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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공간: 루나 하우스

페소 본 에릭사우센

사진
페소 본 에릭사우센
자료제공
페소 본 에릭사우센
진행
김지아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12월호 (통권 673호) 


 

관계의 공간​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페소 본 에릭사우센 공동대표 × 김지아 기자​

 

김지아(김): 루나 하우스는 칠레 안데스 산맥 기슭에 자리한다. 건물은 약 5,000㎡ 규모의 대지에 네 개의 안뜰을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배치됐다.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에릭사우센): 루나 하우스는 약 50mm 간격의 내진 접합부로 분리된 12개 블록이 이어진 집이다. 각 블록은 단절된 매스가 아닌, 하나의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다. 이는 건물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구조적 요구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마우리시오 페소(페소): 이 건물은 수평적으로 확장되어, 마치 바닥에 놓인 무거운 판처럼 평평한 볼륨을 갖는다. 이러한 형식에서는 매스와 보이드 사이에 불균형이 존재한다. 가령 외부 경계를 따라 개방된 큰 공간이 있는가 하면 벽처럼 매우 얇은 볼륨이 있고, 중심부를 구획하는 비대칭의 십자형 매스가 있다. 이러한 매스로 구성된 공간 역시 비대칭적이다. 


김: 구획된 네 개의 안뜰은 서로 다른 경관을 갖는다. 건축을 통해 큰 스케일의 경관을 잘게 쪼갠 이유가 무엇인가?

에릭사우센: 이 건물을 통해 기존 풍경을 정교하게 분할하고자 했다. 우리는 건축을 포함한 자연을, 한정된 속성을 지닌 한정된 사물들의 집합으로 이해한다. 풍경에는 특정한 지질과 기하학, 바위나 나무와 같은 고정된 요소, 구름이나 새와 같은 움직이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풍경은 그 모든 요소들의 집합이며, 인간이 그것을 체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구성되는 시각적 현상이다.

페소: 그렇기에 이 건물은 기존 풍경을 경계 짓고, 단절시키고,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분할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건물과 풍경의 공간적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해 말이다. 우리는 건물을 하나의 ‘구체적 자연’, 즉 풍경의 개별 속성을 강화하거나 통합하는 공간적 체계이자 틀로 삼고자 했다. 

 

 

 

김: 안뜰을 둘러싼 건물은 회랑의 역할을 한다. 어떤 시퀀스와 공간 경험을 의도했나?

에릭사우센: 루나 하우스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전체로 보면 5,000㎡가 넘는 넓은 대지 면적을 차지하는 한편, 가까이에서 보면 건물 자체는 외벽과 외부와의 접촉을 확대하는 좁은 방들로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이 건물은 폭이 5m가 조금 넘는 작은 건물로도 읽힐 수 있다. 이러한 공간구성의 결과는 실내와 실외 사이의 명백한 불균형으로 나타나는데, 그 비율은 약 1:5다. 즉 전체 면적의 5분의 1만이 실제 조정된(구축된) 공간이라는 의미다. 각 방의 크기와 방향, 비율, 그리고 재료의 일관성은 야생의 땅에 새로운 인간적 기준과 질서를 가져다준다. 

 

김: 원형과 사각형의 개구부, 기둥과 벽 등 기하학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이 프로젝트에서 기하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페소: 벽과 바닥, 지붕의 개구부는 공간마다 개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또한 표현적 요소이기도 한데, 그것을 최대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려 했다. 예컨대 1:1 비율의 정사각형 창은 시야를 확보하고 빛을 들이며 환기하는 창문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한다. 사람이 옆에 서 있지 않는 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1:1 비율의 창과 달리, 1:2 비율의 수직 개구부는 자체적으로 인체와의 관계를 연상시키며 문의 기능을 짐작케 한다. 

에릭사우센: 우리는 건축을 자기 지시(참조)적인 관계체계로 읽는 접근을 선호한다. 기하학처럼 특별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은 최대한 모호하고, 불특정하고, 보이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형 개구부와 사각형의 개구부도 이런 속성을 공유한다. 이들의 형태보다 크기와 위치가 더 중요하다.

 

 

 

김: 원과 사각형이 만나는 지점에서의 전환과 긴장감 또한 흥미롭다. 

에릭사우센: 우리는 형식적 정의들이 가진 지각적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건축 공간을 구성하는 선과 면, 볼륨 사이에는 긴장감이 있다. 특히 원형 채광창과 두 개의 벽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모서리 사이에는, 하늘에서 오는 움직이는 빛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긴장감이 있다.

페소: 이러한 형식적 관계를 사물과 사물의 관계로 간주한다면, 이 집에는 사물과 인간의 관계도 있다. 나아가 사물과 인간이 아닌 생물 간의 관계도 찾아볼 수 있는데, 벽, 창문, 기둥이 벌새, 장미, 떡갈나무와 맺는 관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체계는 더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기하학이라는 형식적 속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체계 내에 속하는 또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김: 각 실은 어떤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계획됐나? 

에릭사우센: 다양한 방과 구체적인 기능들이 있다. 잠을 자고 요리를 하고 휴식하는 주거 공간이 있는가 하면, 나무와 금속을 다루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작업 공간도 있다. 

페소: 이 집의 기능은 구체적이면서 느슨하게 정의됐다. 예술과 건축 작업을 위한 장소이기 때문에 내밀한 중정을 가진 개인 스튜디오를 마련해 독립적이고 사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공동 작업을 위한 공간도 두었다. 각 영역 간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기에 사용자가 공간을 점유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 풍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김: 목재 거푸집을 사용해 콘크리트 표면에 풍부한 질감을 구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질감을 구현하기를 바랐는가?

에릭사우센: 건물 전체가 현장에서 생산한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지진과 산불에 견딜 수 있는 강하고 튼튼한 건물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페소: 내구성 외에도 건물이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물류 공급과 운송의 문제를 고려해야 했다. 이에 콘크리트를 현장에서 혼합하고 거푸집에 부어 사용하는 실용적이면서도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콘크리트의 거친 표면에 의미가 있다면, 그건 이 재료의 지질학적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다. 시멘트와 물을 섞는 화학적 과정을 거쳐 액체가 고체로 굳어져가는 것이 곧 콘크리트의 속성인데, 여기에는 인간적 요소가 개입한다. 그 연장선에서 루나 하우스는 손으로 직접 만든 거대한 오브제다. 그러므로 이 표면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아름다운 결핍을 드러내는 기록이 된다. 

 

김: 회화에 가까운 스케치도 흥미로운 요소다. 작업에서 스케치는 어느 단계에 그리며,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키는가? 

에릭사우센: 회화와 스케치는 프로젝트 구상 단계부터 완성 시점까지 계속 이어진다. 볼펜으로 간단하게 그린 선화, 수채화, 흑연 스케치, 아크릴화, 큰 스케일의 캔버스 유화 등 다양한 기법을 아우른다. 비교적 큰 규모의 회화는 주로 시공 단계나 완공 후 몇 년이 지난 시점에 그린다. 우리는 회화 작업을 건축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라고 생각한다.

페소: 손으로 직접 건물을 표현하며 건축을 사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디지털 콜라주나 초현실적인 렌더링 작업처럼 효율성이나 해상도를 요하는 일이 아니다. 종이나 캔버스의 표면이라는 섬세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행위다.

 

김: 건축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자 하는가?

페소: 건축과 자연을 구분하는 전통적 관념에 의문을 가져왔다. 물론 건축은 인공물이고, 자연계에 없는 어느 정도의 인위성을 품고 있는 인간의 산물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대 환경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자연이라는 개념 또한 한편으로 낭만적인 개념이며, 오늘날 지구와 생산적 관계를 맺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견해에 공감한다. 자연은 단지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나 산으로만 국한할 수 없다. 자연은 세계로부터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인 것, 모든 과정이자 세계와 맺는 모든 관계다. 건축은 이러한 세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에릭사우센: 자연과 건축을 나누거나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 또는 자원 소비의 논리로 축소하기보다 건축을 ‘제2의 자연’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서 자연이란 마치 우리가 글을 읽거나 길을 걷듯 수없이 반복적인 실행으로 인해 더 이상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습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것, 즉 시간과 함께 ‘자연화된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건축이 제2의 자연이 된다는 것은 곧 제1의 자연, 즉 주어진 자연의 속성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절대적 불투명성과 무궁무진한 깊이가 있다. ​ 

 

 

 

월간 「SPACE(공간)」 673호(2023년 1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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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페소 본 에릭사우센(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대지면적

5,000m²

건축면적

2,400m²

연면적

2,400m²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페소 본 에릭사우센은 마우리시오 페소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이 2002년 설립한 예술 및 건축 스튜디오다. 두 사람은 칠레 남부 안데스 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농장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페소와 에릭사우센은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텍사스대학교, 포르토 아카데미 및 칠레 카톨리카 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코넬대학교 AAP 실무교수, 예일대학교 루이스 아이 칸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들의 작품은 런던 왕립 예술 아카데미, 로마 MAXXI, 시카고미술관, 카네기박물관,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바 있다. 또한 베니스비엔날레 칠레관 큐레이터(2008)와 작가(2010, 2016)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