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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표면의 깊이, 공간의 가능성

김승회(서울대학교 교수)
사진
김재경
자료제공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세미 기자
background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 그 아래로 펼쳐진 해방촌의 풍경을 바라보면 전체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집과 골목이, 골목과 지형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나무처럼 자라 진화해왔을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도 집과 골목을 매개로 인연을 맺고, 때론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처럼 잠에 들었으리라. 

집을 짓고 길을 내는 일은 사람과 시간이 그곳에 머물며 관계 맺는 방식을 공간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열방교회 교육관(이하 열방교회), 해방촌 갤러리 더월(이하 더월), 큐라켐연구소(이하 큐라켐), 고양이집은 기능과 규모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건축의 경계면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의 다양한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벽과 오프닝, 발코니와 회랑, 처마와 캐노피, 표면의 다양한 두께와 질감이 결합하여 공간의 경계면을 구성한다. 표면의 깊이를 구축하는 작업은 장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인 동시에 내부와 외부의 ‘중층적 관계’를 담아내는 일이다. 중층적 관계가 투영되는 건축의 표면은 필연적으로 다층적인 단면이 만들어진다. 다층적인 단면은 겹쳐진 입면으로 귀결된다. 표면의 깊이가 건축적인 장치(device)와 디테일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길과 건물, 마당과 방은 적절한 관계를 맺고, 거주환경은 필요에 따라 조절된다. 표면의 깊이가 더 깊어지면 마침내 사이공간(in-between space)이 된다. 경계면에 만들어진 공간을 매개로 안의 세계는 밖의 세계와 소통한다.

 

 

경계면의 차이를 생성하다: 표면의 깊이와 디테일링 

표면은 깊이를 갖는다. 세밀한 디테일은 주로 수직면에서 만들어진다. 움직임과 멈춤은 평면을 따라 조직되며, 그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평면에 수직한 벽이기 때문이다.

열방교회와 큐라켐의 벽면은 유로폼 노출콘크리트로 캐스팅 됐다. 유로폼은 콘크리트 거푸집 중에 가장 공사비가 적게 드는 방식으로, 모듈을 여러 크기로 조합하여 사용하면 콘크리트에 석재의 물성이 투영되어 흥미로운 벽면이 만들어진다. 유로폼 콘크리트는 큰 벽면을 만드는 데도 유용하지만, 깊은 두께를 갖는 열주를 만들 때에도 유리했다.

짙은 회색의 금속 벽면은 극도로 얇은 두께의 파사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공장에서 미리 가공하여 현장에서 조립되는 갈바륨 패널은 3cm 두께로도 파사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콘크리트와 벽돌벽이 얇은 두께의 금속 벽면과 모서리에서 만날 때, 리빌을 통해 얇은 금속 파사드가 마치 벽지처럼 붙어있는 느낌을 만들었다. 도시를 향한 표정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종이 탈처럼 얇은 두께로 붙어있는 금속 파사드가 또렷이 보여준다. 

큐라켐에서는 유리판으로 구성된 벽면이 콘크리트 열주와 만난다. 반투명 유리 벽면은 콘크리트 열주의 두께와 극도로 대비되는 얇은 두께의 알루미늄 수직선으로 나뉘어져 있다. 단판유리와 단열재로 구성된 유리 벽면은 공사비를 줄이고 단열성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콘크리트 면과 질감, 스케일의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 넘치는 입면을 만든다.

표정은 표면의 질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마치 눈과 입과 코처럼 입체적인 피부의 기관을 통해 완성된다. 벽면의 입체적인 기관은 창과 문, 그리고 그것에 붙어있는 처마와 발코니 루버 같은 것들이다. 깊은 두께의 콘크리트 열주는 구조와 벽면, 그리고 개구부를 겸하면서 그 자체로 입체적인 표정을 완성한다. 반편 얇은 두께의 금속 벽면은 돌출된 루버와 처마와 같은 장치들을 통해 표정을 드러낸다. 고양이집과 열방교회의 상세는 표면 깊이의 대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공간의 경계면은 ‘표면의 디테일’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획득한다.

 

큐라켐연구소

 

 

중첩된 관계를 드러내다: 다층적인 단면과 겹쳐진 입면

건축이 관계를 조직하는 공간적 형식이라면, 건축의 경계면은 그 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우리의 피부를 통해 신체가 외부의 조건과 반응하듯이, 건축 공간은 표면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조절한다. 경계에서 만나는 관계가 복합적일 때, 그 단면은 다층적인 형식을 갖는다. 

큐라켐의 콘크리트 열주의 두께 안에 몇 가지 요소를 계획했다. 풍경을 누릴 수 있는 발코니와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처마를 열주의 두께 안에 배치했다. 한편 실험실 쪽은 열주의 두께를 이용하여 실험실의 배기덕트를 배열했다. 표면의 두께는 신진대사를 위한 다층적인 건축 요소들로 구성되는데, 다층적 단면은 겹쳐진 입면이라는 결과로 귀결된다. 큐라켐의 입면은 열주의 수직선과 더불어 발코니와 처마, 덕트가 겹쳐진 형태로 완성됐다. 고양이집의 다층적인 단면 역시 자연광을 조절하고 전망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큐라켐과 고양이집의의 다층적 단면이 주로 공간의 신진대사와 환경 조절을 위한 것이었다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였던 더월의 단면은 새로운 기능과 옛 기억의 층위가 겹쳐진 결과이다. 카페가 있는 저층부의 벽돌면은 개방적인 유리벽으로 바꾸었지만, 갤러리가 있는 상부는 원래 있던 벽돌벽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창문을 기존 벽돌벽과 같은 소재의 벽돌로 막아 적층된 벽돌의 무게감을 강조했다. 새로 설치된 돌출된 익스팬디드 메탈 벽면은 옥상마당의 난간이자, 새로운 미술관의 존재를 알리는 상징물로서 계획됐다. 익스팬디드 메탈은 두 겹으로 만들어졌는데 빛의 간섭에 의해 거리에 따라 패턴이 움직이는 광학적 물결무늬(moire)를 만들어낸다. 더월의 다층적인 단면 요소들은 기억과 기능, 시각적 효과를 아우르는 중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켜켜이 쌓인 기억은 단면의 구성 요소가 되고, 새롭게 부가된 요소들이 더해져 겹쳐진 입면을 생성한다. 과거의 기억과 새로운 시간은 구체적인 물질의 형식을 갖게 되며, 기억이 담긴 표면은 갤러리의 파사드에 시간의 깊이로 드러난다.

 

갤러리 더월​

 

 

공간의 질서를 조직하다: 구조가 생성하는 공간의 박자 

표면의 깊이를 이루는 기본 요소인 기둥과 벽은 역학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공간의 질서를 조직한다. 구조 요소들은 공간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크기와 간격으로 계획되는 동시에 공간의 성격에 맞게 다시 조율된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기둥과 보의 크기와 간격은 공간의 박자를 만들어 음악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열방교회와 큐라켐의 열주의 리듬은 벽면뿐 아니라 천장면에서도 지속된다. 기둥과 보가 결합되어 강약 강약 두 박자로 진행되는 공간의 리듬은 큐라켐과 열방교회의 큰 공간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준다. 음악으로 비유하면 음절의 단위를 따라 북이 울리듯, 기둥과 보로 만들어진 구조 요소가 공간의 진행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등장하며 스케일을 만든다. 기둥과 보의 간격이 촘촘한 편이어서 리듬은 빠르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공간감을 갖는다. 

열방교회의 예배공간에는 경사진 열주가 반복되면서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와 있는 공간감을 선사한다. 경사진 열주는 이어지는 상부의 기둥에 반응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성스러운 공간을 이루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기도 하다. 

열방교회와 큐라켐에서 구조의 리듬이 공간에 질서를 부여했다면, 더월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구조가 작동한다. 갤러리 외벽의 철골 프레임은 불규칙한 기존 건물에 부착되어 규칙적인 리듬의 질서를 부여한다. 불규칙한 입면 위로 겹쳐진 일정한 모듈의 철골 프레임은 익스팬디드 메탈의 무아레 무늬, 기존의 붉은 벽돌의 벽면, 그리고 유리 포디엄과 공존하면서 입면의 질서를 조율한다. 

 

열방교회 교육관 

 

 

이웃과 대화하고 도시와 반응하다: 열린 공간과 모두의 그늘 

표면은 다양한 두께를 갖는다. 표면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면 표면의 두께는 공간의 켜가 된다. 안과 밖의 경계에 제3의 공간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이공간으로 불리는 공간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가 펼쳐진다. 발터 벤야민은 집과 도로의 경계에 만들어진 ‘로지아’를 도시의 신이 현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은 여유 있는 휴식과 소통이 벌어지는 장소이다. 발코니에 나온 사람은 언젠가 길을 지나가는 이웃과 대화하게 될 것이다. 

열방교회의 파사드는 액자의 형태로 도시와 만난다. 콘크리트 벽면 사이에 크게 열려있는 필로티는 이웃에게 개방되어 있다. 필로티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중정을 만난다. 중정에 들어오면 콘크리트 브리지가 만들어낸 새로운 액자를 만난다. 이 액자를 통해 마당은 숲을 가장 아름다운 형식으로 만난다. 표면의 깊이가 열린 사이공간으로 확장되고, 열린 공간을 통해 모두를 위한 그늘로 이어지는 과정은 건축의 언어로 공간의 윤리를 실천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더월의 입구는 캐노피와 계단으로 구성된다. 혀처럼 내민 빨강색 계단은 돌출된 표면이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사이공간을 만난다. ‘어나더 브릭 인 더 월(another brick in the wall)’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있는 작은 공간은 갤러리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곳이다. 이렇듯 더 월의 경계면 두께는 관람객을 유혹하고 갤러리를 소개하는 열린 공간이 된다.

큐라켐의 발코니는 휴식을 위한 공간이자, 큐라켐이 소통과 교류를 목표로 하는 연구 플랫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장치이다. 4m 캔틸레버로 뻗은 큐라켐의 진입 공간은 방문객을 환영하고, 찾아오는 모두를 위한 그늘을 제공한다. 

건축의 표면은 내부 공간의 신진대사를 이루게 할 뿐 아니라, 이웃과 도시를 향한 소통의 방식을 드러낸다. 열린 사이공간을 통해 직접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열기도 하지만, 때론 상징적인 방식으로 소통의 의지를 피력한다. 건축의 경계면은 관계를 형성하고 관계를 표현하는 공간적인 형식이다. 

‘베를린 시민들의 집의 경계는 로지아에서 그려진다. 도시의 신이기도 한 베를린이 시작되는 지점도 그곳이다. 도시의 신이 현존해 있는 그곳에서는 덧없이 흘러가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못한다. 도시의 신의 보호 아래 장소와 시간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면서 도시의 신 발치에 자리 잡는다’  - 발터 벤야민, 「로지아」, 『베를린의 유년시절』 중에서

 

 


김승회
김승회는 1995년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으며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 이우학교, 문학동네, 이화외고, 롯데 부여리조트, 정클리닉, 소율 등이 있다.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이원환경건축∙조경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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