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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성의 재구축: 신라천년서고

김현대 + 텍토닉스랩 건축사사무소

김현대, 김수경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자료제공
텍토닉스랩 건축사사무소
진행
한가람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2022년 12월호 (통권 661호) 

 

 


새로운 역사성의 재구축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50여 년 동안 신라역사관(이희태, 1975)을 시작으로 월지관(김수근, 1982), 신라미술관(2002) 등의 주요 상설 전시관과 특별 전시관(1982)을 갖추어왔다. 그리고 2019년 대규모 문화재 보관시설인 신라천년보고를 더하며 한국 근현대 박물관 건축의 아카이브로 기능해왔다. 맥락적으로 한옥의 형태를 따라야 하는 역사문화미관지구에 속해 있어, 국립경주박물관 건축물들은 전통성과 한국성의 표상에 대한 실험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중 원래 박물관 한쪽 귀퉁이에 업무시설로 지어졌던 서별관(건축가 미상, 1979)을 국립경주박물관의 중장기 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신라의역사문헌을 아카이브하는 장소로 리모델링하게 됐다. 설계는 예산의 한계로 외관을 최소한으로 정리하되 도서관의 실질적 기능에 충실하도록 내부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전통성의 환영에서 새로운 역사성으로

서별관에는 신라 한옥의 목구조를 철근콘크리트로 재현하고자 한 1970년대 한국 건축계의 전통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15칸 집의 형식을 갖추고 정면 가운데 칸에서 돌출된 처마가 입구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전통 목구조의 평면과는 달리 측면 가운데 칸이 2.6m의 좁은 모듈로 되어 있는데, 이는 기능상 가운데에 근대식 복도가 배치되면서 공간 형식이 건축 부재의 구조적 특성이 아닌 내부 프로그램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기와지붕에 신라시대의 치미를 갖추는 등 역사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지만, 목구조를 콘크리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단순화된 부재 표현과 어색한 디테일, 조악한 시공 품질 등 전반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있는 건물이다. 2008년에는 수장고로 개보수하면서 외관의 벽돌벽에 시멘트 미장을 하고 내부 조적 벽체를 터서 공간을 통합하는 변화들이 있었다.

기존 서별관의 형태 미학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건축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어 온 건축적 난제들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1970년대 한국에서, 천 년 전에 존재했던 신라의 전통 건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혹은 2020년대 한국에서, 신라의 전통성을 재현하려고 했던 1970년대 건물의 가치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지은 지 40년이 넘은 건물의 용도가 세 번째 바뀌는 상황에서 새로운 프로그램과 기존 건축물의 전통적(?) 형태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렘 콜하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전통성이라는 정체성을 과거 지향적으로만 정의할 때 전통성의 건축은 공허한 동어반복의 건축이 된다. 또한 미래 지향성의 가치만을 우위에 두고 과거와 현재를 배제한 채 통일성을 추구한다면 그 또한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과거 문화유산을 현재성으로 재해석하고 연속하는 역사성의 개념으로 미래와 관계 맺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고유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스테레오토믹에서 텍토닉으로의 귀환

서별관은 한옥의 목구조를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후 기둥과 기둥 사이에 조적벽을 쌓고 시멘트 미장을 더해 신라의 전통성을 재현하려고 했던 건물이다. 부재의 표현과 디테일이 조악해 어찌 보면 포스트모던의 키치 버전스럽기도 하지만, 구축 기술과 표상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개념적 문제를 내재한다. 콘크리트의 물성과 구축 기술은 목재의 그것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차용해 전통성을 표상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대를 거슬러 1828년 독일 건축가 하인리히 휩쉬가 발표한 논문 「In What Style Should We Build?」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고 당시 건축계에 큰 논쟁을 불러왔다. 서양 건축의 고전 양식은 목구조에서 기인한 부재의 접합 디테일이 석조로 전환되면서도 그 형태의 흔적이 남아서 양식화된 것이다. 휩쉬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재료와 기술로 건축을 하면서 다른 물성에서 기인한 과거의 양식을 차용하는 신고전주의 방법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고트프리트 젬퍼는 건축을 구축 방식에 따라 텍토닉과 스테레오토믹으로 분류했다. 길이가 여러 가지인 부재를 결합해서 공간의 틀을 만드는 한옥 목구조는 텍토닉으로, 중량감 있는 덩어리를 쌓거나 굳혀 공간을 형성하는 석조나 콘크리트는 스테레오토믹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휩쉬의 신고전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구축 기술과 표상이 일치하지 않거나 모호한 선례들은 늘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파에스툼의 아테나 신전은 기둥과 보가 만나는 형식, 그리고 보의 접합은 목조 텍토닉 형식을 유지하지만, 기둥 자체는 일정한 석재 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스테레오토믹 형식을 취한다. 요르단의 페트라 신전은 암석을 깎고 잘라내어 만든 것으로 구축 기술은 스테레오토믹으로 분류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텍토닉에 의해 구현된 듯한 형태를 얻어냈다. 두 신전은 예술의 형태가 물성에서 나오는 것이냐 혹은 예술의지(kunstwollen)에서 나오는 것이냐에 대한 다원적인 해석의 여지를 주는 선례이며, 시대를 초월해 양식에 대한 창의적 역발상을 가능하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기존 서별관의 외관은 전통 목구조의 텍토닉 형태를 스테레오토믹 구축 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리모델링을 위해 칸막이벽과 천장을 철거한 내부는 순수하게 콘크리트 구조만 남아 있다. 프로젝트 범위가 실내에 집중된 상황에서 내부에 어떤 건축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가?(In What Style Should We Build?) 그리고 내부 공간은 기존 외관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한국이 아직 가난했던 1970년대, 예산과 기술의 한계로 스테레오토믹으로 구현하려 했던 텍토닉의 전통성, 그 미완의 작업을 이어받아 스테레오토믹 콘크리트 구조에서 내부로 확장되는 목구조 텍토닉을 구현하려고 했다. 이는 과거 유산의 형태 모방(mimesis)에만 국한했던 전통성의 개념을, 물성과 조인트의 정서적 효과로 확장해 재해석하는 새로운 역사성(novel historicity)으로의 전환이다.

 

 




책풍경의 판타지

도서관은 신성한 지식의 공간에 대한 시대정신의 건축적 판타지이다. 스톡홀름 공공도서관(군나르 아스플룬드, 1928)의 구심형 서가,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이은영, 2011, 「SPACE(공간)」 530호 참고)의 구정방(nine-square) 보이드를 둘러싸는 서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스노헤타, 2011)의 사선으로 오픈된 열람 공간, 주시우 도서관(OMA, 1992)의 연속되는 경사로 등. 도서관 책풍경(bookscape)에 대한 각 시대의 건축적 재현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신고전주의 건축가 에티엔 루이 불레의 도서관 계획안(Bibliothèque du Roi, 1785)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도서관은 하늘에서 신성한 빛이 떨어지고 책으로 둘러싸인 지식의 장이 끝없이 확장되는 판타지 공간이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의 8만여 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의 현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판전인 수다라장과 법보전 내부에는 경판을 꽂아둔 판가가 도리 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는데 도서관 서가를 닮았다. 판가의 목구조는 판전 건축의 목구조에 직접 결구되지는 않지만 재료와 형식이 닮아 건축과 판가가 하나로 통합된 공간 미학적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신라 시대의 도서관 건축이나 사료가 현존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증을 통해 신라의 전통성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시대적으로 가장 오래된 장경판전의 공간 미학을 현재 시점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역사성의 책풍경을 구현하고자 했다.

신라천년서고는 기존 서별관의 정면 5칸 중 북측의 1칸을 제외한 4칸과 측면 3칸의 12칸만 도서관으로 쓸 수 있어 내부 공간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또한 열람, 사서, 북큐레이션 등 기능에 따른 요구 사항도 공간 질서를 타협하게 만드는 현실적 요인들이다. 대칭과 균형의 건축 형식과 비대칭한 내부 공간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거울은 현실의 실재를 비추며 가상의 환영을 만들어내고 실제 공간의 한계를 넘어 감각의 세계를 확장한다. 거울면의 경계에서 만나는 두 세계의 대칭적 조우는 고전과 현대예술에서 존재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숨겨진 상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신라천년서고에서 로비 상부 박공 영역에 설치한 거울은 비대칭 공간을 반사해 대칭적 질서의 환영을 만들어내고 지식의 공간을 물리적 경계 너머로 확장한다. 거울은 천 년 역사 문헌 아카이브에 대한 공간적 은유이며 끝없이 뻗어나가는 책풍경에 대한 건축적 판타지이다.​ (글 김현대, 김수경 / 진행 한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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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김현대(이화여자대학교) + 텍토닉스랩 건축사사무소(김수경)

설계담당

한상현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외 1필지(국립경주박물관)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도서관)

대지면적

69,051㎡

건축면적

540.6㎡

연면적

713.4㎡

규모

지상 1층, 지하 1층

높이

10m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토기와

외부마감

도장

내부마감

석고보드, 원목, 무늬목, 거울

구조설계

(주)밀레니엄구조

기계,전기설계

(주)대광엔지니어링

시공

(주)씨원에스

설계기간

2021.10. ~ 2022.1.

시공기간

2021.11. ~ 2022.5.

공사비

6억 원

건축주

국립경주박물관


김현대, 김수경
김현대와 김수경은 건축, 도시, 조경, 제품디자인 등 분야의 경계를 넘어서는 형태적 상관성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연구와 실무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텍토닉스랩 건축사사무소는 설립 이후부터 그들의 작업을 다양한 국제저널에 꾸준히 소개해왔다. 2018년 프라하 건축주간(Architecture Week Prague)에 초청됐고, 시카고 아테네움의 국제건축상(2018), iF 디자인 어워드(2021), 한국건축문화대상(2022) 및 경기도건축문화상(2022)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