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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지 않은 부피와 열어둔 경계: ㅅㄱ

임승모 + 정재헌

글
임승모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에스엠엘 건축사사무소
진행
이소운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ㅅㄱ’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지명인 ‘숙곳(Sukkoth)’에서 유래한다. 숙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뒤 처음 진을 친 곳으로, 아직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잠시 멈춰 보호받고 다시 길을 준비하던 자리였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구시가지에 자리한 ㅅㄱ은 이 오래된 의미를 오늘의 도시로 옮겨온다. 

이 일대는 주거시설과 식자재 유통점, 고물상, 작은 상가가 뒤섞인 곳이다. 도시의 삶이 가까이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ㅅㄱ은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열린 태도를 취한다. 외부에는 십자가도, 교회임을 알리는 사인도 없다. 정면의 목재 벽에 ‘ㅅㄱ’만이 작은 표식처럼 놓일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때때로 열리는 모임과 예배를 통해 건물의 쓰임을 자연스럽게 짐작한다.

일반상업지역인 이 대지의 허용 용적률은 최대 1,000%로, 대지 면적의 열 배에 이르는 연면적으로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크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곧 크게 지어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실제 연면적은 그 최대치의 약 5.5%다. 계획의 목표는 동네를 향해 열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작은 교회였다. 필요한 만큼으로 건축 규모를 정하고, 대지의 나머지는 중정과 외부 공간으로 비워 도시와 만나게 했다. 

 

 

 

 

 

 

 

북·동·남 세 방향으로 도로에 접하는 조건 속에서 1층 규모의 교육관과 2층 규모의 본당 두 매스가 중정을 중심으로 놓이고, 두 개의 낮은 담장이 중정의 영역을 느슨하게 한정한다. 낮은 교육관은 주변 가로의 스케일에 맞춰 차분한 풍경을 만들고, 중정과 본당 내부로 햇살을 들인다. 초기 설계안에서 담장은 본당 외벽까지 이어져 중정을 닫고 있었다. 설계가 마무리될 무렵, 우리는 담장과 본당 사이에 사람이 오갈 수 있는 틈을 두어 중정을 외부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영역은 한정하되 시선과 움직임은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목사님은 고심 끝에 틈을 열어두기로 했다. 작은 변경이었지만 교회의 마당을 동네에 어디까지 내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린 중정은 이 건물의 중심이자 비워둔 방이다. 도로에 면한 큰 창 너머로 중정이 어렴풋이 보이고, 담장과 건물 사이의 틈을 통해 외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 평소에는 조용한 마당이지만 모임이나 작은 음악회가 열리면 본당과 교육관의 창이 모두 열리고 세 공간은 하나로 이어진다. 본당과 교육관, 중정은 각자의 기능을 가지면서도 필요에 따라 하나의 장면을 만들며 예배와 모임, 문화 활동과 일상을 느슨하게 포갠다. 

 

 

 

 

 

 

 

본당은 도시 한가운데에서 잠시 마음을 낮출 수 있는, 동굴 같은 묵상의 공간이다. 창으로 들어온 빛은 거칠게 쪼아낸 콘크리트 벽면에 천천히 머물며 공간의 표정을 바꾼다. 그 빛은 때로 공간을 따뜻하게 감싸고, 때로 숭고한 분위기를 은은하게 드러낸다. 목양실로 오르는 좁은 계단은 콘크리트 벽면에 환봉을 삽입하고 그 위에 금속 디딤판을 얹어 만들었다. 창 상부 벽면과 천장의 자작나무 마감은 내부에 부드러운 온도를 더한다. 

외벽에는 소박한 시멘트 벽돌과 투박하게 마감한 치장줄눈을 사용했다. 마치 오래된 돌담처럼 쌓이고 메워진 흔적을 드러내며, 깎여나간 대지에서 드러난 바위처럼 거칠고 자연스러운 질감을 품는다. 본당의 높은 벽면에는 치장줄눈을 높이에 따라 미묘하게 달리해 세 개 층위를 만들었다. 처음 완성된 순간의 새로움보다는 시간이 흐르며 동네 풍경에 스며들고, 풍화된 모습이 장소와 함께 살아온 흔적으로 남는 건축을 바랐다. 동측 입면의 따뜻한 목재 벽은 교회 앞 일상 공간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 옆의 유리창을 통해 내외부의 시선이 교차한다.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 교인과 방문객이 부담 없이 들어와 잠시 머물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곳. 그렇게 ㅅㄱ은 숭의동에 놓인 오늘의 숙곳이 된다.​ 

 

 

 

 

 

 

 

월간 「SPACE(공간)」 706호(2026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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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임승모+정재헌(경희대학교)

설계담당

에스엠엘 건축사사무소(임승모)

위치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용도

근린생활시설(교회)

대지면적

171.9m²

건축면적

84.81m²

연면적

94.22m²

규모

지상 2층

높이

5.4m

건폐율

49.34%

용적률

54.81%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시멘트벽돌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콘크리트치핑, 자작나무합판

구조설계

(주)토담이앤씨

기계,전기설계

(주)익스플래니트

설계기간

2022. 3.~9.

시공기간

2022. 11.~2025. 12.


임승모
임승모는 경희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창조건축과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쌓은 뒤, 2017년 SML을 설립했다. ‘형태는 가능성을 따른다(Form Follows Possibility)’를 모토로 건축, 인테리어, 환경시설물, 가구, 조형물 등 다양한 분야와 스케일을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외 다수의 디자인·건축상을 수상했으며,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정재헌
정재헌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벨빌 국립건축학교에서 앙리 시리아니의 지도를 받았다. 미셸 카강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1998년 아틀리에를 열었다. 현재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다음 세대를 이끌 건축가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모노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삶을 짓는 건축가로 디자인 열정을 쏟고 있다. 도천 라일락집으로 서울시건축상 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는 등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아트센터 림, 나무호텔, 운중동 카페, 호시담, 양평 펼친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