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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골짜기와 굴: 몸-집

공이림건축사사무소

박영태
사진
진효숙(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공이림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2022년 9월호 (통권 658호) 

 


 

“…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신이 망각한 빈 공간이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730쪽) 


백색으로 얼룩진 낯설고 투명한 이야기 

순수하고 투명한 저항이 느껴져서인가. 선뜻 읽어내기가 망설여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레면서 반가웠다. 같은 필지에 마주하는 집과 묘한 대구를 이루며 곧추서 있는 ‘몸-집’에 대해 건축가는 “삶의 기능과 수행성은 잠시 내려놓고, 순수 경험체로서 새로운 이야기가 발화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곱씹어보면 거주자나 집의 이야기가 아닌, 집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무의지적으로 샘솟는 모종의 발화체를 의미하는 듯한데, 아마도 집에 대해 소신에 찬 ‘다른 목소리’를 내려 했음이리라. 다름은 의미를 산출해내려는 저항의 몸짓이다. 건축가는 필시 예측 가능한 ‘집(기호)’ 대신, 새로운 의미망이 꿈틀대는 ‘집은 무엇으로 사는가?(기호작용)’를 메인 플롯으로 상정했을 테다. 몸-집의 이야기가 조금은 낯설게 읽히는 이유다. 정돈된 계단식 필지에 백색 외피를 두른 채 무심히 자리한 두 집을 부감(俯瞰)하고 있자면 흡사 건물이 아닌 이야기 속 등장인물 간의 대화 장면처럼 보인다. 등장인물은 ‘배경(시공간)’ 안에서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건축 이야기의 독특함은 본성(규모와 기능의 인과 구조, 복합성)상 이야기의 3요소인 인물-사건-배경 모두를 ‘인물(건물)’ 속에 흡수해버린다는 점이다. 우주 만물이 모두 그렇지 않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지만, 건축은 그 무엇보다도 넉넉함 속에 생생히 물질로서 현존하는 이야기이면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생성장치다. 몸-집은 거주자의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산출해내는 ‘이야기 생성장치 되기’를 꿈꾸었다. 아마도 몸-집 읽기에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실존적 저항의 태도라 할 수 있겠다. 모름지기 태도는 형식을 통해 ‘메시지’를 발산하며 작업의 의미를 새롭게 도약시키기 때문이다.

 

 

 

수직력과 태양빛이 조각한 낯선 골짜기(uncanny valley) 

저항의 태도로서 몸-집이 던진 승부수는 38㎡라는 한계 속에 수직-수평의 텐션을 대각선으로 미끄러트린 거대한 계단구조체의 형식화다. 몸-집에 들어서자마자 엄습하는 낯설고 모호한 긴장감의 실체는 (차마 집이라고 말하기 힘든) 검은색 벽에 둘러싸인 계단구조체로부터 ‘텅 빈 수직’의 기운이 쏟아내는 강렬한 압박감이다. 건축가가 “최우선으로 ‘벽과 바닥으로 조합된 높은 단(壇)’들을 쌓아 올렸다”고 한 계단구조체는 몸-집의 중추로서 연속-불연속의 위치에너지를 튕겨내며 ‘공허한 중심(voided center)’을 부유하는 지각과 신경망 전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들어올려진 2층의 거실, 떠 있는 주방을 포함해 계단실 상부가 충분히 비어 있음에도 붙잡을 수 없는 다양한 기운과 감정, 공간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비록 비스듬한 사선으로 중화시키기는 했으나 전체에 도사리는 낯선 기운의 실체로 의심되는 것은 바로 ‘분화된 수직력’이다. 불가능한 보폭을 지원하는 검은색 금속 계단과 뭉뚝한 목재 계단이 품고 있는 단면 두께의 변화, 조금씩 달라지는 수직 단차들의 총합은 색-질감과 질량감에 조응하며 앉고 서고 눕고 기대는 일상적 신체를 비일상의 운동으로 격상시킨다. 선홍빛으로 수직 분화된 최상부 전망탑은 좌판이 없는 세장한 검은 의자에 앉아 타자를 환대하려는 나를 몸-집과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해낸다. 수평이 종별화라면 수직은 분화를 통해 새로운 장(field), 영토를 창조해낸다. 사물들의 지각장을 정지상태로 분해하고 번역해내기 때문이다. 아돌프 로스의 주택 연작에서 스플릿-레벨(split-level)을 흩뿌리며 내밀하고 풍부한 개인성과 자율성을 위해 선보인 라움플랜의 동역학 역시 수직의 생명력 덕분이다. 존 헤이덕이 주택 연작에서 기하학과 추상성의 탐구를 거쳐 도달한 ‘벽’에 내재한 ‘공간의 붕괴’나 ‘납작한 깊이(flatness of depth)’의 본성 역시 수평도 사선도 아닌 수직력 아니었던가. 환유의 수평적 결합에 의존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은유의 수직적 도약에 기대는 것이 ‘시’다. 존재를 특별한 방식으로 잘라내어 카이로스적 사건을 유발하는 수직력 덕분에 몸-집은 이제 독립된 영혼으로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다. 수직은 대상과 ‘직각’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수직력만큼 몸-집을 ‘낯선 골짜기’로 현시해내는 다음 주인공은 검은 벽 상단에 납작하게 안착한 거대한 창문이다. 밖의 경치를 감상하는 시각적 프레임(풍경)이기보다는 풍부한 빛을 흡수하며 내부 분위기를 조성(광경)하는 두 가지 역할을 해낸다. 첫째, 몸-집 전체에 도포된 각각의 색-질감의 감도를 의도대로 정확히 증폭시킨다. 상념을 흡수하는 검은색 벽, 생의 환희를 반사하는 거울 빛 천장, 정신을 세우는 회색 바닥, 타자를 환대하는 전망탑의 붉은 벽에 시시각각 스며든 태양빛은 몸-집 전체를 환한 낯선 골짜기로 ‘무대화’한다. 두 번째는 높은 계단실과 조응하는 구도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공간감인데, 거실에서 내려다본 거대한 계단실은 끝을 알 수 없는 절벽이 되어 창밖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시선을 암흑의 세계로 추락시킨다. 시각적 ‘쾌(快)’를 괴물처럼 삼켜버리는 검은빛의 하강에너지는 생동감 넘치는 수직성을 무거운 중력장으로 변신시키며 부재와 실재, 상상과 현실,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정신이 아닌 몸(촉각)으로 마주하게 한다. 이제 창밖 풍경은 경기도 양평일 수도, 세렝게티의 초원일 수도, 미소 짓는 모나리자의 뒷배경(동양풍의 산수화)일 수도 있지만, 더욱 섬뜩해지는 이유는 그것(들)도 나를 바라볼지 모른다는 점, 동시에 검은 계단실 아래 심연으로부터 무언가(undertone)가 출몰할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하강하는 중력장과 생동하는 빛에너지의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몸-집을 시선과 응시의 달콤한 시소 게임장으로 일탈시킨다.

 

©Kim Jaekyeong

 

©Kim Jaekyeong

 

장소와 공간이 꿈꾸는 아크로바틱 

롱테이크로 연결되는 계단실과 2층 공간이 ‘정신의 감각적 현현’을 위한 생성의 장이라면, 현관 왼쪽의 사적인 방은 ‘육신의 정비와 휴식’을 위해 조직된 한 덩어리의 기관(organ)이다. 마호가니 빛 문지기가 오컬트(occult)한 신비감과 함께 굴속으로 안내한다. 좁고 긴 내부 공간은 자연의 살점이 콜라주된 벽면(OSB합판)과 노란 전통장판이 합세해 하나된 질료의 공감각에 부유하게 한다. 조명 빛에 각진 모서리들마저 만곡되어 신체를 안아주며, 방들에 구멍 난 작은 사각 창들이 화로(火爐)가 되어 자연과 나, 나와 나 사이의 대화로 온기를 더해준다. 노출된 천장 공간을 포함해 중목과 경량목구조가 드러내는 강직하고 담백한 기세는 이것이 바로 몸-집의 실체임을, 동시에 흙과 태양빛으로 빚은 뼈와 살을 상기시키며 물질과 공간이 아닌 ‘이야기로서의 텍토닉’을 꿈꾸게 한다. 몸-집의 중추인 계단구조체와의 동침을 허락한 ‘낯선 골짜기’만큼 낯선 굴속 침실은 이러한 이야기를 온전히 잉태하려 했을지 모르겠다. 침대 위 천장에는 몸-집을 살아있게 하는 ‘육중한 수직 리듬’이 시간과 동침하고 있다. 이것은 몸-집의 일부이면서 ‘낯선 골짜기’와 ‘굴’을 물질화한 몸-집 전체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야기-생성장치 되기’의 가능성은 이곳에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대상과 조우한다는 것, 동시에 이러한 조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다는 것은 ‘내가 아닐 수 있는 대상(타자)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프란츠 카프카의 ‘굴’을 인간의 취약성과 타자 의존성을 드러내는 곳이라 했지만, 몸-집에서는 온종일 낯선 골짜기에서 돛(공간)을 활짝 펼친 항해를 할 수 있다. 때론 굴속에 닻(장소)을 내린 채 새로운 돛에 대한 꿈을 지어내기도 한다. 장소와 공간이 꿈꾸는 아크로바틱(몸짓)을 기획하려는 몸-집은 일상으로의 환대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곳이다. (글 박영태 / 진행 박지윤 기자)

 

©Kim Jaekyeong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공이림건축사사무소(나인혜)

위치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분토골길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409㎡

건축면적

38.88㎡

연면적

73.44㎡

규모

지상 2층

주차

2대

높이

9.45m

건폐율

19.99%(디스 헛 포함)

용적률

37.44%(디스 헛 포함)

구조

경량목구조, 중목구조

외부마감

스터코플렉스

내부마감

OSB 인테리어 합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SPC 플로어링, 전통한지장판 위 옻칠

구조설계

공이림건축사사무소

기계설계

공간설비

전기설계

공이림건축사사무소

시공

직영공사

설계기간

2020. 4 ~ 12.

시공기간

2021.5. ~ 2022. 2

공사비

2억 원

조경설계

공이림건축사사무소


나인혜
나인혜는 독립연구자이자 공이림건축사사무소 소장으로 건축 실무와 연구를 병행한다. 가천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반추하고, 건축을 통한 문화적 개입을 실천하고자 노력 중이다.
박영태
박영태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공간디자인 석사학위와 건축디자인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디자인, 넥서스플랜에서 디자이너 및 디자인 디렉터로 건축 및 공간 디자인 실무를 경험했다. 현재 동양미래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축평단」 책임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건축콘서트』(2012), 『디자인으로 문화 읽기』(2014)가 있다.