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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 감염병에 대응하는 건축

김예람 기자
자료제공
카를로 라티 어소시아티 (별도표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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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이전의 호흡기 바이러스

코로나19 이전에 전 세계는 스페인 독감(1918), 아시아 독감(1957), 홍콩 독감(1968)을 비롯한 다양한 호흡기 감염병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국경을 폐쇄하여 외부 감염원의 유입을 막고 치료제를 빠르게 생산·보급하는 것이 최선의 대처법으로 여겨졌는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등장한 2000년대 초반부터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까지의 대응방식은 그때와 어떻게다를까?

 

사스가 창궐한 2002년, 중국은 발병지인 광동성을 봉쇄했고 미국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이 감염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장거리 교통수단으로 인해 높아진 지역 또는 국가 간 연결을 차단함으로써 질병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9년 해외 입국자를 통한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감염이 국제적으로 발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에 지역사회 감염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이것을 교훈 삼아 한국은 개개인의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역학조사기법을 개발했고 유증상자를 정밀 식별·관리하는 검역 시스템을 구축했다.▼1 2012년에는 국내에 큰 피해를 입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발병했는데, 이 시기에 한국은 독일, 홍콩처럼 밀접접촉자에 관한 개념을 명확하게 수립하지 않아 중증환자의 수를 키웠다. 그로 인해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후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자를 집중치료하는 저압력병실(음압병실)이 지역거점 의료기관마다 들어섰다.▼2 그렇다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각 나라들이 개별적인 조치를 취했던 과거 감염병 사례와 달리,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다국적 기업과 디자인 스튜디오 등이 다양한 유형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여 서로 백신을 배포하듯이 공유하고 있다.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의 방역대책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민간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신속한 대처를 위한 의료시설 

감염병에 대응하는 건축은 치료제가 보급되기 전까지 최대한 질병의 전파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해야 하며, 그중 의료분야의 건축은 확진자 파악 및 격리치료시설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질병대응체계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마련된 의료건축적장치는 크게 선별진료 시설,이동식 음압병실,임시병동 등으로 구분된다. 먼저 선별진료 시설은 안내, 문진, 진료, 검체 채취의 절차에 맞게 천막 또는 키오스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진료 대기자 간 안전거리 유지를 위해 주로 야외주차장에 지어진다. 설치와 철거가 어렵지 않아 국내 병원 및 보건소에 많이 생겨났으며 최근에는 조립식 벽체를 활용한 음압진료 시설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선별진료 공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반면, 유럽은 음압병실 구축에집중하는 모양새다.

 

독일 기반의 디자인 듀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는 기압을 통해 의료인력을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프로토타입 ‘모바일 피피에스 포 닥터스’를 제안했는데, 이것은 의료용 마스크와 방호복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료 차질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사전제작된 모델은 4×8m 크기의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유닛으로, 다중연결을 통해 전실, 사무실, 휴식 공간을 갖춘 시설로 확장될 수 있다.▼3 유럽에서 두 번째로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은 이탈리아에도 공기 팽창형 모델이 있다. 건축가 카를로 라티와 이탈로 로타는 고령 감염자가 크게 증가하는 토리노 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 집중치료 시설을 건설하는 것보다 이동식 음압병실을 구축하는 편이 시간과 경제적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환기용 텐트와 컨테이너 병상이 결합된 중환자실 모델 ‘큐라’를 만들었는데, 이 유닛은 자가호흡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산소 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절대여과 및 오존필터로 배기를 정화하여 바이러스가 주변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한다. 큐라에 관한 모든 자료는 오픈소스로 공유되고 있는데 현재 미국, 캐나다, 아랍에미레이트 등이 이를 활용하여 바이러스에 대응하고 있다.▼4

 

 

MOBILE PPS (Personal Protective Space) for Doctors from plastique fantastique on Vimeo.

디자인 듀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프로토타입 ‘모바일 피피에스 포 닥터스’​​

 

 

건축가 카를로 라티와 이탈로 로타가 디자인한 이동식 음압병실 큐라’ ©Max Tomasinelli

 

 

대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 전용 병동을 빠르게 확보해야 하지만, 기존 의료시설로 갑작스러운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러 국가들이 재조립이 가능한 가설병원을 구축하거나 다른 용도로 운영되는 건물을 임시병동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국내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은 감염병을 비롯한 각종 재난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 이동형 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고강도 철판 위에 박스형 모듈이 얹혀진 형태며, 전기 및 배관 설비를 조립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동과 설치가 간편하다. 그리고 응급실, 수술실, 진단검사실, 식당 및 숙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듈 확장을 통해 최대 300병상까지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5 국내와 달리 해외에는 가설물로 의료시설을 구축하는 사례보다 대형전시시설이나 호텔을 병원 용도로 개조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한국도 종교집회로 인한 집단발병과 해외 체류자의 대거 귀국이 있었던 시기에 일부 연수원을 집단격리 및 치료시설로 활용했지만, 그 수가 해외에 비해 적고 지금까지 운영되는 곳도 많지 않다.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으로, 특히 5월 20일을 기준으로 확진자 수가 35만명이 넘는 뉴욕주는 병상수를 50% 늘리기 위해 지역 내 유휴시설, 전시 및 공연시설을 임시병동으로 바꾸는 작업을 부리나케 진행하고 있다.▼6 이에 발맞춰 뉴욕병원연합은 기존 건물을 병원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설계, 시공 관련 지침을 세우고 있다.▼7 코로나19가 발견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공통으로 기존 환경에 쉽게 대입 가능한 유닛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다만 국내는 해외 입국자와 집단감염이 확산의 주 원인이기 때문에 확진자 선별을 우선시하는 진료시설을 중심으로 하고, 해외는 유증상자의 수가 많기 때문에 감염자를 위한 치료시설을 중심으로 의료건축이 전개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건축가가 제안하는 앞으로의 일상

2020년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했다. 국제기구가 질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곳곳에서 이번 호흡기 바이러스가 감기처럼 일상에서 쉽게 발견되는 엔데믹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의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는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방식의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전개하게 될까? 국내는 선별진료 시스템에 적용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재래시장, 도서관, 백화점 등 다양한 시설에 접목하고 있는데, 예약·주문한 품목을 현장수령하여 공간의 혼잡도를 분산하는 방식을 통해 일상으로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건물이 아닌 공원과 광장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 아이디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크리스 프렉트는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된다는 가정 하에 시민들이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공원인 ‘파크 드 라 디스탕’을 제안했다. 수도 빈의 한 블록을 공원화한 이 프로젝트는 90cm 폭의 담장이 지문 모양을 한 산책로가 되어, 방문자가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걷게 만든다.▼8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는 마을 광장을 팝업형 시장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가 제안됐다. 건축 스튜디오 시프트 아키텍처 어바니즘은 광장을 16개의 정사각형 그리드로 나누는 프로토타입을 제안했는데,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화물차량 세 대가 진입부를 제외한 나머지 면에 각각 정차하고 주민들은 정사각형에 한 명씩 들어가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 채 장을 보는 방식이다. 이런 작은 시장은 대형마트를 여러 단위로 분할하는 역할을 하여 구매자의 감염 위험을 낮출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의 기본 생활요건이 충족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9​

 

앞에서 살펴보았듯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건축은 감염속도에 준하는 선제적 대응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거치지 못한 채 도시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누락된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건축에 적용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과정이 바이러스 대처와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호흡기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국내 건축 사례들은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이런 모델들은 시설의 사용자를 운전자로 제한한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프라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보행자를 위한 워크 스루 방식을 도입하는 시설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 그리고 공간 사용자의 밀집도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조례가 없는 상황도 개선해야 한다. 최근 국내 국공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수용인원을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되고 있으나, 이같은 내용을 명문화한 가이드라인의 효력이 부족하여 여러 시설에 유사한 대처방안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태다. 미국건축사협회가 물리적 안전거리를 지키기 어려운 100㎡ 이내의 다중 이용시설에 권고하는 세부지침을 발표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10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건축과 도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공간의 적정밀도를 설정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에 상응하는 건축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건축가 크리스 프렉트가 제안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공원 ‘파크 드 라 디스탕’©Studio Pr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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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oi Wonsuk·Kim Woojoo·Cheong Heejin, ‘The Evaluation of Policies on 2009 Influenza Pandemic in Korea’,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43(2): 105 – 108.

2. Jun Byungyool, ‘What did the MERS outbreak leave for a year?(메르스 사태 1년 무엇을 남겼나?)’, KMA Times, 2016. 5. 20.

3. Tim Spears, ‘Plastique Fantastique Creates a Mobile Bubble-like Space to Protect COVID-19 Doctors’, Designboom, 2020. 4. 20.

4. Tom Ravenscroft, ‘Shipping-container intensive care unit installed at Turin hospital’, Dezeen, 2020. 4. 21.

5. Press Release of ‘The Conference for overcoming COVID-19’,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2020. 3. 24.

6. Matt Hickman, ‘New York’s Javits Center Completes Transformation into 1,200 Bed Emergency Hospital’, The Architect’s Newspaper, 2020. 3. 30.

7. James S. Russell, ‘How to Deliver Thousands of COVID-19 Rooms in Weeks’, Architectural Record, 2020. 4. 1.

8. Tom Ravenscroft, ‘Precht designs Parc de la Distance for outdoor social distancing’, Dezeen, 2020. 4. 16.

9. Amy Frearson, ‘Shift Architecture Urbanism designs social distancing into the food market’, Dezeen, 2020. 4. 3.

10. 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Re-occupancy Assessment Tool V1.0, 2020.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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