 망상장애, 알츠하이머 순으로 타 질환에 비해 재원일수가 현저히 길다. 평균 98일, 연간 1.6회 입원하는 장기입원 환자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정신질환 환자는 외부 활동이 어려워서 면역력이 대체로 낮은 편으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다. 다인 병실에 함께 머무는 정신병동의 환자는 식사, 재활치료, 사회 복귀와 자립을 위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함께 한다. 그래서 많은 환자가 한꺼번에 감염될 가능성이 다른 시설에 비해 매우 높다. 정신병동의 경우 일반 병동보다 치료 기구, 소독 및 청결 물품의 사용 빈도가 낮기 때문에 별도의 청결물품실이 없는 경우도 많다.

한편 노인요양시설(요양원)의 경우, 노인복지법을 따르기 때문에 의료법이 적용되는 노인요양병원과 차이가 있다.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며 요양병원은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요양원은 의료법의 병상 간 간격 기준과 시설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노인요양시설은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 등으로 심신 장애가 있는 노인이 입소하여 급식, 요양, 일상생활에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인지능력이 저하된 환자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이들을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환경에 두게 된다. 대부분이 다인실이며 공용 화장실, 공동거실과 식당, 물리치료실, 유대감 증진을 위한 각종 레크레이션과 문화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실 등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감염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동선 분리를 통한 의료진이 안심하는 감염관리 체계 구축

메르스 사태 때 병원 내 급진적 감염확산이 발생해 2차, 3차 감염자가 47%에 달하는 상황을 겪었다. 이에 따라 효과적인 감염관리 체계 구축을 위해 병문안 문화와 공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후 병동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 홀에 슬라이딩도어를 설치하는 시설 보완이 실행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보안 인력에 의한 통제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병동 면회를 위해 통행하는 출입구에는 스피드게이트(Speed Gate)를 설치하고 예약 시스템을 통해 일반인의 병동 출입을 철저히 통제함으로써 길을 잃고 병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게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진 동선을 따로 관리하여 환자, 의료진, 일반 방문객을 철저히 분리한다. 반면 외래진료 부문은 주변 쇼핑몰과 연계하는 오버브리지를 계획해 환자들이 진료를 받은 뒤 주변에서 쇼핑을 쉽게 할 수 있고, 시설들을 지하철과 연계해 접근성도 높이고 있다. 병원 안에는 각종 음식점과 상점, 휴게 자연공원이 있어 지역주민의 발걸음을 향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병원이라고 하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개념이 크다. 지금처럼 감염병이 유행하면 혹시라도 모를 감염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더욱더 피하게 된다. 노인요양시설이나 정신병원은 내가 사는 지역에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모두 현수막을 내걸고 반대한다.

2000년 초부터 국내의 의료시설들은 ‘환자 중심 병원’, ‘내 집 같은 병원’, ‘호텔 같은 병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호스피탈 스트리트(hospital street)’라는 높고 넓은 공용 공간을 도입하여 보다 쾌적하고 윤택한 외래진료부를 도입했다. 반면, 감염에 취약한 병동부와 중환자부, 응급부에 대한 면적 할애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의료진을 위한 직원 공간과 오염물품 및 청결물품을 분리해야 하는 진료지원 공간의 계획 기준은 전무한 실정이다. 음압격리병실은 감염환자를 격리해 비감염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시설이다. 음압격리병실에 환자가 입원하면 의료진은 PPE(Personal Protective Equipment)라고 하는 개인보호 장비를 입고 발생할지 모를 긴급상황에 대비해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감염 영역으로 들어간다. 청결의 영역으로 다시 나올 때에는 별도의 탈의 영역을 거친다. 이처럼 환자와 의료진을 철저히 분리하는 동선계획을 통해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공간 계획이 요구된다.

 

긍정적 변화를 위한 여유 공간의 필요성

2013년 정부는 가족간병의 어려움과 개인간병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는 개인 간병인이나 가족 대신 간호사를 중심으로 간병과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필요한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일선 간호사들의 사정은 다르다. 환자의 식사부터 목욕까지 간호사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더 많은 간호인력이 필요해지고 업무 환경이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간호사가 짧은 거리에서 전담 환자를 관찰해야 하기에 현재의 중앙스테이션 시스템은 환자와 가까운 장소로 분산된 서브스테이션 배치로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최소 면적으로 계획된 병동부에 서브스테이션 자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2.4m밖에 되지 않는 병동부 복도 한편에 작은 테이블과 모니터를 놓고 업무를 봐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니터 연결 전선을 멀리서 끌어와야 한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논의와 경험에 힘입어 국내 의료시설은 분명 개선되고 있다. 신축 병원의 경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통해 보호자 통제를 위한 면회실이 생기고, 적극적인 서브스테이션의 확보도 이루어지고 있다.

긍정적 변화가 계속 이뤄지려면 여유 공간을 미리 확보해야 하며, 지속적인 개선에 대응할 수 있는 가변적 공간 계획도 고려돼야 한다. 사실 음압격리병실을 무작정 많이 만들어놓을 수는 없다. 필요에 따라 이동형 읍압기를 활용할 수 있는 1인병실 계획은 집단감염으로 인한 시설 부족 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유의미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와 중환자의 이동을 최소화하고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1인병실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다인실 기준이 4인병실 중심으로 의료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은 다행이지만, 역설적이게도 2020년 1월부터는 국민 의료부담을 경감하겠다는 목적으로 2인병실 이상의 일반 병상을 50~80%로 의무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의료수가 적용 병실 기준과 간호인력 배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근본으로 돌아가 감염관리를 위한 1인병실 설치에 대한 필요성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변화도 종합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의료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인요양시설에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감염환자가 발생하면 감염전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시설 부족으로 상급병원이나 종합병원을 이용하게 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더 나아가 진료실 부족까지 발생해 중증환자가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이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의료에서 담당해야 할 몫이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보건의료원과 연계하여 긴급 제작 가능한 모듈러 병실 확보와 선별진료소 설치에 대한 표준화가 시급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보건의료원 건립 계획 초기부터 시설과 연계된 외부에 여유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 

 

건강한 의료공간 환경을 위한 제언

환자가 안전하고 의료진이 안심할 수 있는 건강한 의료공간은 어떤 곳일까? 우리는 환자를 치료하고 치유하기 위해 의료공간을 디자인하지만, 의료시설이 만들어지는 건설 현장에서는 본의 아니게 여러 유해한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의료시설은 24시간 365일 상업시설보다 두 배가 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간이다.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 연료는 실내외 공기오염을 야기한다. 해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의료기기와 비닐 장갑 등을 소각하며 수백만 톤의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어서 지역사회에 병을 유발하는 요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폐기물에도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4월, 거리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반면 인근 아파트 놀이터에서는 개학을 하지 못한 초등학생들이 마스크는 벗어 던지고 거리두기가 무색하게 뛰어놀고 있었으며 지켜보는 엄마들은 밀폐된 실내 공간이 아님을 작은 위안으로 삼고 있는 듯했다.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처럼 감염병도 한번 발생하면 관리하기가 어려워진다. 5월에 들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생활 지침이 바뀌었고 시차를 두고 각급 학교도 등교를 하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를 또 다른 불청객을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반면교사로 삼고 의료공간 환경을 개선하는 데 보다 집중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적절한 수의 1인병실 확보, 면회실 사전예약으로 철저한 방문객 통제, 업무에 효율적인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시설계획, 지역사회기반 공공 의료시설의 확충, 모듈러 병실과 선별진료소의 표준화 등은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개선을 해나가야 할 일들이다.​


이현진
이현진은 한양대학교에서 의료 건축계획 분야의 논문으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공간그룹과 창조건축에서 의료시설 설계에 참여한 건축사이다. 현재 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의료, 복지 건축 분야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