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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 앵커시설

이용주건축스튜디오

정이삭(동양대학교 교수)
사진
이한울
진행
김정은 편집장
background

‘기존’과 ‘동시대’ 가치의 충돌과 접점

 

파악하기 어려운 세계를 불완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사유의 주체만을 기준으로 이익과 불이익을 판단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은 기존의 시스템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 인류사의 어느 시점, 인간은 자연의 질서와 속도를 위반하고 부자연한 행위를 시작했다. 인간은 자연의 시스템 밖에서 자신의 이익과 불이익을 판단했으며, 그 불이익의 원인이 더디게 진화하는 무질서한 자연의 불완전함이라고 단정했다. 인간이 자연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온 순간 그것은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자연은 춥고, 덥고, 위험했다. 인간은 그 불편한 자연 속에서 따듯하고 시원하며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을 지었다. 난 때로 건축이 인간이 스스로 파괴한 시스템의 붕괴를 보수하는 다양한 시도들의 변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우리가 선호하고 존중하는 그 미봉책의 건축과 도시 주변의 조경적 자연은 대개 불편이 삭제된, 편집된 그것이다. 자연과 공생하고 최소한의 삶을 주장하는 이들마저도 존재하지 않음이 진정 그들의 윤리에 부합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퇴보하거나, 지구에서의 소멸을 선택할리 없다. 인간은 회향나무 속의 불씨​1를 버릴 수 없고, 그로부터 시작한 수많은 진보의 다리는 일방통행이다. 건축은 자연 위에 만들어졌고, 그곳은 이제 자연이 될 수 없다. 하물며 지금은 건축 위에서 건축을 하는 시대다. 인간의 모든 건축 행위가 리모델링이다. 새로 짓는 것도 도시의 부분을 새롭게 바꾸거나 수리하는 일일 뿐이다. 이제 건축은 새로운 자연으로서의 기존 건축물과 도시를 바라봐야 한다. 달라지지 않은 인류의 시행착오를 짚어보며 회현동 앵커시설 작업을 살펴본다.  

 

회현동 앵커시설 작업은 1935년에 지어진 오래된 일식가옥을 리모델링(용도변경 및 대수선)하는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며, 주민 공유시설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오래된 일식가옥은 서울시 건축자산​2에 등록된 것으로, 일반 대중은 이러한 건축물 등록 사업에 대해 경제권 침해 등의 이유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최근 서울시는 「서울시 건축자산 진흥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건축자산 등록 사업이 일방적 규제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아닌 자산화의 기회라는 인식 전환을 꾀하고 있다. 회현동 앵커시설 사업은 서울시 건축자산을 지역의 앵커시설로 만들어 지역의 자산화를 목표로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두 가지의 자산의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 하나는 존재해온 건축물이 가지는 자산적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존재하는 자산의 가치이다. 이 두 가지 가치는 대게 충돌되기 마련인데, 전자가 ‘기존’의 시스템 내에서 인정되는 가치였다면, 후자는 ‘동시대’를 존중한 가까운 미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모로 유의미하다고 여겨지는 오래된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시민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는 대부분의 공공건축 사업은 모종의 충돌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조정하는 절차를 밟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검증이 부족하나마 취지를 배경 삼은 사업 목표는 있지만, 진정성 있는 실현을 위한 진행 과정의 절차에는 다소 치밀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존재해온 가치를 수식하는 기존이라는 단어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존재할 가치를 수식하는 동시대라는 뜻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이 두 개념에는 모두 현재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존과 동시대, 두 단어를 충돌하는 두 가지 가치의 접점으로 삼아야 한다. 기존의 가치가 동시대의 가치와 다르지 않음을 일반에게 설득시키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은 대중만을 위한 절차가 아니다. 이 절차는 전문가들이 생각한 기존의 가치가 진정 유의미한 것인지를 검증하는 단계이기도하다. 이 단계를 생략하고 건축가의 손에 넘어가는 사업에서 명확한 방향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본 앵커시설 조성과정에서도 수많은 충돌이 있었다. ‘존재했던’을 주장하는 측과 ‘존재할’을 강조하는 사용자의 갈등이 첫 번째다. 그러한 갈등은 건축가의 태도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애써 설계자가 궁리해낸 답은 하이브리드​3였다. 그  해법에 대해 여러 가지 취향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일부 동의한다. 하이브리드는 단순 병치와 다르다. 이종 교배 개념으로서의 하이브리드는 두 가지 충돌할 법한 A와 B의 대조적 성질이 섞여 서로의 특질을 드러내며 C를 만들어낸다. 하나가 우위를 점하지 않고, 나름의 새로운 질서로 병존하는 것이다. 다만 이 선택을 한 건축가는 A와 B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A는 오랜 세월 여러 방식으로 변용되었고, 증축되어 원형조차 알기 어려운 일식가옥이다. 그 자체로도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현황 파악을 위한 선 철거가 불가한 현 행정 시스템 내에서 기존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되는 이종교배는 어불성설이다. B라는 새롭게 부여되는 현대적 기술과 취향에 대한 건축가의 자질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존 건축물은 불완전한 것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 즉 사라져도, 무책임한 변형을 감행해도 괜찮은 대상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렇게 기존의 가치가 힘을 잃으면 하이브리드도, 충돌하는 가치들의 중재도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설계자는 국소적이고 취향적인 고민만 하게 되고, 개인적 기준에서의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게임에 함몰될 수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새로운 것을 덧대는 작업에서 기존의 시스템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기존의 것들은 공허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 문화는 전통이 아니게 되고, 생명력을 가지지 못한다.  

 

회현동 앵커시설 여러 부분에서 건축가의 쉽지 않았을 계획과 감리의 과정이 짐작됐다. 가치판단이 누락된 건축자산 지정, 주무자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행정의 관성, 충돌이 중재되지 않은 채 건축가에게 던져진 과중한 책임 등이 그 어려움의 이유일 것이다. 다수의 공공건축, 도시재생 사업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필요성에 비례하는 시스템은 잘 갖추었는지, 그 시스템이 현실 바깥에 있지는 않은지, 사업의 주체가 한쪽에 치우친 기준으로 이익과 불이익을 따지고 있진 않은지, 이 사회를 긍정하는지, 스스로 우리를 점검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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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신화에서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주신 제우스에게서 훔친 불씨를 회향나무에 옮겨 인간에게 건네어 주었다.

2. ‘건축자산’이란 현재와 미래에 유효한 사회적·경제적·경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한옥 등 고유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니거나 국가의 건축문화 진흥 및 지역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다만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등록된 문화재는 제외한다. (출처: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

3. 회현동 앵커시설의 설계자인 이용주 건축가와의 인터뷰 내용 

 




 

설계

이용주건축스튜디오(이용주)

설계담당

문성민

위치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 100-116 외 2필지

용도

근린생활시설(주민공동시설)

대지면적

226.76m2

건축면적

112.15m2

연면적

188.11m2

규모

지상 2층

높이

8.1 m

건폐율

49.46%

용적률

82.96%

구조

일반목구조(철골보강)

외부마감

스터코

내부마감

도장

구조설계

㈜케이피 엔지니어링

기계,전기설계

대광엔지니어링

시공

신아주종합건설

설계기간

2018. 2. ~ 5.

시공기간

2018. 8. ~ 2019. 5.

공사비

4억 9천만 원

건축주

서울시


이용주
이용주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다. 정보가 가진 패턴의 복잡성을 바탕으로 한 건축의 기하학적 표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E/B Office의 공동 대표로 재직했다. 미국 건축사이고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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