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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table]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의 건축과 도시

진행
김정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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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

x 최도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

x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x 황지은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x「SPACE(공간)」 ​김정은 편집장 

 

 

재난에 대한 인식

 

SPACE: 이번 기획을 준비하면서 시시각각 상황이 달라지고 있지만, 현재의 언택트 상황은 우리의 삶과 환경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하게 만든다. 오늘은 논쟁을 벌여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자리가 아니라, 관찰하고 기록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논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우선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재난이라고 부르는데, 이 재난이 상당히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재난이라는 게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렇게 일상적 재난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하거나 예측을 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재난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황두진: 장애인의 범주와 장애의 정도가 다양하다는 것을 사회가 인식하고, 이를 제도화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전에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앞이 전혀 안 보인다고 생각하고, 점자블록이 왜 노란색이어야 하느냐는 등의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형태를 희미하게 구분하는 시각장애인도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재난에 대해서도 지금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일단 재난도 종류가 다양하고 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과연 유니버설 솔루션이 있을 것이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전히 장애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여러 종류의 장애가 있지만 종합적으로 들여다본 결과, 우리가 배리어 프리나 유니버설 디자인처럼 보편적인 것들을 많이 뽑아내지 않았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세월호나 포항지진 등 일종의 사회적 재난이 많이 일어났는데, 제각각 유니크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난에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지 않을까?’라는 두 가지 생각이 계속 관계를 이뤄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최도인: 재난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사회적 재난, 즉 사람의 잘못에 의해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인재라고 부르는 성격의 재난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자연재해 성격의 재난이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상황은 인재와 자연재해의 성격을 같이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자연재해든 인재든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재난의 성격을 구분할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각 국가별로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쨌거나 한국은 코로나19를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격의 재난으로 인식하고 정책을 폈다. 이번 바이러스 상황에 대해서 사회적 재난과 자연재해적 성격의 중첩점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황지은: 대개 재난을 큰 범위에서 기후변화나 자원 고갈의 증상으로 인식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지내기 마련이다. 결국 얼마나 내 피부에 와닿는가로 귀결되는데, 이번 사태는 우리의 모든 생활의 반경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그 원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인류 혹은 문명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회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스크나 위생장갑 같은 물자가 배출하는 쓰레기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재난이 또 다른 재난으로 넘어가는 재난의 생태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조재원: 그런 당사자성이 이번 재난의 특별한 점이다. 코로나19의 경우 전 세계가 같은 재난 상황에 처했다. 율라 비스가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너무 와닿는다. 나와 우리를 이 상황 안에서 분리해낼 수가 없는 거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냐가 정말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느냐, 손을 씻느냐, 서로 거리를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상황을 ‘아웃브레이크’를 만들거나 잠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상황을 보면 말이다. 우리가 자연재해를 겪더라도 그 동인에는 분명 사람이 한 행위가 깔려 있다. 그런데도 다른 재난에서는 구경하고 관찰하는 입장이다 보니 정서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빠져나오기가 쉬웠는데,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게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걸 진짜 강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포항지진이 너무 안타까웠지”라고 말할 때는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그 상황에 사실 나도 연결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코로나에서는 달랐다. 앞으로 어떤 재난을 다시 맞닥뜨리더라도 나도 그 영향권 안에 있고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고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최도인: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캠페인을 보니, 그간 사회적 거리에 대해 인식을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짐짝처럼 서로 부딪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나. 콘서트, 교회, 집회에 열광적으로 참여하던 문화를 이제 어떻게 볼 것인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또 언제 변종이 나타날지 모른다거나 3년 주기설 등, 미래를 단정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상황으로 넘어가게 될지 의문이 든다. 인간 본연의 속성인 집단성, 서로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하고 교감하는, 그런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관성을 우리가 모두 버릴 수 있을지.

 

황두진: 많은 언론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이전 시대의 노멀은 가고 정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하는데, 일정 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도시 문명의 끈질김이나 회복력, 적응력에 대해서 미리부터 포기할 필요가 없겠다는 입장도 논의의 다양성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게 아니다. 17세기에 유럽의 페스트가 있었고 20세기에는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그때도 결국은 사회적 거리가 핵심인 건 다 알고 있었다.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경험적으로 그게 제일 효과적인 걸 알았던 거다. 최근 제일 관심 있게 보는 문헌이 '스페인 독감 이후의 도시 문명은 어떻게 회복되었는가?'이다. 아직까지 사망자 숫자로 비교가 안 된다. 스페인 독감은 거의 1억 명 단위였고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문헌에 나온다. 그럼에도 도시 문명이 결국 회복되었는데 이번에는 그 경험이 반복될지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으나 여전히 참고할 만한 측면은 있지 않을까.

 

조재원: 도시 문명은 그래도 회복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회복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규정과 규범, 그리고 사회의 행동 패턴이 사실 재난의 원인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회복해야 할 것들도 있지만, 과했던 부분에 대해 돌아가는 것을 두렵게 여기고, 그 방향을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황지은: 너무 동의한다. 즉 회복이나 복귀해야 할 것들에 나의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역시 코로나19가 다른 재난과 다른 커다란 차이다. 이게 정말 나한테 필요한 일이었는지,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에 나의 지분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나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지속가능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몸으로 체화되어 느껴지는데 내가 그걸 넘지 않는 범위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큰 변화인 것 같다.

 

황두진: 온라인도 예시가 될 수 있다. 지금 오프라인상의 행동 제약을 상당 부분 온라인으로 풀면서 이것을 기술의 승리로 보고 인류가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친환경적으로 여겨지는 인터넷 역시 데이터 센터의 탄소 배출량을 보면 에너지를 정말 많이 쓴다. ‘과연 이게 우리에게 무제한으로 주어지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모든 폐해를 극복하는 것 같은 착시가 드는데, 알고 보면 그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건축 교육은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할까

 

SPACE: 이번 사태를 통해 이목이 집중된 공간이자 시스템 중 하나가 바로 학교다. 기존에 내재되어 있던 문제 가운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우리가 다시 보게 된 건축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봤으면 한다. 

 

황지은: 현재 너무 많은 변화가 있고 교수들이 모여있는 단체대화방에 매일매일 새로운 이슈들이 나온다. 통념화된 건축교육, 즉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 하나하나 문제가 되고 있다. 학기 초반에는 과거 대면하여 이루어지던 방식을 유지할 수 없으니 미디어로 극복하는 게 큰 이슈였다. 어떻게 학생이 그려온 그림을 마킹해가며 이야기해 줄지, 그림과 학생을 같이 볼 수 있는 플랫폼에는 무엇이 있냐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도 조금 지나니까 서로 적응이 됐다. 그다음 이슈는 모형을 만드는 거다. 모형을 만드는 데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는데, 학교에서 담보했던 물리적 공작에 특화된 환경이 집에는 없으니 문제들이 막 발생한다. 공작은 학교에 와야 하니까 못하고 소프트웨어도 학교 컴퓨터에 귀속되어 있으니 학생들한테 나눠줄 수가 없다. 그간 학교가 품었던 환경들이 분산될 수 없는 형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수행할 과제의 성격을 바꾸도록 동의하는 데 2~3주가 걸렸다. 제일 안타까운 건 스튜디오의 문화, 즉 학생들끼리 시공간을 공유하며 서로 배우는 문화가 현재는 전무하다는 거다. 결국은 우리가 겪는 이 이슈를 대상화해서 건축적 의미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본다. 그런 것도 어쩌면 우리가 항상 가정하는 미래 사회를 놓고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아직 없는 현실을 만드는 게 건축교육에 있어서 되게 중요한데, 이미 와 있는 현실 안에서 우리가 그걸 겪으면서 하나씩 풀어가게 되어서 어떤 의미로는 소득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자료들과 우리의 경험들이 지식으로 정착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황두진: 학생들이 그런 상황에 적응하고 있나?

 

황지은: 아직은 종합해서 말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설계수업과 나머지 수업은 양상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설계수업 안에서는 여전히 힘들어 하고 같이 마음을 나누고 있지만, 이미 설계수업으로 나온 과제가 이 형식에는 안 맞을 가능성이 크다. 교수들과 합심하면서 결과물과 접근 방식을 바꾸는데 그게 과제의 범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사고방식을 바꾸는 형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소극적인 의미의 적응기로는, 대면할 때 주변으로 흐트러지던 주의가 교수와 학생이 온전히 같은 미디어를 보면서 몰입도가 높아졌다는 평도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이 경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예를 들어 인터페이스가 동일해지니 역할이 균질화된 느낌이 있긴 하다. 교실에서는 교습자와 학습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는 주도는 교수가 하지만 과제의 방향이나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이 훨씬 수평적이다. 한편 지리적 여건에 상관없이 전문가를 쉽게 모실 수 있게 됐다. 학교에서는 기존의 지식체계를 수련하다는 통념을 넘어 학생들의 학습 과정이 사회의 새로운 경험이자 실험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외부 전문가가 대학원 온라인 수업에 참여했는데, 학생들과 같은 그리드 안에 전문가들이 있으며, 함께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황두진: 화상으로 수업할 때 제일 흥미로운 순간이 그거다. 교수와 학생이 화면상으로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 조용히 하고 있고 한 사람이 말을 할 뿐이지 어떤 순간에서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 안에서는 평등성의 이미지가 주어진다.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겠지만 막상 그것을 할 때 보면 일 대 다수 구도가 아닌 다 대 다로 언제든 촉발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게 미학적으로 흥미로운 체험이다. 이전에 물리적 공간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여기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면 만약 그것이 유쾌하고 유익하고 유의미할 수 있으면 굳이 옛날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황지은: 그게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조재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해지는 세팅이다. 화면을 꺼버릴 수도 있고, 멈추고 나갔다 와도 되고. 본래 강연자는 전체적 시각을 갖는 사람이었는데, 화상강연에서는 오히려 역전된다. 오히려 시청자가 강연자의 프레젠테이션을 자기 화면으로 보면서, 중심이 바뀐 거다. 이런 세팅은 ‘나는 너를 가르치고 너는 나한테 배우는 거야’라기보다는 수용하는 사람에게 훨씬 수월하게 다가간다. 단순 학습은 자료를 미리 주고 공부하게 하면 된다. 공부를 각자 하고 와서는 서로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수업으로 가도 되는 거다.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학습 콘텐츠는 유튜브에 있는 수많은 콘텐츠와 비교 대상이 된다. 교육 콘텐츠가 재미있는 유튜브 동영상과 경쟁해야 하는 거다. 반면 학교는 안전한 영역을 구축하고 교육 콘텐츠를 독점적 상황에서 제공한다. 그런데 그 콘텐츠가 같은 포맷 안에 들어가니까 금방 비교가 된다. 그럼 어느 게 더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일까? 수용자 입장에서 이 콘텐츠가 진짜 의미가 있는 콘텐츠일까를, 공급자 입장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와 겨뤄서 내 교육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고 할 때 학교의 물리적 경계 안에서 안전하게 가는 것보다 경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학생들도 그걸 요구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황지은: 짧은 2개월간이지만 나의 경우도 교수법이 계속 바뀌고 있다. 디지털미디어 수업에서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동영상으로 따로 제작을 했는데 이걸 하면서 ‘왜 내가 이걸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영상으로 담아 학생들이 언제든지 돌려볼 수 있게 하면서, 여러 기회를 열어주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비대면 온라인 강의에서는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정확하게 미션을 주어야 학생들이 추가 정보 없이도 그 미션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과제도 굉장히 명료해지더라. 이번에 정말 총체적으로 정리한 느낌이 들고 그런 것들은 제게도 큰 소득인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받은 교수들이 많을 거다.

 

조재원: 사실 설계수업이 많이 쌓여있는데, 그 학기에 맨땅에 헤딩하기식으로 선생님하고 학습하지만 말고, 만약 학생들이 한 10년 동안 같은 학기에 했던 걸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전에 교습들을 동영상으로 본 다음에 뭔가 뛰어넘을 수 있는, 학생들 개개인이 가지는 지향이나 자기가 취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적으로 뽑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미래학교란 개인에 맞춤인 교육환경이 아닐까 싶다.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걸 팔레트처럼 쉽게 액세스하고 가져갈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어찌 보면 교실이라는 환경에서 개인은 시간표를 짜는 것 이외에는 그렇게 큰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황두진: 오늘 이야기하는 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가장 대표적인 시간-공간 대칭의 상황이었던 학교가 시간-공간의 비대칭으로 해체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공간 대칭만이 가진 가치가 무엇일까?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인 듯하다. 

 

최도인: 개인적으로 요즘 강의를 맡고 있지 않아서 관찰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육이 만들어진 게 70~80년 정도 되는데, 어떤 면에서는 절망감도 느껴진다. 제도 교육의 시스템 안에서 이런 상황들을 개별 교수에게 맡겨놓고 그가 (많은)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학교나 교육부에서 제시한 지침들이 개별 교습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간의 교육을 세대별로 나눠보면, 전통적인 대학교육을 1세대, 오픈 유니버시티라는 방송통신대를 비롯한 각종 사이버대학에서 구축했던 누구든 학생이 될 수 있고 온라인 미디어 기반으로 학습했던 시스템이 2세대다. 지금 상황은 1세대 교육과 2세대 교육 자체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3세대 교육의 출현을 주목해봐야 한다. 황두진이 시공간의 (비)대칭성을 이야기했는데, 거기에는 교수와 학습자 간의 상호학습이 어떻게 이뤄지는가가 중요하다. 사실 학교는 제도화된 커뮤니티인데, 그 안에서 서로 학습적 인증을 받은 사람들끼리 때로는 자극을 받고 경쟁도 하고 성취를 얻기도 한다. 그게 단순히 ZOOM과 같은 온라인 소통 기반으로는 풀 수 없는 숙제인 것 같다. 

 

조재원: 물리적 세계와 물리적이지 않은 세계가 시스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나. 사실 이번에 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축이 정말 성취하고자 하려는 가치를 구현하려면 건축의 물리적 측면을, (설계 위주의 텍토닉이든 구조든 엔지니어링 측면이든) 경계 없이 뛰어넘어서 모든 걸 수단 삼아서 조직할 수 있어야 되는데 아직은 건축 안에서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 같다. 근데 이번이 그걸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레이첼 보츠만이 『신뢰이동』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자기 이해에 대한 관점에 변화를 준 역사상 중요한 탈중심적 변화 중에 현재  우리는 온라인 활동과 오프라인 활동이 온라이프(on life)에서 결합하는 시대에 진입했다고 소개한다. 건축도 자연스럽게 온라이프라는 새로운 영역 안에서 확장되는 계기가 이번에 만들어졌으면 한다. 

 

황두진: 오히려 이런 기회가 우리로 하여금 건축이 다른 직무와 어느 지점부터 구별되는지를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계기 같기도 하다. 기능적인 문제가 해결되었고 사람들이 만족감을 얻으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도리를 다한 것인가? 그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일상적 상황에서도 현대사회가 원하고 요구하는 것들이 워낙 다종다양하고 복합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실 기능적 솔루션 이상의 플러스알파를 놓치는 상황도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조재원: 모든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지금 크로스오버, 영역을 넘나드는 협력의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다. 내 직능 안에서 나의 전문성이 어디까지라고 좁혀서 정의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영역을 알면서 ‘나는 여기까지만 하면 돼’를 넘어서 내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부분을 폭넓게 책임져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 문제해결로 이어지는 것 같다. 불특정하고 불확정적 영역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위기 상황에서, 모호한 문제, 특히 새로운 문제는 내 영역 밖의 접점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을 때만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어떻게 보면 교육도 그런 영역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영역을 인지하고 누구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지점 같다.

 

황두진: 결국 학교라는 건 우리는 서로의 선생이고 학생이라는 것이 대전제가 되어 있다. 겉으로는 선생과 학생이 구별되지만. 그런데 학생들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는 선생이고 동시에 학생이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학교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과연 온라인과 비대면으로 어디까지 극복해줄 수 있을까? 지식 정보는 유튜브에 깔려 있고 족보도 널려 있다. 그런데 과연 서로가 만들어가는 것을 어디까지 온라인과 비대면이 해줄 수 있을까가 개인적으로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인 것 같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감각

 

SPACE: 이번 사태는 도시가 품을 수 있는 산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최도인: 지금 코로나19 상황의 가장 큰 영향은 경제적 충격이다. 거시적으로 놓고 보면 소위 글로벌 밸류체인이 기본적으로 세계화라고 하는 유동적인 자본과 세계를 꿈꾸다가 갑자기 그게 블랙아웃된 거다. 갑자기 모든 이동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상황이 준 경제적 충격. 문화나 공간을 이야기할 때도 경제라는 기반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논할 수 없다. 공공의 지속가능성도 공공이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갖기 위한 세수가 확보가 되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고, 기업이나 민간은 그 정도의 상황을 예비한 공간을 기획할 때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담아낼 수 있다. 우리가 공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국제적 재난 상황이 주는 경제적 충격을 우리의 도시, 공간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경제적 충격을 거시적 지표로 보면 우리나라는 12조 원을 썼고, 미국은 GDP의 13%를 썼다고 하지만 이게 미시적으로 놓고 보면 개인이나 기업의 문제다. 경제주체의 문제로 전환되는 이슈들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우리 사회가 모든 걸 다운사이징할 것이냐? 매출이 30억 원되는 베이커리가 이제는 매출이 5억 원이 되더라도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로컬 베이커리가 될 수 있느냐? 이런 것처럼 되게 현실적인 문제다. 코워킹 스페이스도 마찬가지다. 

 

황두진: 우리의 논의에 정답은 없지만, 특히나 지금 말씀해주신 내용은 개인의 세계관과 철학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흔히 지속가능성이란 용어를 굉장히 많이 쓰지만, 이 단어만큼 각자 이해하는 바가 다른 경우도 없는 것 같다. 혹자는 현상유지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고, 또 다른 사람은 성장의 지속가능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일단 현상유지라도 된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유명 관광지의 인파가 줄면서 공기의 질이 좋아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시 인파가 몰리는 상황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목표인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간 너무 많이, 쓸데없이 돌아다닌 건 아닌지 반추해보게 된다. 과거처럼 여행을 다니지 않아도 내 삶의 질이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나빠지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 자기 업과 관계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만. 솔직히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우리가 정말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학생들 모형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서울 정도 되면, 커다란 모형 아카이브가 있어서, 이번 학기에 필요한 사이트 모형을 5~6년 전에 다른 사람이 만든 것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창작물의 결과에도 수명이 있는데, 그에 관해서도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일례로 전시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무엇을 만들어내든지 전시가 끝나면 기록만 해놓고 버린다. 이 역시 계속 유지해야 하는 관행인지 의문이다. 

 

조재원: 그간 우리 사회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재화나 서비스의 소비와 연결에 있어서 필요를 뛰어넘어 과하게 소비하고 연결에 목말라했던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를 줄이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내 이웃이 겪는 고통이 될 것이고, 나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간 전반적인 경제의 활성화 정도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더 많이 소비해야 공공과 민간이 성장할 것이라고 하면서 성장의 동력으로 건축이 도구적으로 사용되어왔다. “고통이 너무 클 것”이라고 해서 그 고통을 피해 이전의 소비관성으로 되돌아가 또 이러한 재난을 만날 것인지. 그러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 사태가 과한 소비와 이동을 줄이고 방향을 전환하라는 엄중한 경고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건축과 도시도 데이터가 많이 쌓였는데 그걸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건축으로 다시 돌아가면 적은 에너지, 적정한 자원을 들여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장소를 만들 수 있을지, 적정치의 투자를 생각해볼 때다. 미학적인 성취나 건축적인 성취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가성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제 건축/공간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 적절한 자원을 투자했는가도 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적정하다는 게 무엇이냐? 지역은 지역대로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 적정한 도시지표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이 되고 관찰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새로운 공동체의 규범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이런 일을 다 같이 겪은 공동체의 기억을 가지고 앞으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이전보다 사회적 합의점을 모색하기가 쉬워지리라 생각한다. 

 

황지은: 이번 사태로 산업ㆍ경제적 거리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에 세계적인 무역이나 수출 관계가 무너지고 공적으로 마스크가 수급되는 과정을 보았다. 그 과정들을 보면 그동안의 시장경제와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권리를 이양하는 과정을 몸소 실현했다. 그게 아마 또 하나의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 데이터 프라이버시에 대한 이야기도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동선을 공개하는 순간 얼마나 많은 정보가 생산되는지도 알게 되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보 데이터의 보완 범위가 정말 우리가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유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게 놀라운 현상인 것 같다.

 


공공공간은 어떤 지향이 필요한가

 

SPACE: 그간 공공공간을 비롯해, 공동체나 소통, 플랫폼, 공유지 등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교류를 위한 물리적 공간의 방향이나 어떤 교류가 이 시대에 필요한지를 포함해서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것을 생산하는 시스템 문제까지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재원: 공유재, 커먼즈에 대해 관심이 있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도시공유지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공공공간이 다 커먼즈는 아니다. 공공공간이 커먼즈가 되는 때는 시민의 사회적 활동, 정치적 활동의 무대가 될 때다. 시민들이 자원을 운영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가 커먼즈의 중요한 지표다. 시민들에 의한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도시공유지가 다양하게 존재했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할 것 같다. 우리가 공감하는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삶의 새로운 표준으로 삼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플랫폼이 되는 도시공유지의 역할이 필수적일 것 같다. 요즘 공유오피스와 같은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사용자들이 민주주의의 원칙하에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며 공간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형성한 공공공간은 드물다. 종로구에서만도 코로나로 인해 기약 없이 문을 닫은 공공시설이 239개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보면 더 어마한 숫자의 공공시설들이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아무런  작동을 못하고, 이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단순히 체육관이나 미술관 같은 공공 서비스 기능을 하는 물리적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플랫폼으로써 연결을 이뤄내는 둥지 역할을 했다면 문을 닫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역할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이웃들, 자원들과 연결해줄 도시공유지들이 내 일상을 구성하는 영역 안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공급자 관점의 생활 SOC가 아니라 위기의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도시공유지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황두진: 이번 경험을 통해 결국 커뮤니티적 접근 방식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과연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규모여야 하느냐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르겠지만 사실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이격된 거리를 오가면서 맵핑을 해야 하는 도시적 삶에서 자기 커뮤니티를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커뮤니티의 회복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필요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공공재라고 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주제인데,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면 공공 소유라는 의미로 바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공공이 아무리 많아 봤자 민간이 소유하는 비중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민간은 공공한테 공공재로써 순기능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그 역할에서 면제된다고  보면 안 된다. 따라서 민간이 가진 어마어마한 자원을 또 어떻게 공공적으로 쓸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황지은: 황두진이 동네 공원(통의동 마을마당) 지키기 운동을 했을 때 “여기가 공원이 되면 시간을 내서 청소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당연히 종로구에서 공원관리를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말이다. 결국 수요자의 입장에서, 개개인도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가져갈 수 있어야 공공재가 되는 것이지 않겠나. 결국 우리 스스로 내놓을 수 있는 만큼이 공공재인 것 같다. 그런 게 쌓이면 거대한 민간에도 그런 행동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재원: 도시공유지를 통해 공적 자원이 투입되어 공간의 수요와 공급에서 제3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제로페이가 활용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직은 모호한 생각이지만, 도시에 공급되는 공유지들이 개별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공적 부조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기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도인: 보통 퍼블릭 섹터, 프라이빗 섹터 이런 식으로 공공과 민간을 대립하는 언어를 많이 쓴다. 공공 섹터냐 민간 섹터냐를 따지는 것만큼 중요한 키워드가 공공성인 것 같다. 서로 공감대가 있는 부분은 프라이빗 섹터의 공공성도 중요하고 공공 섹터 본연이 지녀야 할 공공성이 중요하다. 나는 직업윤리의 밑바탕이 되는 공공성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회적 가치로써 이렇게 되면 선하고 착한 일이다라는 방식의 실현보다는 내가 하는 일의 직업윤리 속에서 공공성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이라고 하는 게 자기 분야의 사람들만 가지고 해결되지 않으므로, 그 가운데 다른 영역과 만나길 바란다. 새로운 규범들 속에서 출발하는 어떤 보편성들이 사실은 각자의 직업윤리 속에서 지탱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황두진: 건축계와 사회의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건축가로 일해 온 과정에서 모든 섹터에 걸쳐 이렇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건축계가 여전히 자기 주변에 벽을 많이 쌓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데, 이것을 계기로 일어났으면 하는 변화는 아주 간단한 자각이다. ‘우리는 시민사회의 일원’이라는 것. 건축계가 별로 특별할 것이 없고 모든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한다.

 


조재원
조재원은 공일스튜디오 대표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적정하고 지속가능한 가치를 더하는 사회적 공간을 탐구하고 실현하는 데 관심을 두고 일하고 있다. 근작으로는 (구)샘터사옥을 리노베이션한 공공그라운드 공공일호, 코워킹오피스 드림플러스 강남이 있다. 2010년 제주 돌집 플로팅L로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2011년 대구 어울림극장으로 공공디자인대상, 그리고 2016년 코워킹플랫폼 카우앤독으로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최도인
최도인은 예술경영을 전공하였으며, 메타기획컨설팅에서 문화, 공간, 도시 등을 주제로 하는 실천적 리서치, 컨설팅, 기획 등의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도시의 문화적 공간과 환경, 지역의 고유성(독창성)과 문화적 성장, 창의성에 기초한 산업생태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왔다. 2015년부터 세운상가군 산업재생 비전 수립을 위한 컨설팅 및 거점공간 기획을 총괄하였고 현재 세운협업지원센터 공동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제주도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찰스 랜드리의 저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의 한국어판 기획/감수를 하였다.
황두진
황두진은 서울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한 후 2000년에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그에게 건축이란 기하학을 매개로 하는 프로그램과 장소 간의 역동적인 대화의 과정이다. 이 접근 방식을 통해 그는 현대건축과 전통적인 프로젝트를 동시에 다룬다. 그의 건축은 단순한 형식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 등 건축과 도시에 관한 책들을 써왔으며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강의하고 전시했다.
황지은
황지은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며,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제조업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세운캠퍼스의 베타시티센터 센터장과 세운협업지원센터 공동센터장을 맡고 있다. 학구적 디자이너이자 실천적 연구자로서 공간정보와 장소성, 디지털 조형과 제작구법, 디자인미디어와 인터페이스, 건축 정보의 유통에 관심이 있다. 대표 수행연구로는 디지털트윈기반 도시재생 활성화 플래폼 개발, 참여형 모바일 증강현실 콘텐츠 제작, 도시 공공공간 변화 모니터링을 위한 시공간 타임라인 시스템 개발, 세계문화유산 모니터링 지표 시범조사 연구 등이 있다.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현장프로젝트 생산도시 공동큐레이터를 역임했으며, 갤러리팩토리,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문화역서울 284, 금호미술관의 초청으로 소셜미디어를 도입한 참여형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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