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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No.629 2020년 4월호 리뷰

16기 SPACE 학생기자
진행
오주연 기자

 

 

 

 

관찰과 치밀함이 만들어낸 감동

글 이서영(단국대학교 건축학과)

 

대부분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우리 세대는 누군가 주택에 산다고 하면 놀라는 반응과 함께 “마당도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주택이라 하면 자연스레 마당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 속 주택의 기본값은 ‘마당집’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주장도 아마 무리가 아닐 것이다. 

마당집의 형식을 가진 구가도시건축 주택의 형태적인 특징을 짚어보기에 앞서 발견한 재미있는 모습이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택에서 소파는 창이 아니라 TV가 걸린 벽을 향해 있다. 그러나 소개된 세 주택에서 소파는 모두 마당을 향하고 있다. 주인공의 자리가 아닌 애매한 위치에 걸려있는 TV의 모습은 '변화하는 풍경인 마당이 없어서 TV를 본다’는 유현준 건축가의 말을 굉장히 잘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세 주택 모두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형태를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치밀한 계산들이 정말 멋있었다. 파주k 주택의 정면은 직선과 직각, 최소한의 재료와 창을 사용함으로써 단순한 외곽선과 입면을 보여준다. 도로에 면한 건물의 정면에서 좌우 측면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박공지붕이라는 사선 요소를 비대칭적으로 사용해 개성을 놓치지 않은 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분명 우연에 의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첫 장면 역시 단순하지만 인상적이다. 사용자는 전면 창을 통해 초록의 마당을 마주하게 된다. 마당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는데, 목구조 기둥과 보로 시스템 창호를 가림으로써 전통적 미감을 더했다. 마당이 주는 감동을 나무 기둥, 보, 서까래와 처마 등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요소로 배가시키는 디테일한 연출은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게 만들었다. 목구조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차의 활용, 지붕의 각도 등 모든 요소가 이유와 논리를 가지고 구성되었음이 글과 사진을 통해서 전해졌다.

이처럼 구가도시건축의 작업은 마당과 재료, 공간의 구성을 통해 현시대의 한옥을 빚어낸다. 한국의 도시주택을 오랫동안 관찰했다는 조정구 건축가의 글을 읽으며 앞으로 한옥의 현대화를 위해 주어진 임무와 가져야 할 소신이 무엇인지 머리와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사소한 차이가 만드는 마당: 공방주택 열달나흘

글 서아현(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이번 4월호에는 과거의 한옥부터 현재의 주택까지 우리나라 주거공간의 흐름을 쭉 살펴볼 수 있는 글이 실렸다. 특히 우리가 과거 마당이라고 불렀던 공간이 최근 아파트에서 지붕 그리고 벽을 통해 어떻게 바뀌어 나타나는지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나열하면서 조정구(구가도시건축 대표)는 우리가 일상을 담고자 하는 공간이 결국 ‘마당’이라고 정리했다. 이는 마당을 당연히 외부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단순한 사고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롭게 알게 된 마당의 정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공방주택 열달나흘의 1층 마당은 세 개의 영역으로 느껴지도록 설계되었다. 가장 안쪽의 작업형, 가운데의 휴식형, 마지막으로 가장 바깥의 회랑형 마당이다. 가운데 마당은 나머지 두 마당보다 레벨이 높아 외부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기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가운데 마당에 깔린 잔디는 작업 마당의 돌바닥과 달리 재료가 주는 따뜻함으로 높은 레벨과 함께 안정감을 준다. 가장 바깥에 위치한 회랑 형태의 마당은 앞서 말한 두 마당을 감싸 집으로 끌어들인다. 회랑의 지붕이 마당을 집 외부의 복도 공간으로 만들면서 건물이 마당을 더 잘 소화한다. 이렇게 다양한 세 개의 마당은 외부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2층 중심에 위치한 마당은 분명히 실내인데 외부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위치는 아파트의 발코니와 다를 것이 없는데 말이다. 요즘 아파트 발코니에 식물을 이용해 작은 정원을 만들거나 홈 카페의 느낌이 나도록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열달나흘의 실내 마당과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어떤 점이 두 공간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일까? 가장 큰 차이는 지붕에 있다. 아파트 발코니의 지붕은 위층의 바닥이기에 콘크리트로 되어있지만 열달나흘은 투명한 재질로 되어있어 햇빛이 위에서 직접적으로 들어온다. 또한 외부로 연결된 창이 폴딩도어로 되어 있어 완전히 열리기에 아파트의 창호와는 개방감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실내 마당의 한쪽 벽을 건물의 외벽과 같은 벽돌로 마감하여 더 마당의 느낌을 살렸다. 사소하다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지만 벽과 지붕의 재료 하나 차이가 공간의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조정구는 깊은 탐구를 통해 바닥 레벨과 재료의 차이가 주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설명했다. 비록 탐구한 많은 내용을 담기에는 짧은 글이지만, 그의 에세이를 통해 이러한 부분들을 새롭게 경험하고 고민해볼 기회가 되었다.

 

 


 

 

1945-2020, 한국건축의 75년

글 안서경(경희대학교 건축학과​)

 

629호의 프레임 섹션에서는 ‘삶에 대한 사려, 무덤덤한 건축’이라는 주제로 구가도시건축의 세 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더불어 나카무라 요시후미와 전봉희의 비평에서 읽을 수 있는 그들의 한국건축에 대한 통찰은 ‘보통의 집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이번 호의 주제를 관통한다. 

조정구(구가도시건축 대표)는 에세이 ‘마당집의 계보를 잇다’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지어왔고 자주 짓는 집은 마당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사는 집, 바로 ‘마당집’이라 믿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생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지난여름 방문했던 서촌 대오서점의 기억 덕분이다. 지도 앱을 보며 초행인 서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마주한 서점의 모습은 기대했던 것보다 작고 소박했다. 그런데 서점에 진입하여 내부 마당에 들 선 순간, 쏟아지는 햇살 조각과 선선히 일렁이는 바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외부 도시와 전혀 다른 평온하고 따듯한 공간이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마당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ㅁ자의 집과 그 위에 얹혀 서로 야무지게 엮인 지붕 끝 처마의 라인, 그리고 그 처마의 라인을 따라 조각난 하늘은 오직 이 ‘마당집’에 들어 온 이들만을 위한 풍경이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내가 그곳에서 평온함을 느꼈던 까닭을 구가도시건축의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읽고 난 후에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대오서점은 1930년대 일제 식민지기 북촌의 전통가옥이 그랬듯이 새로운 도시 한옥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기능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가 살았던 원형의 주거 형태의 정서적 공간 속에서 따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조정구가 지난 20년간 연구하고 실험했던 이른바 ’우리 시대의 보편적 공간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집’에 대한 설명은 이러하다. 방과 방 사이의 매개 공간인 마당과 마루에서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놀고, 휴식을 즐기며 공간과 사람이 함께 기능한다. 또한 한옥의 공간은 집으로 들어서는 과정부터 외부-실내-매개 공간의 순서를 돌며 순환하는 관계를 맺는다. 더하여, 한옥에서 실내와 실외의 구분은 문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닥이 높고 낮음에 달려있다. 이 세 가지 특징은 따듯한 바닥을 위한 온돌과 위로 접어 올려 처마나 지붕에 걸어 두는 분합문을 떠올리게 한다. 불을 지펴 따듯하게 할 만큼 바닥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문을 위로 들어 올려 완전히 개폐할 만큼 공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와 연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픈 역사 속 격동의 시대를 거치지 않았다면, 한옥에서부터 기인해 자연스레 이르렀을 거주 형태가 조정구의 ‘마당집’에 의해 차츰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높고 빽빽이 쌓아 올릴 수밖에 없는 도심 속 공동주택에서의 적용 방법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나이가 만들어내는 공간

글 장은영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2000년대부터 서울시의 ‘꿈을 담은 교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어린이 도서관 등 어린 세대를 위한 공간이 증가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노키즈존(No Kids Zone)도 함께 증가했다. 한 개인이 트위터나 메일로 제보를 받아 제작된 노키즈존 지도는 국내 400여 곳 이상의 노키즈존 사업장을 보여준다. 제보되지 않은 시설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더 증가할 것이다. 노키즈존의 대상 연령대는 일반적으로 영유아 혹은 미취학 아동이지만, 제주도의 한 사업장은 13세 이하 아동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 그 기준은 사업주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이에 대한 저마다의 불만과 배려가 뒤섞여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어린이 공간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12세부터 16세까지를 일컫는 트윈세대는 어떨까? 오늘날 사회에서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세대를 위한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도 생기기 시작하는 트윈세대에게는 집도 학교도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트윈세대를 위한 공간으로서 첫걸음을 뗀 우주로 1216은 사용자 참여 설계로 진행됐다. 특히 아이들의 행위는 철봉에 매달려 책을 읽는 등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참여 설계의 장점이 더 두드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제재했던 일들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막는 행위는 아니었을까.

우주로 1216은 트윈세대의 자율적 활동을 독려하는 취지로 시작됐다. 칸칸이 나눠진 실이 아닌 영역으로 구획된 공간은 사용자들이 주체적으로 동선을 결정하도록 한다. 이 프로젝트를 보며 가장 놀란 점은 오직 트윈세대만의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아이들의 부모님은 출입할 수 없으며 도서관 내부에도 최소한의 어른만 상주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윈세대를 존중하고 그들만의 공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다. 그 물체가 ‘사람’이 됐을 때, 나아가 ‘세대’가 됐을 때를 상상해본다. 우주로 1216은 특정 연령대를 위한 공간이지만, 이 프로젝트를 사회 전체로 확장해 본다면 모든 세대가 각자의 필요한 공간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이제는 특정 세대를 향한 혐오를 표출하기보다는 각자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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