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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울 외곽의 경관 형성과 신종교: 옛 전도관 건물을 중심으로

김시덕
사진
김시덕
진행
이성제 기자
background

코로나19, 신종교, 도시의 외곽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는 세계 여러 나라가 품고 있던 사회문제를 뜻하지 않게 드러내고 있다. 그간 도입이 지지부진하던 재택근무와 원격회의, 원격진료가 일거에 활성화된 것이 긍정적 측면이라고 한다면,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제외하는 등 한국 사회가 품고 있던 뿌리 깊은 차별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특정 종교집단의 부각이다. 코로나19의 확산 초기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의 신도 중 일부가 코로나19의 슈퍼 전파자라는 보도가 다수 나왔다.▼1 1970~80년대 공업도시 외곽에 많이 세워진 직장여성 전용 아파트에도 이 종교의 신도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2 특히 후자는 사건 초기에 음모론적 시각으로 다뤄졌으나, 저소득층 여성의 생활 안정을 꾀하는 전용 아파트의 설립 취지, 저소득층 가운데 기성 종교에서 포용하지 못한 일부가 신천지에 귀의했다는 사회학적 특성 등이 그 후에 논의를 통해 밝혀졌다. 신종교(신흥종교)를 믿는 신도 중에는, 기존 사회질서와 기성 종교에서 밀려난 끝에 그 외곽에 존재하는 신종교에서 신앙적 활로를 모색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3

한편 현대 한국의 신종교에 관심이 있는 내게는 신천지 시설이 과천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4이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이 현대 한국의 신종교도 각자 성지(聖地)를 설정하고 있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박태선의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이하 천부교)▼5는 옛 한양・경성의 서남부 외곽 지역인 마포와 대서울 남쪽 바깥의 부천 소사를 성지로 개창 초기에 설정했다. 문선명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은 대서울의 동쪽 외곽인 구리시 수택동에 중앙수련원과 주식회사 일화 공장을 건설하는 등 이곳을 주요 성지로 삼았다. 한편 유재열의 장막성전▼6을 기원으로 삼는 신천지는 과천을 성지로 설정했는데, 천부교・통일교 계통 신도와 교리를 흡수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췄다고 지적되고 있다.▼7 이러한 점에서 신천지는 현대 한국에서 탄생한 기독교 계통의 여러 신종교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되며, 대서울의 외곽 지역인 과천에 대한 신천지의 강한 애착은 기독교계 신종교의 서울 외곽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흥미롭다.

반복하지만, 무신론자인 내가 코로나19의 유행과 신천지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대 한국의 기독교계 신종교의 신도들 가운데 일부가 한국 사회의 주변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 신종교의 일부가 일제 식민지기 경성 또는 현대 서울의 외곽을 성지로 설정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신천지가 기존의 종교들과 이어오고 있는 갈등에 천착하거나, 이들의 활동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이러한 신종교의 특성을 현대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박태선의 천부교를 조명함으로써 코로나19와 신종교 그리고 대서울 외곽 지역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려 한다.

 

부천 대장동의 전도관

 

 

전도관 건물이 형성한 현대 한국 도시 외곽의 랜드스케이프

제3기 신도시 예정지인 부천시 대장동 일대는 부평 분지의 20세기 초 모습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이다. 부천덕산초등학교의 분교인 대장분교 앞에는 조선시대 이 일대를 통치하던 부평도호부 관아로 가던 길이 남아 있다. 개나리가 터널을 이룬 이 길을 따라가면 1920년대 부평 분지를 농경지로 개량하기 위해 건설된 동부간선 수로(水路)와 그 위로 미군이 놓은 다리가 나오고, 그 너머로 해방 후 미국에서 도입된 4-H운동의 기념 비석이 놓여 해당 지점이 마을의 입구임을 보여준다. 4-H 비석을 지나 계속 옛길을 따라가면,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새마을운동 마크도 나타난다. 4-H운동, 프로테스탄트, 새마을운동 등 이 세 가지는 현대 한국의 정신적 동력이었다.

그런데 4-H 비석에서 옛길을 벗어나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외관이 독특한 회색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중세 유럽의 성을 본뜬 듯한 파사드 타워의 삼면에 커다란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직사각형의 중앙회랑 양면에 기둥과 창이 장식돼 있다.▼8 이 단정한 건물은 현대 한국의 한때를 풍미한 박태선의 천부교에서 건설한 종교시설 전도관(傳道館)이다.

전국을 답사하다 보면 전도관 건물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때 전국에 수백 곳▼9이 있었다고 하는 전도관들은 현대 한국의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건설되며 특징적인 랜드스케이프를 만들었다. 특히 부천 대장동에서 보듯이 전도관은 주로 도시 외곽에 자리 잡았는데, 이를 통해 1955년 이래로 프로테스탄트로 상징되는 기성 질서와 대립해온 이 종교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도시 외곽을 지향하는 천부교의 성향이 극대화된 사례로는 1957년 11월부터 서울・부천・광명의 경계 지역 황무지에 건설된 소사신앙촌을 들 수 있다.

내가 확인한 적지 않은 천부교 건물들은 단순히 도시의 외곽이 아니라, 외곽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도시를 내려다보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1956~1957년 건설된 서울 중앙 전도관(이만제단)은 서울 용산구 청암동의 전차 종점 옆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전차 종점이라는 도시 외곽에서 구도심을 내려다보는 스탠스였다. 인천 숭의동의 전도관은 인천 구도심 외곽인 쇠뿔고개 위에서 인천 구도심을,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의 전도관은 옛 장항선 판교 역전마을 외곽의 언덕에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이외에도 여러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문명의 외곽 지대인 산악에 자리한 집단은 의도적으로 평지에 자리한 집단과 다른 종교・언어를 택함으로써 스스로를 구분하고, 평지에 사는 집단보다 자신들이 더욱 순수하고 우월하다는 스탠스를 취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10

이제까지 천부교는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파생・이탈한 집단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논해졌다. 이러한 경향에서 예외적인, 종교학자 최중현의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통일교 재단인 선문대학교 소속이었지만, 그의 연구에서 특정 종교・교파를 절대시하는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박태선의 천부교는 일시적 사회병리의 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현대 한국사의 한 부분”▼11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종교계 이외에 지리학 분야의 연구도 있는데, 현대 한국의 도시 외곽에서 특징적 랜드스케이프를 이룬 전도관 건물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다. 천부교의 내부 자료가 공개된다면 한국 곳곳에 현존하는 전도관들의 구체적 건설 배경을 알 수 있겠으나 “연구자에 대한 경계의식이 매우 강해 외부의 비신앙인, 특히 연구자들의 경우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고 “외부인의 출입, 특히 연구자들의 한국천부교 연구가 금지되어 있는 한국천부교의 상황”▼12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인천 숭의동 전도관

 

 

인천 숭의동 전도관의 연혁에 대한 현 관리자 연태성의 증언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4월경 인천 숭의동 전도관 내부를 답사하고, 현재 이 건물을 관리하는 연태성▼13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인천 숭의동 전도관은 용산의 서울 중앙 전도관에 이어 박태선이 두 번째로 건설한 대형 전도관이다. 서울 중앙 전도관을 비롯한 대형 종교시설이 모두 철거되었고, 신앙촌 내부의 종교시설에 대한 외부인 접근이 불가능한 지금, 인천 숭의동 전도관은 현대 한국의 한때 도시 외곽에서 볼 수 있던 특징적인 랜드스케이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귀중한 존재다. 인천 숭의동 전도관을 포함하는 일명 ‘전도관 구역’은 현재 재개발이 확정된 상태여서 이 랜드스케이프도 곧 사라질 터이므로, 이 증언이 더욱더 귀중하다.

연태성에 따르면 인천 숭의동 전도관의 파사드 타워는 원래 지금의 두 배 길이였다. 1980년까지는 삼면에 십자가 장식도 뚜렷했다. 1980년 박태선이 하나님 선언을 한 뒤 십자가가 메워졌고, 그 후 어느 목사가 탑이 무너지는 꿈을 꿨다면서 탑을 반토막 내게 했다. 1981년 천부교 측이 이 건물을 이초석▼14의 한국예루살렘교회에 매각했다. 1987년 4월 교회가 이 건물에 입주했고, 1988년 10월경 강당을 1층과 2층으로 분리했다. 2005년에 한국예루살렘교회가 인천 가좌 지역으로 이전한 뒤로 5~6년 동안 비어있었고, 2011년 우각로 문화마을 사업 때 잠시 개방됐다. 2015~2016년경 사업이 종료된 뒤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가며

이 글에서는 현대 한국의 한 시기에 대서울과 그 밖의 도시의 외곽에서 특징적인 랜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낸 천부교의 전도관 특성과 그 성립 배경을 살폈다. 이를 통해 2019~2020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와 현대 한국의 기독교계 신종교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과제를 정리한다. 첫 번째, 천부교(또는 전도관 건물)의 도시 외곽 지향성이 그 밖의 신종교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천 청계산을 중심으로 삼는 호생기도원・장막성전・신천지, 구리・가평 등에 중심을 둔 통일교, 구로공단 주변에 자리 잡은 성락교회・만민중앙교회, 옛 시흥군・영등포 영역의 외곽인 봉천동에 자리한 각종 신흥종교들, 영동・강남의 남쪽 외곽이던 양재천 가에 자리한 천국복음전도회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전국의 옛 전도관 건물들에 대한 건축학적 정리가 필요하다. 전도관이 천부교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전도관 건물들이 매각 또는 폐기되었으며, 현재는 천부교 측에서도 이들 건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종교와는 무관한 입장에서, 현대 한국 역사의 일부로서 옛 전도관 건물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이 대서울과 한국의 외곽을 답사하고 연구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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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르스・코로나19 수퍼 전파자 공통점과 차이점’, 데일리메디, 2020. 2. 23.

2. ‘대구 한마음아파트의 오해와 진실’, 뉴스민, 2020. 3. 11.

3. ‘신천지에 유혹당하는 이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0. 3. 31.

4. ‘[한국 소종파의 역사] 한국에 하느님 20명, 재림예수 50명 있다’, 한겨레, 2020. 3. 6.

5. 대한예수교장로회 장로였던 박태선이 1955년 창시한 신종교로 당시에는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후 1980년에 자신을 ‘새하나님’으로 선포하면서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개명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천부교’로 명칭을 일치시켰다.

6. 유재열의 장막성전은 일제 식민지기 경성의 남쪽 외곽 지역에 해당하는 동작구 상도4동의 호생기도원에 발단을 두고 있으며, 현대 서울의 남쪽 외곽 지역인 막계리(현 과천 서울대공원 일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7. 현대종교・국제종교문제연구소, 『한국의 신흥종교』(2008), pp.187~216.

8. 박태선이 1980년에 자신을 하나님으로 선언하면서 전도관의 양식은 큰 변화를 겪었다. 파사드 타워 삼면의 십자가가 수직 창으로 바뀌거나 메워졌고, 파사드 타워 꼭대기에 설치됐던 십자가는 올리브 가지에 앉은 비둘기로 바뀌었다. 한편, 다른 신종교의 건물들을 살펴보면, 이영수의 한국기독교 에덴성회의 알곡성전 본당 및 유재열의 장막성전 건물도 큰 십자가가 새겨진 중세 유럽 성곽 형태의 파사드 타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 신종교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짐작된다.

9. 인천지역의 경우, 1970년대 말부터 전도관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전에는 거의 동마다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김종석, 『한국의 육신영생신앙』, 아우내, 2016, pp.123~124.)

10. 제임스 C. 스콧,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삼천리, 2015, pp. 280~281.

11. 최중현,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 제1권』, 생각하는 백성, 2009, p. 306.

12. 김종석, 『한국의 육신영생신앙』, 아우내, 2016, p. 27.

13. 연태성의 부모는 황해도 옹진군 흥미면 마지리에서 출생했으며, 한국전쟁 중 각기 피난선을 타고 충청남도 태안・서산에 왔다가 만나서 결혼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천 자유공원의 피난민 수용소에 왔고, 귀향이 좌절된 뒤 현재 연태성이 거주하는 주택을 7~8가구가 공동으로 구입했다. 연태성은 198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전도관에 출석했다.

14. 이초석은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교계에서 이단 시비가 있는 성락교회의 설립자 김기동과 신앙적으로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는 인물이다. 이초석은 전도관・통일교・신천지 등과는 달리 기존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의 공존을 견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초석이 전도관 건물을 매입했다는 점은 기성 프로테스탄트 교파의 외곽에서 활동하는 여러 종교집단들 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여 주목된다. 참고로, 김기동은 도시 외곽을 지향하는 현대 한국의 신종교처럼, 식민지 시기 경성의 서남부에 해당하는 영등포의 외곽인 구로 지역을 거점으로 종교 활동을 전개했다


김시덕
김시덕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로 문헌학과 전쟁사를 전공했다. 대서울 답사를 부전공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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